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일의 파업, 빼앗긴 노조

노동사회

600일의 파업, 빼앗긴 노조

admin 0 3,758 2013.05.11 11:49

600일이 넘는 파업에도 도무지 해결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었다. 계속되는 언론보도와 연대집회, 한국시그네틱스 조합원들의 한강철교 고공농성 등에도 지긋지긋하도록 꿋꿋하게 무성의한 영풍그룹의 태도는 모인 사람들은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파릇파릇한 봄날, 논현동 영풍그룹 본사 앞, 단상에 위에 선 어느 조합원이 약간 격앙된 어조로 구호를 외쳤다. “…영풍그룹 박살내자!” 힘찬 팔뚝질과 우렁찬 목소리로 집회에 참가한 사람들이 화답하는 순간, 임은옥 교선국장의 가슴은 철러덩 내려앉았다. ‘허걱, 저거 벌금 50만 원짜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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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년 8월 9일 염창동공장장 농성장에 침탈한 용역깡패들과 대치중인 조합원들 ]

법으로 금지된 구호들

강남구 논현동 142번지 영풍빌딩 앞에서는 구호로 외치거나 현수막으로 걸거나 확성기로 방송해서는 안 된다고 법적으로 금지된 말들이 몇 개 있다.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금요일 영풍본사 옆 2시 집회에서도 다음과 같은 말은 할 수 없다. “반인륜적 어린이집 파괴”, “용역깡패 수백 명 여성노동자 폭행하고, 성추행”, “환경파괴, 죽음의 왕국 영풍” 등등.  

그러나, 2002년 2월5일과 8일, 영유아보호법을 어겨가면서 어린이집을 폭력적으로 철거했다가 시그네틱스 양수제 전 사장이 강서구청에게 고발당한 사실, 2001년 8월9일, 연예인 경호 아르바이트인줄 알고 쫄래쫄래 따라온 대학생들까지 포함된, 용역경비업체 MNC월드의 직원 250여 명이 시그네틱스 염창동공장에서 농성 중이던 파업대오를 침탈해 각목으로 조합원들을 폭행하고 해산시킨 사실, 2002년 4월2일, 산업은행 항의농성 과정에서 구로경찰서에 연행된 시그네틱스 여성조합원 7명이 법으로 금지된 알몸수색을 당했다가 손해배상을 받는 등 충돌과정에서 번번이 성추행이 자행된 사실, 그리고 2002년 12월15일, 영풍 석포제련소에서는 노동자 오승열씨가 안전장치 없이 냉각탑을 청소하다 떨어져 사망하는 등 안전 사고가 끊이질 않으며, 대다수 노동자와 부근 주민이 유해 화학물질에 의해 치아가 부식되고 목에 염증이 생기는 등의 질환을 앓고 있다는 사실 등등. 장형진 사장 이하 영풍 임원들에게 아무리 불편하게 들릴지라도 어쩔 수 없다. 위의 구호들이 근거하고 있는 이 모든 사실들은  금속노조 시그네틱스 지회 와 시그네틱스 지회가 주축이 된 영풍공동대책위원회의 투쟁을 통해 명백하게 확인된 것들이다. 

34년만의 첫 전면파업

만 2년을 훌쩍 넘어섰다. 대량 해고, 용역깡패들의 농성장 침탈, 어린이집 강제철거, 알몸수색, 삭발, 단식, 혈서, 철야 농성, 한강대교 고공투쟁, 고소, 고발, 행정소송, 노동위원회 중재, 구속, 가압류, 생계투쟁, 그리고 ‘합법적인’ 노조 강탈…, 2001년 7월23일, 처음으로 전면파업에 들어간 그 날 이후,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한국시그네틱스는 생산직 노동자가 대부분 기혼 여성인 반도체부품 조립 회사다. 왜 이들은 그 긴 시간을 공장에서 손에 익은 부속품을 만지는 대신 거리에서 팔뚝질을 하고 악다구니를 지르며 보내게 됐을까? 그 살벌하고 어렵다는 장기파업을 하게 됐을까?

