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자기업 철수, 노조탓? 부실경영탓?

노동사회

외자기업 철수, 노조탓? 부실경영탓?

admin 0 7,196 2013.05.11 11:01

스위스계 다국적 기업인 네슬레가 8월25일 서울사무소를 폐쇄했다. 직장 폐쇄의 이유는 임금인상폭과 노동자의 이동배치 문제를 놓고 노조와 이견을 보였기 때문. 노조가 이 문제를 가지고 파업을 시작한지 50일만에 벌어진 일이다. 네슬레는 서울사무소 폐쇄와 더불어 충북 청주시에 있는 냉동건조커피 생산공장도 폐쇄할 것을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한국 네슬레 이삼휘 사장은 "1단계로 서울사무소만 폐쇄했으나 파업이 이대로 진행되면 청주 공장과 영업점도 곧 폐쇄할 것"이라며 "공장의 경우 생산성이 떨어져 완전 철수도 고려하고 있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cjjung_01.jpg한국 네슬레의 으름장

11.7%의 임금인상(회사측 5.25% 인상안 제시)과 더불어 노조원을 이동, 전환 배치하거나 외주 또는 하도급을 줄 때 '협의'가 아닌 '합의'할 것이 노조의 요구사항이었다. 

이삼휘 사장은 "경영권 참여 등 노조측 요구를 스위스 본사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인다"며 성토했고 노조는 억울하기만 했다. 

네슬레 노조의 전택수 위원장은 "노조의 요구는 최소한의 고용안정을 보장해 달라는 것이지 경영에 참여하겠다는 게 아니"라며 "근로조건 변경이나 고용변경이 있을 때 지금까지 (노조와) 협의하는 것조차 이뤄지지 못했다"고 하소연했다. 어찌 보면 국내에서 너무도 흔하게 벌어지는 노사갈등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가? 네슬레의 노사갈등이 갑자기 외자기업 전체로 확대되기 시작했다. 미국계 기업인 한국 오웬스코닝도 직장폐쇄를 단행했고, 정밀화학약품을 생산하는 KOC, 대만 KOOS 그룹이 최대 주주로 있는 KGI증권 등 외자기업들의 직장폐쇄가 이어지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기 시작했다. 이러다가는 한국에 투자할 외국기업은 없을 것이라며 '나라 걱정'이 시작됐다. 그리고 모든 비난의 화살은 노조에게 돌아갔다. 

어느새 한국은 강성노조 때문에 투자하기 힘든 나라, 기업하기 힘든 나라가 됐다. 강한 노조 때문에 외국계 기업이 견디질 못한다는 것이다. 이런 풍토를 바꾸지 않으면 한국에 투자할 기업, 남아있을 기업이 하나도 없다고 걱정한다. 

정부도 맞장구

겉으로 보기에 화살은 노조에게만 향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참여정부도 그 비난의 한 축이다. 참여정부가 친노동자 성향이라 안심하고 경영하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정부가 이런 비난을 오래 참고 있을 리 없다. 노무현 대통령은 9월22일 『파이낸셜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파업이 끊이지 않는 한국의 노동시장 개혁을 위해 파업을 줄이고 노동자의 해고를 쉽게 하겠다"고 밝혔다. 강성노조 때문에 한국에 대한 외국인 투자가들이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는 말이 언론을 통해 들리자 국내 경제 불황의 주범인 노동계를 향해 전투적인 발언을 한 것이다. 노 대통령은 "노동계의 투쟁이 한국 경제에 미치는 손실에 대해 인식하고 있으며 파업 발생건수를 매년 절반으로 줄일 수 있도록 법령을 개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또 "한국에서 벌어지는 파업은 그 수가 너무 많고 파업 양상도 너무 전투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며 "이것이 기업가들에게 부담이 되고 있어 파업 및 노사분규의 수를 매년 절반으로 줄일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어떻게 줄일 계획인가? 정부는 노조의 영향력을 줄이고 사측에 고용과 해고의 자유를 주게 되는 법안을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했다. 노 대통령은 "해고의 진행과정이 매우 단순해 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노 대통령의 이와 같은 발언을 "불법 파업에 대한 처벌 규제를 강화하고 파업 중 임시 노동자의 사용을 더욱 자유롭게 하는 등이 내용이 포함될 것"으로 해석했다.

전가의 보도 '자본철수'

외국기업의 노사분규는 8월말까지 27건으로 지난해 전체 발생건수인 26건을 넘어섰고 이 가운데 7개 업체는 직장폐쇄를 단행했다. 전문가들은 외국기업의 노사분규가 앞으로도 적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외국기업 내 노사갈등이 있을 경우, 외국기업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를 '직장 폐쇄'.

