청구성심병원, "너무나 한국적인 노조탄압"

노동사회

청구성심병원, "너무나 한국적인 노조탄압"

admin 0 4,526 2013.05.11 11:50

2003년 5월15일 전국보건의료노조 청구성심병원지부 김명희 부지부장은 원진노동환경연구소 임상혁 소장과 마주 앉았다. 김 부지부장은 임소장에게 병원 노동자들이 흔히 걸리는 디스크 통증을 호소하며 산재상담을 받는 중이었다. 이 와중에 임소장은 김 부지부장에게 이상한 점을 느꼈다. 김 부지부장은 병원 얘기만 나오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왜 그러냐고 묻자 김 부지부장은 "병원 얘기가 나오면 근육이 마비되고 가슴이 뛴다"고 호소했다.

jojik21_01_0.jpg'병원'소리에 가슴이 뛴다

' 청구성심병원'이 아닌 '병원'이란 단어만 들어도 얼굴 근육이 마비된다는 것. 둘간의 대화는 심각했고, 김 부지부장은 "다른 조합원들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한 임 소장은 청구성심병원지부 조합원의 정신질환 여부를 검사하기로 결정했다.

닷새가 지난 5월20일, 노동건강연대와 보건의료노조는 청구성심병원지부 조합원의 건강상 문제를 파악해, 만에 하나 이상이 있을 경우 사회적으로 알려나가기로 했다. 두 단체는 세계적으로 이미 공신력을 인정받은 다면적 인성검사를 조합원에게 실시하기로 했다.

최은희 노동건강연대 상근활동가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검사를 한다고는 했지만 설마 집단적으로 정신질환에 걸렸을까 생각했던 것이 사실이다. 사측의 노조탄압으로 인해 조합원 한 두 명이 아닌 집단이 정신질환에 걸렸다는 것을 듣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 러나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다면적 인성검사결과 조합원 중 절반이 넘는 9명이 '정신질환'진단을 받았다. 진료를 담당한 배기영 전문의(신경과)는 "적응장애의 진단을 받은 조합원들은 장기간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왔으며 스트레스 사건의 정도, 횟수, 시기에 상당한 기간 정신적, 사회적으로 유해한 작업환경을 벗어나서 안정을 취하고, 전문적 치료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기존에 치료를 받던 환자의 증세를 보면 치료 중 호전을 보이더라도 노조가 연관되어 압박을 받을 때마다 상태가 악화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는 소견서를 제출했다. 또한 "조합원 대부분의 정신건강을 위협하는 이러한 비인간적 작업환경의 근본적인 개선이 없이는 안정과 치료 후에도 재발의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적응장애란 이례적으로 심한 스트레스를 겪은 뒤 우울이나 불안 반응 등을 보이며, 이전 생활을 영위하기 어려울 때 붙이는 병명이다.

결 국 7월7일 민주노총과 '청구성심병원노동자 집단 산재인정과 책임자처벌을 위한 공동대책위'는 병원의 부당노동행위와 노조탄압으로 인해 조합원들이 정신질환을 앓게 됐다며 근로복지공단에 집단산재신청을 내는 사상 초유의 일이 일어나게 됐다. 사람을 치료하는 병원에서 조합원이란 이유로 정신질환을 앓게 된 일은 한국사회에서 노동자에 대한 인식에 근본적인 물음을 제기하는 사건이기도 했다. 일시적인 노조탄압이 아닌 치밀하고 장기적이고, 일상적인 노조탄압이 자행됐다는 것을 증명하는 이번 사건은 오직 한국사회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기 때문이다.

청구성심병원은 어떤 곳인가?

청 구성심병원은 1998년 조합원 총회에서 구사대를 동원해 식칼테러, 똥물 투척은 물론 기자까지 집단 폭행해 전치 4주의 상처를 입혔으며, 조합원 집단해고 등, 비상식적인 노조탄압 으로 '유명'해진 사업장이다. 당시 민주노총이 부당노동행위 사용자 1위로 청구성심병원 김학중 이사장을 꼽았을 정도였다. 김학중 이사장은 적대적인 노조관을 가지고 있다고 알려져 있으며, 실제로 98년, 직접 삭발을 하면서까지 노조와 맞서기도 했다. 그 결과 80여명에 육박하던 조합원의 수가 급격히 감소해 30여명만이 조합원으로 남아있게 됐다.

똥물투척과 식칼테러로 사회적인 물의를 빚게 되자, 노사정위원회(당시 부당노동행위특별위원회 위원장 노무현)에서 노사합의를 하게 돼 일시적으로 업무에 복귀했지만, 3일 뒤 돌아온 것은 합의사항을 지키지 않겠다는 사용자 측의 통보였다.

민 주노총 신승철 부위원장은 "부당 노동행위를 일삼았던 사용자에 대한 처벌이 당시에 이뤄졌으면 사태가 오늘날까지 악화되지 않았을 것"이라며 "결국 합의사항을 지키지 않아도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았던 것이 조합원들의 정신질환을 불러오게 된 것이 아니냐"고 당시 노동부의 직무유기를 꼬집었다.

청구성심병원의 노조 탄압은 1999년부터는 일상적인 업무과정에서 나타나게 돼, 일상적 언어폭력, 조합원에게만 적용되는 차별적인 업무의 과부하, 회식에 끼워주지 않기, 대화단절 등으로 이어졌다.

