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노동운동 방문기

노동사회

오스트리아 노동운동 방문기

admin 0 3,899 2013.05.07 05:53

설레는 마음으로 도착한 오스트리아

12월 3일 저녁 8시 30분,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출발해서 장장 12시간을 기차에 몸을 실은 끝에, 설레는 마음으로 비엔나 역에 도착했다. 개인적으로 물론 우리나라 노동운동에도 알려진 바가 별로 없는 오스트리아에 처음으로 발을 디뎠다는 사실이 가벼운 흥분을 자아내었다. 

이번 방문은 지난 1년간 민주노총이 에베르트재단(FES)의 후원으로 진행하였던 '민주노총 교육체계 정립을 위한 연구사업'의 후속과정으로 기획된 것이었다. 일정은 민주노총 본부와 지역본부, 그리고 산하 연맹의 교육담당자들과 함께 ILO 튜린센터를 방문해서 지난 1년 간의 연구 성과를 교류하고 오스트리아노총(이하 외게베)을 방문하여 그곳의 노동조합 교육체계를 탐방하는 것으로 진행되었다. 

비엔나 역에 내리자마자 낯선 청년이 우리를 금방 알아보고 접근했다. 크리스티안 프라츠라는 이름의 외게베 국제국 직원이었는데 그의 안내로 택시를 타고 숙소로 이동하였다. 우리가 묵을 숙소는 '슈트루들호프'라는 이름의 호텔이었다. 외게베에서 설립한 '경제와 노동을 위한 은행'이 운영하고 있는 호텔이라고 했다. 지난주에 개관해서 단체 손님으로는 우리가 처음이란다. 그래서 그런지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깨끗한 느낌을 주었다. 바로 옆에는 1년 전에 개관한 세미나용 건물이 따로 있어서 이 두 건물이 오스트리아 노총의 교육원을 구성하고 있었다.

외게베 방문

12월 4일 월요일, 오스트리아에서의 첫날 일정이 시작되었다. 아침 식사를 하고 세미나회관으로 이동하였다. 외게베에서는 1년 전까지만 해도 모두 3개의 교육원을 소유했었는데 모두 정리하고 이곳에 새롭게 교육원을 개원했다고 한다. 알고 봤더니 이 건물은 대단한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장소였다. 이 건물의 소유주였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외무부장관 레오폴드 베르톨트가 1914년 7월 19일 일요일에 이곳에서 장관회의를 소집해서 세르비아에 대해서 경고장을 보내고 전쟁을 할 것을 결의했다고 한다. 바로 이 건물에서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냉전 시기에 유명했던 미국과 소련의 전략무기감축협정(SALT 협정)이 체결되고 석유생산국기구(OPEC)가 오일파동의 시동을 걸었던 곳이 또한 이 장소라고 한다. 외게베가 이 건물을 교육원으로 사용하는 이상 더 이상 여기에서 전쟁에 대해 결정하는 일은 없을 것이며 대신 사회안정이나 정책에 대한 세미나가 있을 것이라고 한 외게베 사람의 이야기가 의미심장했다.

오전에는 외게베 국제국장인 발터 사우어 씨로부터 오스트리아 노동조합운동에 대한 개략적인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오스트리아의 노사관계는 '경제·사회적 동반자관계(Social Partnership)'라는 독특한 노사정 협력체제에 의해 가동되고 있다. 이에 힘입어 1989년의 경우 근로자 1인당 파업으로 인한 노동시간 손실이 50초에 불과할 정도로 매우 안정적 것이 특징이다. 오스트리아는 1962년 금속노동자들이 마지막으로 파업을 한 이후로 40년이 넘도록 노총이나 산별노조 차원에서의 파업이 한 번도 없었던 나라이다. 

노사정위원회

오스트리아의 노사정 위원회는 1947년 상공회의소, 농민연맹, 노동회의소 및 외게베 등 4개 주요 단체가 경제위원회를 구성한 것이 시초이다. 현재는 정부대표 7명(총리, 장관 3 및 국무장관 3명)과 앞의 4개 단체 대표 각 2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의장은 총리이다. 임금협정 체결 및 물가상승 억제가 주된 기능이나, 대체로 전반적 경제상황에 대한 폭넓은 논의가 이루어지며 특히 회의 시 의장의 모두 성명은 경제문제에 관한 정책 방향을 가늠하는 척도로 인정되고 있다. 상공회의소와 농민연맹은 사용자를 대표하는 단체이다. 상공회의소는 모든 기업주들이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는 단체로 노사정 위원회에 참여하여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농민연맹은 기업농을 대표하는 단체라고 할 수 있다. 