외국기업은 노사분규가 있으면 "직장을 폐쇄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정부와 언론은 "강성 노조를 약화시켜야 한다, 해고를 쉽게 해서 투자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맞장구를 칠 것이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결국 외국기업의 자본철수 발언은 노조의 일상적인 활동, 특히 쟁의시 위협수단으로 사용될 가능성이 많다. 이미 삼주리틀휴지, 한국산연, 대한중석, 한국펠저 등 많은 외국기업이 임단협 진행과정에서 자본철수 압박을 노조의 요구를 묵살하기 위해 사용한 적이 있다. 

외국자본은 그 속성상 이윤이 작으면 언제든지 인건비가 싼 동남아, 중국 등으로 이전할 수 있다. 이는 일본의 전기전자 산업이 마산 수출자유지역에서 대거 동남아로 이전해 간 사례와 미국 GM이 멕시코 등 남미 공장을 일방적으로 폐쇄하는 과정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런데 외국자본이 철수를 할 때는 마지막 승부수를 던지기 마련이다. 새로운 나라에서 새로운 생산기지를 만들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초기 투자비용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외국자본은 철수 직전까지 그 나라에 여러 가지 위협 수단을 가하며 이윤창출을 극대화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한국은 임금이 너무 비싸다. 해고하기도 너무 어렵다. 노동시간도 점차 짧아진다. 노조가 강성이다. 이를 해결해 주지 않으면 자본을 철수할 수밖에 없다. 여기보다 임금이 싼 나라는 얼마든지 있다"는 위협에 정부가 서둘러 대책을 마련해 주면 철수하지 않는 것이다. 국내 노동자들의 노동환경 악화는 별 관심이 없다. 

지난해 민주노총 금속연맹은 외국기업 실태 보고서에서 "2000, 2001년 연맹소속 대부분 외자기업에서 단체행동시 불법적인 물량 해외공사가 실시됐고 자본철수 압박이 노골화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한국 게이츠는 임단투시 동남아 해외공수가 실시돼 100일간 파업을 했고, 보쉬기전은 호주, 독일에서 해외공수로 90일 물량을 확보해 53일간 파업을 했던 전례가 있다. 

cjjung_02.jpg국내 자본가와 언론의 속내

9월3일 주한유럽연합 상공회의소 신임 회장단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은 신임 회장단에게 한국 노조에 대해 쓴소리를 해 줄 것을 줄기차게 주문했다.

신임 회장단은 "1시간 내내 노조 얘기만 했다. 질문할 것이 그것밖에 없냐"고 불만을 토로했을 정도였다. 지난달 27일 방한한 한·미 재계회의 모리스 그린버그 회장의 기자회견장에서도 비슷한 풍경이 연출됐다.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구체적인 내용을 알지 못한다"는 모리스 그린버그 회장의 말에도 불구하고 기자들은 "한국과 다른 나라의 노조를 비교해 달라"고 거듭 주문했다. "노조 때문에 한국 투자계획을 철회한 사례를 봤다면 소개해 달라"는 질문도 있었다.

『조선일보』는 네슬레 문제가 있자, 지난달 28일 조선호텔에서 한국노사문제 좌담회를 열었다. 윌리엄 오벌린 주한미국상공회의소 회장, 제프리 존스 김&장 법률사무소 변호사, 제임스 블래직 한국 오웬스코닝 사장, 그리고 한국 네슬레 이삼휘 사장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한국의 강성노조에 대한 성토를 시작했다. 다른 언론과 국내 기업인들도 마찬가지로 강성노조 때문에 투자를 재검토했다는 몇 개의 외국 자본을 소개하는데 열을 올리느라 여념이 없었다. 모두가 한국경제를 충심으로 걱정하는 양 노조 비판에 한목소리를 높였다.

한국노총 이민우 정책국장은 "네슬레 문제를 자세히 살펴보면 외국자본의 압력을 국내자본과 언론, 그리고 정부가 노조 약화의 계기로 삼으려는 의도가 다분히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 국장은 "결국 언론과 정부가 외국자본의 철수문제를 과대 포장하는 이유는 국민들로 하여금 노조 때문에 국가 경제가 망해간다는 것을 심어주면서 동시에 노조 길들이기를 하는 것"이라며 여론을 호도하는 정부와 언론을 비판했다. 

