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야만주의 선언

노동사회

신야만주의 선언

admin 0 2,608 2013.05.11 11:01

소 비에트가 몰락한 지 십 년이 넘어가는 지금 자본주의는 민주주의와 결별하고 싶어한다. 초중고 시절 역사와 사회에 대한 인식이 천박했던 교사들은 자본주의는 민주주의고, 공산주의는 독재라고 가르쳤었다. 이제 공산주의가 사라지고 자본주의가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라는 깃발 아래 세계를 석권하는 시점에서 자본주의는 민주주의를 부담스러워 하고 있다.

자본주의는 태어날 때부터 억압과 독재와 착취와 폭력을 동반했다. 국가의 폭력을 등에 업은 귀족과 부르주아지의 폭압이 없었더라면 자본주의는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억압과 착취는 당연하게도 인간의 저항을 불러일으켰고, 민주주의는 자본주의에 저항하고 투쟁하는 과정에서 태어났다. 노동자와 민중의 저항에 직면한 자본주의는 살아남기 위해 민주주의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book_01.jpg민주주의를 벗어나고픈 자본주의

반 면에 자유주의는 자본주의의 사상적 토대였다. 자유주의는 개인의 자유가 가장 중요한 덕목이며, 당연히 개인의 능력과 장점에 근거한 경쟁을 미덕으로 간주한다. 국가나 공동체는 개인을 억압하거나 통제해선 안 되며, 개인의 성장과 발전을 존중해야 한다. 여기서 자유주의의 최고 가치인 개인과 경쟁의 핵심 토대는 사유재산과 시장이다. 자유주의는 재산이 없는 하층민의 사상일 순 없으며, 교양과 재산을 지닌 귀족과 부르주아의 사상이며, 사유재산을 신성불가침하게 본다는 점에서 자유주의와 보수주의는 동전의 양면이다. 하지만,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노동대중의 거센 도전 앞에서 자유주의는 민주주의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으며, 그 결과 탄생한 것이 바로 자유민주주의(liberal democracy)다.

근현대를 뒤흔든 인민민주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물결 속에서 자유주의는 민주주의 뒤로 숨을 수밖에 없었으며, 이런 현실은 1991년 소비에트 몰락 때까지 계속되었다.

이 제 자유주의는 민주주의와 결별하고 자유지상주의(libertarian)로 기울어지고 있다. 공산주의의 공포에 직면해 민주주의를 통해 스스로를 수정할 수밖에 없었던 자본주의는 이제 억압과 착취하는 본연의 모습을 드러내고 싶어 안달이다. 90년대 중반부터 조금씩 터져 나오기 시작한 민주주의에 대한 야유와 폄하는 21세기 들어 시대적인 조류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민주주의가 시장의 자유로운 활동을 가로막아선 안 된다.’
‘시장은 시장 나름의 법칙이 있다. 국가나 사회가 개입해선 안 된다.’
‘민주주의는 어리석은 대중(愚衆) 정치로 빠질 가능성이 크다.’
‘재산과 교양이 있는 교육받은 엘리트들이 사회를 이끌어야 한다.’

이 정도 이야기는 양반이다. 오히려 더욱 공격적이고 비열한 주장이 터져 나오는 게 요즘 의 현실이다. 맑스와 엥겔스의 공산주의 선언을 빗댄 이안 앤젤의 『신야만주의 선언』은 그 결정판이라 할만하다.

적자생존과 자연선택이 정의 

사 회는 약육강식의 마당이자 야만인들의 싸움터다. 적자생존과 자연선택은 인간 사회와 자연 세계의 일반적인 법칙이다. 구야만인들의 민주주의 시대는 사라지고 있으며, 그 수단인 국민국가는 신야만인의 적이 되고 있다. 제레미 리프킨의 ‘노동의 종말’처럼 노동이 가치를 생산하는 시대는 사라지고 있다. 구식의 일자리들은 대부분 사라질 것이고, 정보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일자리들이 출현할 것이다. 이것은 구야만인인 노동대중들의 몫이 아니라, 신야만인인 정보엘리트, 지식엘리트의 몫이다.

구야만의 정치적 상징인 국민국가는 이제 해체 단계에 있다. 현대의 모든 과학기술은 소외를 만들어 내며, 새로운 시대에 인간은 소외될 수밖에 없다. 소외는 필연이자 법칙이다. 민주주의는 부의 창조자에 대한 폭도의 음모이다. 부자와 빈자는 공간적으로 분리되어야 하며, 적자생존, 자연선택은 생존법칙이며, 살아남지 못하는 자는 사라져야 한다.

미국은 유럽보다 우월하다. 유럽은 사회주의로 가라앉는 반면, 미국은 적나라한 자본주의를 실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은 새로운 시대의 희망이자 횃불이며, 세계의 진정한 지도자이다.

귀 족주의를 욕해선 안 된다. 새 시대는 귀족주의 엘리트의 사회이며, 노동대중과 엘리트로 분열된 사회이다. 집단주의는 전체주의이며, 개인주의야말로 새로운 사회의 문화이다. 기왕에 새로운 사회가 오는 현실을 감안할 때, 패자가 되기보다는 승자가 되어야 한다. 이제 혼란과 파국은 불가피하다. 혼란과 파국은 악이 아니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사회 현상일 뿐이다. 

경제적 힘은 사회적 힘의 기반이며, 평등 속에 정의란 없다. 경제 범죄는 나쁜 것이 아니다. 어차피 경제 활동의 기준이란 누가 선하고 누가 악한가가 아닌, 누가 더 나쁘고 누가 덜 나쁜가를 가르는 것이다. 좋은 경제 활동이란 없다. 따라서 경제 범죄는 저질러도 무방하다. 사슴보다는 자칼과 하이에나가 되는 게 상책이다.

국민국가로 대변되는 구세계는 무너지고 있다. 이제 자연선택과 적자생존의 새로운 세계가 열리고 있다. 이제 편안하고 안정된 세계는 끝나가고 있다.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시대는 말한다. 전쟁, 테러, 살인, 유혈 속에서 미켈란젤로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탄생했음을. 스위스는 민주주의와 평화를 5백년동안 지속했지만, 결국 뻐꾸기 시계밖에 만들어내지 못했다.

무너지는 민주주의

런던경제대학 교(LSE)의 정보시스템과 교수인 이안 앤젤은 아무 거리낌 없이 마구 내지른다. 민주주의는 안 된다. 국민국가는 적이다. 경제 범죄를 저지르자. 엘리트가 지배하는 사회를 만들자. 미국 만세. 평화보다는 혼란을. 인간보다는 돈을.

이제 이 자본주의자, 자유지상주의자의 적나라한 외침은 세계 곳곳에서 울려 퍼지고 있으며, 이에 화답하는 엘리트들의 대열이 점점 길어지고 있다. “국가는 기업의 영업 활동을 간섭하지 말라”는, “잘난 사람이 잘 사는 게 뭐가 잘못됐냐?”는, “왕후장상(王侯將相)의 씨가 따로 있다”는, “대중은 믿을 수 없으며, 결국 역사와 전통을 지켜나가는 건 엘리트”라는, “시장의 자유로운 작동을 방해하는 민주주의는 사라져야 한다”는 신야만인을 자처하는 21세기 신귀족들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수세기 동안 노동대중이 피땀으로 일궈온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조짐이 세계 곳곳, 사회 곳곳에서 목격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의 분열로 혼돈에 빠진 자유주의자들(liberalists)의 무기력과 더불어.

  • 제작년도 :
  • 통권 : 제 7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