노동자를 대표하는 단체는 노동회의소와 외게베가 있다. 노동회의소(AK)는 블루칼라·화이트칼라를 불문하고 모든 노동자를 대표하는 단체로서 노동자들은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한다. AK의 재정은 노동자들이 수입의 1%를 의무적으로 내게 되어 있는 회비로 운영된다. 그 금액은 어림짐작으로도 엄청난 액수임에 틀림없다. AK의 간부를 외게베에서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재정으로 운영되는 모든 사업이 외게베와 긴밀한 협조 아래에서 진행된다.

노동조합

외게베는 오스트리아의 유일한 노총이다. 법적으로는 회원이 3명 이상이고 정관이 있으면 누구라도 노총을 만들 수 있다. 물론 지난 시기 몇 번 시도는 되었지만 노동자의 지지를 받지 못해서 설립되지 못하였다. 조합원수는 150만 명으로서 조직률이 50%에 이른다. 조합비는 총수입의 1%로 규정되어 있다. 외게베 산하에는 13개의 산별노조가 있는데 현재 이 노조들을 통합하려는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외게베의 본부는 수도인 비엔나에 있고 지방마다 8개의 지역본부가 있다. 노총 본부, 지역 본부와 산별노조를 합쳐서 상근자가 2,000명이다. 그 중에서 노총 본부에서 일하는 상근자는 400명이다. 

오스트리아 노동조합운동에는 독일과 같은 '종업원평의회'가 있다. 한 기업에 다섯 명 이상의 노동자가 있을 때는 종업원평의회를 둘 수 있도록 노동법에 규정되어 있다. 회비는 총수입의 0.25%이다. 기업 단위의 교섭권은 종업원평의회가 갖고 있으며, 따라서 오스트리아에는 기업단위에서 활동하는 산별노조의 현장위원제도가 없는 것이 또 다른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오스트리아 노동조합의 단체교섭의 중심은 산별노조이다. 외게베에서는 1년에 약 500개의 단체협약이 있는데 교섭은 산별노조에서 하고 조인만 외게베 위원장이 한다. 따라서 외게베 위원장은 단체교섭에 전혀 개입하지 않는다. 그리고 기업별 보충협약의 경우 종업원평의회의 협상 조건이 기본 조약보다 좋을 경우 인정해 주고 있다. 오스트리아 단체협상의 큰 특징 중의 하나가 단체협약 내용이 비노조원에게도 적용된다는 사실이다.

40년만의 파업

우리 일행은 12월 5일 화요일 아침을 흥분과 기대로 맞이하였다. 다름이 아니라 전날 외게베 관계자로부터 중요한 정보를 입수했기 때문이었다. 오늘 오스트리아에서 40년 만에 처음으로 파업이 시작되고 외게베 주도의 시위가 예정되어 있다는 것이 아닌가!

앞에서도 말했듯이 오스트리아의 노동운동은 그동안 평온 그 자체였다고 한다. '경제·사회적 동반자관계(Social Partnership)'라는 독특한 노사정 협력체제와 더불어 1945년부터 2000년까지 줄곧 사회민주당이 국민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해 왔기 때문에 투쟁할 필요성을 별로 느끼지 못하고 살아왔던 나라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1999년 10월 선거에서 사회민주당이 최다 득표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연립정부 구성에 실패하면서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2000 2월부터 국민당과 자유당이 집권을 개시한 이후 오스트리아에도 신자유주의의 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했다(1999년 10월 3일 실시되었던 오스트리아 총선에서 극우 자유당이 전후(戰後) 처음으로 원내 제2당으로 약진했다. 자유당은 연립정권을 주도하는 사회민주당(33.39%)에 뒤지지만 연정 소수 파트너인 국민당(26.9%)에는 다소 앞서는 27.22%를 득표했다. 그리고 자유당과 국민당이 사회민주당을 제치고 연립정부를 구성하게 되었다. 자유당을 이끌고 있는 외르크 하이더는 아버지가 나치의 SS대원 출신으로, 그동안 "나치의 노동정책이 건전했다", "SS친위대는 존중돼야할 나치군의 일원", "나치 수용소는 처벌 수용소" 등의 극우적인 망언을 서슴지 않았던 인물이다. 이 때문에 유럽 각국에서는 자유당이 연립정부에 참여할 경우 오스트리아의 EU 가입을 심각하게 재검토해야 한다는 우려가 나왔으며, 이스라엘은 더욱 강경하게 국교를 단절하겠다고 선언했었다). 정부는 단계적으로 사회보장제도의 축소를 추진하고 있으며 노동조합에 불리한 발언과 정책이 잇달아 나오기 시작했다. 