철수를 운운한 한국 네슬레도 실상은 보도가 과장되었음이 드러났다. 지난해 240억원 매출을 올려 동서식품에 이어 국내 시장 점유율 2위를 기록한 네슬레는 아직 철수단계는 아닌 듯하다. 네슬레의 이완영 상무는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시장의 전망이 밝아 사업을 모두 철수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스위스 본사의 지시는 청주 공장의 존속 여부를 통상적인 수준보다 한 단계 높여 검토하라는 뜻"이라고 말했다. 스위스 베베이에 있는 네슬레 본사의 프랑수아 자비에 페루 네슬레 대변인도 9월3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네슬레의 한국 철수설은 발언을 잘못 해석한데서 비롯된 오해로 보인다"며 "네슬레 본사는 한국에서 철수할 계획이 분명히 없다"고 잘라 말했다.

결국 외국자본의 철수 운운 발언을 등에 업은 국내자본과 언론, 정부가 노조 무력화를 시도하기 위해 눈물겨운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경영 실패가 철수의 원인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철수하는 외국기업이 있는 건 사실이고 앞으로도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1997년 이전에는 4,419개에 불과했던 외국기업이 아이엠에프 이후 우후죽순처럼 국내에 들어와 1만2,909개에 이르러 이들 외국기업 중 상당수가 실패를 경험할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외국기업의 국내 철수 이유가 과연 강성노조 때문인가라는 점이다. 

민주노동당 경제민주화 운동본부 이선근 위원장은 "외국기업의 국내 철수 이유 중에는 한국상황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한 경영 실패가 많으며 투자를 꺼리는 기업이 있다면 그것은 전반적인 국내 경기 침체와 북핵 문제로 인한 투자 심리 위축이 주요한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이 본부장은 "이윤 획득이 목적인 기업이 단순히 노조 때문에 자본을 철수한다는 말은 맞지 않다"고 했다.

1993년부터 11년간 BAT 코리아를 경영한 존 테일러 전 사장은 최근 이임회견에서 "회사의 성장은 전적으로 최선을 다해준 한국직원들 덕분이었다"며 "평소 회사가 노력한다면 강성노조가 왜 생겼겠느냐"고 반문했다. 데일러 사장은 직장폐쇄를 단행한 네슬레의 예를 들며 "직원들이 회사에 대한 자부심을 가질 수 있게 하는 투명한 경영 노력이 있었다면 강성 노조가 양성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네슬레를 비롯해 한국에서 철수하는 외국기업들의 문제는 투명 경영의 실패에 원인이 있다는 말이다. 그는 "외국 기업과 갈등이 있는 곳은 몇 군데에 불과하다"며 "내가 아는 대부분의 외국계 기업 최고 경영자들은 한국 시장의 발전 가능성에 대해 높이 평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경영을 잘못해서 망한 것을 가지고 노조 때문이라고 말하지 말라는 따끔한 충고다. 

9월24일부터 2박3일간 다임러크라이슬러, 듀폰, 브리티시텔레콤 등 세계 굴지의 다국적 기업 최고 경영자 및 아시아지역 투자담당 책임자들이 한국을 찾았다. 포춘지 선정 500대 글로벌 기업 15개를 비롯해 50여 개 기업 최고경영자, 아시아지역 본부장, 본사의 아시아 투자책임자가 참석해 동북아 허브로서의 한국포럼을 개최한 것에서 보듯 노조 때문에 투자하기 힘든 나라라는 논리도 어딘가 엉성해 보인다.

외국자본유치 경제공동화 불러 올 수도

영국계 유통업체 삼성 테스코는 철저한 한국식 경영으로 롯데마트를 누르고 업계 2위에 올라섰지만, 세계 최대의 유통업체인 월마트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외국기업의 경영실패까지도 노동자 탓이라고 돌리는 발상이 놀랍기만 하다.

민주노총 김태연 정책실장은 "외국기업이나 외국자본은 대체로 저임금을 찾아서 나가는데 중국 수준으로 임금을 낮추는 건 이미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걸로 경쟁력을 찾으면 안 된다"고 충고하고 있다. 김 실장은 또 "외국 자본의 유치가 한국경제의 살길이라고 말하지만, 대책없이 외국 자본의 유치를 높여나가면 국내경제의 공동화 현상이 일어나기 마련"이라며 외국자본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말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김 실장의 지적처럼 국내에 들어와 있는 외국자본은 대부분 인수합병 전문회사, 금융기관 등으로 생산과정에 인한 이익보다는 단기간에 되파는 방식으로 값을 올려 이익을 취하기 때문에 외국자본 철수가 마치 국가경제의 커다란 위기 상황인 것처럼 떠드는 것이 옳은 일인지 냉철한 판단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8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