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노사정 협의체제

노동사회

이탈리아 노사정 협의체제

admin 0 3,468 2013.05.11 10:31

70년대와 80년대 초반 유럽 노사관계의 기본 특징은 코포라티즘(Coporatism)이라 불리는 국가와 사용자단체 그리고 노동조합 3자가 주체가 된 협의체제였다. 복지사회를 지향했던 유럽에서는 최선의 정책이었고, 어느 정도 성공한 제도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정책을 집행하는 데 재원이 많이 소요되었던 3자 협의체에 대한 회의적 주장이 하나 둘씩 생기면서 방향 전환의 필요성이 논의되기 시작하였다. 

변화하는 국제 경제환경

jbkim_01_0.jpg더욱이 유럽 각국 정부의 늘어나는 재정적자와 새롭게 부각된 외국인 노동자 문제, 다국적 기업의 성장에 따른 국가의 역할 축소 등의 요인들은 국가체제 안에서 노사정 협의체제가 갖는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중요성을 약화시켰다. 변화된 국제경제 환경은 국가에 의한, 그리고 사용자인 기업들에 의한 노동자와 노동시장에 대한 압력으로 나타났으며, 노동계 역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였다.

이탈리아 역시 국제 환경의 변화에서 벗어나 있지 않았고, 어느 면에서는 정세변화에 가장 민감한 국가였다. 이탈리아는 경제 구조가 외부 요인에 민감한 종속적 구조인 동시에, 내부적으로는 남부문제, 테러리즘, 마피아 문제 등 해결하기 어려운 구조적 문제들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상황 때문에 이탈리아 노동정책 역시 국내외적 상황 변화에 따라 조정되고 바뀌었다. 특히 커다란 전환점이었던 68운동 이후 노동계가 국가 운영의 중요한 파트너가 됨으로써 제도의 틀 안에서 국가와 사용자 및 노동계 3자의 협의적 구도가 완성될 수 있었다. 

3자 협의체제가 마련될 수 있었던 것은 노동정책과 전략에 대한 정당구조의 복합성 및 정당과 노조의 입장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정당의 경우 이념과 노선의 차이가 분명했지만 노조나 노동자의 입장을 정책으로 연계시킬 의지와 노력은 부족했다. 기민당 중심의 집권 연정은 과거의 노선을 유지하고자 했으며, 정치 권력의 영역에서 비켜나 있던 이탈리아 공산당은 구호에만 그치는 노동정책을 고집하고 있었다. 따라서 노조가 얻은 성과는 68운동의 과정 중에 성사시킨 연금제도의 개혁, 노동자 지위에 관한 헌장(Statuto dei diritti dei lavoratori), 1975년 스칼라 모빌레(Scala mobile)라고 하는 임금연동제를 제외하면 극히 미미했다.        

그러나 70년대 후반의 경제위기와 기민당 중심의 우파 연정 역시 변화된 환경에서 보다 개혁적인 기조를 포용하는 쪽으로 노선 전환을 시도하면서 노동계에 대한 유연화 정책을 사용하였다. 노조 역시 고용문제와 연계한 임금문제에 대한 합의 가능성을 표방하고 적극적으로  사용자단체와 직접 협상을 하는 등 유연성을 보였다. 이는 결국 1978년 1월에 발표한 노동조합들의 노선 표명에 적극 반영되었다. 흔히 ‘EUR 노선’이라 불리는 이 노선의 주요 내용은 임금정책의 유연성을 반영한 억제정책의 채택, 임금연동제의 수정, 노동시장의 유연화 노선 수용, 근로시간 단축 주장의 철회 등이다. 

노사정 협의체 형성의 배경

이와 같은 입장 변화의 배경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지만, 무엇보다도 이탈리아 경제와 관련이 깊다. 이탈리아는 70년대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의 독특한 산업구조를 재편하는데 성공하였다. 특히 유럽 각국의 하청 구조 형식이던 산업구조를 경쟁력 있는 중소기업 위주로 전환하는데 성공하면서 국가 경제의 축이 대기업이 아닌 중소기업 위주로 옮겨가게 되었다. 결국 이것은 거시적 측면에서 국가의 정책 개입보다는 개별 산업이나 사용자와 노조에게 자율성을 부여하는 방식을 강조하여 국가 개입을 최소화하는 것을 의미했다. 이것은 노조의 입장에서 보면 중소기업 현장의 요구를 담아내면서 사용자나 국가와의 협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이익에 주안점을 두는 것이었다.

