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제 폐지로 평등한 가족을

노동사회

호주제 폐지로 평등한 가족을

admin 0 4,872 2013.05.11 10:54

21세기 문턱에 진입한 한국 사회는 다양한 가치관이 충돌하고 공존하지만 대체로 민주·평등·평화·생태적 가치는 공감하고 있다. 특히 우리 사회는 일제 식민지를 겪으면서 근대화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못했고 급격한 산업화를 통해 압축적으로 성장하면서 과거 농경사회에 기반한 봉건적 가치관과 근대적인 가치가 충돌하고 있다. 그리고 호주제도가 바로 그 중 하나일 것이다.

호 주제도는 민주, 평등이라는 근대적 가치에 위배되는 제도이다. 호주제도는 가(家)를 중심으로 농사를 짓던 농경시대에 가족을 통솔하고 지배하던 가부장적 제도인데, 이를 우리 전통이라고 유지하자는 주장이 존재하고 있고 이런 주장을 근거로 ‘정통가족수호범국민연합’이라는 단체가 만들어져 호주제 폐지를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호주제도는 우리 고유의 전통이 아니다. 오히려 일제가 식민통치를 강화하기 위해 도입한 반역사적인 제도일 뿐 아니라, 실제 가족을 반영하지도 못하고 가족의 변화에 대처하지 못하는 성차별적인 제도이므로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오랫동안 제기되어 왔다. 2001년 여성, 시민, 노동단체 등이 ‘호주제 폐지를 위한 시민연대’를 결성해 호주제 폐지를 위한 청원, 위헌소송, 국민서명운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지난 5월27일에는 52명의 의원발의(대표발의 이미경 의원)로 호주제 폐지를 위한 민법개정안을 제출하였다. 이 글에서는 호주제 폐지의 의미, 호주제 폐지를 둘러싼 쟁점, 호주제 폐지 이후의 대안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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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3개 단체들로 구성된 '호주제폐지를위한시민연대'는 27일 여의도 한나라당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호주제폐지272'를 발족했다.   ▷ 출처:오마이뉴스 ]

호주제도의 문제점

호 주제도란 민법상 ‘호주’를 중심으로 한 호적에 등재되어 있는 가족을 통솔하거나 지배하는 자이며 가(家)를 대표하며 호주를 통해 가계를 계승하는 제도이다. 호주제의 내용은 호주를 중심으로 편제되는 추상적인 가(家)제도, 그 영속성을 보장하기 위한 남자 우선의 호주승계제도 그리고 호주권의 세 부분으로 요약할 수 있다.

호적은 호주제도가 규정하는 바에 따라 호주를 기준으로 다른 가족구성원을 편제하여 각 개인의 모든 신분변동사항(출생, 혼인, 사망, 입양, 피양 등)을 시간별로 기록한 공문서이다.   

이제 호주제도의 문제점을 하나하나 살펴보도록 하자.

1) 호주제는 가족구성원을 호주에게 종속시켜 개인의 자율성과 존엄성을 부정하고 일률적으로 순위를 정함으로써 평등한 가족관계를 해치고 있다.

자 녀는 출생하면서 부(父)가에 입적하여야 하고 혼인 등으로 분가하지 않는 한 아버지의 호적에서 나올 수 없고(민법 781조 1항), 여성의 경우 혼인하면 부(夫)가에 입적(민법 826조 3항)해야 한다. 따라서 여성은 혼인 전에는 아버지가 호주인 호적에, 결혼하면 남편이 호주인 호적에, 남편이 사망하면 아들이 호주인 호적에 올라야 하는 예속적인 존재로 규정되어 있다.

2) 호주승계 순위를 아들-딸(미혼)-처-어머니-며느리 순으로 정해 놓아 아들 선호를 조장하고 있다.

아 들을 1순위로 하는 호주승계제도는 아들이 딸보다 더 중요하다는 법감정이 내재된 것으로써 아들을 낳아서 ‘대를 이어야’ 한다는 남아선호사상을 부추기고 있다. 남아선호는 여아낙태라는 반생명적인 현상을 낳고 있으며, 그 결과 인구 구성의 균형을 깨뜨려 초등학교에는 여자 짝이 없는 남자아이들이 늘어나고 있어 이들이 성장하면 배우자를 만나지 못하는 사회문제가 예상된다. 또한 아버지가 사망하여 어린 아들이 호주가 되는 경우 할머니와 실질적인 가장인 어머니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린 아들이 호주가 되어 형식적으로는 어린 아들이 가족을 대표해야 하므로 현실의 가족 질서와도 맞지 않는다. 예를 들면 딸을 데리고 이혼한 여성이 전남편이 사망한 후, 딸의 호주가 전혀 본적도 없는 전남편이 재혼해서 낳은 아들로 변경된 것을 보고 상실감에 빠졌다는 사례는 호주제도가 실질적인 가족을 반영하지 못하는 단적인 예이다.  

