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부의 노동정책 결국 후퇴하는가

노동사회

노무현 정부의 노동정책 결국 후퇴하는가

admin 0 3,345 2013.05.11 11:04

현대자동차 장기 노동쟁의, 화물연대 파업, 주5일제 근무입법을 둘러싼 노사간, 노정간 갈등, 비정규직 문제, 노무현 정부의 새로운 노사관계, 노동정책 구상(정리해고 요건 완화, 사용자 대항권 강화 대 파업요건 완화) 등 현재 한국의 노동시장, 노사관계를 둘러싸고 수다한 문제와 이슈들이 제기되고 있다. 

노, 사, 정부, 국민 모두 하루 빨리 난마와 같이 얽혀 있는 이러한 혼란을 종식시키고 새로운 한국의 노사관계, 노동시장 개혁방안이 나오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는 것은 주지하는 바와 같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가 최근 제시한 노사관계 및 노동시장 개혁방안은 이러한 기대에 크게 못 미치는 내용일 뿐만 아니라 오히려 노사관계와 노동시장의 선진화라는 목표에 역행하는 내용도 다수 포함되어 있어 심각한 우려를 낳고 있다.

기대 못 미치는 정부안

노무현 정부는 정부 출범 초기 "사회통합적 노사관계"의 구축을 노사관계의 기본 목표로 내세운 바 있으며, 그 후에는 노동조합의 협의 수준의 경영참여와 고용의 유연성을 맞바꾼다는 네덜란드식 노사관계를 제안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에 발표된 노동정책의 비전 내용은 이러한 정부 출범 초기의 구상으로부터 크게 후퇴한 것으로 평가된다. 

먼저 노사관계 면에서는 "노사갈등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 최소화"란 제목 아래 "국제기준에 부합되는 노사관계 제도 및 관행의 확립"을 목표로 제시하고 있다. 그 가운데 제도개혁에서는 공무원 노조법 입법화, 실업자 노조가입 허용, 산별 교섭을 위한 노동관계법령 정비, 파업 시 손배, 가압류에 대한 일정한 제한 등 그 동안 국제기구 등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어 왔던 후진적 노사관계 제도를 개혁하겠다는 바람직한 내용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유니온 숍 금지, 쟁의행위 찬반투표제도, 필수공익사업 범위의 확대, 직장폐쇄 요건 완화, 파업 시 대체고용 제한 완화, 노동조합의 내부운영 및 재정 등의 투명화 요구 등 노동조합 활동을 근본적으로 제한하는 독소조항들이 다수 들어 있어 앞으로 말썽의 소지가 될 가능성이 크다. 

더 나아가서는 "법과 원칙이 지켜지는 노사관계의 정착"이란 이름 아래 불법파업에 대한 징계권 행사 강화, 생산시설 점거 시 신속한 경찰력 투입 등 과거 독재정권 시절에 자주 등장했던 노동탄압적 표현마저 버젓이 포함하고 있어 놀라움을 금치 않을 수 없다. 반면 "신뢰를 바탕으로 한 노사 파트너십 구축"이란 이름 아래 열거되어 있는 '기업 단위 노사협의회의 활성화', '업종, 산업, 지역 단위 노사정 협의 활성화' 등은 아무런 구체적 내용 없어 노무현 정부가 애초에 내걸었던 "사회통합적 노사관계"의 기본정신이 온데간데없이 실종되어 버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한편 노동시장 면에서도 해고제한의 완화, 근로시간제도의 탄력성 제고, 임금의 유연성 제고 등 그 동안 재계가 주장해온 고용의 유연화를 위한 여러 조치들이 종합적으로 포함되어 있어 '사회통합적 노동시장'이란 기본목표를 무색케 하고 있다. 정부는 물론 이러한 고용의 유연성 제고에 대한 방어망으로써 '취약근로자에 대한 사회적 보호 강화'란 제목 아래 고용차별 금지 및 비정규직 남용 규제, 사회보험의 적용 확대, 최저임금제도 개선 등을 열거하고 있지만, 하나하나 뜯어보면 매우 불충분한 내용일 뿐만 아니라 한편으로는 노동시장의 유연화 정책을 강화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취약근로계층을 보호하겠다는 상호모순된 정책을 내세우고 있어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정부·자본부터 파트너십 인정해야

