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와 '역사'의 의미

노동사회

노동자와 '역사'의 의미

admin 0 2,630 2013.05.11 10:36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유명한 책이 있다. 영국의 저명한 정치가이자 역사학자인 카(E. H. Carr)가 1961년 캠브리지 대학에서 강연한 내용이 BBC방송과 책으로 보급된 것으로 우리나라에서는 70~80년대 판매금지 도서 목록에도 올랐던 적이 있는 책이다. 

나도 대학 1학년 시절 열심히 읽고 토론한 것 같은데 지금에 와서 기억나는 것은 “역사란 과거와 현재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유명한 구절뿐이다. 그런데 그 ‘역사란 무엇인가’ 하는 물음이 최근 나에게도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역사란 무엇인가

그 계기의 하나는『노동위원회 50년사』라는 연구작업을 하면서 부터이다. 1953년 전쟁 중에 임시수도 부산에서 우리나라의 노동법은 태어났다. 한국 노동법의 탄생은 전쟁 중에도 터져 나온 조선방직 등의 노동쟁의를 규율할 법제가 없다는 것이 심각하게 인식된 데서 비롯되었다. 노동위원회법도 이 과정에서 태어났으며 자연히 지금부터 50년 전의 일이 된다. 

이 50년의 역사를 정리하기 위해 가장 먼저 확인할 점은 초대 중앙노동위원회 구성이 언제 이루어 졌으며, 누가 위원과 위원장을 맡았는가 일 것이다.

그런데 50년간 어느 누구도 ‘노동위원회의 역사’를 정리한 적이 없을 뿐 아니라 노동위원회조차도 과거 보건사회부 산하 노동청과 노동부 시절을 거치며 더부살이를 하다 보니 초기의 노동위원회 역사와 자료가 구비되어 있지 않았다. 유일한 단서는 노동위원회 자체 자료에 나와 있는 것으로, 초대 위원장이 김세완 대법관이었으며 취임이 1956년 7월1일에 있었다는 것이었다. 

더 많은 단서를 찾기 위해 국회도서관에 가서 옛날 신문의 마이크로 필름을 돌려보니, 이건 더 가관이었다. 내용인즉, 초대 노동위원회 출범의 진짜 날짜는 1954년 2월20일로 노동위원회 출범시기를 잘못 알고 있으며, 초대 중노위 위원장을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각각 달리 알고 있었다. 『조선일보』는 “중노위 위원장에 김세완 대법관, 부위원장에 최규남 서울대 총장”이라고 밝히고 있는데 반해 『동아일보』는 “중노위 위원장에 최규남 서울대 총장, 부위원장에 김세완 대법관”이라고 적고 있었다. 

유일한 단서인 신문 보도부터 착오가 있었다. 위원의 이름도 두 신문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고 표기된 약력에도 내가 확인한 바로는 일부 착오가 있었다. 어떻게 정리해야 할 지 나로서는 난감한 일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한가지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초대 위원장이 언제 탄생했으며 누구인가 하는 점은 당분간 내가 정리하는 바에 따라 결정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었다. 

지금까지 노동위원회 역사가 정리된 적이 없고 당분간 나의 작업말고는 그런 일이 없을 터인데다, 이미 정리된 자료가 있으면 대부분 사람들이 힘겹게 옛날 신문을 마이크로 필름으로 돌려보며 확인하기보다는 내 작업을 따를 것이다. 내가 만일 틀리더라도 자연스레 그것이 하나의 흐름이 될 공산이 컸다.

추측컨대 노동위원회에서도 누군가 초대위원장이 56년부터 임기를 시작했다고 쓰기 시작하자, 지금까지 이를 답습해온 것이 분명하다. 틀리게 정리된 역사도 하나의 흐름과 근거를 가지고 지속되는 것이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갑자기 ‘역사란 무엇인가’하는 질문이 머리에 떠올랐다.

사실과 해석의 문제

두 번째는 체신부문의 구조조정을 연구하던 중 체신노조의 역사를 살펴보는 과정에서 일어났다. 

체신노조는 원래 체신부 산하 현업공무원 노동조합으로서 1981년 통신부문이 한국통신공사(지금의 KT)로 분리되기 이전까지 우정부문과 통신부문이 함께 존재하고 있었다. 재미있는 역사적 사실은 체신노조가 실수(?)로 결성된 점이다. 

1958년 당시 일부 노동조합의 간부들이 국제회의에 참가하여 외국 노조들과 대화를 하던 중, 한국에 체신노조가 있느냐는 질문에 엉겁결에 있다고 대답하자, 이들이 다음해에 한국을 방문할 때 꼭 좀 만나고 싶다는 답변을 한 것이다. 결국 체신노조가 없다면 국제적 망신이 될게 뻔한 상황에서 이들은 귀국 후 이승만 대통령을 만나 자초지종을 얘기하여 체신노조의 결성 승인을 받았다. 

여기까지의 사실은 출처가 다르더라도 일치하는데, 문제는 어느 국제대회에 누가 참가했는가에서 차이가 났다. 한 자료는 국제자유노련 대회에 대한노총 대표단이 참석했다고 나와 있으며, 또 다른 자료는 국제운수노련 대회에 철도노조 대표단이 참가했다고 적고 있다. 