3) 부가(父家)입적과 부성 강제 계승을 통한 가족제도 유지는 다양해지는 가족형태를 반영하지 못해 한부모 가족, 재혼 가족을 비정상적인 가족으로 만든다.

자 녀는 출생하면서 아버지의 성과 본을 따르고(민법 781조 1항), 예외적인 경우에만 어머니의 성과 본을 따르게 되어 있다. 이러한 부자동성 원칙은 어머니 성을 따르거나 어머니의 재혼으로 부자간에 성이 다른 가족을 비정상적인 가족으로 보게 한다. 최근 이혼이 늘어나고 있고 그에 따라 재혼가족이 늘어가고 있는데, 이혼 후 자녀의 친권, 양육권을 어머니가 갖더라도 전남편이 동의하지 않으면 엄마의 호적으로 옮겨올 수 없다. 또한 여성이 자녀를 데리고 재혼한 경우 자녀의 호적을 옮기려면 전남편과 현 남편의 동의가 있어야 하고, 설사 호적을 옮겨온다고 하더라도 성은 친아버지의 성을 계속 사용해야 하므로 새로 구성한 가족 간에 성이 달라 남모르게 속을 태우는 가족도 많다. 선진국에서는 부부가 협의하여 가족성을 사용하고 자녀의 성도 부, 모의 협의에 의해 선택할 수 있다. 부성 강제조항은 유엔여성차별철폐협약 제 16조 ‘가족성씨 선택의 자유권’에도 위배되는 조항으로 우리나라가 이 조항을 비준하지 않고 있어 국제적인 비난을 받고 있다.

호주제 폐지를 둘러싼 쟁점

1) ‘호주제가 폐지되면 가족이 해체된다’는 주장에 대하여

세 계적으로 우리나라를 제외한 모든 나라에서 호주제가 존재하지 않지만 가족과 가족제도가 유지되고 있고 우리나라 역시 지금까지 호주제 때문에 가족이 유지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가족은 생존, 생활, 정서의 공동체로 가족구성원간의 인격 존중과 사랑으로 유지되는 것이다. 그런데 호주제는 가족을 호주와 가족으로 서열을 정하고 구분을 지어 가족 범위를 설정하고 있으며, 호주를 기준으로 가족 구성원의 신분변동 사항을 기록하는 호적은 실제 가족을 반영하지 못하는 형식적 제도이다. 이러한 형식적인 제도가 폐지된다고 해서 가족이 해체되는 것이 아니라 호주를 중심으로 가족을 편제하던 방식이 바뀌는 것이다.

또한 민법에서 호주와 관련된 조항이 삭제되더라도, 이를 제외한 민법의 제4편 친족편 중 총칙, 혼인, 이혼, 부모와 자, 후견, 친족회, 부양 부분에서 총체적으로 가족관련 규정들을 규율하고 있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리고 호주제가 폐지되면 가족 안에서 남성들도 호주의 부담에서 벗어나게 되고 여성과 남성은 동등한 인격 주체로 권리와 의무를 다하게 될 것이며, 부모-자녀 관계도 권위주의를 탈피해 상호 인격을 존중하고 친밀한 가족문화를 형성해 나가게 되어 가족해체가 줄어들게 될 것이다.

2) ‘호주제는 일제의 잔재가 아니라 우리나라 고유의 전통이므로 호주제 폐지는 민족의 뿌리를 흔드는 것이다’라는 주장에 대하여  

호 주제는 보수적인 입법자들이 1958년 민법을 제정하면서 가부장제 호주제를 근간으로 하는 일제시대의 가족제도를 전통적인 가족제도로 잘못 확신하면서 호주제를 도입한 것이다. 일제는 우리나라를 강점한 후 조선의 가족제도를 일본 천황제의 하부구조로 만들기 위하여 일본 무사계급의 상속제도였던 가독상속제(家督相續制)를 호주제라는 이름으로 우리나라에 강제 이식하여 효과적인 식민지 통치수단으로 이용한 것이다. 오히려 조선의 호적제도는 각종 조세를 부과하고 신분을 확인하는 기본자료로 호적대장을 만들어 사용했으며 호의 대표는 있었지만 호의 대표인 아버지가 사망하면 어머니가 그 뒤를 잇는 일이 조선 후기까지 일반적이었다. 조선 중기까지는 딸, 아들이 똑같이 재산을 상속받고 제사도 형제자매들이 나누어 지냈다. 우리나라에 호주제를 이식한 일본은 1948년 호주제를 폐지했고 중국에도 호주제가 없다. 따라서 호주제는 우리의 전통이 아니라 일제가 식민지 지배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강제 이식한 외래적인 제도이고, 우리 고유의  미풍양속은 가족 간의 평등한 관계였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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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주제폐지 문화공연(대구대 노래패)  ▷ 출처:오마이뉴스 ]