파업이 시작되기 전, 강서구 염창동에서 한국시그네틱스 노사가 만나 협의하고 있는 문제는 ‘공장이전’ 혹은 ‘배치전환’에 관한 것이었다. 1998년 말 거평그룹 시절, 외환위기 과정에서 기업개선작업(Workout) 대상이 된 시그네틱스는 채권은행단과 염창동공장 매각을 중심으로 하는 기업구조개선약정을 체결하고, 노조는 고용승계를 전제로 임금삭감, 파주공장으로의 잉여인력 전직 등을 합의 수용했다. 노동자들로서는 커다란 양보였다. 그런데, 2000년 5월에 시그네틱스를 새롭게 인수한 영풍그룹과 양수제 사장을 비롯한 시그네틱스 임원들은 그 해 말에 갑작스레 안산에 제3공장 설립을 추진하더니, 2001년 7월23일 염창동공장의 노동자들을 일방적으로 안산공장으로 인사발령 냈다. 그러나 노동조합은 이에 불복, 안산공장으로 가는 기계반출을 막기 위해 염창동공장에서 모여 농성을 시작하며 1967년 노동조합이 생긴 이래 처음으로 전면파업에 돌입했다. 

중요한 경영권과 절박한 생존권

왜 안산공장이었을까? 반발이 거셀 것이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왜 기존 단체협상의 합의사항을 깨면서까지 안산공장을 고집해야 했던 것일까? 왜 파주공장이었을까? 손해배상, 가압류와 구속의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왜 안산공장을 거부해야 했던 것일까? 

노동조합은 안산공장이 아니라 파주공장이어야 하는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파주공장 부지의 유휴공간(670평)에 안산공장(700여평)의 시설이 충분히 들어설 수 있고, 중복투자에 따른 시설비용과 물류비용 등을 절감할 수 있다는 것. 게다가 인사발령 당시 투자계획과 생산계획이 전혀 없었던 안산공장은 워크아웃시 고통분담의 전제였던 ‘고용안정’을 보장할 수 없는 데다가, 정리해고와 노조와해를 위한 수단이 아닌가하는 의심이 든다는 것. 실제 2001년 8월의 노사협상 과정에서 양수제 전 사장은 “희망하는 사람이 파주에 오면 노조 집행부도 파주로 간다고 할 것 아니냐? 그렇게는 못한다”며 노동조합에 대한 혐오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바 있다.(S.T.I.라는 파견업체를 통해 실업계 고등학교 졸업예정자 등을 비정규직으로 공급받고 있는 파주공장에는 노조가 없다.) 뿐만 아니라, 염창동공장의 낡은 장비 중 일부만을 가져다가 운영하고 있는 안산공장은 2002년 현재 1인당 매출액에서 파주공장의 1/7에도 못 미치고 있다. 또, 노조는 안산공장이 이자비용과 물류비용을 가중시키고 반도체 조립산업의 핵심 경쟁력 중 하나인 납기(Cycle Time)를 증가시켜 시그네틱스 전체의 경쟁력을 감소시키고 있어 안산공장이 “어떻게 유지되는지가 의심스럽다”고 지적한다.           

한편, 사용자측은 좀 더 단순하게 설명한다. “경영진”이 선정한 몇 군데 후보지 가운데 “종합적으로 검토해봤을 때”, 안산공단이 “이전 최적지로 판단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단체협약 상에서도 전체적인 합의가 필요한 ‘배치전환’과는 달리 ‘공장이전’은 6개월 전에 노동조합에게 통보만 하고 이전에 따른 세부 대책을 합의하면 된다는 것이다. 시그네틱스 조합원에 대한 부당노동행위 및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검토한 경기지방노동위원회도 사용자의 의견에 동조한다. 이 문제는 “중요한 경영권에 관한 사항”이기 때문에 노조와 합의가 필요한 ‘배치전환’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중요한 경영권”은 구질구질하게 자기 행동의 이유와 정당성을 법 밖에서 애써 변명하고 설명할 필요가 없다. 법만 엄정히 집행되면, 권리행사 하는데 별 지장 없다. 그러나 고용안정 등 ‘절박한 생존권’은 자신의 행동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끊임없이 법 바깥에서 구체적이고 설득력 있는 근거들을 찾아내야 한다. “중요한 경영권”과 부딪히는 노동자들의 생존 문제는 대개 불법이 되기 때문이다. 불법이라는 말이나 소소한 처벌에 주눅들지 않아야 생존을 위해 싸울 수 있기 때문이다. 

