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수상태' 국회, 노동법제 물건너가나

노동사회

'혼수상태' 국회, 노동법제 물건너가나

admin 0 2,931 2013.05.11 11:03

"국정에 책임을 진 집권 여당이 신당 추진에 매달려 있어 정책조율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한나라당 이상배 정책위의장)
"정국 경색으로 여야관계가 풀리지 않는 바람에, 실무협의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처리하지 못한 대선 공통공약은 6월 임시국회에서 우선 처리하도록 노력할 것이다."(민주당 정세균 정책위의장)

' 주5일 근무제' 도입을 뼈대로 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과 고용허가제 도입을 위한 <외국인 근로자의 고용 및 관리 등에 관한 법안>, 공무원의 노동권 문제를 규정한 <공무원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안>은 여야가 대선 때 큰 차이 없이 내놓았던 노동관련 공약들이었다. 그러나 이번 임시국회에서도 이들 법이 국회를 통과하기란 불가능해 보인다. 오히려 철도노조가 총파업의 배수진을 치고 저지시키려는 <철도구조개혁법>의 통과 가능성만 점쳐지고 있다.

현재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심의중인 법안은 대략 70여 개에 이른다. 그 가운데 외국인 고용허가제와 건설교통위원회를 통과한 철도구조개혁법이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외국인 노동3권 왜 보장하나"

6 월16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고용허가제에 대한 논의를 했으나, 여야 사이에 찬반의견이 팽팽히 맞서 더 이상 진전시키지 못했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노동부가 입법지연에 대한 책임을 국회에 넘기고 있다"(이승철 의원), "노동부가 안이하게 지난 2개월 동안 보완책 없이 법안만 통과시켜 달라고 한다"(전재희 의원)며 정부를 비판하는데 열을 올렸다. 30만 명으로 추산되는 외국인 불법체류자의 강제출국조치가 8월 말로 다가오는 상황에서 여야는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또다시 '다음' 회기로 고용허가제 법안을 넘겼다.

외국인 고용허가 법안은 내국인을 고용하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채용에 실패한 사업주에게 외국인 고용을 허용하고, 3월 말 기준으로 체류기간 4년 미만인 불법체류 외국인에게 취업을 허가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고용허가제가 통과될 경우 불법체류 기간이 4년 미만인 16만 명은 최장 2년까지 체류기간이 연장되고 합법적인 취업자격을 부여받게 된다.

한 나라당 의원들은 "고용허가제가 도입되면 외국인 근로자에게 노동3권이 보장돼 임금이 올라가는 등 영세한 중소기업의 부담이 늘어 날 것"이라며, 이를 막을 수 있도록 노동부가 정부입법을 만들 것을 요구했다. 명색이 환경'노동위' 소속 의원임에도 불구하고 "외국인에게는 노동3권을 주지 말라"는 어처구니없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맥락은 장지종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상근 부회장이 외국인 고용허가제와 관련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중소기업의 외국인 고용은 인권이 아닌 경쟁력 유지라는 측면에서 접근해야 할 문제"라고 자신의 '소신'을 밝힌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인권에 대한 무지를 자신 있게 밝히는 중기협 부회장의 용기는 높이 산다 하더라도, 국회가 8월 말로 예정된 불법체류 외국인노동자에 대한 강제출국 조치를 눈앞에 둔 상황에서 회기를 넘긴 것에 대해서는 비난을 면키 어려워 보인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이 일하는 공단에서는 벌써부터 일손 부족 현상이 빚어지는 가운데, 사업주는 물론 상인 등을 중심으로 지역경제 상황의 악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

문 제는 7월 임시국회 개최 여부다. 국회는 6월 임시국회에서 추경예산을 확정해야 함에도 예결위를 구성하지 못했다. 때문에 7월에 임시국회가 열릴 가능성이 있고, 이렇게 되면 정부입법 형태로 고용허가제 법안이 올라와 환노위에서 심의를 하게 될 것으로 예측된다.

