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난 가족’

노동사회

‘바람난 가족’

admin 0 4,186 2013.05.11 11:33

‘서늘한(cool)’ 바람이 불었다. 그 사람들을 묶고 있던 끈적끈적한 관계의 끈이 힘없이 스르륵 풀렸다. 어떤 이는 울면서 홀가분하게 멀리 날아가 버리고, 어떤 이는 알 듯 모를 듯한 침통한 표정을 짓고서 그 자리를 무겁게 맴돌다 툭 떨어져 버렸다. “바람난” 그들은 행복해졌을까? 그런데, 이 바람은 어디서부터 불어온 것일까?    

movie_01_8.jpg

“주영작 변호사”의 아버지와 어머니와 아내와 아들

“주영작 변호사”의 처지에서 가족들 소개부터 하자. 부친 주창근씨는 간암으로 죽음을 앞둔 음악가다. 그는 전쟁통에 어머니와 여섯 누이를 이북에 두고 자신의 아버지와 둘이서만 월남했다. 그의 ‘잃어버린 가족’, “냅두라우!”하는 완고한 함경도사투리의 두터운 껍질 밑 여린 속살의 아물지 못한 상처. 피를 토하며 말한다. “야 나 진짜 죽는가보다 …, 거, 제사 따위 지내지 말고…” 부친은 눈앞에 있는 죽음에, 자신의 삶과 존재에 어떠한 의미도 부여하길 거부한다. 어쩌면 주창근씨는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자신의 아내와 아들을, ‘잃어버린 가족’을 대신할 수 있는 ‘진짜 가족’으로 인정하지 않고 살아왔을지도 모르겠다. 

모친 병한씨는 주창근씨의 나이차 많이 나는 아내다. 그리고 무딘 세월을 억누르며 지내온 비슷한 연배의 여느 치들처럼, “주씨 집안 남자”들과 스스로를 약간은 신경질적으로 구분하는 그런 아주머니다. 그는 요즘 때늦게 바람이 났다. 부채를 살랑살랑 부쳐주며 탱고를 출 줄 알고, “얘, 우리 나이에 …, 죄책감 같은 거 가질 필요 없잖니”하는 병한씨의 이야기가 스스로를 향한 다짐이라는 것을 알아듣는, 멋쟁이 초등학교 동창생이랑 말이다.

주영작의 아내, 은호정은 무용을 전공했다. 틈만 나면 아들 “주수인”과 함께 물구나무를 서고, 차가운 달빛 아래 알몸으로 거실을 뒹구는 그의 몸은 고양이처럼 싱싱하다. 그는 영화 속에서 끊임없이 누군가에 의해서 호명되는 “주영작 변호사”와는 달리, ‘공적인 관계들’에서 어느 정도 배제되어 있다. 그리고 ‘공적인 의무와 책임’에 묶여서 질식당한, 자신의 ‘지저분한 욕망’을 배설할 곳만을 찾는 “주영작 변호사”와는 달리, 고독한 개인들의 상처와 불안정한 갈망을 따스하고 가벼운 눈길로 응시한다. 흑맥주를 벌컥벌컥 들이키며 시한부인생의 마지막 “술사치”를 즐기는 시아버지를 조용히 바라보는 그의 따뜻한 눈빛. “나 요새 생전처음 오르가슴이란 걸 느껴…, 인생 솔직하게 살아야 되는 거더라. 솔직하게, 자기 느낌대로…, 하루를 살아도 사는 듯싶이 살아야지, 응?” 이해를 구하는 시어머니의 주억거림에 “그럼요!”하는 당차고 흐뭇한 대답. 자신이 입양된 아이라는 사실을 알고 고민하는 아들, 수인과의 살갑고 촉촉한 대화들.

은호정의 남편, 주영작은 변호사다. 그는 돈 안 되는 양민학살 사건의 진상규명과 보상문제에 발벗고 나설 만큼 사회적 책무와 정의에 충실하다. 또, 자신이 낸 교통사고를 무마하기 위해 경찰에게 돈을 쥐어주며 거짓 증언을 하고, 술에 취해 오토바이를 몰다 고꾸라진 피해자의 혈액검사를 의사에게 특별히 부탁할 만큼 이기적이다. 그는 “주영작 변호사”라는 이름을 끊임없이 불러대며 사회적 가면을 덧씌우는 공적인 관계와 가부장 질서 속에서 형성된 긴장을 해소하기 위해, ‘더러운 것’을 배설할 ‘구멍’을 찾아 어두운 곳을 짐승처럼 헤매는 “바람난(발정난?)” 남편이다. 

주영작은 제대로 가부장이 되지 못한, ‘아버지의 아들’이기도 하다. 그는 무뚝뚝하게 죽어가는 아버지가 토해놓는 구질구질한 흔적들과 직면하지 못한다. 아버지가 토해놓은 피를 뒤집어쓰고 신경질적으로 “호정아~”를 외친다. 그리고 의사가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썅소리”를 하게 될 것이라던, 중추신경이 고장난 아버지가 “~김일성 장군♬”하고 우렁차게 불러제끼는 군가는 ‘양민학살 사건’에 대해서 주영작이 느끼는 사회적 책임의 무의식적인 근거를 암시하기도 한다.       
         
가족의 울타리를 찢고 흩뜨려놓는 서늘한 바람.  

