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호·김주익·조선일보 문갑식

노동사회

배달호·김주익·조선일보 문갑식

admin 0 2,942 2013.05.11 10:55

공인노무사 자격증을 가졌다는 조선일보 문갑식 기자는 「두 노조 간부의 죽음이 불러온 것」이라는 글(『조선일보』10월25일자)에서 "집권 초부터 대통령은 노사관계를 화려하게 분석하고 여러 처방을 내놓았지만, 배(달호)씨 사건과 김(주익) 위원장 사건은 대통령이 해답을 찾는 과정에서 문제에 숨은 함정을 오독(誤讀)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낳게 한다."고 썼다. 또한 그는 "대통령은 노동계에 대해 성의 있게 대화하고 불합리한 법·제도를 선진적으로 바꾸면 한국의 노사관계가 정상화될 것이라고 보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그렇다면 왜 김 위원장이 정부가 이미 노조에 대한 무차별적 가압류, 손배 금지 원칙을 발표했는데 자살을 택했는지가 설명되지 않는다"고 썼다. 

문 기자는 두 노조 간부의 죽임이 노 대통령의 노사관계 구상을 '빈말'로 만들 공산이 크다고 분석하면서, 꼬일 대로 꼬인 노사·노정관계의 이유가 "성의 있는 대화"가 없거나 "불합리한 법·제도를 선진적으로 바꾸려"는 노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다른 곳에 있지 않느냐는 식의 결론을 내렸다.

문 기자는 정부가 노동정책을 '발표'하면, 그것이 일사분란하게 현장으로 먹혀들어 웬만한 문제는 정부 발표나 대통령의 한마디로 해결된다고 보는 듯 하다. 노무현 정부는 '친노'(親勞) 정부니까, 정부의 노동정책은 친노(親勞)적이고, 친노(親勞) 정책이 발표되었는데도 노조 간부들이 자살하는 걸 보니, 노동자에게 우호적인 정책을 쓴다고 한국의 노동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다는 식의 논법을 교묘히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문 기자의 글에서 진실에 가까운 것은 한국의 노동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노사·노정관계가 제대로 풀리고 있지 않는다는 상황 인식뿐이며, 그 밖의 문제에 대해서는 잘 모르거나 애써 눈감은 듯하다. 

진실은 이렇다. 노무현 정부는 초기 중립적인 입장에서 노사관계를 풀기 위해 '사회통합적 노사관계'를 천명했고, 이것이 앞선 정부들과 비교할 때 '친노'적으로 보일 수는 있었다. 경제 정책에 종속되어 사측만 편들던 정부가 노동정책의 중립(!)을 선언했으니, '공권력'에 기대어 반(反)노조 행각을 일삼아온 이들이 경악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더구나 4·20 철도노조 합의, 화물연대 1차 파업, 조흥은행 파업을 겪으면서 정부가 경찰력을 투입하지 않고 '대화와 타협'으로 일관했으니, '공권력에 의존한 노동자 통제'라는 낡디 낡은 패러다임만 머리 속에 박힌 자들의 위기감은 오죽했을까. 

6월 말 철도노조 파업을 경찰력으로 '해결'하기까지 현 정부가 보여준 노동행정은 이전 정부의 낡은 대응방식과는 달랐고, 그래서 수구세력은 물론 노동자들에게도 충격으로 다가왔던 게 사실이었다(물론 국제 기준에서 보면, 6월까지 보여준 정부의 노동정책은 친노가 아니라 중립이었다). 문 기자가 자기 글에서 암시한대로 노무현 정부가 '새로운' 노동 행정을 펼치던 기간인 3월부터 6월까지 자살한 노조 간부는 아무도 없었다. 노동계는 쌍수를 들어 환영하진 않았지만, 정부의 태도를 예의주시하면서 '새로운' 국면에 어떻게 대응할 지를 고심하고 있었다. 

