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노조 파업을 돌아본다

노동사회

철도노조 파업을 돌아본다

admin 0 3,796 2013.05.11 11:43

"노동자들의 요구가 정당하다고 하여 항상 승리하는 것이 아니듯 오늘 우리가 목표한 것을 달성하지 못했다고 하여 영원히 패배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철도노조 천환규 위원장이 7월10일 경찰에 자진출두하면서 조합원들을 상대로 발표한 담화문의 일부다.

천 위원장도 겉으론 6·28 파업이 '패배'했음을 인정하는 듯 하다. 정부는 철도파업에 일절 대화조차 응하지 않다가 10여명을 구속하고 657명을 직위해제 했으며, 1,045명을 고소고발하고 8,648명을 중징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노조는 왜 정부의 강경대응에 패배를 예상했으면서도 파업을 강행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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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세대 노천극장에 집결한 철도노조 서울지방본부 노조원들이 파업강행 찬반투표를 하고 있다.  - 출처: 오마이뉴스 ]

파업의 당위성

철 도노조 간부들은 "한 달이라는 짧은 준비기간에도 조합원의 반수가 파업에 참여했다. 이번 파업을 안 했으면 노조는 무너졌을 것"이라며 조직 내부의 파업 불가피론에 공감한다. 노조가 줄기차게 요구해온 공공철도와 조합원의 근로조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철도구조개혁 관련 법안이 통과되는 상황에서 노조가 손놓고 있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9천 명의 조합원들은 정부의 중징계 방침 발표에도 별 동요 없이 나흘씩 파업대오를 유지할 정도로 정부에 대한 불신이 높았다. 조합원 함 아무개씨(차량지부, 33)는 "정부가 노조와 논의해 구조개혁을 추진하겠다고 한 합의사항을 지키지 않고, 말을 바꾸어 무조건 힘으로 밀어붙이려고 하는 게 파업 참가의 가장 큰 이유다"고 말했다.

조합원들은 정부가 철도구조개혁법안을 강행 처리하는 것을 보면서 지난해 2월, 올해 4월 합의한 근로조건 개선이나 해고자 복직 문제 등도 지키지 않을 수 있다는 불만과 불신이 팽배했다. 비록 공무원연금 문제가 걸려있는 한국철도공사법이 6월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았지만, 조합원들의 이런 불안감을 해소하기엔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이런 조직내 분위기와 달리 철도파업은 언론과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철도노조가 파업명분으로 내세운 "정부의 4·20 합의 파기"에 대해 되레 정부는 노조책임을 운운하며 역공을 폈다.

6·28 철도파업은 결과적으로 얘기하면 두 달 지연된 파업이라고 하겠다. 정부가 철도구조개혁과 관련한 정책변화에 대한 고려 없이 '4·20 합의문'으로 미봉했던 철도노조의 파업은 끝내 터질 수밖에 없는 활화산이었다.

철 도노조가 민영화 폐기 등을 요구하며 4월20일 파업을 예고한 가운데 철도청과 철도노조는 당일 아침 노조의 요구안이 대폭 반영된 '4·20 합의문'을 체결했다. 하지만 최근 노정간 합의파기 공방을 보면 이 합의문에 대한 양쪽의 입장 차가 '6·28 파업'을 촉발시킨 한 원인임을 알 수 있다.

'4·20 합의' 노정 해석차

건교부 이재붕 철도구조개혁기획단장은 최근 한 일간지 기고글을 통해 "공사화, 입법추진시기 등 개혁추진 방안에 대해 '사쪽 의견은 이해되나 내부 사정상 합의문에 명문화하는 것은 곤란하니 양해를 해주면 협조하겠다'는 노조의 간곡한 요청에 따라 철도청이 이를 수용함으로써 합의문이 체결됐다"고 밝혔다. 이는 정부의 구조개혁 방침을 노조가 인정한 것을 전제로 합의했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철도노조 김영준 정책국장은 같은 일간지를 통해 "정부가 철도노조와 충분히 협의하고 사회적 합의를 거쳐 철도구조개혁을 진행하겠다고 약속한다면 철도노조는 공무원 신분 전환을 포함한 철도개혁방안에 대해 조합원 총투표로 위임을 받고 협의에 나서겠다는 것이 당시 노조입장이었다"고 이 단장의 주장을 반박했다.

