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생각하는 ‘공익’의 역할

노동사회

다시 생각하는 ‘공익’의 역할

admin 0 2,912 2013.05.11 11:00

노 사정위원회는 2001년 7월부터 1년 반 동안 비정규직 근로자 대책 특별위원회를 운영해왔다. 비정규 특위는 노사정 위원 각각 4인과 위원장을 제외한 공익위원 6인으로 구성되어, 총 19인이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법제도적 정책대안을 논의해 왔다.

노 사의 입장이 좁혀지지 않음에 따라 그간의 논의결과는 공익위원(안)으로 발표되었다. 형식적으로 진일보한 측면을 꼽자면 비정규 특위 1년이 경과했을 즈음에는 공익위원들 ‘각각’의 잠정안으로 발표되었으나, 이번에는 공익위원(안)으로 ‘모아졌다’는 것이다. 그만큼 비정규직 대책은 노사는 물론이거니와 공익위원 내부에서도 하나의 견해로 모아지기 어려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생한 만큼 성과가 있는가

그 간 비정규 특위는 한 일이 많다. 우선 비정규 특위의 성립 자체가 중요하다. 정부, 사용자, 학자들이 한 목소리로 노동시장의 수량적 유연화를 강조해 온 상황에서 그래도 비정규직 문제가 노사정위원회의 도마 위에 올랐다는 사실 자체는 의미가 있다. 그간 비정규 특위는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 등 비정규직 통계조사를 논의했고, 비정규직 관계 당사자들을 조사 면담했다. 또한 근로감독 행정을 검토했으며, 분야별 비정규 노동자의 문제에 접근했다. 물론 비정규직 규모에 대한 논쟁을 벌인다던가, 비정규직 개념에 대해서 노사 합의를 시도한다던가 하는 일도 있었지만, 이는 저열한 수준의 노사관계에서 그저 있을 수 있는 일 정도로 치부될 수도 있다.

문제는 ‘고생’한 만큼의 성과가 무엇인가에 대한 것이다.
공익위원 안은 기간제 근로, 파견근로, 단시간 근로, 특수 고용의 네 개 영역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네 개의 영역을 관통하는 두 가지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먼 저, 노동계와 경영계 입장 사이에 직선을 긋는다면 공익위원 안은 그 직선상의 어떤 지점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공익위원의 안은 노사의 입장을 꼭지점으로 할 때 삼각구도의 새로운 꼭지점을 형성하지 않았다. 노사의 안보다 발전적인 어떤 안을 제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두 번째 특징은 공익위원의 안이 비정규직 고용에 대하여 사전 규제는 NO, 사후규제는 OK의 입장을 취했다는 점이다. 이는 ‘(비정규직이) 노동시장에서 중요한 고용형태라는 현실을 감안하되, 그 남용에 대해서는 적절히 규제하여 노동시장의 건전한 발전을 도모’하겠다는 원칙에서 적절하게 드러난다. 이는 비정규직 문제를 바라보는 공익위원들의 시각을 보여 준다.이런 두 가지 공통점은 네 개 분과에서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먼저 기간제 근로에 대하여 노동계는 계약기간 기준을 1년으로 하여, 비정규직 사용의 사유 제한 및 사후규제를 동시에 주장한 반면, 사용자는 계약기간 기준을 3년으로 하여 사유제한과 사후규제를 모두 반대했다. 공익위원은 기준 계약기간에 대해서는 사실상 기권한 반면, 사유제한에 대해서는 사용자의 주장에, 사후 규제에 대해서는 노동계의 주장에 접근해 있다.

파견근로에 대하여 노동계는 파견, 도급, 용역, 직업 소개를 통일적 법률로 재정비하고, 그 이전까지는 잠정적으로 파견 사유제한 및 사후규제를 주장한 반면, 경영계는 업종 등 사유제한을 완화하고 사후규제도 완화할 것을 주장하였다. 공익위원들은 통일적 법률에 대해서는 ‘공감’을 표현했고, 다소 애매하지만 사유제한에 대해서는 경영계의 주장에, 사후규제에 대해서는 노동계의 주장에 동조했다. 

단시간 근로에 대해서 노동계는 명목상 단시간 근로 규제(단시간 근로 상한 설정) 및 그 이상의 초과근로에 대하여 가산 임금을 주장한 반면, 경영계는 이에 반대하였다. 공익은 근로시간 상한 규제는 반대하되, 중간 안을 제출함으로써 양자의 안을 절충하였다.

특수형태 근로에 대해서 노동계는 노동자성 (부분) 인정 및 사용자 개념 확대와 노동법 적용을 주장한 반면, 경영계는 이를 반대하고 민법, 상법 등 비노동법의 적용을 주장하였다. 이에 대하여 공익위원들은 유사 근로자 개념의 도입을 검토하고, 일부 노동법의 적용을 포함하여 여러 가지 법을 적절한 수준에서 적용하자는 안을 제출했다.

왜 한 걸음 더 나아가지 못했는가?

