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층 파업 현장

노동사회

23층 파업 현장

admin 0 2,871 2013.05.11 11:17

 

 

mk_06.jpg50 일을 넘어선 파업. 비 탓이겠지만 정체 모를 우울함이 느껴졌다. 홍석표 위원장과 인사를 나눈 후, 노조 사무실 한켠에 깔린 돗자리에 나란히 앉았다. 삭발했던 머리는 아직 갈 길을 찾지 못하고 있었고, 깍지 못한 수염과 피곤한 눈이 파업의 어려움을 대변하고 있었다.

"합법파업으로 인정할 수 없다"

흥국생명은 태광그룹의 계열사로 자산 4조원의 보험회사이다. 회사는 1998년 이후 매년 순이익을 남겼고 2002년엔 무려 570억에 달하는 순이익을 달성했지만 여기에 흥국 노동자들의 몫은 없었다. 1998년부터 4차례에 걸친 구조조정으로 직원 3천4백명이 9백80명으로 줄었고 3차례의 임금 동결로 생보업계 최하의 임금을 받고 있다.

2002년 상급단체인 생보노조에서 일하던 홍석표 위원장이 흥국생명 지부에 다시 돌아와 위원장에 당선되었고, 그는 '죽을 각오를 하고' 이번 임금교섭에 총력을 기울였다. 흥국생명 노조는 회사에 타사 대비 30%의 임금 차이와 물가를 감안한 41%의 임금인상을 요구하였다. 다른 요구사항도 있지만 최대 쟁점은 임금 인상에 있었다. 회사는 14.25%를 최종안으로 던진 채 타협은 없다는 태도를 취했다. 게다가 노조위원장을 포함한 간부 7명에게 징계를 남발하고, 간부 14명을 대상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회사는 서울지방노동청이 제시한 조정안에 대해 "안을 받아들일 경우 노동조합이 적법한 파업을 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므로 받아들일 수 없다"며 온통 노조 탄압에 몰두하였다.

노조를 상대할 땐 도덕도 없다?

회사는 노조가 점거 농성에 들어가자 초기에는 전기를 차단하고 엘리베이터도 정지시켰다. 조합원들은 저녁에는 촛불을 켜놓았으며 식사를 위해 매일 두 번 이상은 23층을 오르락내리락했다.

6 월26일도 그랬다. 점거 농성으로 3일 동안 씻지를 못한 조합원들이 목욕탕을 교대로 갔다가 23층을 걸어 올라오는 순간이었다. 어둠 속에서 비상계단의 비상등에 의지해 23층까지 올라가야 했다. 그런데 돌연 비상등이 꺼졌고 빌딩은 칠흑 같은 어둠에 휩싸였다. 조합원들이 시설관리 용역직원에게 불을 켜달라고 요구하는 와중에 23층 통신실에서 폭발이 일어났고, 조합원들은 40분 동안 빌딩에 갇힌 채 공포에 떨어야 했다. 노조는 이 사건을 회사가 작정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살인미수로 회사를 고발하였다.

인터뷰를 마치고 일어서면서 여기저기 놓여 있는 온갖 책들을 보고 "농성 중인 조합원들이 책을 많이 보는가 보죠?"하고 말을 건넸다. 홍석표 위원장은 "독서도 하고, 남녀 가릴 것 없이 십자수도 많이 해요."라고 답했다.

노 동사회 독자회원 가운데 노동조합이 가장 많다. 흥국생명지부도 노조 조직 회원 가운데 하나다. 어렵지만 힘찬 투쟁을 하고 있는 노조원들을 보면서 십자수를 놓는 마음 하나 하나가 모여 승리하기를 마음으로 기원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난 후에도 장대비는 그칠 줄 몰랐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7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