이에 위기의식을 느낀 노동조합이 서서히 투쟁에 나서기 시작하였다. 오전에는 정치단체들이 주도가 되어 출근시간 도로를 점거하고 시위를 벌일 예정이고, 전국교사노조가 일제히 파업에 돌입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저녁 때 외게베 주도로 연금법 개악을 추진하고 있는 국회의사당을 둘러싸는 인간띠 잇기 운동을 통해 강력히 항의할 예정이라고 했다.

우리는 신자유주의에 저항하는 노동자들의 국제적인 연대를 과시하고 오스트리아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하기 위해 열심히 만든 피켓을 들고 목에는 전국노동자대회 때 사용했던 스카프를 두르고 시위 현장으로 향했다. 현장에는 벌써 8,000여 명의 노동자들이 모여서 인간띠 잇기를 실행하고 있었다. 비엔나의 인구가 서울 인구의 10분의 1 정도인 120만 명이라는 점과 오스트리아가 그동안 이렇다할 투쟁이 없었던 점, 유럽 특유의 개인주의가 만연되어 있는 사회분위기, 그리고 시위 준비를 약 일주일밖에 하지 않았던 점을 감안한다면 그야말로 놀라운 동원력이었다는 것이 우리 일행의 일치된 의견이었다. 

열심히 국회의사당을 둘러싸기 위한 작업이 진행되고 그것이 성공하자 노동자들은 항의의 표시로 연신 호각을 불어대면서 기세를 올렸고 그 사이 자유당 각료를 악마로 풍자하는 퍼포먼스(우리나라의 가면극 비슷하게 진행함)가 진행되었다. 우리들도 대열에 합류해서 구호를 외치고 '파업가' 등의 노동가요를 부르며 그들을 응원하였다. 생전 처음 보는 모습이어서 그런지 호기심 반 낯설음 반인 표정으로 우리를 쳐다보았다. 약 1시간이 지난 후 외게베 위원장이 단상에 올라 오늘 투쟁의 의미를 설명하고 정부정책에 항의하는 연설을 한 후 시위를 정리하였다. 한국에 비하면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유럽의 노동자들도 서서히 깨어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소중한 시간이었다.

역사의 증인을 찾아서

12월 6일 수요일에는 비엔나 근교인 비너노이슈타트라는 도시에 있는 산업박물관을 견학하기로 하였다. 사실 개인적으로, 그곳에 가기 전에는 외게베에서 그저 의례적으로 안내하는 장소이려니 해서 별다른 생각 없이 따라나섰다.

막상 도착해서 설명을 들으니 그 곳은 오스트리아 노동운동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도시였다. 이 도시는 1918년까지 유럽에서 가장 큰 공장이 존재했던 곳으로 1865년 노동조합이 처음으로 조직되었고 1874년 오스트리아 사회민주당이 처음으로 창설된 유서 깊은 도시였다. 