정 부 법안은 윤진식 산업자원부 장관이 6월18일 유창무 중소기업청장, 김영수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회장 등과 가진 모임에서 "고용허가제 도입에 대한 중소기업계의 우려를 충분히 고려, 고용허가제 법률 부칙에 기록된 산업연수생제도 폐지 조항을 삭제하는 방안을 관계부처와 협의중"이라고 밝힌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고용허가제와 산업연수생제도를 병행실시 하는 방안으로 올라올 것으로 보인다.

전경련을 비롯한 경제 5단체도 "고용허가제를 전면 도입하겠다는 계획에서 벗어나 정부가 중소기업계의 우려를 고려해 현행 산업연수생제도를 고용허가제와 병행 실시하는 방향으로 입법화를 추진하는데 충분히 공감한다"고 밝혀 한나라당의 반대로 국회에 계류 중인 외국인 고용허가제 법률은 개악된 형태로 7월 임시국회에서 처리될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연수생 제도 폐지를 요구한 노동계의 요구와는 달리 병행 실시되는 법안이 통과됨으로 인해 또 한차례의 진통이 예상된다.

철도구조개혁법 통과 예상돼

철 도노조가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는 철도구조개혁법은 이번 임시국회에서 '무난히' 통과될 전망이다. 철도구조개혁 관련 3개 법안 중 철도산업발전기본법(모법)과 한국철도시설공단법(공단법)이 6월19일 국회 건설교통위원회를 통과했다. 건교위를 통과한 철도구조개혁 관련 두 개 법안은 법제사법위원회로 송부된 뒤, 6월30일과 7월1일 국회 본회의에 상정될 예정이다. 이 과정에서 국회는 철도노조의 총파업을 의식한 듯 철도청 공사화와 공무원연금 승계 문제가 걸려 있는 한국철도공사법(공사법)은 상정하지 않았다.

공 사법을 제외한 두 법안이 처리됨에 따라, 고속철도공단이 가지고 있던 11조2천억 원의 부채는 철도시설공단과 철도청이 부담해야 하며, 철도청이 안고 있던 1조5천억 원의 부채는 정부가 담당하게 됐다. 특히 고속철도공단이 가지고 있던 11조2천억 원의 부채를 정부가 책임지지 않고 공단으로 이전시킴에 따라, 공단은 천문학적인 부채를 해결하기 위해 철도요금 대폭인상 등 추가 조치가 이뤄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비록 철도청 공사화와 공무원연금 승계 문제를 담은 한국철도공사법이 상정되지는 않았지만 철도노조는 총파업 배수진을 풀지 않았다. 철도노조는 4월20일 노정합의 타결 당시 철도구조개혁법과 관련해 "노사가 추후 공동으로 결정키로 한다"고 명시됐음에도 불구하고 6월 임시국회에서 노조와 어떤 협의도 거치지 않은 채 의원입법 형태로 법안이 올라왔다고 반발하고 있다. 이호웅 의원이 대표발의한 법안 자체도 이미 지난 정부에서 제출한 '문제법안'의 내용을 기본 골자로 삼고 있어 큰 문제를 지니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정부는 국회가 철도노조의 요구를 들어줬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최종찬 건설교통부 장관은 6월23일 과천 정부종합청사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정부가 '사회적 합의'를 통해 철도개혁을 추진한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철도노조가 주장하고 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며 이번에 처리된 철도구조개혁 관련법은 기존법에서 민영화를 하겠다는 것이 노조의 주장을 반영해 공사화로 바뀐 것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최 장관은 "특히 연금승계 문제 등과 관련해 논란을 빚고 있는 철도공사화법은 연금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유보하기로 하는 등 이번에 통과되지도 않았는데 가정을 해서 주장을 하면서 파업을 하겠다는 것은 곤란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철도노조 중앙쟁의대책위는 "모법인 철도산업발전기본법이 통과 됐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민영화가 가능한 것"이라며 "통과된 법 자체가 철도요금 증가 등 수많은 문제에 대해서 대책도 마련하지 못한 졸속 법안이기 때문에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철도노조는 6월28일 총파업은 예정대로 진행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소리만 요란한 주5일제 법제화

이번 6월 국회에서도 주5일 근무제는 상정조차 되지 못했다.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거나 다름이 없는 상태다. 국회가 노사의 이해관계를 조율해야 함에도 양쪽의 눈치를 살피고 있는 건 아닌지 자문해야 할 때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그러나 조정 능력을 상실한 국회에만 모든 책임을 떠넘길 일인지 노동계 역시 자문해 볼 필요도 있다.