노동조합은 노선 전환에 따라 국가와 사용자에 대해서 갈등구조에서 다소 협력적인 태도로 바뀌었다. 비록 노조와 노동자가 완전한 협상 파트너로서 인정되지 않았지만, 국가의 주요 정책 결정과정에 노조의 입장이 반영되었다. 이는 70년대 후반의 안정적 성장기조가 80년대 초반까지 이어졌다는 사실에서도 잘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상황은 1983년까지 지속되었으며, 같은 해 실시된 총선거를 계기로 노동운동에 커다란 전기가 마련되었다. 집권당이던 기민당은 지난 총선 득표율보다 무려 5%나 하락한 32.9%만을 획득하는데 그쳤고, 공산당은 29.9%를 득표하였다. 또한 집권당의 연정 파트너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회당도 11.4%를 득표함으로써 기민당은 사회당을 포함하는 연정을 구성하고, 사회당 당수였던 크락시(Craxi)에게 수상직을 맡겼다. 사회당이 참여한 정부는 이전의 보수주의 정책에서 다소 전향적인 방향으로 정책의 틀을 바꾸었다. 

정부 주도의 노사정 협의체

1983년 노사정 3자가 최초로 3자 협약의 모임을 가졌던 것은 바로 이와 같은 배경 때문이었다. 이 협약의 주요 목표는 임금연동제의 개정을 통해 인플레이션율을 낮추는 동시에 노동조직의 활성화 및 자율노조의 활동을 위축시키면서 기존 3개(CGIL, CISL, UIL) 노조 중심으로 현장 노동활동을 강화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노사정 3자는 최종 합의를 도출하는데 실패했으며, 이후 CGIL이 중심이 되어 국민투표 실시를 주장하기까지 이르렀다. 그렇지만 투표 결과는 정부에게 유리하였다. 정부는 90만 리라 이하의 임금노동자에게만 임금연동제를 적용한다는 것을 골자로 한 ‘성 발렌띠노 법령’을 제정하였다. 이를 계기로 노사정 협의체제는 노조의 약세 속에서 정부가 주도하는 형식으로 재구성되었다.

1980년대 말엔 민간부문의 노조활동이 위축되었으며, 세력 균형도 노조에 비해 정부와 사용자측에 상대적으로 기울어진 시기였다. 이 시기 노동운동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의 하나는 민간부문보다 공공부문의 조직과 활동이 우월했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국가가 법률로써 공공부문 노동운동을 보호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1983년의 법안을 기초로 하여 3년마다 적용되는 임금협상 재개가 정부의 연기 방침으로 2년이 유예되면서 공공부문 노동자들과 의사, 교사 및 공무원 등의 불만은 커져만 갔다.
 
1993년이 되자 보다 근본적인 상황 변화가 일어났다. 정치적으로 가장 큰 변화는 선거제도의 변화였다. 비례대표제에서 다수대표제로의 변화는 집권여당이던 기민당의 장기집권을 마감하고 야당에 의한 정권교체 가능성을 마련한 획기적 변화였다. 정당명부제에 의한 비례대표제는 정치적 후견인주의와 명망가들에 의한 연정을 가능하게 한 제도였지만, 다수대표제는 후보의 당락을 표의 다수에 따라 결정하기 때문에 투표구에 따른 의원 수로 집권당을 결정할 수 있는 제도였다. 따라서 오랜 집권으로 부패했던 기민당이 몰락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완성되었고, 오랜 야당으로 존재하던 좌익민주당(DS: 구 공산당)이 새로운 집권세력으로 부상하였다.