그리고 산업박물관에서 소장인 81세의 칼 플랜너 교수를 만나게 되었다. 이 도시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때 반(反)나치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어 400여 명이 투옥되고 50명 이상이 사형을 당했다고 한다. 소장 역시 1939년 8월에 체포되어 4년 동안 고문감옥에 그리고 3년을 독방에 수용되어 있다가 유태인수용소에 끌려갔던 분이었다. 당시 수용소에서의 자신의 수번이 63103번이었는데 지금도 그 수번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그 당시 수용소에서 나치가 갑자기 수번을 물었을 때 즉시 대답하지 못하면 즉결사형에 처했다고 한다. 살아 있는 역사를 만났다는 생각이 든 순간 저절로 숙연한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이 산업박물관이 건립된 경위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다시 한 번 존경의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소장은 평소 분명히 이 세계의 주인이 노동자임에도 불구하고 학교나 사회 그 어느 곳에서도 노동이 역사를 만든다는 사실을 가르쳐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안타깝게 여겼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이 직접 산업박물관을 만들어야 되겠다고 생각했단다. 1980년부터 시장에게 박물관 건립을 제안한 이후 여기 저기를 뛰어다니면서 자료도 모두 모으고 사회민주당수와 총리도 끌고 와서 설득하고 하면서 5년이 걸려서 비로소 박물관을 개관하였다고 한다. 소장은 박물관에서 월급을 받지 않고 연금으로만 생활하고 있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박물관처럼 한 번 전시물을 설치해 놓으면 영원히 바뀌지 않는 것이 아니라 67회의 전시회를 개최하면서 전시물을 계속 교체한다는 그 열정이 놀라웠다. 박물관 운영뿐이 아니라 연구자와 기자들에게 계속해서 자료를 제공하고 자신도 학교에 가서 강의활동을 계속하고 있었다. '가치는 증권거래소나 머리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에 의해서 만들어진다.'는 소장의 말을 들으면서 진정으로 노동자로서의 자부심을 몸으로 실천하는 태도에 고개 숙여 경의를 표하고 싶었다. 

젊은 세대를 만나다

오후에는 소착(Social Academy)을 방문했다. 그곳에서 빈터스 베아거 부원장으로부터 소착의 운영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소착은 오스트리아의 독특한 노동교육기관이다. 소착에서는 AK의 재정으로 외게베가 운영하는 '노동조합지도자 양성교육'을 실시하고 있는데 올해로 51년째 되는 긴 전통을 가지고 있다. 매년 27명의 선출된 노조원들이 10개월 동안 숙박하면서 최고 수준의 교육을 받는다. 

교육참가자는 산별노조와 지역본부에서 추천한다. 나이는 22살에서 46살까지로 모두가 노조원이면서 종업원평의회 위원으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 교육과정을 이수한 사람들이 장차 종업원평의회 의장이나 산별노조의 사무총장이 되거나 사회민주당의 간부로 활동하게 된다고 한다. 그야말로 최고 엘리트 양성과정인 셈이다. 현재 13개 산별노조에서 위원장, 부위원장들은 대부분 소착을 졸업한 사람들이며 외게베의 9개 지방본부 중에서 7명의 위원장이 소착 출신이라고 한다.

이들이 10개월 동안 기숙사에서 숙박하면서 교육을 받는 동안 모든 비용은 무료일 뿐만 아니라 법적으로 1년을 근무에서 면제받을 수 있으며 그 기간 동안의 임금도 AK에서 지급한다고 한다. 교육장도 현대적이고 식사도 양질로 제공되는 등 제반 시설이 한 마디로 끝내주는 곳이었다.

따라서 소착에 입학하려는 경쟁도 그만큼 치열하다. 올해도 40명의 후보가 추천되었는데 엄격한 심사를 거쳐서 27명을 선발했다고 한다. 특별한 자격 조건이 있는 것은 아니고 노조에서 후보로 추천하면 되는데 특이한 것은 대학졸업자는 입학자격이 없다고 한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 설명한다면, 오스트리아의 대학을 우리나라의 기준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유럽의 일반적인 경향이겠지만 오스트리아에서는 우리나라처럼 대학 입학에 목매달 필요가 없이 기술고등학교만 졸업하면 충분히 대우받고 살 수 있기 때문에 대학졸업자가 그렇게 많지 않다. 전체 인구에서 약 6% 정도라고 한다. 대학에는 정말로 학문 연구에 전념하려는 뜻을 가진 사람들만 가고 대학을 졸업하면 곧바로 석사 학위를 받게 된다 그만큼 대학졸업이 어렵다는 뜻이다. 교육생을 선발하는 기준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후보를 추천 받으면 선발과정을 거치는데 필기 시험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원장, 부원장과의 일대일 면담이 진행된다. 그 면담에서 입학 자격으로 중요하게 따지는 것은 지원자가 정말로 자신의 동료를 위해서 활동하려는 각오로 입학하려 하는지 아니면 자신의 경력을 쌓거나 출세욕에 근거해서 입학하려고 하는 지를 밝혀내는 것이라고 한다.