철도노조는 이런 입장에 따라 합의문 가운데 "향후 철도개혁은 철도노조 등 이해당사자와 충분한 논의와 공청회 등 사회적 합의를 거쳐 추진하고, 관련법안이 성안될 경우 조속한 시기에 국회 통과를 위해 공동 노력한다"는 부분에 주목해왔다. 4·20 합의문에는 물론 '공사화'나 국회처리 시기가 명시돼 있지 않았다.

이에 따라 철도노조는 5월30일 정기대의원대회에서 '4·20 합의'와 관련해 6월까지 철도개혁 요구안을 마련하고 조합원 총투표를 실시, 공공철도 법안을 만들어 하반기 국회에 제출하겠다는 자체 계획을 수립했다. 노조는 조합원들이 공무원 신분변화를 가져오는 철도개혁 문제에 대해 조직 내부에서 우선 논의하고 공감대를 형성해야만 정부와 협상에 나설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3일 뒤인 6월3일 정부는 '의원입법'이라는 방법을 동원해 철도구조개혁 관련 3개 법안(철도산업발전기본법, 한국철도공사법, 철도시설공단법)을 발의, 철도노조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철도노조는 즉각 '4·20 합의' 파기라며 총파업의 배수진을 치고 노정 직접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하지만 6월17일 국회 건교위에서 법안이 통과될 때까지 대화는 이뤄지지 않았으며 파업철회 시까지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정부는 6월 국회에 철도구조개혁법안을 상정하기 앞서 노조가 대화에 응하지 않았다고 공격했다. 정부는 노조에 합의파기 책임을 전가하며 불법파업이므로 대화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 에 대해 철도노조는 "구조개혁 문제는 정부와 논의할 사항이기 때문에 철도청 간담회 요구에는 응하지 않았을 뿐이며, 정부가 노조와 충분한 대화를 했다는 근거로 제시한 4월30일 청와대 토론회는 철도노조와 무관했고 사회적 합의를 위한 회의도 아니었다"고 반박했다.

시작부터 한계에 놓인 파업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한 노사관계 전문가는 "정부에도 책임이 있긴 하지만, 철도파업이 여론의 질타를 받았던 이유는 건교부와 직접협상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을 쟁점화해 파업에 돌입한 게 설득력이 약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 전문가는 "노조가 철도구조개혁법안이 노정협상 없이 그대로 통과될 경우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지를 부각했더라면 명분을 더 세울 수 있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번 파업에서 노조가 철도공공성이 약화된다며 문제를 제기했던 고속철도 건설비용 부담 문제나 개량사업 분리문제, 공사형식 등은 사회적 이슈가 되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이 글에서 철도구조개혁 법안의 쟁점을 자세히 다루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이유들로 파업의 정당성을 주장해야 하는 노조와 현재 추진중인 대량징계의 명분을 세워야 하는 정부가 파업 철회 이후에도 '4·20 합의' 파기책임을 놓고 팽팽히 맞서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에 대해 노조 서울지방본부 이종렬 총무국장은 "4월 합의 직후부터 정부는 6월 법안처리 입장을 분명히 했음에도 불구, 노조가 예상한 일정대로 추진될 것이라고 본 게 실수"라고 노조지도부를 비판했다. 서울지방본부 일부 지부들은 '4·20 합의'에 대해 공공철도를 위한 구체적인 합의가 부족하다며 당시 파업철회를 비판했으며, 합의 이후에도 공세적인 투쟁채비를 요구해왔다.