이 역시 앞의 문제와 똑같이 나에게 ‘역사란 무엇인가’하는 고민을 안겨 주었다.

셋째는 체신노조운동사를 살펴보다가 체신노조가 일용직·임시직 집배원들의 노조 가입과 정규직화에 성공했다는 사실이었다. 과거라면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겠지만 비정규직 문제가 중요한 과제로 등장한 지금은 매우 관심이 가는 내용이었다. 

자세히 읽어보니 지금의 통신공사나 우체국의 기능직 공무원들은 50년대에는 모두 일급제로 임금을 받고 신분, 근로조건 등 모든 분야에서 불리한 대우를 받고 있었다. 말하자면 공공부문의 일용직 노동자 신세였다. 이들은 1963년에야 정규 기능직 공무원으로 대다수가 전환이 되지만(9,485명중 8,894명), 다시 1969년이 되면 이들 일급제 공무원의 수가 11,702명으로 늘어나 정규 기능직 공무원의 수를 능가하게 된다. 그리고 1970년에 일급제 공무원 대다수가 다시 정규 기능직 공무원으로 전환되며, 1981년에도 일급제 공무원의 정규직 전환이 반복되었다. 

나는 일반직이 아닌 현업공무원 대다수가 과거에는 비정규직이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그래서 좀더 자세히 알기 위해 1950~60년대의 노동통계 자료를 살펴보니, 경제활동인구조사가 시작된 1963년에는 임시·일용직이 60%를 넘어 정규직을 능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결국 자본주의가 본격 전개되기 이전인 1960년대에는 비정규직의 규모가 정규직 보다 컸지만 자본주의 발전과 더불어 1970년대 들어 축소되었고, 1980년대 이후 다시 증가하였던 것이다. 물론 이러한 과정은 대다수의 학자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겠지만, 나 스스로는 자신의 관심에 따라 어떠한 역사적 사실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했다는 측면에서 ‘역사란 무엇인가’ 하는 고민을 하게 되었다. 통계는 과거부터 있었겠지만 내가 관심을 가지고 접근하기까지는 무의미했던 것이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

앞의 두 얘기는 역사적 사실의 확인 문제이니, 정확한 사실을 확인하면 되는게 아니냐 하고 누군가는 쉽게 얘기할지 모른다. 그런데 그것이 생각처럼 쉽지 않은 것이, 역사는 이미 지나갔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은 역사의 일부분에 불과한 자료들 뿐이라 그 근거의 정확성을 판단하는 것은 지금 우리가 해석하는 방식대로 결정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세 번째 얘기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우리는 과거의 역사를 우리의 눈으로 바라보고 재해석한다는 점이다. 비정규직 문제가 핵심적 과제로 등장한 지금에야 그 사안의 중요성을 이해할 수 있겠지만 과거라면 체신노조가 비정규직을 조합원으로 가입시키고 정규직화에 성공한 얘기나,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규모가 변동이 심했다는 점을 그저 그런 것으로 치부할 수도 있는 문제였다. 이런 측면에서 과거의 사실은 그 자체로서 역사가 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우리의 관점과 끊임없이 상호작용 하는 과정이며 대화하는 과정이다. 카의 말대로 역사는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부단한 상호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인 것이다. 

70년대와 대화를 가져보자

11월은 노동자의 불꽃, 전태일이 산화한 달이다. 87년 이후 민주노조운동은 전태일 정신을 외치고 있지만, 정작 대중적으로 우리 노동자들이 전태일 정신을 제대로 이해하고, 그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는 지 의문이다. 한동안 운동권에 장기수 어른을 모시고 과거의 역사를 배우자는 열풍이 불기도 하였다. 그러나 고난의 시절, 70년대 운동에 대해서 87년 이후 민주노조 세대는 무관심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역사는 그냥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미 70년대 민주노조운동 세대들도 하나, 둘 사라져가고 있다. 
각 노조들마다 11월 노동자대회가 가기 전에 지역에 살아있는 70년대 민주노조 간부들을 모시고 지난 얘기를 들어보거나 술이라도 한 잔 해보는 것은 어떨까? 

그런 분들이라도 없으면, 87년 초기 지도부들을 만나서 그들의 당시 고민을 들어 보고 나의 현재 고민과 비교해 보는 것은 어떨까? 

전태일 전기를 다시 꺼내 읽고 기념사업회도 방문하여 이소선 어머니도 뵙고, 청계천 한 귀퉁이에 버림받은 채 놓여있는 기념판이라도 찾아보는 것은 또 어떤가? 

지금의 현실과는 동떨어진 케케묵은 낡은 얘기라고? 그렇다면 당신은 역사란 무엇인지를 아직 모른다.

지금 우리의 현재 역시 미래에는 낡은 얘기일 뿐이다. 그러나 역사에는 사람의 삶과 투쟁과 고뇌와 한이 녹아 있다. 그리고 혹시 모른다. 당신도 나처럼 몰랐던 이야깃거리를 발견할지, 현재 당신의 고민을 그 당시 그 사람들도 고민했다는 것을 발견할지를….

  • 제작년도 :
  • 통권 : 제 8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