호주제의 대안들

5 월27일 국회의원 52명이 발의한 호주제 폐지에 관한 민법 중 개정법률안의 주요 골자를 보면 호주에 관한 규정(778조)을 삭제하고, 호주를 중심으로 그 가에 입적한 자를 가족으로 규정(779조)하는 것은 실제 가족공동체와 전혀 부합하지 않으므로 삭제하며 호주승계제도(980조 내지 982조, 984조 내지 987조, 989조, 991조 내지 995조), 부가입적제도(826조 3항 및 4항) 등을 삭제하는 것이다.

그리고 부성을 강제하는 781조를 삭제하는 대신 제865조의 2를 신설하여 자녀의 성 선택 시 원칙적으로 부계혈통만을 강제했으나, 자녀의 성과 본을 결정할 경우 부모의 협의에 의해 부 또는 모의 성을 따를 수 있도록 하고, 자녀의 복리를 위해 자녀의 성과 본을 변경할 필요가 있을 때는 부, 모 또는 자의 청구에 의하여 가정법원의 허가를 얻어 성을 변경할 수 있도록 하였다.

외국의 신분등록제도와 우리 호적제도를 비교해 보면, 우리는 부계혈통을 바탕으로 한 호주를 기준으로 가를 편제하기 때문에 여성을 차별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호주제 폐지 이후의 호적제도는 개인의 사생활을 보호하고 양성평등하고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함께 포괄할 수 있는 방식이어야 한다.

2003년 현재 종이호적에서 전산호적으로 전환되었기 때문에 ‘호주’라는 기준으로 가를 편제하지 않더라도 개인의 신분변동사항을 기록하고 공시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세 가지 방안이 모색되고 있다

- 1인1적 편제: 모든 국민의 신분기록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전산화하고 개인의 성명과 주민등록번호로 신분기록을 검색할 수 있도록 한다. 부부관계와 친자관계를 파악하기 위해 본인, 배우자, 부모, 자녀의 성명과 주민등록번호를 기재하고, 본인의 일생 동안의 신분변동사항만 모두 기록한다. 이 제도는 가족단위로 신분등록을 편제함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사회적 차별의식과 신분등록 관리 행정상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다. 반면 이 제도는 가족제도를 존중하는 국민정서와 어긋나고 현재 가족별로 구성된 호적자료를 개인별 신분등록자료로 분리해서 관리할 수 있도록 전산시스템을 새로 구축해야 하므로 시간과 예산이 소요될 수 있다.

- 기본가족별 편제: 부모와 미혼자녀로 구성되는 공동체를 가족단위로 가족부를 구성하여 신분등록을 편제하는 방안이다. 가족의 구성원칙으로 부부동적 원칙, 친자동적 원칙, 2대 가족 원칙, 부모 양계 혈통주의를 지향한다. 기존의 가족을 검색할 때 기적을 대표하던 ‘호주’ 대신 부부의 협의로 ‘기준인’을 정해 호적을 편제하는 것으로 일본의 호적제도와 유사하다. 이 제도는 현행 호적부의 기능이 대부분 유지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장점이지만, 현실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다양한 가족 구성 형태를 반영하기 어렵고, 가족 중 혈연 구성이 다른 사람이 있는 경우 그 사실이 가족부를 통해 드러나기 때문에 사회적 차별의식을 낳을 수 있는 단점을 갖고 있다.  

- 주민등록제 보완: 거주지별로 기록하는 현행 주민등록제도를 신분등록제도와 통합하는 방안도 모색 중이다.  

국민의 동의와 지지가 필요

호 주제도 폐지는 가족에 대한 관습을 변화시키는 내용이므로 국민의 동의와 지지가 필요하다. 당장 나와는 관련이 없는 것 같지만 호주제가 폐지되면 결혼해서 여성이 남성의 호적으로 옮길 필요도 없고 자녀의 호적도 반드시 아버지 호적에 기재되는 것은 아니다. 호적 정리에 관한 기술적인 부분은 사생활 보호, 양성 평등을 고려해서 정하면 될 것이다. 그리고 호주로 대를 이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관습도 변할 것이며, 새로운 가족을 구성한 경우 자녀의 행복을 위해서 성을 변경할 수 있게 된다. 16대 국회에서 호주제 폐지를 위한 민법개정안이 반드시 통과되어야 할 것이다. 

* 이 원고는 인천시청에서 발간하는 잡지(6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7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