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연맹 산별전환 투표와 현대차노조의 부결

노동사회

금속연맹 산별전환 투표와 현대차노조의 부결

admin 0 4,337 2013.05.11 11:23

금속연맹은 6월28일 산별 전환 투표결과에 대한 보도자료를 통해 "아쉽지만 대공장의 산별 전환 가능성을 확인"한 결과였다고 발표했다. 언론들은 현대차노조의 산별 전환 투표결과를 평가하면서 "대의보다는 실질적 이익 선택"(한국일보), "조합원들의 정치투쟁에 대한 거부감"(문화일보), "외부문제보다 임금 등 사내 문제 관심 많아"(조선일보) 등 조합원들의 실리주의적 태도가 산별 전환을 방해한 것으로 언급하며, 더 나아가 이런 조합원들의 관심을 받아들여 노동조합이 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 느 누구도 현대자동차가 쉽게 가결될 것이다라고 예상하지 않은 상황에서 산별 전환 투표 전에 있었던 쟁의행위 찬반투표가 재적대비 54%라는 저조한 찬성율이 나온 것에 견주어 예상되었던 결과라고 얘기도 한다. 그러나 62%라는 수치는 대공장노조도 산별 전환에 성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의 지표로써 충분하다고 보여진다. 그렇다면 왜 현대차노조는 62%에서 머무를 수밖에 없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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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 임단투 승리와 산별노조 전환을 위한 선전으로 이헌구 위원장과 상집간부들이 현장을 순회하고 있다.  - 출처:현대차노조 ]

임단협과 연계한 산별 전환은 긍정적

2002 년 금속연맹이 산별 전환을 추진하는 기본 방침은 금속노조 가입결의가 가능한 사업장을 중심으로 우선 전환 일정을 잡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작년 한 해 동안 금속연맹 소속 미전환노조 83개 중 3개 노조만 결의를 했을 뿐이며 3개 노조도 총회투표에서 산별 전환이 부결되는 등 산별 전환 사업 자체가 지지부진했다.

작년 12월, 현대차노조의 산별 전환이 임시대의원대회에서 올해 임단투와 함께 추진되는 것으로 연기되면서 금속연맹 전체의 산별 전환 사업 기본 방침도 2003년 임단투 쟁의행위 찬반투표와 병행하는 산별 전환 사업으로 확정되었다.

2003 년 들어 금속연맹은 '산별 전환을 위한 특별위원회'를 조직하고 미전환노조 대표자들과 간담회를 가져 산별 전환의 필요성과 단위사업장의 고민을 나누는 계기를 마련했다. 또한 교육과 홍보를 위한 포스터, 소책자를 제작하고 차량방향제를 제작해 사업장에 배포하였다. 금속노조도 산별 관련 비디오를 제작, 배포하고 사업장 교육 강사로 적극 참여하였다.

6월25일 케피코 노동조합을 시작으로 6월27일까지 13개 노조, 5만7천3백38명이 산별 전환 동시투표에 들어갈 예정이었으나, 위아와 아남르그랑 노조가 투표에 참석하지 못해 총11개 노조가 투표에 들어갔다. 투표 결과는 천명이상 규모의 4군데 사업장 중에서 대우종합기계를 제외한 3곳은 부결, 나머지 중소규모 사업장의 경우 높은 투표율과 찬성율로 가결이었다. 비록 대규모공장이 부결되었지만 집단적으로 이루어진 동시투표는 산별 전환의 분위기를 고조시켰고, 산별이 대세임을 선전하는데 많은 영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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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목 잡은 현장조직간 분열

올 해 현대차노조의 산별 전환 투표 결과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작년말로 거슬러 가야한다. 현대차노조 집행부는 작년 12월 조직전환 총회를 개최, 산별 전환을 시도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현대차노조의 각 현장조직들은 금속산별 전환 후 조직운영방식(기업지부/지역지부, 지회구성방식 등)과 산별 전환 시기, 비정규직 조직화 방향, 금속노조와 금속연맹의 산별 사업의 문제점 등을 놓고 제각각의 의견들을 내놓고 분열하였다. 결국 집행부 홀로 산별 전환 사업을 추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11월20일 임시대의원대회에서 대의원들은 노조집행부의 2002년 산별 전환 추진안을 통과시키는 대신, 2003년 임단투와 병행하여 산별 전환을 추진하자는 안을 통과시켰다.

9개의 현장조직이 존재하는 현대차노조에서 현장조직의 동의없이 재적 2/3의 찬성을 얻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현대차 대의원의 약 80%정도를 9개의 현장조직이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현장조직의 결정은 곧바로 대의원의 활동에 영향을 준다.

그렇다면 올해는 산별 전환에 대한 각 현장조직의 동의가 실천으로 나타났을까. 현대차노조의 산별전환추진위는 지난 6월16일 구성되었다. 투표를 불과 10일 앞둔 날이다. 이날 구성된 산별전환추진위원회에는 각 현장조직을 대표하는 1인이 참여함으로써 밖에서 본다면 현대차의 모든 현장조직이 산별 전환에 동의하는 형식이었다. 위원회는 또한 산별 전환 이후 조직체계, 조합비 산정 및 배분방식, 각 단위별 책임과 권한 규정 등에 관한 안을 만들어 의결기구에 제출하는 역할도 맡았다.

