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만달러론의 허실

노동사회

2만달러론의 허실

admin 0 2,604 2013.05.11 11:35

아마 1998년일 거다. 한 신문에서 인상적인 기사를 읽은 기억이 난다. 런던정치경제대학원(LSE)에서 세계 54개국을 대상으로 '행복' 지수를 조사했는데 방글라데시가 1등이었다. 그 뒤를 아제르바이젠, 나이지리아가 이었다. 그 의미를 액면 그대로야 받아들일 수는 없겠지만, 사람의 행복이라는 게 단순히 국민소득 순이 아님을 보여준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사라진 '동북아 경제중심론'

노 무현 정권이 2010년까지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를 달성하겠다는 원대한(?) 국정목표를 세웠다. 국정의 핵심축이던 '동북아 경제중심'이라는 비전은 언제부터인가 현 정권의 당국자들 입에서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었다. '동북아 경제중심'이라는 추상적인 구호보다는 '2010년까지 2만 달러 달성한다'는 구호가 쌈박하기는 하다. 적어도 내년 총선을 겨냥해서는 그렇다는 말이다. 그런 만큼 2만 달러론은 졸속 '페이퍼 워크'의 산물일 가능성이 높다는 데 개인적으로 혐의를 많이 둔다.

그나마 유일하게 다행스럽게 느껴지는 대목도 있다. 2만 달러 목표를 현 정권의 임기 안에 달성하는 것으로 돼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김영삼 정권 때의 악몽이 되풀이될 우려는 그나마 많이 가셨다는 위안을 해 본다. 당시 김영삼 정권은 자기 임기 안에 1인당 국민소득 1만 달러를 달성하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 그 손쉬운 방법이 환율을 억제하는 것이었다. 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 사태가 일어난 배경의 하나로 꼽히는 '원화 환율의 과대평가'는 정권 재생산을 위한 '정치적' 동기가 자리 잡고 있다. 물론 여기서는 '정치적'은 나쁜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러나 '경제 논리에서 정치 논리를 배제해야 한다'는 식으로 '정치'를 시궁창에 처박는 신자유주의적인 의미가 아님은 물론이다.

지난 7월3일 대통령은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를 열기 위해선 국가와 사회를 개조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공무원들 앞에서 밝혔다. "그렇지 않으면 2만 달러 시대로 갈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제 '2만 달러론=국가·사회 개조론'이 된 것이다. 2만 달러 달성을 위해 국가와 사회를 개조한다는 것이다. 둘 사이의 인과관계는 일방통행이다. 2만 달러가 독립변수이고, 국가·사회 개조는 종속변수이다. 2만 달러 달성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은 국가와 사회 개혁은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 그게 아무리 필수적인 개혁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180도 방향전환, 하반기 경제정책

단 순히 '감'만은 아니다. 정부가 지난 7월14일 내놓은 하반기 경제정책 운용방향을 보면,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기반 구축'을 위한 명분을 내걸고 있다. 세제 지원 등 온갖 설비투자 촉진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정작 지금까지 강조해 온 시장구조 개혁, 대기업 관련 정책 등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2만 달러론은 '재벌에 대한 백기 항복'이라는 좀 더 구체적인 의미를 획득한다. 사실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를 처음 제시한 게 재벌총수 클럽인 '전국경제인연합회'이다. 전경련은 지난 2월7일 총회에서 새 정부가 대통령 직속기구로 '2만 달러 추진위원회'를 두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대통령 취임식 날인 2월25일부터는 전경련 건물에 '새 정부와 함께 2만 달러 시대를 열어갑시다'라는 현수막도 내걸었다. 전경련에 대한 백기 항복의 시점은 지난 4월 미국 방문 전후하면서부터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결국 4월 대통령의 미국 방문은 단순히 외교정책의 180도 표변에만 그친 게 아닌 셈이다. 대내 경제정책까지 몽땅 180도 방향 전환을 했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현 정권의 행보를 정확히 바라볼 수 있다는 얘기이다.

약 삭빠른 한국은행은 이런 분위기를 간파한 듯한 모습을 보인다. 자기들이 지금까지 내세워온 현실진단을 '식언'하며 금리를 내리는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한은은 지난 7월10일 콜금리를 4%에서 3.75%로 0.25%포인트 내렸다. 지난 5월에 이어 두 번째이다. 내리면서 박승 한은 총재가 하는 말이 그야말로 흥미로움의 극치를 이룬다. "지금 시점에서 금리 인하는 투자를 촉진하는 데 한계가 있다"면서도 "만일 부동산이 다시 움직이면 정부 쪽에서 강력한 미시적 대책을 내놓기로 합의했다"는 게 금리를 내린 이유이다. 내린 뒤에도 "탄력적인 대응"을 말하며 추가로 금리를 내릴 뜻을 내비치기까지 했다.

거품경제 우려돼

한 은이 투자를 제쳐놓고 있는 이상, 금리 인하가 소비촉진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한은은 두 번의 금리 인하로 기업과 가계에 3조4천억 원의 금리 부담을 덜어줬다며 이것이 소비로 가기를 은근히 기대한다. 그러면서도 은행에서 돈을 싸게 빌릴 수 있으니까 소비가 늘어날 거라는 식의 얘기는 노골적으로 꺼내지도 않는다. 여전히 가계 빚이 가처분소득의 100%를 훨씬 웃돌고 있는데, 웬만한 용기가 아니고서는 그런 말을 할 수는 없을 테니까 말이다.