그런데 철도노조 파업에 경찰력을 투입하면서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 이것은 조선일보가 대변하는 한국의 수구기득권 세력이 원하던 바였다. 노동계는 노무현 정부를 이전 정부와 다를 게 없다고 비난하기 시작했고, 조선일보가 앞장서서 조장한 '파업 망국론, 노조 망국론'에 휘둘린 정부는 노동계를 '특권층'이라고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엄청난 돈과 여론 조작능력을 가진 수구 기득권층의 지원 사격을 받게 되자, 배를 땅에 갖다 붙이고 움직이지 않던 관료들이 다시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고, 그 결과 노동정책은 경제정책의 하위 수단으로 다시 전락해 버렸다. 대통령까지 앞장서 노조를 비난하기 시작했고, 자신이 대선에서 내세웠던 노동 공약을 거둬들이기 시작했다. 이게 7월, 8월, 9월의 상황이었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오고, 이제 찬바람 부는 겨울을 눈앞에 둔 때가 되도록 문 기자도 알 듯이 "1991년부터 시작된" 가압류는 풀리지 않았고, "(노사간에) 신뢰 대신 서로에 대한 증오만 있고, 상대에게 완패(完敗)만을 강요하는 오기가 작용하는" 노사관계는 바뀌지 않았다. 문 기자의 말대로 "대통령은 노사관계를 화려하게 분석하고 여러 처방을 내놓았지만" 집권 초기 몇 달 동안만 그것을 집행하려 했을 뿐, 이제는 이전 정부들과 별다른 차이를 느낄 수 없는 수준으로 전락해 가고 있다. 물론 "노동계에 대해 성의 있게 대화"하는 모습은 없었다. 대통령과 장관이 나선 지는 몰라도 밑의 관료들은 꿈쩍하지 않았다. 노동자에게 "불합리한 법·제도를 선진적으로 바꾸는" 작업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결과, 문 기자가 정확하게 짚었듯이 한국의 노사관계는 정상화되지 않았고, "두 노조 간부"는 자살을 했다. 다시 말해, 문 기자가 자살의 배경으로 짚었던 일들이 이뤄졌는데도 두 노조 간부가 자살을 한 게 아니라, 그렇지 않아 자살했던 것이다. 

문 기자가 조롱투로 쓴 것처럼 "노동계가 '열사(烈士)'라는 칭호를 부여한" 것은 사실이지만, 배씨와 김 위원장을 '열사'로 만든 세력이 노동계만은 아니다. "성의 있는 대화"에 나서지 않고 "상대에게 완패만을 강요하는 오기"로 충만했던 '대한항공' 그룹. "불합리한 법·제도를 선진적으로 바꾸기"는커녕 일부로 이를 막고 방해한 관료들. "노사관계를 화려하게 분석하고 여러 처방을 내놓을"뿐인 대통령. 무엇보다 노사 문제에서 중립적이고자 했던 정부를 '친노' 정부, '사회주의' 정부, '좌파' 정부로 몰아붙이면서 그나마 얼마 안 되는 개혁 정책조차 무력화시켰던 조선일보가 대변하는 수구세력이야말로 두 노조 간부를 '열사'로 만든 주범이었다. 

이런 점들을 고려할 때 노 대통령은 "(노사관계) 문제에 숨은 함정을 오독한 게" 아니라, 수구세력이 파놓은 "함정"에 제대로 빠졌다고 보는 게 정확할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조선일보와 문갑식(文甲植) 기자가 이룬 '전공(戰功)'은 놀라운 것이었고, 망자(亡者)가 가는 마지막 길까지 냉소와 조롱투로 일관하는 조선일보와 문 기자의 대단한 활약은 현시기 노동운동 지도부의 무책임성·무능력함과 함께 노동자의 피와 눈물로 가득한 한국노동운동사의 한 페이지에 정확히 기록될 것이다. 망자의 명복을 빈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8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