그러나 예상외로 현장조직의 움직임이 그다지 활발하지 않았다. 산별 전환 투표 전날, 산별 전환 홍보 특보를 각 현장조직마다 제작하고 대대적으로 홍보하기를 부탁했으나 특보가 나온 조직은 세 군데에 불과했다. 오히려 한 현장조직은 유인물을 통해 산별에는 동의하지만 "이 상태라면 부결될게 뻔하다"는 유인물을 뿌렸다. 또한 다른 한 조직은 집행부가 임단투와 산별 전환을 동시에 추진하느라 임단협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비정규직과 산별에만 신경 쓰는 집행부라는 비판을 하며 오히려 대공장 이기주의와 조합원의 실리주의를 부추기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만나 산별과 노동조합운동에 대해 이야기하면 그 순간에는 뜻이 통하지만,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내일은 집행부를 비판하는 현대차의 지금 모습은 전체 노동운동의 발목을 잡고 있는 상황이다. 결국 올 산별 전환 사업에서도 집행부의 활동이 현장조직의 실질적인 실천이 뒷받침되지 않은 채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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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속노동자 4대 요구 쟁취와 산별중앙교섭 승리 총파업 결의대회를 마친 금속산업연맹 조합원들이 거리행진을 하고 있다. ]

비정규직과 동등해지는 건 불안
현장조직의 경쟁과 분열이 산별 전환 사업의 장해요인 중 하나였다면, 현대자동차에서 일어나고 있는 비정규직 조직화도 산별 전환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아 산사내하청지회의 설립과 울산 비정규투쟁위원회의 설립 등 현대차의 사내하청 비정규 노동자들의 조직화 움직임이 활발해지면서 정규직들이 가지고 있던 비정규직에 대한 '우월 의식'이 위협받기 시작했다. 정규직 노동자들은 1998년 정리해고투쟁 이후 노조가 고용을 지켜주지 못한다는 생각을 하였으며 비정규직을 보호막으로 간주하고 있다. 게다가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같은 라인에서 작업을 하지만 좀 더 힘든 일을 비정규직이 맡고 있고 정규직들간에는 '작업 로테이션'이 있지만 비정규직은 한 가지 일을 계속해야 한다. 요즘 비정규직들이 정규직에게 동등하게 작업 로테이션을 하자고 주장할 것이라는 얘기가 나돌면서 정규직 노동자 사이에서 불만이 일어났고 비정규직과 정규직이 동등한 조합원으로 다루어지는 산별에 대한 거부감으로 나타났다.

또한 아산사내하청노조에 대한 회사의 탄압이 거세지면서 아산사내하청노조가 공장 안에 천막을 치고 농성 투쟁을 하자 정규직들은 자신의 공장이 '남'들 때문에 혼란스럽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정규직의 비정규직 차별의식은 생산공장 뿐만 아니라 판매본부에서도 발생했다. 최근 자동차 판매 시스템에 '딜러제도'가 도입되어 모든 차종을 판매하는 딜러들이 덤핑판매로 시장을 장악하기 시작하면서 직영 판매만 하는 정규직들이 불만에 쌓여 있었다.

종업원 의식이 노동자의 연대의식을 좀먹고 있었고 고용위기가 다시 온다면 자신 대신 해고될 비정규직의 존재를 거부하지 않았다. 현장조합원의 정서는 "돕는 것은 좋지만 동등해지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회사의 전방위적인 노동유연화 정책에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연대를 하지 못할망정 선긋기를 하고 있었다.
62%의 가능성

위 에서 지적한 요인에도 불구하고 현대차노조는 62%의 찬성율을 기록했다. 이것은 현장조합원들이 대공장의 이익에 안주하면서도 기업별노조로서는 고용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노동조합운동이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도 역시 알고 있는 상황에서 비롯된다.

만일 집행부와 현장조직간의 실질적인 합의가 밑바탕이 되어 조합원들에게 선전, 교육을 하였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이런 가정은 작년 현대차노조가 조합원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산별노조 전환에 우선적으로 해결해야할 과제'에 대한 응답으로 '현장내부 입장 통일(50.2%)'을 첫째로 꼽고 있어 설득력이 더해진다. 일례로 대우종합기계가 80%라는 높은 찬성율을 보일 수 있었던 것도 1988년 이후 선출된 3명의 위원장이 산별전환을 적극 지지함으로써 현장조직간 분열을 미리 막아 조합원들에게 활동가의 통일된 모습을 보여 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노조집행부가 적극적으로 산별 전환 사업을 선전, 교육했던 울산공장에서는 쟁의행위 찬반 투표와는 대조적으로 산별 전환 투표에서 높은 찬성율을 보였다. 즉 선전과 교육사업을 제대로 한 공장에서는 한만큼 성과가 나온 것이다.

이 번 금속연맹 산별전환 동시투표에서 나타난 대공장노조 특히 현대차노조의 부결은 일부 언론들이 얘기하듯이 조합원들의 대공장 이기주의와 실리적 태도가 결정적이었다기보다 산별 전환 사업을 주도해야 하는 노조집행부와 현장조직의 활동가들의 분열로 인해 현장조합원들에 대한 교육과 선전이 미흡했으며, 현장조합원들이 가지는 불안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결과이다.

2003년 들어 금속, 금융, 보건 등 산별노조의 교섭이 주목받는 가운데 지난 7월15일 금속노조의 노사가 기존임금 저하 없는 주5일제근무, 노동조합활동 보장 등에 합의함으로써 중앙교섭을 성사시켰다. 이로써 금속노조는 조직체계에 맞는 교섭구조까지 갖추는 발전을 하고 있다. 많은 우려와 비판 속에서도 금속산별의 길은 조금씩 앞으로 진전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더딘 진전을 급변시킬 수 있는 열쇠는 대규모공장의 산별 전환에 있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7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