노동 관련 조직의 제도화

정치적 변화만큼 노동운동에도 새로운 전기들이 마련되었다. 1993년 노사정 3자 협정이 새로운 시발점이었는데, 그해 7월에 확정된 이 협상으로 인해  ‘RSU’(Rappresentanza Sindaclae Unitaria)라는 새로운 기업별 노조통합 대표단이 구성되는 근거가 마련되었다. 이 협정은 물가임금연동제 폐지에 따른 임금보상의 방법을 어느 정도 명문화시킴으로써 노동운동의 통합과 일반 노동자들의 동의를 이끌어내고 이를 국가제도로서 정착시키는 성과들을 얻었다고 평가받고 있다.

1995년에 실시된 국민투표는 정치 현안 8개항과 더불어 노조의 대표성 문제 등을 포함한 노동관련 4개항을 함께 결정하기 위한 국민투표였다. 노동관련 사항들은 사업장별 협상에서의 기존 세 노조의 독점조항의 폐지문제, 상기 사항의 부분적 폐지문제, 공공부문 협상에서 기존 세 노조 독점조항 폐지문제, 임금에서 조합비 일괄공제 보장 조항의 폐지문제가 그것이다. 이 국민투표 국면을 주도하였던 세력은 기존 3대 노조들이었다. 그들은 기득권 보호와 재정적 안전을 확보하려는 의도에서 국민투표 각 항목에 대한 반대를 관철시키려 했다. 그러나 첫 번째 항목을 제외하고는 기존 노조의 목적이 달성되지 못했고, 결국 노조 대표성 문제와 재정적 문제까지 재고해야만 하는 전략적 위기상황이 벌어졌다.    

그렇지만 보다 중요한 변화는 국민투표 이전에 민간부문이 아닌 공공부문에서 이미 발생했다. 1993년 이전에는 공공부문에서 사용자를 대표하는 이는 집권당의 수상이나 지방자치단체장이었다. 그들이 모든 것을 결정하고 공공부문 노동자들과 협상하였지만, 1993년이 되면서 이와 같은 구조가 바뀌었다. 1993년 1월 제정된 “행정조직의 합리화와 고용규정의 수정”이라는 법령은 기존의 공공부문 노사관계에 대한 전반적 지위 변화를 가져왔다. 고용계약의 성격이 일반 근로자의 법률 적용 기준인 민법에 따르도록 변하였고, 공공기업의 목적이나 경영자 역할 등에 대하여 사기업의 경영 원칙을 적용하였다. 무엇보다도 단체교섭에서 노조 대표성이 인정되었으며 국가라는 사용자 기구의 교섭대리인으로서 ARAN(Agenzia per la RAppresentanza Negoziale delle pubbliche amministrazioni)이 설치되었다. ARAN은 기존의 ASAP이나 Intersind 그리고 중앙정부의 장이나 자치단체장을 대신하여 공공부문 노동자단체와 직접 협상을 벌이고 노동정책 전반을 조율하기 위한 단체였다. 이렇게 하여 국가기구와 정부안에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노동관련 조직과 기구들이 결성되면서 노동정책에서도 커다란 틀에서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하였다.

노사정 협의체의 새 시대

jbkim_02_1.jpg정치 환경이 변화하면서 과도정부 기간을 거쳐 50년만의 정권교체가 새로운 선거법 아래에서 이루어졌다. 우파적 성격의 기민당 주도 연립정부들이나 전문가 중심의 과도정부들에 비하여 새로운 정부는 그 성격이 분명한 좌파연정이었다. 이러한 성격이 지지층이던 노동자나 일반국민들의 이해가 걸린 복지정책과 노동정책에 정부가 직접 개입하게 되는 이유였으며, 이를 국가정책의 기반으로 삼게 되는 원인이었다. 

