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노조 임금인상 자제를 위한 조건

노동사회

대기업노조 임금인상 자제를 위한 조건

admin 0 3,352 2013.05.11 10:52

올 상반기 내내 보수언론과 정부는 ‘노동귀족’ 운운하며, 대기업노조를 공격했다. 고졸의 생산직 노동자가 1년에 5천, 6천만 원 받는 나라가 도대체 정상이냐며, ‘계급적 적대감’을 부추겼다. 얼마 전 SK는 노조와의 임금협상 과정에서 생산직 노동자 2명의 연봉이 이미 1억 원을 넘었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내기도 했다. 보수언론사의 기자들과 관료들은 자기들 연봉은 얼마인지 밝히지 않고 대기업·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임금과 중소기업·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저임금을 비교하면서 ‘정치집단화’ 한 대기업노조가 나라 경제를 말아먹고 사회를 분열시키고 있다는 식으로 몰아갔다. 물론 그 선두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나섰다. 

문제는 노동자들을 ‘노동귀족’으로 ‘신분상승’시킬 만큼 거액을 지불한 대기업 가운데 망했거나 망해 가는 곳이 한 곳도 없다는 점이다. 문제가 되었던 현대자동차는 재고를 시원하게 해결했고, 차가 없어서 못 파는 호황을 기록해 국내외 자동차업계의 부러움을 샀다. 연봉 1억원 짜리 노동자 2명의 출현에 호들갑떨던 SK도 지난 대선에서 한나라당에 100억원, 노무현의 ‘집사’ 최도술에게 10억원을 갖다 바친 일로 언론의 도마에 오른 지 오래다. 한마디로, 지난 여름의 ‘노동귀족’ 논란은 부패한 정치자금을 줄 정도로 돈이 펑펑 남아도는 대기업들이 자기 회사 직원들에게 ‘인심’을 쓴 데 불과하다. 회장과 사장이 마음먹으면 금방 해결될 그 ‘인심’을 얻기 위해 ‘귀족’이라고 비난받는 대기업 노동자들은 큰비가 유난히 많았던 지난 여름 내내 집회니, 파업이니 하며 한바탕 소란을 벌여야 했다. 

대기업 임금 억제를 원한다면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은 중소영세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나 비정규직 노동자들보다 임금 수준이 작게는 두 배, 많게는 서너 배까지 많다. 더군다나 학자금이니, 병원비니, 각종 명목을 단 수당이니, 콘도 이용권이니 하는 ‘기업복지’까지 고려하면 임금 차이 이상의 ‘융숭한’ 대우를 받고 있다. 이게 그토록 배가 아파서인지 ‘노동귀족’보다 훨씬 나은 대접을 받으며 떵떵거리며 살아가는 이 땅의 정치인, 관료, 언론인, 지식인, 기업가들이 “대기업의 ‘귀족’ 노동자들은 중소기업이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생각해 임금인상과 정치투쟁을 자제하라”고 입에 거품을 물었다. 

하지만, 이들은 대기업 노동자들이 임금인상을 자제하고 기업복지를 포기해서 생기는 여유분을 중소기업이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혜택으로 돌리는 사회적 메커니즘이 있는지, 아니면 이윤만 쫓는 시장경제의 메커니즘을 통해 사장과 주주의 주머니로 그냥 들어가 버리는지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다. 물론 자신들이 이들 ‘노동귀족’보다 훨씬 많이 누리고 있는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권력을 사회적 약자들에게 어떻게 ‘분배’할 지에 대해서도 일언반구 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상위 10%에 드는 자들이 스스로가 사회적 형평을 위해 내놓아야 할 것은 하나도 이야기하지 않고, 하위 90%에 속하는 집단 가운데 상대적으로 나은 혜택을 누리는 집단이 임금도 자제하고 각종 혜택도 포기해야 사회적 형평성이 개선되는 것 아니냐고 떠들어댄 셈이다. 남 눈의 티끌에는 시비를 걸면서 자기 눈의 대들보는 보지 못하는 철면피나 할 수 있는 일들이 사회 지도층을 자임하는 한국의 상류층에 의해 버젓이 자행되었던 것이다. 

대기업 노동자들이 임금인상을 자제하면 그 혜택을 중소기업이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누릴 수 있는 사회적 제도가 마련되어 있는데도 대기업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임금인상만 고집한다면 ‘노동귀족’으로 비판당해 마땅하다. 사회 성원이라면 누구나 자기 자신이나 가족이 아프면 마음놓고 병원에 갈 수 있고, 공부에 재능이 있으면 별다른 경제적 부담 없이 학교를 다닐 수 있으며, 인간으로서 품위 있게 살 수 있는 주택 환경이 마련되어 있다면, 지금 대기업 노동조합이 보이는 행태는 ‘반사회적’이고 ‘집단이기적’인 행태로 비난받아 마땅하다. 

