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노조 죽이기'와 진지전

노동사회

언론의 '노조 죽이기'와 진지전

admin 0 2,616 2013.05.11 11:04

한국 언론의 노동문제 왜곡보도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가까운 사례로 철도노조 파업을 들여다보더라도 언론은 '원인분석' 없이 '충돌'과 '경제위축', 그리고 '공권력 투입주문'이라는 기존의 보도 태도를 한 치도 벗어나지 못했다.

그래서일까. 흔히 노동운동 쪽에서는 언론의 적대적 보도를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일종의 '면역효과'인 셈이다. 하지만 그것을 '의례적 보도'로 인식할 때 그로 인한 '재앙'은 고스란히 노동자들에게 돌아온다. 겉으론 객관보도를 가장하지만 실제로 언론은 기득권세력의 이해관계를 한치도 벗어남 없이 치밀하게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노무현 정권이 들어서면서 언론의 '공세'는 한결 도드라지게 노골화했다.

대통령 길들이기

2003년 2월13일. 대통령 취임을 앞둔 노무현 당선자는 오전에 한국노총을, 오후에 민주노총을 방문했다. 대통령 당선자가 두 노총 사무실을 방문한 것은 처음이라는 보도가 나왔을 만큼 그의 방문은 눈길을 끌만했다. 더구나 그 자리에서 기득권세력이 민감할 수밖에 없는 발언이 나왔다.

"여론의 장을 지배하는 사회적 힘의 균형에서 경제계가 세지만, 앞으로 5년 동안 힘의 불균형을 시정하겠다."

언 론이 이를 지나칠 리 없었다. 게다가 노 당선자는 "언론의 논조, 부수, 칼럼, 논문만 봐도 압도적으로 경제논리가 우세하다"며 "사회적 역학관계상 저도 역대 대통령들처럼 노동과 서민에 대한 처음 관심이 멀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개별정책이 아니라 사회적 제도로서 힘의 불균형을 잡아나가겠다"고 사뭇 다부진 결기를 밝혔다. 그는 "힘의 균형이 이뤄졌을 때 정부나 대통령의 개입 없이도 (갈등이) 해결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2003년 6월28일. 노 정권은 철도노동자들의 파업에 '공권력'을 전격 투입했다. 노동자들의 파업 현장에 경찰병력을 투입하는 야만을 저지른 뒤 노 대통령은 한술 더 떴다. "적절한 조치"라면서 "엄정 단호하게 대처하라"고 '지시'했다. 더구나 그는 파업을 공권력으로 유린하기 하루 전날 미국 <포브스>지 사주 및 편집장을 접견한 자리에서 한국의 노동조합에 대해 '특혜'라는 말을 사용하면서 비난했다.

겨 우 넉 달 반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왜 노 대통령의 인식이 급변했을까. 그 원인을 <조선일보> 사설에서 엿볼 수 있는 것은 흥미로움을 넘어 역설적이다. 노 대통령 자신이 대통령이 되기 전 여느 현실정치인보다 조선일보 비판에 높은 관심을 보여왔기 때문이다. 먼저 두 노총 방문 바로 다음날 조선일보의 '노동·농민정책 일관성 있어야' 제하의 사설을 보자. "노 당선자는…'투쟁만이 능사는 아니다'며 대화와 타협을 강조하면서 노동계의 자기 혁신 노력을 당부했다. 그러나 반면에 그는 또한 '여론을 지배하는 사회적 힘의 불균형을 시정하겠다'고 말해 노사관계와 관련한 새 정부 정책이 '노(勞)'쪽으로 크게 무게중심을 이동시킬 것 같은 인상을 주기도 했다.… 노동문제에서 논리적 양면성을 보이고 있는 것은… 일관성 있는 정책으로 정리돼야 할 것이다."

부자신문의 여론몰이

결국 조선일보의 '주문'대로 노 대통령이 논리적 양면성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자, 이 신문은 기다렸다는 듯이 "盧대통령의 이 말이 경제 살리는 길" 제하의 사설(6월28일치)을 내보냈다. "…미국 포브스지의 스티브 포브스 회장을 접견한 자리에서 '이제 노동자들도 자율권을 갖고 활동할 자유가 주어졌으니 특혜도 해소돼야 한다'고 밝혔다.… 법과 원칙을 바로 세우겠다는 대통령의 이런 다짐은 그동안 국민들이 대통령으로부터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다. … 우여곡절 끝에 대통령의 현실인식이 이렇게 바뀌었고, 실천에 옮겨진다면 그동안 치른 비용은 결코 아깝지 않다고 할 수 있다."