1996년 4월 총선으로 집권한 정부가 가장 먼저 입법화 한 법안 중의 하나가 노동시장의 유연화 정책이었고, 노동과 관련한 직업교육이나 이에 따른 교육프로그램 등을 제도화 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였다. 이탈리아의 경우 실업률(평균 12.3%)이 높은 편인데, 특히 남부와 청년층의 실업률은 50%에 이를 정도로 구조적 폐해가 심한 국가였다. 정부는 이 구조적 폐해를 노동시장의 경직성에서 비롯된다고 보고, 이를 해소하기 위한 조처로 노동시장의 유연화와 고용창출을 위한 국가 개입 등을 제도화하려 했다. 이탈리아의 경우 고용에 따른 법적인 경직성으로 인해 노동시장에서의 원활한 고용과 일자리 창출이 매우 어려웠다. 따라서 유연화 정책은 고용 경직성을 완화하는 방향에서 주로 임시직이나 파트타임 노동자의 고용을 통해 해결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유럽통화연합의 가입을 위해 노동자 중심의 정책들은 유예되었고, 가입을 위한 기본조건들이 마련된 뒤에야 노동자와 국가 사이의 갈등 조정 국면을 거쳐 다시 한번 추진하게 된다. 쁘로디 정부에 이어 탄생한 달레마 정부는 1998년 고용창출과 경제발전을 위한 협약을 노사정 합의로 체결하려고 하였다. 이 협약의 주요 내용은 지역적으로 낙후되어 있으며, 실업률이 높은 남부 이탈리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발전기구의 설립과 노동비용 삭감을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 그리고 노사정 삼자협의체를 중앙정부뿐만이 아니라 지방정부와 지역 단위로 설치하는 문제 등이었다. 

국가적 합의틀을 통해 제도화의 길을 걷던 민간부문 노동운동은 90년대를 거치면서 다소 위축된 모습을 보였다. 이와 반대로 공공부문은 지속적인 성장과 노조의 조직화에 성공함으로써 90년대 노동운동의 커다란 축으로 자리잡았다. 90년대 파업을 주도하였던 주체가 공공부문이었다는 점은 국가로 하여금 공공부문의 파업규제에 대한 대책을 마련토록 하였다. 이에 따라 입법화된 것이 2000년 공공부문 파업규제법안이다. 주요 내용은 파업 중에도 계속해야 될 필수서비스 사업의 범위를 확대하고, 냉각기간과 강제중재제도 도입, 사전 예고제 실시 등이었다.   
  
노동정책과 복지정책 등이 국가에 의해 주도되고 변경되는 일이 잦아지면서 노동조합의 역할과 위상도 변하였다. 노조는 임금인상과 노동권 등의 기본적 사항들은 사용자와의 직접협상을 통해 해결하였다. 반면 노사 사이의 조정자 역할에 국한되었던 국가의 기능이 점차 확대되어 노사와 대등한 입장에서 정책을 입안하거나 제안을 하면서 이탈리아 노동정책은 새로운 시대를 맞이한다. 그러나 국가의 의도적이고 제도적인 개입은 2001년 5월 총선에서 베를루스꼬니가 이끄는 우파 연합(Polo delle Libert?)의 성립으로 또 다른 전환점에 서게 되었다. 

노사정 협의체의 주체들

jbkim_03_2.jpg1990년 이후 노동운동은 새로운 정치 사회적 환경 변화로 구조적 변화를 겪었다. 국가는 노동부를 중심으로 노사관계를 제한하는 법률을 제정하기 시작했다. 1990년에 제정된 공공부문 파업제한법과 1992년에 제정된 국영기업과 공사의 사유화 법령 등이 이와 같은 움직임의 시작이었다. 1983년 이래 8년 만에 재개된 1991년의 노사정 협의회 역시 국가 주도의 경제 협의체제의 본격적 서막을 알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국가경제노동협의회를 확대하여 지역에까지 설치하였으며, 이후 1993년 본격적인 노사정 협의체제를 구축하는 기반을 쌓았다.   
  
국가 주도의 제도화는 민간기업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민간부문과 달리 공공부문의 경우 다른 경로를 거쳐 국가정책의 제도로 편입되었다. 1993년 노사정 협약으로 민간기업과 기존 노조들을 대상으로 하는 RSU라는 제도적 기구가 성립되자, 국가가 사용자인 공공부문 역시 이에 상응하는 제도가 필요했다. 국가는 이를 위해 공공부문 사용자 단체인 ARAN을 조직하였다. 

