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하게 일할 권리를 달라

노동사회

건강하게 일할 권리를 달라

admin 0 2,922 2013.05.11 10:32

직업성 근골격계질환1)은 ‘신체 부담 작업에 의한 질환’ 혹은 ‘누적 외상성 질환’(cumulative traumatic disorder)등으로 불리던 것으로 이미 서구나 미국에서는 가장 유병율이 많은 대표적인 직업병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노동정책이 강화되고 구조조정에 따른 노동강도의 강화가 이루어지면서 가장 노동력 손실이 크고 관리하기 힘든 직업병으로 대두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1992년 이미 전화국 여성노동자들이 적절하지 못한 작업대(컴퓨터 및 책상 등)에서 장시간 노동하면서 발생한 VDT 증후군 등 몇몇 사례가 학계에 보고된 바 있으나, 노동안전보건운동에서도 크게 주목받지는 못하였다.

그 러나 1990년대 중반 이후 노동환경이 급격히 유연화되고 특히 97년 경제 위기 이후 직접적인 인력 감축과 노동강도 강화가 이루어지면서 과거와는 달리 전산업에 걸친 근골격계 직업병 증상이 유행하고, 특히 인력 감축이 심각했거나 기타 신자유주의적 노동정책이 강하게 관철된 사업장에서 근골격계 직업병은 주요한 문제로 대두되었다.

“내만 아픈지 알았드만 니도 아프나?”

2001 년 금속산업연맹이 전체 80개 단위노조 조합원에 대한 근골격계 직업병 증상 실태조사 결과 61%의 금속노동자들이 한 부위 이상 근골격계 질환이 의심되는 상태로 고통받는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었고, ‘근무 중은 물론 퇴근 후에도 심한 통증에 시달리고 있으며, 당장 치료를 요할 정도로 심한 증상을 호소‘하는 사람은 16.4%였다. 이는 사업장별 다소 차이는 있으나 금속제조업 종사 노동자 10명중 1.6명은 직업성으로 의심되는 근골격계 질환을 앓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결론을 의미하는 것이다.

최근 INI STEEL 포항 공장에서는 2개 부서 61명 대상 근골격계 질환 조사 결과 50명이 근골격계 질환 양성반응을 보였으며, 그중 31명을 산재로 요양신청을 하여 인정을 받았다.

2001 년부터 각 노동조합에서 집단으로 신청한 사업장은 현대자동차, 대우조선, 대우상용차, 삼호중공업, 대우종합기계 등의 대공장부터 충청 지역의 한라공조, VDO, 캄코, 대한이연, 유성기업 등과 경남지역의 카스코, 볼보코리아 등, 경기 지역 두원정공, 풀무원, OPEN SE 등 직종과 업종, 규모를 가리지 않고 대규모로 발생하고 있다.

발생원인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다

발생원인은 부적절한 작업환경에 기인한다. 여기서 작업환경이라 함은 개인작업에 대한 인간공학적인 문제와 개별로 접근할 수 없는 집단적인 작업조건에 대한 것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인간공학적 위험요인이라 불리는 개별적인 작업환경에 관한 문제이다. 과도한 반복작업, 부적절하고 불편한 작업자세, 작업시 요구되는 과도한 힘, 부적절하거나 불충분한 휴식, 공구사용 등에 따른 과도한 진동 등을 꼽을 수 있다.

이 러한 인간공학적인 위험요인, 개별적 작업환경의 개선은 인간공학적인 설계에 의한 작업자세의 개선, 반복작업의 완화, 중량물 취급의 규제 등으로 해결될 수 있다. 이러한 개선이 질환을 예방하는 방법이기는 하나 일정한 한계를 가지고 있다.

둘째는 개별로 고칠 수 없는 집단환경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경제위기 이후 줄어든 인력으로 늘어난 생산량을 감당해야 하는 부족인원, 정규직이 힘들어하거나 거부하는 일은 협력업체, 하청노동자들에게 넘겨지는 정규직·비정규직의 고용형태, 잔업과 야근을 해야만 생활임금을 가져갈 수 있는 임금체계, 교대근무를 해야하는 작업시간과 부적절하고 부정기적인 휴식시간, 신기계 및 신공정을 도입 한 후 근거없이 늘어나는 생산량 등 개별 작업환경을 인간공학으로 아무리 개선한다 하더라도 위의 작업환경이 악화되거나 그대로라면 근골격계 직업병의 위험에서 벗어 날 수 없다. 개선이 이루어진다고 해서 근골격계 직업병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개별적인 작업환경과 집단적인 작업환경이 동시에 개선이 동반되지 않는 한 근골격계 직업병 문제해결은 가능하지 않다.