무엇보다, 한국 사회에서 정치·경제·문화·지식 권력을 독점한 상류계급이 자신들이 누리는 각종 특권과 혜택을 상당부분 포기하고 이를 사회 성원 전체와 공유하는 전통과 역사를 갖고 있는데도 대기업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정치 경제적 이익만을 위해 국민 경제를 볼모로 파업을 벌였다면, 이들을 처벌하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이 누가 있을까. 

가진 자들의 선전술

기업의 울타리를 벗어나면 약육강식의 적나라한 물신주의 사회에서 살아야만 하는 대기업 노동자. 경제 규모는 세계 10위권인데 큰병 나면 패가망신할 수밖에 없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대기업 노동자. 재능이 있어도 돈 없으면 교육받을 수 없고, 자기 임금의 절반은 주택 구입에 써야 하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대기업 노동자. 무엇보다 온갖 사회경제적 특권을 누리고 정치권력을 독점하면서도 자기가 가진 것은 단 한푼 내놓기 싫어하는 철면피 같은 부패 지배층이 떵떵거리며 살아가는 사회에서 살아야 하는 대기업 노동자. 이들 대기업 노동자들이 불안한 현실과 아득하기만 한 미래에 대비하려 임금인상 투쟁에 집중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이런 문제들에 대한 진단이나 처방 없이 대기업 노동자들을 비난하는 것은 노동자와 국민을 이간질하고, 노동자 내부를 분열시킴으로써 사회 저항 세력을 약화시키고, 이를 통해 자신들의 특권을 영원히 독점하겠다는 ‘공산당식’ 프로파간다(선전) 전술이 아니면 무엇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올 상반기 ‘노동귀족’을 둘러싼 논란의 핵심에는 대기업 노동자들의 이기주의가 아닌, 경제적 불평등을 개선할 메커니즘을 갖고 있지 못한 우리 사회의 비인간성과 무능력함이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온갖 특권을 독점하면서도 사회적 약자에게는 무관심한 한국 지배층의 철면피함이 자리잡고 있다. 

SK로부터 10억원 넘게 받아먹은 최도술 사건이 터진 지 한참 지났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그를 ‘귀족’이나 ‘반사회적’이라고 비난한 소리를 들은 적이 없다. 한나라당 최돈웅 의원이 SK로부터 100억원 넘게 받고, 또 일부 돈이 한나라당 H의원의 주머니로 들어가 해외에서 빌딩을 샀음이 밝혀졌는 데도 ‘노동자 파업에 나라 경제가 망한다’고 입에 거품을 물고 덤벼들던 정치인·관료·언론인·기업인·학자들 가운데 누구 하나 부패 정치 자금이 나라 경제에 미칠 악영향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다. 

문제는 사회적 메커니즘

대기업 노동조합의 임금인상 투쟁을 자제하게 만드는 방법은 기업 내부에서는 찾을 수 없다. 아울러 한국 노동운동의 ‘경제적 전투주의’를 완화하기 위한 방법 역시 기업의 노사에게만 맡겨서는 찾을 수 없다. 개인과 집단이 고도하고 복잡하게 얽히고 설킨 사회에서 어느 하나를 뚝 떼어 원인을 찾고 처방을 내놓으려 한다면, 그거야말로 어리석은 짓이다. 그리고 스스로 헌법에서 금지한 ‘(귀족) 특권층을 창설’하기 위해 온갖 애를 쓰고 있는 한국의 상류층들이 제 처신은 돌아보지 않으면서 다른 계급·계층에 대해서는 ‘귀족’이 되지 말라고 주문하는 짓거리도 개가 웃을 일이다. 더군다나 서민이 뽑아준 대통령이, 자기를 뽑아준 지지자는 잊어버리고 마치 부자가 뽑아준 것처럼 행세하면서, 선거기간 내내 자기편이라고 팔아먹었던 ‘대기업 노동자들’에 대해 ‘특권층’이니 ‘반사회적’이니 떠들어대는 수준의 정치라면 노동 개혁은 물 건너갔다고 할 수밖에 없다. 

대기업노조의 임금인상 자제를 원한다면, 그리고 진정한 노동 개혁을 원한다면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사회적 메커니즘을 만드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물론 이 일은 정부나 자본만의 몫이 아닌 노동의 몫이기도 하다. 

* 경영자는 ‘양반 의식’이나 ‘부자 사상’을 버리고 생존을 위해 노동자와 같이 걸어가겠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 일본 MK 택시의 창립자 재일동포 유봉식(76세)

  • 제작년도 :
  • 통권 : 제 8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