김영훈 노조대변인은 "4·20합의에 기대를 걸면서 안이하게 대응했던 것이 사실"이라며 "한국철도공사법을 처리하지 못한 데서 보듯, 졸속처리하지 않는 이상 시간부족으로 법안을 처리하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했다"고 말했다. 정부의 책임을 논외로 할 때, 노조가 당초 '6월 법안 강행처리'를 예상하지 못한 것은 어쨌든 다른 대응책을 준비할 시간을 갖지 못한 채 '정면충돌' 상황에 맞닥뜨리게 된 한 원인이 됐다.

이에 대해 김 대변인은 "법안회부 후 15일이 경과한 뒤 상정하도록 한 국회법도 어기고, 의원입법이라는 편법을 동원해 법안을 처리하는 것은 분명 비이성적 모습이었다"고 노무현 정부에 대한 실망감을 표현했다. 이에 앞서 이뤄졌던 '4·20 합의'는 노무현 정부의 전향적 태도에 따라 철도 노사관계를 진전시킨 것으로 평가받았으며, 정부의 노동정책에 대한 기대를 어느 정도 높이는 계기가 됐던 게 사실이다. 이에 따라 노조 집행부도 파업 전후로 실질적인 노정협상 자리가 단 한차례도 만들어지지 못할 것으로 쉽게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상황은 파업철회 과정에도 영향을 미쳤다. 철도노조는 정부의 합의파기와 대화거부를 이유로 파업에 돌입했기 때문에, 6월30일 법안이 통과된 뒤 향후 방향설정에서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파업 사흘째 법안이 통과된 순간, 철도노조가 요구한 4·20 합의이행, 곧 사회적 합의를 통한 철도개혁 정책이 수용될 여지는 더욱 좁아졌기 때문이다. 구조개혁법안이 통과된 상황에선 협상이 이뤄진다 해도 하반기 국회에서 처리될 예정인 '공무원 연금' 문제에 무게가 더 실릴 가능성이 있었다.

김영훈 대변인은 "법안통과 저지가 물 건너간 상황에서 설사 협상이 이뤄진다 해도 '돈' 문제인 공무원연금 문제만 놓고 논의가 진행되면, 공공철도 사수를 위한 파업의 명분이 훼손될 수밖에 없었다"고 조건 없이 파업을 철회했던 배경을 설명했다. 철도노조는 파업철회 결정을 하는데 있어 청와대 쪽의 협상불가 입장을 최종적으로 확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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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28일 총파업을 선언하는 자리에 모인 철도 조합원들  - 출처:철도노조 ]

장기적으론 성과도 있어

철 도노조가 이번 파업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다시 정리하면서 지난 6월28일 파업전야제가 열리던 연세대에서 만났던 한 철도노조 간부가 한 말이 떠오른다. "파업을 해서 법안통과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노조가 정부가 추진하는 구조개혁법안이 잘못된 정책이라고 판단하는 이상, 파업을 통해서라도 문제를 제기해야만 한다."

실리를 얻기 힘든 파업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노조 지도부로서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 가는 것이 입법과정"(건교부 이재붕 단장)이라고 보는 정부에 맞서 4·20 합의를 무기로 "충분한 논의"를 요구했던 철도노조가 일방적으로 추진되는 입법과정에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파업'이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당장 조직수습과 조합원들의 징계문제를 풀어야 할 입장에 처해있는 철도노조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이번 파업이 성과도 있었다고 주장한다. 철도노조 간부들은 "내년 총선에서 노조의 입장정리를 수월하게 한 것"을 이번 파업의 성과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천환규 위원장도 7월10일 파업의미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입법문제에 단위노조가 대응하기 어려운 한계를 보여주면서 노조의 정치세력화 문제를 부각한 것"이라고 답한 바 있다.

'탄압이 있는 곳에 투쟁이 있다'는 말이 있다고 한다. 정부가 철도정책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철도노동자들이 주장하는 요구를 계속해서 탄압한다면 제2, 제3의 철도파업은 이미 예고된 일인지도 모른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7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