또 한 2001년 이후에는 신규조합원이 한 명도 늘지 않았다는 점도 노조탄압을 반증하는데 청구성심병원 지부는 "98년 식칼테러와 똥물투척 사건을 진두지휘한 소상식을 행정부원장으로 발령해 집중적인 노조탄압을 가하면서 신규조합원 가입을 철저히 막은 것"에서 원인을 찾고 있다.

어떤 탄압이 있었는가?

사측의 조합원에 대한 폭행과 폭언은 일상적인 형태로 이뤄졌다. 극기훈련장에서 병원 관리자들에게 사지를 붙잡힌 채로 20여분간 집단 폭행을 당했던 조합원이 있는가 하면, 야간근무를 하던 중 병원 관리자로부터 "네가 여기 이 시간에 올 것이 못된다, 고가의 장비가 여기에 있는데 네가 훔치러 온 거 아니냐, 병신새끼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등의 폭언을 하면서 폭행을 당해 겁에 질려 112에 신고를 했던 조합원도 있었다. 폭행을 당한 조합원은 직장을 다니는 것이 두려울 지경이 돼 수면제를 복용하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는 극단적인 상태가 됐다.

조합원에 대한 의도적인 업무과중도 일상적인 사례 중 하나다. 사측은 두 명이 일해야 하는 부서를 혼자 책임지게 하는 방식으로 조합원을 괴롭혔다. 실제로 조합원이 타부서로 옮기게 될 경우 사측은 조합원 혼자 담당했던 업무에 두 명의 비조합원을 배치시켜 조합원으로 하여금 분노감, 배신감, 박탈감을 자아내게 했다. 이로 인해 한 조합원은 "분노감, 모욕감에 잠을 이루지 못해 수면제를 복용할 수밖에 없었고 흡연량과 음주량의 횟수가 늘었다"고 고백했다.

또한 조합원이 있는 부서의 경우 결원이 생겨도 인력 충원을 하지 않음으로써 과다노동을 조장하기도 했다. 조합원인 한 간호사는 "작년 겨울 감기몸살로 열이 40도까지 오르내리는 상황에서도 출근을 할 수 밖에 없게 됐다"며 이로 인해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대우조차 받지 못한다는 사실에 서글픔을 느꼈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직원들에게 각종 혜택을 부여하는 원우회에 조합원 가입 거부, 부서내 회식자리에 조합원 제외, 조합원이 인사해도 받지 않기, CCTV를 이용한 노동통제, 근무 중 사소한 실수에 대한 경고장 남발, 조합원 조퇴나 외출에 대한 엄격한 제한, 승진탈락, 잦은 부서 이동 등 일상적인 노조탄압의 사례를 일일이 열거하기도 벅찰 정도였다.

민주노총은 98년에 이어 올해에도 악질 사용자 11인 중 한 명으로 김학중 이사장을 지목하고 있으며, 불법부당노동행위에 대한 검찰의 철저한 수사 및 이사장 구속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민주노동당, 노동건강연대, 민의련 등도 "부당노동행위 근절과 조합원 산재인정과 특별감독을 실시해 부당노동행위로 인한 조합원의 피해가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된다"며 공동 대응을 취하고 있다. 노동부는 노동계의 요구를 받아들여 22일부터 25일까지 나흘 간 청구성심병원에 대한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한다.

노동운동 관심 가져야

신 승철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오늘(22일) 부당노동행위를 조사를 위해 근로감독관이 청구성심병원을 방문했지만 이사장은 해외로 나갔고 주요 인물들 역시 나오지 않았다"면서 제대로 된 근로감독이 이뤄질지 우려를 표했다. 신부위원장은 "근로감독관에게는 일상적인 부당노동행위에 대해서 중점적으로 조사할 것을 요구했다"며 "사흘 간의 기간동안 부당노동행위를 조사하는 것이 불가능한 만큼 기간을 연장해 줄 것을 요청했고, 그 쪽(근로감독관)도 긍정적으로 반응했다"고 덧붙였다.

보건의료노조를 비롯한 청구성심병원 노동자 집단산재인정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도 기간을 연장해 일상적 노조탄압을 일삼는 청구성심병원 김학중 이사장을 구속시켜야 제2, 제3의 청구성심병원식 막가파 노조탄압이 근절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지역 공대위에 참여하고 있는 강호연 민주노총 서구지구협의회 의장(서부민중연대 공동의장)은 "병원이 갖는 특성이 주민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기 때문에 병원 노동자의 탄압양식이 지역 주민들의 건강권에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며 "노동부가 청구성심병원 문제를 철저히 조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보건의료노조 윤영규 위원장은 "97년 특별감독을 실시하겠다고 했는데 지금 그 자료조차 남아있지 않을 정도로 허술했다"며 "그동안 수차례 노동부에 청구성심병원의 특별근로감독을 요청했음에도 이뤄지지 않다가 지금에서야 이뤄지게 됐다"고 질타했다. 윤 위원장은 "제대로 된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해 다시는 환자의 생명을 치유하고, 건강하게 만드는 병원에서 노동자를 병들게 만드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청구성심병원 사태는 소규모 사업장이 가지는 한계 때문에 그동안 언론은 물론이고 노동계에서조차 그 사태의 심각성에 비해 크게 부각되지 못했던 건 아닌지 되물어야 할 과제도 남겼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7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