① 국가와 공공부문 사용자단체 
1990년대 이전에는 ASAP과 Intersid라는 정부측의 사용자 기구가 공공부문 조합원 및 공무원들과 사용자인 국가 사이에서 교섭창구 역할을 했다. 그러나 1993년 법률에 따라 정부 대표자로 ARAN이 결성되면서 ARAN이 모든 교섭의 정부측 입장을 대변하는 기구가 되었다. 특히 1990년대 후반 코포라티즘이 본격 가동되면서 ARAN의 중요성은 더욱 커가고 있는데, 다시 말해 이탈리아 노동분야에서 민간부문의 중요성이 점점 약화되는 추세에 비추어 공공부문과 공무원 부문에서 ARAN의 입장과 역할은 점점 강화되고 있는 것이다.

법적 독립기구인 ARAN은 공공부문과 공무원들의 전국단위 단체협상 그리고 단체협약의 정부측 대표 역할을 하고 있다. 주로 협상 체결을 목적으로 하지만 그 외에도 협약과 관련한 업무도 함께 맡고 있다. 또한 노조대표 선출과 관련된 업무를 하고 자료들을 보관하며, 단체협상과 관련한 정보와 자료 등을 수집, 분석하고 조정과 역할 분담을 통하여 공공부문과 공무원에 대한 국가의 기본정책 수립에도 관여한다. 

ARAN의 기본구성은 운영위원회이며 업무상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는 8개로 구분된 영역대표위원회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ARAN의 중추조직인 운영위원회는 5인으로 구성되며, 모두 정부관련 단체에서 지명하여 임명한다. 5인중 3인은 내각의 수반인 수상이 공공행정무임소와 재경부의 추천을 받아 임명하고, 1인은 주정부단체장협의회가 임명하며 나머지 1인은 이탈리아 지방자치협회가 임명한다. 수상이 이들 중에서 1인을 의장으로 임명하며, 다른 운영위원과 마찬가지로 임기는 4년이다. 운영위원은 연임이 가능하며, 기타 행정적 처리를 위한 사무요원을 다수 두고 있다. 또한 공공부문의 각 영역으로부터 필요하면 사무요원이나 인원을 지원 받아 임시직이나 파견직 형태로 사용하고 있다. 

운영위원회와는 다르지만 영역대표위원회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공공부문 전체의 원활한 소통과 협의를 위하여 8개 부문에 설치되어 있는 영역대표위원회는 운영위원회와 함께 단체교섭의 협상조건이나 업무에 대해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협상과정의 전반 사항을 공유하고 있다. 이같은 구조로 인해 1990년대 말부터 보다 효율적인 공공부문 협상이 진행되어 왔고, 효율성 면에서 많은 부분 긍정적 평가를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국가의 통제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제한과 중요한 사항에 대해 빠른 결정이 어렵다는 점은 해결할 문제로 남아있으며, 지방정부와 갈등발생 소지를 항상 안고 있다는 문제점도 지적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RAN 구조와 역할은 이탈리아 코포라티즘의 중요한 축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기에 충분하다. 

② 민간부문 사용자단체
이탈리아에서 가장 대표적인 민간부문 사용자단체는 Confindustria이다. 역사적으로 가장 먼저 설립된 단체이면서 현재의 노사정 협의체제 구조에서 경제계를 대표하는 경영자단체라고 볼 수 있다. 1910년 설립된 Confindustria는 점증하는 노동단체의 설립에 대응하고 국가 경제정책에 경영자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목적을 가졌다.

이후 국가의 기반산업이라 할 수 있는 기계, 철강, 화학, 섬유 등의 주요 산업체협회들을 구성하고 국가경제에 중요 역할을 담당하였다. 이들은 파시즘이 정권을 획득하는 1920년대 중반 이후, 정권에 협력하고 공생하는 관계를 유지하는 등 주로 지배계급의 입장을 대변하며 노동자와 피지배계급을 억압하던 경제협의기구였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후에는 이탈리아 경제 기적의 주체로 이탈리아 산업구조를 중소기업 위주로 재편하는데 성공하면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는데 긍정적인 역할도 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1950년대부터 어려운 국내외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꾸준한 경제성장과 국가발전을 주도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집권 여당이던 기민당 정권과 밀월을 통해 이탈리아 전체 경영자들의 위상을 높였지만 결국 정경유착과 부정부패를 키우는 구조적 폐해를 만들었다. 사용자단체가 노사정 협의회의 한 축으로 국가 입장을 대변하던 시기를 지나면서 경영자나 산업자본의 입장을 강조하는 쪽으로 선회한 것은 1993년 노사정 협의회의 재개와 맞물려 있다. 이 선회는 1992년부터 불기 시작한 정치인 부패사건이 원인을 제공했지만, 새롭게 등장한 신흥 자본가들과의 관계정립 및 EC 통합과 함께 변화하는 세계정세에도 많은 영향을 받았다. 