어쨌건, 주영작의 아버지는 결국 죽음을 맞이했고, 어머니는 “솔직한 자기 느낌”을 쫓아 새로운 사랑과 함께 떠났다. 하지만 아버지의 죽음이나 뒤늦게 확인한 할아버지의 죽음, 그리고 어머니의 재혼은 “주영작 변호사”의 일상에 구체적인 변화를 가져올 만큼 진지하게 의미를 부여받지 못한다. 주영작은 여태껏 그래왔던 것처럼 그 나름대로 직업에 책임을 다하고 가족에게 충실하며 애인에게 위로받을 것이다. 다만 가끔 불쑥 고개를 들이미는 긴장과 불안은 그저 애인의 집이나 룸싸롱에서 혼자 일어나서 벗겨져 있는 아랫도리를 대충 챙겨 입어야하는, 술 덜 깬 새벽의 스산함 속으로 밀어넣을 뿐이다. 

은호정의 일상도 별 거 없다. 자신을 훔쳐보고 어설프게 찝쩍대던 옆집 양아치 고삐리와 함께 영화를 보고 야간 산행을 하고, 야릇한 접촉도 하고 그렇지만, 어디까지나 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놀만큼 놀아본’ 은호정의 호기심과 장난이다. 호정이 계속해서 그 관계에 목을 맬지는 매우 의심스럽다. 그냥 풋풋한 추억이 되었을 게다. 만약에, 그 부부의 아들이 살해되지 않았다면 말이다. 

주수인과 은호정의 아들 수인은 건물 옥상에서 내던져졌다. 비교적 정의로운 변호사가 교통보험 조금 아끼려고 사기를 쳤던, 자랑할 것이 권투선수 처남 “광국이” 밖에 없는 남루한 가족의 가장에 의해서 말이다. 영안실에서 아들의 시체를 확인하는 어머니는 다가서는 아이 아버지의 가슴팍을 말없이 힘껏 밀쳐내고, 술에 취한 새벽, 남편은 ‘자기혐오’를 아내에게 비아냥과 주먹질로 터뜨린다. “야, 니가 뭐 그리 잘났어…, 말해 봐, 내가 밉지? 죽이고 싶게 밉지?” 그냥 하늘거리며 그 자리를 영원히 그 자리를 맴돌 것만 같던 ‘바람’이 갑작스레 거세졌다. 가족의 울타리를 찢고 흩뜨려놓는 바람. 

텅 빈 무용실, 산에서 아들에게 용서를 빌고 집에서 남편에게 얻어터진 호정은 발가벗고서 양아치 고삐리의 배를 탄다. 그리고 뒤섞여 터져버린 울음과 오르가즘은 “기적”처럼 그녀의 몸에 새로운 생명을 잉태시킨다. 텅 빈 집, 아버지의 유품인 피아노 한대만이 뎅그러니 놓여 있는 공허하게 넓은 집. 자신의 사무실 여직원 방에서 팬티바람으로 일어난 어느 날, 주영작은 호정이 일하는 무용실로 찾아가서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묘한 투로 문틀 근처서 서성대며 말한다. “…잘 할게” 주영작을 뒤로 하고 카메라를 향해 불쌍하다는 듯, 한심하다는 듯 쓸쓸한 웃음을 짓고 있던 호정은 되풀이 되는 그 말에 돌아보며 약간은 웃음기 가신 얼굴로 말한다. “당신 ‘아웃’이야…, 당신한테는 이제 기회 없어” 영화는 어설프게 채플린 발길질을 흉내 내며 쓸쓸하게 돌아서는 주영작과 마대 걸레를 쥐고 그 뒤를 쫓아서 달리며 주영작이 남긴 흔적을 지우는 은호정의 뜀박질 위로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하는 노래가 위악스런 목소리로 울려 퍼지며 끝이 난다. 

경제적 구속과 새로운 가족의 상

솔직하게 이야기하자. “환상으로 포장되어 있는” “홈드라마 속의 가족”이 이야기하지 못하는 “가족의 실체”가 과연 이 영화에는 포착되어 있는가? “재정립되어야 할” 가족 관념이 명확하게 제시되어 있는가? 글쎄, 반반이다. 이 영화 속의 인물들은 하나하나가 모두 풍부한 이야기들을 세련되게 압축해 놓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일일드라마의 가족들처럼 위선적이고 도식적이지 않다. 그러나 그들은 대개의 가족이 울타리를 이루게 하는 강력하고 ‘도식적인’ 원심력, 즉 경제적 구속에서 너무 자유롭다. 물론 “재정립되어야 할” 새로운 가족의 상은 구질구질한 경제적 궁핍의 강제력을 배제한 상상을 통해서만 가능할 것이긴 하다. 하지만 나로서는 은호정과 양아치 고삐리가 꾸려가는 미래를 도무지 상상하기 힘들다. 게다가 그냥 맞바람이나 피면서 평생 살 것 같던 이 부유한 부부, 경제적 담합이 깨지는 순간, 즉 새로운 가족이 탄생하는 순간 구질구질한 경제적 구속이 그들을 노골적으로 희롱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런데 영화는 거기서 멈춰서 버렸다. 

마지막으로 개인적으로 아쉬운 부분이 있다. 새로운 가족의 가치를 보여주는 호정이라는 캐릭터가 조금 더 ‘현실적’이었으면, 아니 내 경험의 폭과 겹쳐지는 부분이 조금 더 많았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거다. 이 편이 ‘쿨’하고 멋있는 호정보다는 감동이 더 컸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8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