전체적으로 볼 때 정부의 이번 '노사관계 개혁방향'은 외형상으로는 자본과 노동의 이해관계를 각각 어느 정도씩 받아들여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는' 방식으로 교환함으로써 협력적 노사관계를 수립하자는 의도로 해석된다. 그러나 실제 핵심 내용은 상당 부분 대처 수상 시절의 영국의 노사관계 개혁(개악) 모델을 받아들이고 있다. 즉 "대기업 및 공공부문의 강성노조 중심의 투쟁적 노동운동"이 지속됨으로써 "과다한 사회적 비용과 국가경쟁력의 약화를 가져오고 있다"는 인식 아래 이들 '과격한' 대기업 노동조합을 규제하기 위해 노조운영의 민주화, 노조재정 운영의 투명화, 파업에 대한 우편투표제, 파업 시 대체근로 허용범위 확대, 불법행위에 대한 책임추궁 강화, 유니온 숍 금지를 통한 단결권 약화 등의 조치를 취하겠다는 것이 핵심내용이라 하겠다. 

물론 그 동안 일부 '과격한' 파업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며, 또 그 책임의 일단은 '강성' 노조에 있다는 인식이 전혀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한 점에서 노동운동이 비판받을 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노사분규의 원인을 모두 노동조합에 돌리는 것은 지극히 편파적이고 안이한 현실인식이라 하겠다. 

한국에서 노사분규가 빈발하는 것은 매우 복합적인 원인을 가진 구조적 현상이다. 한편으로는 합법적 파업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드는 각종 제도적 장벽들(조정전치주의, 필수공익사업 제도, 권리분쟁에 대한 파업 금지, 파업 장소와 방법에 대한 제약 등)들이 존재하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빈번한 파업을 유발시키는 노사관계 주체들의 구조와 행태(사용자들의 불성실한 단체교섭 태도와 불법노동행위, 정부의 편향적 노동정책, 노동조합의 기업별 이기주의와 지나친 투쟁 위주 행태 등)가 존재하고 있으며, 이로 인한 노사간의 불신이 뿌리깊은 형편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과연 노동조합 및 파업에 대한 규제 강화만으로 산업평화와 노사협력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인가? 과거 독재정권 시절의 극심한 노동탄압으로도 노동운동의 불씨를 죽이지 못하지 않았던가? 오히려 노동운동에 대한 규제와 탄압은 노동운동을 합법적 틀 밖으로 내몰아 더욱더 격렬한 노동운동의 반발과 불법행위의 증가를 가져올 것임은 명약관화한 사실이다. 이것이 과연 '사회통합적 노사관계'가 추구하는 목표란 말인가?

노동시장 개선 의지 안보여

한국의 대립적 노사관계는 하루아침에 고쳐질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노동조합을 기업경영과 국정운영의 중요한 파트너로서 인정하고 기업 차원에서는 실질적인 경영참여를 보장하고 산업 차원에서는 산별 노사교섭을 활성화시키며 정부 차원에서는 경제, 사회정책에의 실질적인 참여를 보장함으로써 노동조합의 신뢰를 차곡차곡 쌓아 가는 것만이 더디지만 올바른 길일 것이다. 