사용자단체의 독자적인 입장 견지는 베를루스꼬니를 비롯한 신흥 자본가들과 내부적 역학관계가 새롭게 정립되고, 중소기업 경영자들의 목소리가 강화되는 등 이탈리아 경제계의 이익을 대변하는 기구로 Confindustria가 자리를 잡았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후 Confindustria는 이탈리아 경제계를 대표하는 단체로 확고하게 자리를 굳혔고, 정권의 변화에 따라 적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적극적인 의견개진이나 정책 제안을 통하여 현실 상황에 맞는 입장과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2000년에는 중소기업 경영자 출신인 안또니오 다마또(Antonio D'Amato)를 회장으로 맞이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조직 산하에 ACAI(이탈리아철강협회)를 비롯한 총 80개의 산업별협회를 두고 베를루스꼬니 정권과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미국 주도의 신자유주의 정책에도 사안에 따른 찬반의 입장을 명확히 밝히는 등 21세기의 새로운 시도에 동참하고 있다.    
  
jbkim_04_0.jpg③ 노동단체와 노동계의 입장
노사정 협의체제의 한 축인 노동계 조직으로는 CGIL, CISL, UIL, Cobas 등 수많은 단체들이 있다. 기존의 3대 노총 중심의 노동운동 흐름은 70년대 이후 자율노조와 독립노조들이 등장하면서 다양하고 독특한 입장과 노선으로 분화하였다. 이러한 노조들 중에서 기존 노동조합 조직에 대한 불신을 표출하면서 새로운 노동조합 조직을 결성한 대표적인 조직이 Cobas(하층 위원회: Comitati di base)이다. 공공부문에 대한 기존 노총들의 전술을 비판하며 등장한 이들은 정부와의 1987년 협상과정에서 강경한 입장에 서서 강력한 투쟁 방침을 유지하였다. 이들의 활동은 기존 노동조직들에게 세력 축소와 대표성 훼손이라는 부정적 효과를 주었다. 정부의 입장에서도 이들의 요구가 지나친 재정적자와 인플레의 위험을 야기할 수 있어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Cobas의 입지는 1987년 협상 기간에 많은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지지를 획득하였다.    

자율노조와 독립노조의 성장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협의 파트너로 주로 거론되는 것은 기존의 노동 3단체였다. 한때 국가에 끌려 다니던 수동적 입장에서 벗어나 1993년 이후 재개된 노사정 협의체제에서는 3개 노조의 입장을 통일시키는데 성공함으로써 노동계의 입장을 대표하는 단체로 인정을 받았다. 대표성의 인정은 새롭게 조성된 환경 내에서 노동운동이 활성화될 수 있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노동조직의 행동을 통일하고 노동운동의 사회적 역량을 회복하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렇지만 이들 노동단체들의 입장 차이는 비교적 명확하였다. 먼저 이탈리아 최대 노조단체인 CGIL은 강령에서 볼 수 있듯이 전체 노동자의 이익과 권리를 옹호하며, 노동조합의 입장과 행동 통일을 위해서 현장노동자를 중시하는 단계적 통일을 주장하고 있다. 이에 반해 CISL의 경우 카톨릭이라는 종교적 태도에서 가능한 정부와의 조화로운 협의를 통한 경제 주체의 입장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다른 노조들과 연대하여 조합원들이 중심이 되는 조합주의적 입장의 파트너쉽을 강조하는 쪽으로 노동단체의 통일을 주장하고 있다. 이는 커다란 틀에서 기층 노동자들의 이해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노조 통일의 근거가 되고 있다. 3개의 노조 중에서는 비교적 작은 UIL은 특수 직종의 노동자들, 즉 사무직이나 일반 노동자들 역시 시민이라는 관점에서 운동 방향을 세우고 있다. 이는 시민이라는 주체가 갖는 여러 속성들-소비자이자 생산자이며 국가 구성원이라는 다양한 입장-을 고려한 입장이다. 이런 성격 때문에 UIL은 노동조직의 통일 문제에서도 가장 소극적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것은 세력 축소라는 측면에서 뿐만이 아니라 노동조합의 입장보다는 시민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자신들의 주장에 대한 우려에서 나온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1993년 7월 협정 이후 제도화된 통합노조대표(RSU)는 주요 노동단체들의 입장을 조정하면서도 노동계 입장을 전체적으로 대변하는 제도로서 노사정의 구조가 정착하는 계기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제도를 통해 현재까지 이탈리아 노사정 협의체제는 비교적 성공적으로 진행되었다. 여기에는 1996년 이후 새롭게 집권한 좌파연정이 노동자들의 입장을 어느 정도 반영한 정치적 상황 변화에 기인한 바가 컸다. 