노 대통령이 무슨 변명을 하든 분명 '조선일보의 대통령 길들이기'가 성공한 셈이다. 비단 조선일보만이 아니었다. 가령 <동아일보>는 노 당선자의 두 노총방문 발언이 나오자 일찌감치 "노 당선자의 현실 인식은 거꾸로 됐다"며 경제계의 반응을 부각해 보도했다. 경제단체들과 기업인들은 "노사관계에 힘의 불균형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노동계가 아니라 항상 사용자 쪽이 당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고 기사화했다. 태생이 재벌신문인 <중앙일보>는 더 말할 나위 없다. '지금은 노조시대'라는 기획기사를 통해 마치 노조가 한국사회를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듯이 현실을 호도했다. 텔레비전 방송 3사의 보도 또한 부자신문들 못지 않게 자본가들 쪽에 편향되어 있다.

여론시장을 독과점하고 있는 신문과 방송들은 한결같이 노동자들에 대한 공세적 보도로 일관했다. '경제를 망치는 노조'라며 '파업망국론'을 강도 높게 전개하면서 노동자들을 상대로 마녀사냥까지 서슴지 않았다. 그래서다. 경제 5단체는 언죽번죽 '투자 거부'와 '해외이전'을 협박하고 나설 수 있었다.

노동자들의 파업에 근거도 없이 '집단이기주의'라고 몰아친 언론들이 경제 5단체의 명백한 이기주의적 언행에 대해서는 단 한 줄, 단 한 장면도 비판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의 주장에 무게를 실어주는 모습은 '압권'이다. '공정보도'라는 말을 꺼내기조차 민망스럽다.

문제의 핵심은 경제 5단체들이 자신의 이해관계를 충실히 대변하는 신문에 온갖 물적·인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는 데 있다. 보라. 세 신문사 지면의 절반 이상이 광고로 넘쳐난다. 노동운동에 중립적이거나 호의적인 신문에 대한 자본가들의 냉담함은 저들의 이익 옹호가 얼마나 본능적인지를 실감하게 한다.

도를 더하는 언론의 노동탄압

반 면에 노동운동 쪽은 어떤가. 전혀 다르다. 오히려 적지 않은 노동자들이 자신의 삶에 적대적인 신문을 구독하거나 언론개혁운동에 무심한 게 엄연한 현실이다. 조선·중앙·동아일보사와 시각차이가 또렷한 대안언론들을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에 대해 두 노총 차원의 고민이 있는지 묻고싶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 결과다. 경제 5단체의 직간접 지원으로 세 신문의 광고시장 독점은 그대로 판매시장 점유율 확대로, 그리고 다시 광고 증대로 이어진다. 결국 여론을 독과점하게 됨으로써 그 폐해는 고스란히 노동자들에게 '직격탄'으로 되돌아가고 있다. 노동운동에 대해 '집단 이기주의'라는 잘못된 인식이 퍼져가고 있지 않은가.

더 심각한 문제는 경제 5단체와 그들을 대변하는 부자신문들의 공세가 노동운동의 '도덕성'까지 거론하는 상황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대기업 노동자들의 '이기주의'라든가 '노동귀족'이라는 말까지 버젓이 활자화되거나 전파를 타고 있다.

노 동운동의 도덕성을 꼬집는 부자신문들의 여론몰이는 민주노총이 비정규직 문제를 줄기차게 제기해왔다는 간단한 사실만 보더라도 근거 없는 비난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노동운동이 단순한 비난으로 넘겨 버린다면, 너무나 안이한 대처방식이다. 혹 노동운동이 그런 비난에 빌미를 준 것은 없을까 냉철하게 돌아보아야 한다. 이를테면 마치 때를 맞추듯이 현대자동차 노조의 산별노조 찬반투표가 부결된 '사건'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 틈을 비집고 저들은 대기업노동자와 중소기업 노동자,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와 도시빈민 사이를 끊임없이 '이간질' 해나가고 있다. 노무현 정권이 들어서면서 본격화된 언론의 노동운동 공세에 대해 '의례적 비난' 정도로 이해해서는 안 될 까닭이 여기에 있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노동운동은 오랜 세월 정치적 탄압에 맞서 자신의 길을 열어왔다. 하지만 오늘 부닥치고 있는 것은 정치적 탄압보다 더 교묘하고 치명적인 언론의 탄압이다. 언론공세의 실체가 그 뒤에 숨어 있는 자본의 공세이기에 더욱 그렇다. 자본은 예전의 정치적 탄압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노동운동의 변화에 맞춰 탄압의 방법을 세련되게 바꿨거니와 그 '무기'가 오늘의 언론이다.

그래서다. 언론의 공세에 맞선 노동운동의 '응전'이 더 이상 서툴러서는 안 될 지점에 와 있다. 그 '진지전'에서 패할 때 노동운동은 추락할 수밖에 없다. 하여, 감히 말하고자 한다. 언론의 '노동운동 죽이기'를 두 노총이 가볍게 여긴다면, 바로 그 순간 한국노동운동의 위기는 구체적 현실로 나타날 터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7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