저녁 식사 후에는 소착의 학생들과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사실 소착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나서는 이러한 교육과정이 그야말로 세습적인 노동귀족을 양성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었다. 제한된 사람들만 입학하고 또 그들이 졸업하면 최고위직으로 나갈 수 있다는 것이 영 개운치 않았다. 그러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어쨌든 그들이 임명직 간부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직접 선거에 의해 종업원평의회 의장이나 산별노조의 사무총장으로 선출된다는 사실과 지난 51년 동안 노동자들이 이에 대해 별다른 문제를 제기하지 않아 왔다는 사실이 우리와는 다른 특수함이 있기 때문이리라고 생각하고 그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였다.

학생들과 만나면서 우리나라의 정치적인 상황과 노동운동의 현황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우리가 궁금해하는 점들도 질문하면서 서로에 대한 이해를 높여 나갔다. 대화 중에서 학생들이 '오스트리아에서는 협상으로 원했던 것을 대부분 얻어내었기 때문에 투쟁이 무엇인지를 모른다. 그동안 너무나 안일한 삶을 살았기 때문에 대부분이 투쟁의 필요성조차 깊이 인식되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어제 신자유주의에 대항해서 시위를 했는데 이것은 결국은 오랜 기간 사회민주당 정부를 통해 무엇이 투쟁인지를 잊어버렸던 오스트리아의 노동자들이 투쟁을 통해서 권리를 회복해야 한다는 것을 느끼는 과정이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으면서 젊은 노동자들 사이에서 나름대로의 건강한 문제의식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낯선 이방인에게 '현재 노동조합 안에서도 노동자를 위하지 않고 단지 자신의 경력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걱정'이라는 말을 서슴없이 하는 그들을 보면서 젊은이다운 솔직함과 건강함을 부분적으로나마 확인할 수 있었다.

방문을 마치고

제한된 지면 사정을 고려하다 보니 오스트리아 노동운동의 전모를 일목요연하게 제시하지 못한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특히 나름대로 체계적이라고 느꼈던 노동조합 교육체계를 담지 못한 것이 가슴에 남는다. 하지만 이번 글이 이제까지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오스트리아 노동운동의 단편을 서툴게나마 보여줌으로써 앞으로의 교류와 상호 이해의 조그마한 단서가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리라.

이 지면을 빌려서 특히 감사해야 두 사람이 있다. 우선은 민주노총 국제국의 윤영모 국장이다. 이 주일 동안 매일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통역과 안내를 도맡아야 했던 살인적인 중노동에도 힘든 기색 없이 우리 일행과 호흡을 함께 했던 헌신성과 넉넉한 인품에 우리 모두는 감동했다. 그리고 오스트리아에서 독일어 현지 통역을 맡았던 남현주 씨가 있다. 노동운동의 경험도 없으면서 우리를 위해 공부해 가면서 또 모르는 것은 솔직히 물어가면서 임했던 성실함에 감사드린다. 마지막 날 우리가 불러주는 이별의 노래에 눈물을 쏟았던 모습에 우리도 절로 코끝이 찡해질 수밖에 없었다. 

오스트리아를 방문하면서 내내 들었던 말은 '연대성'이었다. 그들의 가치관과 사회 구조, 그리고 행동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지배하고 있는 '연대성'의 철학을 실제로 체험하면서 과연 우리의 모습은 어떠할까를 자연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들이 자신들의 사회에 대해 갖고 있는 강한 자부심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미국과 같은 천박한 자본주의 사회로 나아가는 것을 단호히 거부한다고 이야기하였다. 

그런 오스트리아 역시 신자유주의의 광풍을 맞이하면서 이제 서서히 꿈틀거리고 있다. 투쟁을 잊어버렸던 나라에서 다시금 저항과 투쟁의 정신을 고민하고 새로운 대안사회의 모습을 어렴풋하게나마 찾아내려고 노력하는 그들을 보면서, 전 세계의 노동자가 언젠가는 하나가 될 수 있는 날을 그려본다는 것은 너무 이상주의적일까?

  • 제작년도 :
  • 통권 : 제 5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