노동시장의 측면에서도 이번 정부의 노동정책 개혁안은 '사회통합적 노동시장의 구축'이라는 목표와 거리가 먼 내용들로 채워져 있다. 현재 한국의 노동시장이 안고 있는 최대의 문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및 비정규직 노동자간의 극심한 격차와 이로 인한 노동시장 취약계층의 고용불안,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등 열악한 노동환경일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이번 노동시장 개혁안은 이러한 노동시장 취약계층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개선하기는커녕 오히려 노동시장의 2중 구조를 더욱 악화시킬 가능성이 큰 내용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어 문제이다. 예컨대 해고규제 제도의 완화는 힘센 대기업 노동조합들에게는 별로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반면, 대항력이 거의 없는 중소기업 노동자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치명적인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다. 근로시간 제도의 탄력성 제고나 임금제도의 유연화 등도 중소기업 및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또한 비정규직 노동자를 보호한다는 이름 아래 도입 예정인 기간제 근로 2년 허용조치도 과거 파견근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오히려 기간제 근로를 촉진하는 효과를 가져 올 가능성이 있다. 파견대상업무의 확대 역시 마찬가지로 열악한 처지에 있는 파견노동자를 더욱더 확산시키고자 하는 정책에 다름 아니다. 

최저임금제도의 개선에 대해서는 지극히 추상적인 정책들만 나열하는데 그치고 있으며 주5일제법안 통과에 따라 예상되는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장시간 노동문제에 대한 실질적인 개선방법 역시 전혀 제시되지 않고 있다. 결국 전체적으로 볼 때 정부의 이번 노동시장 개혁안은 노동시장의 유연화에 초점을 두고 있으며 이로 인해 야기될 노동시장 2중 구조의 심화문제에 대해서는 매우 추상적인 표현밖에 제시되지 않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노동운동, 전략적 구상 제시해야

이 시점에서 우리는 노무현식 개혁정책의 본질과 이에 대한 노동운동의 대응방식에 대해 성찰해볼 필요가 있다. 노무현 정부는 "준비되지 않은" 정부였다. 따라서 노동정책의 이데올로기성에 대한 이해도 지극히 부족했고, 그를 둘러싼 환경과 주체간의 복잡한 관련 속에서 과연 어떠한 나침반을 갖추어야 될 것인가에 대한 준비도 전무하였다. 이는 결국 철학, 비전, 담론의 부재로 나타나게 된다. 이 틈을 타서 재계, 보수언론에 의한 "담론의 선점"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바로 "국민소득 2만불론"이다. 노무현 정부가 뒤늦게 노동정책의 비전을 만든다고 야단들이지만, 주체의 이데올로기와 실력이 확립되지 않은 가운데 나타나는 것은 생각이 각기 다른 전문가들을 모아 짜깁기 식으로 만드는 "모자이크식 개혁", "주고받기식 개혁" 정책밖에 없는 것이며, 이는 결코 성공할 수 없는 프로젝트인 것이다. 

그런가 하면 노동운동 역시 전략부재를 드러내었다. 노무현 정부의 이데올로기성과 능력부족에 대한 충분한 검토 없이 기대 수준만 잔뜩 높아진 상태에서 폭발적으로 나타난 개별 사업장 수준에서의 노동쟁의를 양대 노총이 전략적으로 조정할 필요성도 못 느꼈고 조정능력도 없었다. 빈발하는 노동쟁의에 대한 보수언론의 부풀리기 속에 정부의 정책이 강경 대응으로 선회하는 데 대해서도 노동운동은 너무도 익숙한 "총파업"과 "무한투쟁" 외에 어떤 전략적 대안도 내놓지 못했다. 

개혁적 정부에 걸맞은 새로운 노사관계와 노동시장의 구축에 관한 전략적 구상을 노동계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점점 심화되고 있는 노동시장의 2중 구조와 노사관계의 2중 구조를 혁파할 수 있는 대담한 구상도 나오지 못했다. 정부에 대해 이러저러한 요구를 하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먼저 노동운동 스스로가 산별체제 구축, 조직화 노력 강화, 정책수립 능력 강화, 그리고 대기업 노조의 기득권을 과감하게 버리고 중소기업 및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끌어안는 자세 등을 통해 자기혁신을 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노동운동의 연대를 토대로 하여 개혁적 노동정책이 갖추어야 할 새로운 노사관계와 노동시장의 구축에 관한 전략적 구상을 제시하고 이를 정부, 정치권, 언론, 시민운동, 전문가 집단 등에 홍보하고 설득함으로써 광범한 공감대를 형성하여 가야 할 것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8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