합법적인 노조 강탈

경영권에 관련된 사안을 목적으로 하는 쟁의행위 돌입, 염창동공장 점거 농성, 용역깡패 침탈과 어린이집 철거시 사측과의 물리적인 충돌, 석포에서의 무료한방진료와 집회 등 영풍공대위 활동, 한강대교 고공농성 등 시그네틱스 노동자들이 걸어온 걸음 사이사이에도 불법이 안 껴든 곳이 없다. 비록 양수제 전 사장이 두 번씩이나 부도를 낸 부실경영의 장본인이라고 해도, 경영권은 노동자들에게는 신성불가침의 영역인 것이다. 그리고 그 “중요한 경영권”을 노동자들이 손도 못 대는 신성한 것으로 만드는 일은 시그네틱스 경영진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수백 억 원의 공적자금을 대출해 주면서도 부실경영이나 노사갈등 등에 대한 국회의원의 질의에 경영진의 말만을 거의 그대로 반복하는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의 태만, 알몸수색을 당한 여성노동자들에게 “그렇게 인권 유린을 당해야 재범을 하지 않는다”느니 “못 배워서 공순이밖에 못한다”느니 하고 감히 말할 수 있는 파렴치한 낯짝을 가진, 당시 남부지청 검사 같은 공안세력들의 적극적인 비호 등이 어우러져야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이렇듯 “중요한 경영권”을 수호하는 권력의 네트워크는 광범위하고 힘이 세다. 시그네틱스 노동자들이 각자 개인적으로 행동했다면 아무리 가족의 생계를 짊어지고 비장한 각오로 달려들었어도 계란으로 바위 치기였을 게다. 금속노조 시그네틱스 지회라는 울타리가 있었기에 서로를 보듬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울타리가 날아가 버렸다. 노동조합 재적인원의 2/3 이상이 발의하면 총회를 소집할 수 있다는 규칙을 악용해서, 파업에 참여하지 않았던 안산공장의 ‘조합원’들이 일방적으로 노동조합 임원진을 새로 뽑고 금속노조에서 탈퇴해버린 것이다. 2003년 1월 화의신청 이전부터 계속해서 채권단에게 “고질적인 노사관계가 일소됐음”을 주장하던 영풍자본과 시그네틱스가 이 과정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관여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그러나 주로 장비기사, 설비기사 등 생산직이 아닌 남성들로 이뤄져 있는 이 ‘조합원’들이 사측으로부터 오랫동안 생산직 여성들 보다 복지, 임금 등에서 눈에 띄게 좋은 대우를 받아왔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임금협상이 끝날 때마다 노조 책상을 뒤집어 놓는” 등 대다수가 여성인 노조 집행부와 갈등이 잠재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1997년에는 집행부를 반대하는 남자조합원 40여 명이 노동조합 사무실을 부수고 문을 용접해 버리는 등의 폭력을 행사한 경험도 있다. 

웃어야죠!

“웃어야죠…, 그래도 우리 이거 마음 정리하는데 일주일 걸렸어요” 임영숙 부지회장이 넉넉한 웃음을 띄고 말한다. 결코 속없는 웃음이 아니다. “어렵죠. 돈도 못 버니까 당장 먹고 살 것도 걱정입니다.” 말과 달리 정혜경 지회장의 목소리는 우렁차다. “그러나 노동자의 자존심을 버리고 굴복할 순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힘있게 투쟁하고 웃으면서 투쟁할 수 있는 그 저력이 무엇인지 영풍자본에게 똑똑히 알려줄 생각입니다.” ‘새로 선출된 임원’들은 이미 집행부를 꾸리고 사측과 교섭에 들어갔다. 졸지에 노동조합을 빼앗기게 된 조합원들도 이제 마음을 추스르고 어떻게 해야할지를 고민하고 있다. 구체적인 계획과 일정이 쉽게 나오기에는 상황이 너무 어렵지만, 이제까지 그래왔듯 시그네틱스 노동자들은 동지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스스로 선택한 길을 갈 것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8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