법제화 쟁취 과정

1990 년 이후 2002년까지 근골격계 질환 대책 마련을 위한 노동조합 투쟁의 목표와 쟁점은 ‘근골격계질환 관련 사업주 예방의무의 법제화’였다. 사업주들은 질환 호소자에게 치료는 물론이고, 예방대책 마련을 위한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았다. 근골격계 질환 예방을 위해 노동부고시 제98-15호로 ‘단순반복작업 근로자 작업관리지침’이 제정 공포되었으나 권고 기준에 불과했고 이행을 지도 감독 할 수 없는 노동부고시의 법적 한계로 인해 사업주들은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조의 대응은 사업주 예방의무를 법에 명문화하고 법을 근거로하여 예방대책 마련에 사업주가 나서게 하는 방안을 중심 목표로 설정케 했다.

금속산업연맹 등은 2001년을 기점으로 근골격계 질환 사업주 예방의무의 법제화를 위한 본격적 투쟁에 나섰고, 수 차례에 걸친 중앙상경투쟁과 공론화 과정을 만들어내며 마침내 투쟁으로 법제화2)를 쟁취했다. 2002년 11월8일 정기국회에서 근골격계 질환에 대한 사업주의 예방의무 법안이 통과되었고, 이제 오는 7월1일부터 시행된다. 만약 사업주가 법에 명시된 예방의무를 준수하지 않거나, 근골격계 질환자가 발생하여 노동부에 고발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근골격계 질환 대책 공동투쟁의 의미

근 골격계 질환은 구조조정에 기인한 작업 인력의 절대적 부족과 노동강도 강화로 인해 기인하며, 불량하고 부자연스러운 작업 자세와 동작 등에 의해 발생한다. 따라서 근골격계 공동투쟁은 기본적으로 구조조정을 막는 투쟁이며 부족한 작업인력을 충원하고 높아진 노동강도를 완화하는 투쟁이고, 노동자를 불편하게 하는 불량한 작업환경을 개선하는 투쟁이고, 투쟁의 과정에서 현장통제를 분쇄하고 현장 조직력을 복원하는 투쟁이다. 근골격계 질환자가 집단으로 발생한다는 것은 개인이 감당 할 수 있는 작업량 정도를 초과한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고, 작업자 수가 부족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높아진 노동강도와 불량한 작업환경 속에서 전체 작업자의 16%가 당장 치료를 받아야 할 심각한 근골격계 질환자인 상태에서, ‘작업자가 남아돈다’,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자본의 구조조정 논리는 설자리를 잃을 수밖에 없으며 ‘인력을 충원해야 한다’, ‘작업량을 줄여야 한다’는 노동조합의 주장은 조합원들의 고통을 바탕으로 법적, 도덕적 정당성을 얻는게 당연하다. 이는 현대정공(현대자동차 5공장), 대우상용차 투쟁, 두원정공 투쟁 등 앞서 투쟁한 사업장에서 이미 확인되었다.

자본측의 대응

자본측 또한 근골격계 질환 문제를 더 이상 방치 할 수 없음을 자각하고 있다. 현재 작업장 환경 속에서 근골격계 질환자는 발생할 수밖에 없고, 사업주는 치료와 보상을 해줄 수밖에 없다. 어차피 맞아야만 할 매라면 사업주의 입장에서 주도성을 발휘하여 자기의 입맛대로 만들어 가는 것이 최상의 선택이다.

자본의 대응은 어느 사업장을 막론하고 공통적이다. 근골격계 질환 대책과 관련하여 자본측이 앞 다투어 내놓고 있는 대책 중 첫 번째는 질환 호소자에 대해 사업장내에서 치료를 해주는 것으로 가닥을 잡고 있으며 작업장내(취업중) 치료를 강구하는 것이다. 지불 능력이 있는 대기업들은 산업보건센터를 짓고, 사내 의원에 산업보건의나 재활의학 전문의를 채용하고 있고, 지불 능력이 부족한 중소기업들은 물리치료기 구입과 물리치료사를 고용하여 물리치료실을 만들고 있다. 자본이 취업중 치료를 선택하면서 노동부에 ‘산업재해발생보고’를 하는 경우는 없으므로 이는 산재은폐에 해당한다. 자본이 산재은폐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분명하다. 문제의 확산을 막고 요구를 작업장 내에 가두고자 하는 것이다.