왜 공익위원들은 노사의 안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안을 제출하지 않았는가?
이 유는 여러 가지일 수 있다. 세계적인 추세나 다른 나라의 경험을 살펴봐도 적당한 대안이 없기 때문일 수도 있고, 노동시장 상황이나 합의의 정치 지형, 혹은 현실 조건상 정책 대안의 실현 가능성이 불충분하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혹은 노사 양측의 안이 너무나 대립적이어서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비정규직 문제에 있어서 노사 양측은 막무가내는 아니었다. 본심이야 어쨌든 간에 노동계는 모든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및 비정규직 철폐를 주장하지 않았으며, 사용자는 모든 정규직의 비정규직화를 주장하지 않았다. 만약 노동계가 좀 더 ‘무식하게’ 나아갔다면, 예를 들어 비정규직은 절대 불가이고, 그 분류나 내용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철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면 공익위원의 안이 지금처럼 ‘풍부’해질 수 있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노사정위원회의 공익위원들에게 거는 노사의 기대는 최소한 어떤 주장들의 타당성과 영향력에 대하여 검증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간 합리적인 대안을 제출하는 데 있다. 최소한 공익위원들은 노사 양측의 주장에 대하여 노동시장에 미칠 영향과 실현가능성을 검증하고 그 결과를 밝혀야 할 책임이 있다. 거기서 더 나아간다면 최소한 기존의 제도보다는 한 단계 발전된 보다 새로운 대안을 제출해야 한다. 

만 일 전자가 가능했다면 제출된 공익위원 안에는 최소한 노사 양측의 주장에 대한 비판적 검토가 포함되었을 것이다. 현재 노동계의 안은 이러하고 사용자의 안은 저러하지만, 그것을 각각 적용할 경우에 다른 나라의 경험에서는 어떠한 결과가 빚어졌으며, 한국의 노동시장 상황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러저러한 점을 고려하여 공익위원의 안은 이러하다 혹은 이러할 수밖에 없다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제출된 공익위원 안은 노동계 안과 경영계 안의 직선거리 위에서 이리로 갈까 저리로 갈까를 망설였을 뿐, 노사의 안에 대해서 왜 되고 혹은 왜 안 되는 지를 설명하지 않았다.

후자까지 가능했다면, 공익위원들은 노사의 견해를 아우르면서도 그와는 성격이 다른 보다 진일보한 대안을 제출했을 것이다. 예를 들어 파견, 용역, 하도급, 직업 소개를 통일적으로 규율할 수 있는 법률의 재정비에 대해서 공익위원들이 공감했다면, 그것을 어떤 단위를 통하여 어떤 법률들을 대상으로 언제까지 마련해야 한다는 안을 제출했을 것이다.

비정규직 근본 원인 이해 못해

공 익위원 안의 다른 특징은 비정규직 고용에 대하여 사전규제는 NO, 사후규제는 OK라는 입장이다. 이는 공익위원들 내부에 존재하는 입장 차이에도 불구하고, 공익위원들이 모두 인정할 수 있는 여지가 비정규직의 사전규제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고 사후규제에 대해서만 어느 정도 동의할 수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공익위원들은 한국 사회의 고용의 질 제고 문제에 대하여 나름대로 답변을 한 셈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대답은 ‘노’였다. 비정규직이 ‘노동시장에서 중요한 고용형태라는 현실을 감안하되, 그 남용에 대해서는 적절히 규제하여 노동시장의 건전한 발전을 도모’하겠다는 원칙은 원인과 결과를 전도한 것이다.

한국 노동시장에서 비정규직의 증대가 왜 문제인가? 노동자가 자신의 의사에 따라 자발적으로 비정규직을 선택했고, 고용형태와 무관하게 합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었다면 비정규직의 수량적 증가는 지금처럼 문제되지 않는다.

비 정규직의 수량 증가가 문제인 이유는 저임금과 고용 차별의 결과이자, 고용주의 책임 회피수단으로써 비정규직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비정규직이 노동시장에서 중요한 고용형태가 된 것은 그 남용을 허용한 노동시장제도의 결과이지, 비정규직이 늘었기 때문에 남용이 나타난 것이 아니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남용에 기초한 비정규직의 수량 증가를 억제할 수 있는 정책 대안이 필수적이며, 따라서 비정규 고용의 사유규제가 전제되어야 한다.  
 
공익의 역할 제대로 알아야

우 리가 기억하는 과거 ‘공익’위원들의 역할은 그다지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1990년대에 정부의 임금억제논리를 대변했던 공익연구단과 그들이 제시했던 ‘적정’ 임금인상률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노사와 공익 3자로 구성된 최저임금위원회에서도 최종적으로는 공익 1인이 노사 양측 어디로 기울어지는가에 따라 저임금 노동자들의 생계를 좌우하는 법정 최저임금이 결정되었다.

중요한 것은 노사의 갈등조정이나 절충의 역할이 공익위원들의 몫이 아니라는 점이다. 공익위원들은 그 전문성에 기초하여 노사 주장의 합리성을 검증하고, 문제점을 파악하고, 보다 개선된 안을 제출하는 것이다. 검증과 제안의 시각은 전적으로 자신의 시각이다. 그것을 취사선택하는 역할은 노사정 각각의 몫이다. 

일부의 얘기지만, 노사정위원회에서 노사는 의견만 피력하도록 하고 결정 권한은 공익위원들에게 주어야 한다는 주장을 들은 적이 있다. 노사가 결정권을 가지면 의견 접근은커녕 아무런 결정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노사는 ‘사익’이고 공익은 ‘공익’이라는 시각이 숨어 있다. 그렇다면 노사정위원회는 공익위원회로 바뀌어야 한다. 왜? ‘공익’이니까.

  • 제작년도 :
  • 통권 : 제 7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