가계가 지갑을 열려면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있어야 한다. 그게 없으니 소비로 가는 게 아니라, 줄어든 이자만큼 저축으로 가기 쉽다. 부유층일수록 이런 성향은 더 심하다. 그래서 나오는 게 특소세 감면 품목을 확대하는 것이다. 재정경제부는 줄어든 이자만큼의 소비 지출을 늘리기 위해 기를 쓰고 있다. 최소한 부유층의 지갑이라도 반드시 열겠다는 일념 아래 특소세 감면 품목을 애초 자동차에서 예정에도 없던 피디피, 에어컨 등으로 확대한 것이다. 결국, 지금 상황은 금리 인하의 소비 진작 효과도 특소세 감면과 합작을 통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투 자의 경우, 설비투자액의 일정 비율을 세금에서 빼주는 임시투자세액공제율을 10%에서 겨우 1년 만에 15%로 복귀시켰다. 그때 재경부는 한국 경제에 필요한 투자 규모에 비해 공제율이 너무 높다며 점진적으로 낮춰가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밝히기까지 했다. 그런데 그런 정책방향이 1년 만에 뒤집혔다.

재정정책도 최대로 동원되고 있다. 추가경정예산은 애초 3조원 수준에서 4조2천억 원으로 늘었다가 4조5천억 원으로 다시 불어났다. 한나라당이 감세를 주장해 관철했으니, 그 대신에 민주당과 정부는 추경을 3천억 원 늘렸다고 짐작해볼 수 있다. 벌써부터 내년 총선 풍경이 떠오른다. 한나라당은 자기들 감세 정책의 효과 때문이라고 할 것이고, 민주당은 추경을 과감하게 확대해서 그렇다고 맞설 것이다.

물론, 심각한 경기 불황의 경우 적자재정을 감수하면서도 경기부양을 하는 게 기본이다. 문제는 지금처럼 모든 수단을 총동원하는 이런 경기부양책은 향후 심각한 거품을 낳을 위험이 높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현 정권은 지금의 노선을 국민소득 2만 달러 달성을 위한 기반으로 간주하며 정당화한다. 황당한 논리를 내세운 한은의 금리 인하는 이런 분위기의 반영일 뿐이다. 그렇지 않으면 아마 박승 총재의 임기가 불안해질 것이라는 내부 판단도 작용했을지도 모른다.

네덜란드 모델?

2만 달러 달성을 위한 국가·사회 개조의 방향은 무엇인가. 최근 청와대 이정우 정책실장은 네덜란드 모델을 '임금 억제-경영참가'로 요약하며 네덜란드 모델을 국내 노사관계의 방향으로 정립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전혀 준비도 돼 있지 않고, 개인 의견임을 전제로 밝혔다. 청와대 정책실장의 개인의견이라는 게 가능할 것이라는 발상도 문제이지만, 평소 이 실장의 인품이나 식견으로 볼 때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이다. 다급한 나머지 대통령이 '뭐 좋은 거 없냐'고 정책실을 보챈다는, 낭설로만 받아들일 수 없는 얘기가 그치지 않는 것을 보면, 이런 맥락에서 풀이하는 수밖에 없을 듯하다.

임금 억제를 대가로 경영참여를 보장한다고 했다가, 사용자의 극심한 반발에 밀려 이정우 정책실장이 "협의 수준으로 제한하면 된다"고 말을 바꾼 모습에서 국가·사회 개조론의 현주소를 읽을 수 있다. 자본이 반발하면 언제든 주춤거린다는 것, 정부는 자본의 반발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는 정책은 취할 의지를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 이것이 냉정한 현주소이다. 개인적으로는 네덜란드 모델에서 장점으로 취할 것은 두 가지라고 본다. 기업연금 설계를 노동조합과 사용자가 합의하고, 기업연금 운용에 관한 사항을 결정하는 기구에 노동자 대표가 사용자와 동일한 비중으로 참가한다는 점이 그 하나다. 다른 하나는, 노동시간만 적다는 것을 빼곤,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특히 네덜란드에서 비정규직의 대부분인 파트타임(시간제) 노동자는 우리나라처럼 고용기간이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본인이 원하면 언제든지 정규직이 될 수 있다. 네덜란드가 유럽에서 파트타임 노동자가 가장 많은 것은 이런 '보호' 장치가 유도하는 자발적인 성격을 띤다. 우리나라에서 비정규직 노동자가 전체의 51%를 넘는 사정과는 맥락이 판이하게 다르다는 얘기이다.

우려한 대로 정부 내 힘의 관계는 자본 쪽으로 기울었으며, 지금은 그것이 구조화하는 과정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설사 내년 총선에서 현 정권이 승리한다 해도, 지금 설정된 노선을 바꾸지는 못할 것이다. 이에 대한 환상은 금물이다. 이런 환상을 유포하는 것에 대해서는 특히 경계할 일이다. 이제 현 정권은 이미 '오럴 해저드'(oral hazard)를 넘어선 지 오래이다. 슬픈 힘의 관계의 현실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7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