21세기의 새로운 시도와 가능성

이탈리아 노사정 협의체제가 어느 정도의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앞서 이야기한 대로 노동계와 경제계 및 국가의 정치적 상황 변화에 기인한 바가 컸다. 이와 같은 비교적 우호적인 상황들이 악화된 것은 2001년 정권을 다시 잡은 베를루스꼬니 우파연정 때문이었다. 유럽에서 불고 있는 우경화와 함께 미국의 입장을 가장 열렬히 옹호하는 이들의 집권은 이전의 신노사정 협의체제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내부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새로운 정부가 내건 국가 경영의 합리화 목표는 사회, 정치, 경제, 노동 등 모든 분야에서 기존의 질서를 흔들어 놓는 것이다. 세간의 우려에 화답하듯이 베를루스꼬니 정부는 노동정책의 후퇴라는 비난을 받을만한 노동법 제18조 개정을 비롯한 40여 개에 이르는 사회 전반의 개혁적(?) 입법을 시행하고자 하는 의도를 국정연설의 화두로 내놓았다. 이는 곧바로 노동법 개악으로 이어졌고, 이탈리아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이유로 노동자 해고를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노동법 제18조의 개정은 국민투표를 실시했지만 현재까지 답보상태에 머물러 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이탈리아 노사정 협의체제의 앞날을 예측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비교적 성공적이라고 평가받던 노사정 협의체제가 단 한번의 정치적 지형 변화로 흐트러지지는 않겠지만, 상당한 악영향을 받으리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베를루스꼬니 정권이 출범한 뒤 매년 두 차례 정기적으로 개최되던 노사정 협의회가 수시로 열리고 있다. 노동계의 입장에서 보면 결코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정부 입장에서는 어떻게 하든지 국민의 동의 하에 노동계의 입장을 변화시키려는 의도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노사정 협의체제는 이와 같은 노동법 제18조의 변경 여부를 놓고 첨예하게 정부와 노동계가 대립하고 있는 상태이다. 지난 1994년 무리하게 연금법 개정을 추구하다 수상직에서 쫓겨난 경험을 가지고 있는 베를루스꼬니는 지나친 무리수를 두지 못하고 있고 노동계 역시 변화하는 세계정세와 국내 상황에서 적절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사용자인 경제계는 정부와 노동계의 대립과 갈등을 즐기면서 자신들의 입지 구축이 쉬운 방향으로 행동할 준비를 하고 있다. 

이탈리아 노사정 협의체제는 또 다른 시험에 처해 있다. 현재의 분위기에서 가장 우려되는 시나리오는 베를루스꼬니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해주는 대가로 노동계의 요구가 관철되는 것이다. 이것은 상호공생으로 볼 수 있지만 무에서 시작한 베를루스꼬니가 하나를 얻는 결과이며, 노동계의 입장에서 보면 하나를 잃는 최악의 사태가 발생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탈리아 노사정 협의체제의 앞날이 정치적 상황 변화 속에서 어떻게 될지 여전히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다음호에 계속)

  • 제작년도 :
  • 통권 : 제 8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