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몸으로 전하는 평화의 메시지'

노동사회

'온몸으로 전하는 평화의 메시지'

admin 0 2,348 2013.05.11 10:53

 


book_13.jpg베트남 시인 반레는(본명 ‘레지투이’) 시인이고 소설가이자 영화감독이지만 시인이라 불리길 가장 좋아한다고 한다. 그는 열 일곱 살이 되던 1996년에 자원 입대해서 10년 동안 미군과 싸웠다. 전쟁이 끝났을 때 함께 입대했던 3백명의 부대원 중에서 살아남은 이는 오직 다섯 명뿐이었다. 반레라는 이름은 시인이 되기를 꿈꾸다 베트남 전쟁 중에 죽은 전우의 이름이다.

죽은 전우의 이름으로 사는 인생

미군의 총에 맞아 전쟁터에서 죽은 빈 상사가 지난 일들을 회고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전쟁이란 무엇인가? 황천강에서 나루꾼으로 일하는 노인, 천년기의 입을 통해 작가는 전쟁을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의 사회는 복잡하고, 이기적이고, 질투가 넘쳐 있어. 큰 나라들은 언제나 국제사회의 헌병을 자처하고 나서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다른 나라에 비극의 그림자를 드리우지. 그들은 다른 나라, 다른 민족을 끌어들여 서로를 파멸시키는 일에 몸을 던지도록 만들고 있어. 그게 바로 전쟁이야. 전쟁은 인류를 가장 비인간적으로 세상을 떠돌게 하는 것이지. 젊은 친구, 그것은 도살자를 영웅으로 만들고, 사기꾼을 위대한 인물로, 지식인을 쓸모 없는 사람으로 만든다네. 또한 모든 기반을 뒤엎고, 모든 진보를 뒤로 물러나게 밀어붙이지. 더욱 나쁜 것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성과물을 완전히 깔아뭉개고, 다른 사람의 문화 유산을 파괴하는 일에 만족을 느낀다는 사실이야.” 

전쟁의 참혹함이야 꼭 겪어보아야만 알 수 있을 것인가? 하지만 가끔씩 우리는 전쟁통에 죽은 민간인(양민)들을 떠올린다. 그러나 그 전쟁의 한 복판에 서 있을 젊은 군인들의 공포와 고통, 그리고 수 없는 죽음은 너무도 당연시하는 것은 아닐까? 

반레는 발문에서 그렇게 쓰고 있다. 그는 베트남 전쟁은 정말 길고도 길었으며, 너무도 잔혹하고 처참했다고. 그러나 조국해방 투쟁의 가장 엄혹한 시기에 작은 힘이나마 보탤 수 있었다는데 진실로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고 소설이 그의 화려한 무용담이나 전과, 미군의 잔악함만을 그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라크 파병, 영혼을 불구로 만드는 길

전쟁통에 대개 그렇듯 군대라는 울타리 안에서 벌어진 용서할 수 없는 비인간적인 행동들, 끔찍할 정도의 고통과 아픔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그만큼 그는 진지하면서도 깊이 있게 자신을 성찰하고 있다. 그렇다고 지난 일들을 무조건 회피하고자 하는 허무주의에 빠져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사람이 죽은 다음 환생을 위해 망각의 죽을 먹어야 한다면, 환생을 해서 더 좋은 인간의 삶이 보장된다고 하더라도 가족과 고향, 절친한 친구들과 사람들을 잊고, 살아온 날들을 잊고 그 아름다운 정감을 잊어야 하느니 차라리 황천 강변을 따라 걷기를 원한다고 독백한다.

반레는 어느 민족이든 다른 이의 지배의 굴레로부터 저항할 의지를 갖고 있지 않다면 그런 민족은 영원히 노예로 살수밖에 없다는 생각에서 “베트남을 구석기 시대로 돌려놓겠다”는 미국에 맞서 싸웠고 10년 전쟁이 끝난 다음 조국이 캄보디아 학살 정권과 싸우게되자 다시 자원하여 총을 들고 전장에 나섰다.

이라크 파병 논란이 다시 재연되고 있던 지난 10월 초순 반레 시인이 한국 젊은 작가들의 초청으로 서울을 방문했다. 강연에서 그는 자신에게는 물론 베트남 민족에게 전쟁은 ‘민족해방투쟁’이었으며, ‘베트남 전쟁’이 아니라 ‘미국 전쟁’ 이라 불러 달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나 그는 원한 때문에 복수를 꿈꾸지 않으며, 아무리 정당한 것이라도 원한은 인간의 영혼을 불구로 만들고 인생을 질식시킨다고 이야기한다.

청춘도 다 피어보지도 못하고 쓰러진 무수한 사람들이 있고, 그런 전쟁터에 온갖 이유와 명분을 들먹이며 또다시 미국의 편을 들어야 한다는 한국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가 여전히 절망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이 땅에 진정 양심이 살아 있다면, 역사적 과오는 한번이면 족하지 않은가.(반레 짓고, 하재홍 옮기고, 실천문학사 냄. 9,800원)

 

 

  • 제작년도 :
  • 통권 : 제 8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