한국노총 김성태 사무총장, 민주노총 이재웅 사무총장, 경총 조남홍 부회장, 노동부 박길상 차관 등으로 구성된 노동시간 단축 협상단은 지난달 7차 회의 끝에 서로의 입장차이만 확인한 채 논의를 중단했다. 주5일 근무제는 시행시기, 임금보전, 적용범위, 휴가일수 관련 사항 등 핵심쟁점에 대해 이미 오랜 논의를 거쳤지만, 어느 한쪽도 양보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국회는 노사간 합의가 이뤄져야 상정하겠다고 원론적인 얘기만 되풀이했다.

엘지, 삼성 등 주5일제를 이미 시행하거나 계획하고 있는 대기업에서는 법제화를 부담스러워하고 있다. 연월차 휴가를 대폭 줄이는 등 근로기준법상의 혜택을 상당부분 축소시켜 놓았는데 법제화가 되면 애써 줄여놓은 휴가나 임금 조건이 개선되지 않을까 우려하기 때문이다. 양대 노총 역시 주5일제를 "전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 게임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양대 노총의 주요 기반인 지불 능력과 교섭력을 가진 대기업, 정규직 중심의 조직 노동자들이 주5일제 법제화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양대 노총이 굳이 '뜨거운 감자'에 손댈 필요가 있겠냐는 분석인 것이다. 사용자단체야 법제화 논의가 무산되거나 하염없이 늘어지기를 바라는 형국이다. 국회나 정부 역시 노사 단체의 눈치만 보면서 책임 있는 조정 역할을 방기하고 있다. 이런 사정을 고려할 때, 주5일제 법제화는 최소한 내년 4월 총선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소란스런 논의만 계속할 게 분명해 보인다. IMF 경제위기 이후 노동시간 단축 논의가 5년이 지난 지금, 일자리 나누기와 삶의 질 향상을 통한 인간다운 사회 건설이라는 주5일제 본연의 목표는 실종된 지 오래다.

간절한 노동자 정치세력화

국회에서 논의되거나 처리된 노동 관련 법안을 살펴보면, 지연된 법안은 지연됐기 때문에 문제고, 처리된 법안은 처리된 절차가 합리적이지 못해 문제다. 철도구조개혁법의 경우 노조나 시민사회단체와의 충분한 논의 없이 정부와 국회가 일방적으로 처리하고 있으며, 고용허가제 법제화는 국민경제가 결딴나는 지에는 관심 없는 사용자단체의 반발로 무산되거나 심하게 변질될 가능성이 커졌다. 5년을 지루하게 끌어온 주5일 근무제의 경우, 사회적 합의점을 도출하기는커녕 대의와 명분은 내팽개친 채 실리를 챙기려는 진흙탕 싸움이 된 지 오래다.

여당인지가 의심스러운 민주당은 '신당' 논란으로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고, 원내 제1당인 한나라당은 정부가 하는 일이라면 사사건건 발목을 잡으면서 수구기득권층의 이해를 대변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정부는 정부대로 소신 있게 정책을 입안하고 추진하기보다는 소수당 정부라는 변명만 늘어놓은 채 이 눈치 저 눈치 보면서 갈짓자 걸음을 계속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노동자들의 노동 생활을 결정짓는 중요한 법안들이 졸속 처리되거나 무산되고 있다. 현재 국회의 한심한 사정을 보고 있노라면, 한국 보수정치가 얼마나 유해한 지와 노동운동의 정치적 성장과 정치세력화가 왜 중요한 지를 다시 한번 절감하지 않을 수 없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7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