둘째 대책기구 구성을 수용하고 있으나 노조와 회사간의 상층 단위의 대책기구 구성 또는 산업안전보건위원회 대체를 주장하고 있다. 역으로 자본은 아래로부터의 참여가 가지는 의미를 너무나 잘 자각하고 있기 때문에 하부 실행체계 구성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셋 째 작업환경 개선과 관련해서는 인간공학 전문가를 투입하여 작업장을 인간공학적으로 평가하고 개선 가능한 부분의 작업환경을 개선하면서, 인력부족이나 노동강도 등 근로조건 요인은 접근을 기피하거나 거부하고 있다. 회사는 노조가 조합원의 치료에 대한 요구를 조직하고, 원인을 짚어내고 질환의 심각성을 사회적으로 제기해 나가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회사는 노조에 앞서 질환자에 대한 치료 방법을 강구하고 치료해줌을 통해, 그리고 부분적인 작업환경 개선에 나섬을 통해 노조의 필요성과 역할을 회사가 대리하는 관리방식과 전술을 구사하고 있다.

2003년 단협 공동 요구안과 과제

근골 격계 발생 원인을 찾고 해결 대책을 모색하는 것은 자본의 일방적인 구조조정과 노동강도 강화에 제동을 거는 내용이므로 자본의 공세 속에서 심의 의결권을 법으로 명문화하는 것을 최대한 노력하고 강제해 나가지만 쉽지 않는 것으로 판단했다.

이번 2003년 임단투에서 직업성 근골격계 질환 예방을 위한 노동조합의 요구는 9개이며3), 이것을 나누어보면 첫째 근골격계 조사·개선에 있어서 근골격계 공동대책위 구성과 실행위원회 구성하여 노동조합의 참여권과 결정권을 보장하라는 것이다.

2002 년 단협에서 만들어진 대책위원회를 강화하기 위한 현장의 실행위원회 구성으로 현장 조합원으로부터의 근골격계 예방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고자 한다. 둘째 근골격계의 발생원인을 제거하기 위해 적정한 인력충원과 작업량 조절, 휴게시간 확보 등 노동강도와 노동량에 대한 결정에 대한 요구이다. 이때 필요한 인원은 비정규가 아닌 정규직으로 충원해야 한다. 셋째, 근골격계로 아픈 사람을 산업재해로 인정하는 치료와 현장으로의 원직복귀, 작업장에서 재활을 보장하고, 근골격계로 치료한 경력으로 불이익한 대우를 금지하라는 내용이다.

우리는 지금 중요한 지점에 와있다. 경제위기 이후 벼랑끝으로 내몰린 노동자의 건강권을 확보해야 할 시점이다. 조직된 몇몇 노동조합의 특별한 대책이 아닌 모든 노동자들의 건강권을 확보하기 위해 한 목소리로 투쟁하고 전국적인 연대의 전선을 쳐나가야 하다. 노총과 연맹 차원에서 강력한 조직력을 바탕으로 전국적인 신자유주의 반대전선을 명확히 하고 투쟁에 임할 때 비로소 직업성 근골격계질환은 사라질 수 있으며 노동자들이 건강하게 노동하는 세상은 올 것이다.

후주
1) 직업성 근골격계질환이란, 노동자의 작업과정에서 가장 흔히 접하는 건강장해 증상으로 근육, 뼈(골격), 건, 인대, 신경, 혈관, 관절, 활액낭 등에 질환이 생겨서 어깨, 허리, 팔꿈치, 손목, 손가락, 무릎부위가 쑤시고 결리고 저리고 화근거리고 마비가 오는 등의 증상이 나타나며, 심한 충격이나 사고로 인해 다친 것뿐만 아니라 장기간 불안정한 자세나 중량물 취급, 과도한 단순반복작업 등으로 인해 작업과 연관되어 누적된 피로나 통증으로 발생하는 질환들을 말한다.
2) 산업안전보건법 2003년 7월 1일 시행. 제24조 보건상의 조치 ⑤단순반복작업 또는 인체에 과도한 부담을 주는 작업에 의한 건강장해 예방
3) ①근골격계직업병 공동대책위원회 구성 ②근골격계 직업병 예방대책 실행위원회 구성 ③유해위험요인 및 조사 및 작업환경 개선 ④근골격계 직업병 호소자에 대한 건강진단 ⑤근골격계 직업병자 사후관리 ⑥인력충원 및 적정 작업량 확보 및 치료로 인한 결원 발생 시 대체 인력 비정규직 투입금지 7⑦적정 휴게시간 보장 ⑧근골격계 직업병자 재활 보장 ⑨근골격계 직업병자 불이익 금지

  • 제작년도 :
  • 통권 : 제 7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