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물연대 파업 “터질 것이 터진 일”

노동사회

화물연대 파업 “터질 것이 터진 일”

admin 0 3,464 2013.05.11 10:31

“물 류를 멈춰서 세상을 바꾸자”는 화물연대의 파업이 5월16일 막을 내렸다. 전경련은 “자칫 국가경제 위기까지 이어질 수 있었던 물류대란을 피할 수 있게 돼 다행”이라고 했고, 무역협회는 “수출업계의 막대한 피해를 가져온 화물연대 파업 종결은 국가경제를 위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대한상의 역시 “극한 대결로 치닫던 화물연대의 파업이 어려운 경제여건을 감안, 노정 협상타결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된 것을 환영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정부뿐 아니라 대표적인 경제단체들도 이번 화물 노동자의 운송거부가 ‘국가대란’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었다.

김종인 전국운송하역노조 위원장이 협상타결 직후에 가진 기자회견에서 “화물노동자들이 자기 차를 세움으로서 벌어진 이번 물류대란은 역설적이게도 화물노동자들이 우리 국가경제에 서 얼마나 중심 역할을 해 왔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줬다”고 말했다. 화물노동자는 이번 파업을 통해 고속도로의 무법자, 졸음운전의 대명사에서 대한민국 경제를 지탱해주는 ‘물류의 전사’로 자리 매김한 것이다.

합의 결과

이 번 파업으로 인해 화물노동자들이 얻은 것은 무엇일까. 언론은 정부가 백기를 들었다고 표현하고 있다. 정부가 원칙도 없이 집단이기주의에 항복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호되게 질책하고 있다. 거꾸로 보자면 그만큼 화물연대가 많은 것을 얻었다는 얘기다. 최종 합의결과를 살펴보자.

아래 표를 보면 경유가 문제 등 화물연대가 핵심 쟁점으로 삼았던 대부분이 관철됐음을 알 수 있다. 막판까지 쟁점으로 남아있던 경유가 인하문제에 대해서는 정부가 경유세 보전을 확대하기로 했고, 중간착취가 구조적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었던 다단계 알선의 근절을 위해 정부는 실태조사에 착수하는 한편, 처벌도 과징금이 아닌 사업정지로 대폭 강화됐다. 또한 사태 초기에 화물연대의 협상요구를 들은 채도 하지 않았던 정부와 사용자 대표단을 파업투쟁을 통해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 사실상의 노정, 노사 중앙교섭을 쟁취해 냈다는 점 또한 괄목한 만한 성과였다. 물류체계 전반에 관해서는 건설교통부 실장급을 대표로 하는 가칭 ‘화물운송제도선진화추진협의회’를 구성해 운영하기로 했다.

다만 특수고용직노동자의 노동자성 인정이 추후 과제로 남겨진 것은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화물 특수고용노동자가 2004년부터 산재보험에 가입할 수 있도록 법개정을 추진한다는 것과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3권 보장문제에 관해서 정부는 노사와 성실하게 협의한다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화물연대 최병환 부의장은 “해결된 것이 많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법제도 개선이 이뤄져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국회에서 화물운송법이 어떻게 처리되는가를 주목하고 있다”며 “국회에서 법이 고쳐지지 않는 한 화물노동자의 실질적인 삶은 개선될 수 없다”고 말했다.

권 기홍 노동부장관이 전경련 조찬 강연회 연사로 나와 “화물연대 파업사태는 물류, 유통분야가 전근대적인 구조 속에서 방치돼 있었기 때문에 생긴 것”이라며 “언제 터져도 한 번은 터질 수밖에 없었던 사안”이라고 밝힌 것처럼 이번 화물연대의 파업은 곪을 때로 곪아 있었던 물류·유통분야에 원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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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물연대 요구사항 타결사항

사업용차량에 부과되는 경유세 인하 경유세 정부보전 확대
당초 유류세 인상분 50%를 보전해왔으나 올7월 인상분에 대해서는 전액 보전
도로비 인하 및 요금체계 개선 도로비 야간할인시간 연장
현행 자정에서 오전 6시까지(개방식은 오전 1시∼5시)에서 이후 오후 10시에서 다음날 오전 6시(개방식은 오후11시∼오전5시)
지입제 철폐, 지입차주 차량소유권 보장 정부가 개인이 사업면허를 가질 수 있도록 화물자동차운수업법 개정을 최대한 앞당기기로 하고 그전에도 지입차주가 차량에 대한 재산권을 행사할 수 있는 대책 마련
화물운송특수고용노동자 권리보장 정부가 노사와 성실히 협의
2004년 산재보험에 가입할 수 있도록 법개정 추진
다단계알선 금지 다단계 알선 실태조사 및 단속처벌강화. 처벌은 과징금에서 사업정지로 강화
근로소득세제개선 소득세법상 초과 근무수당의 비과세 대상 근로자에 화물 노동자 포함하는 방안을 마련해 관계 법령 개정
산별교섭 제도화 화물연대와 운수업체간 원만한 중앙교섭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적극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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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태의 시작

4 월27일 화물연대 포항지부 소속 박상준(33)씨는 아내와 여섯 살, 네 살 된 남매를 남겨둔 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박씨는 목숨을 끊기 전에 동료에게 전화를 걸어 “늘어나는 빚을 감당할 수 없다. 화물연대의 투쟁을 반드시 승리해 달라”는 말을 남겼다.

민 주노총과 화물연대는 3월22일 ‘육상운송비용 절감과 화물노동자 권리보장 토론회’를 여는 등 화물운송체계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화물노동자의 권리개선을 위해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민주노총과 화물연대가 정부에게 지입차주제 등 화물운송노동자가 처한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문제를 제기하던 상태에서 나온 박씨의 죽음은 화물운송노동자의 단결을 이뤄내면서 대정부 투쟁으로 나서는 전기를 마련하게 됐다.

한국의 국가 물류비는 국내총생산의 12.8%에 해당해 미국이나 일본보다 훨씬 높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물류비 중 수송비가 64.2%이고, 수송비 중 도로운송비가 94%에 해당한다(2000년 현재). 한국의 수출입 대부분이 육상도로운송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임에도 화물운송노동자들의 삶의 질은 열악한 상태였다.

또한 화물차량은 급증한 만큼 화물수송 물동량이 따라가 주질 못했다. 1998년 139,615대였던 1톤 이상 화물차는 지난해 말 338,062대로 4년 만에 2.4배로 급증했다. 반면 화물수송 물동량은 1997년 4억9천9백만 톤에서 2001년에 5억3천5백만여 톤으로 7.3% 느는데 그쳤다. 게다가 화물운송료는 1998년 2월 한 차례 인상됐으나 1999년 1월부터는 신고제마저 폐지되면서 자율화됐다. 화물차 과잉공급 상태에서 요금 자율화는 덤핑수주를 판치게 했고, 여기에 기름값까지 올라 화물 운송노동자의 삶은 총체적 난국을 맞이하게 됐다.

무엇이 문제였나

이번 파업을 계기로 널리 알려지게 된 지입차주제는 화물운송노동자들의 가장 큰불만 중 하나였다. 지입차주제는 자신이 구입한 차량에 대해 소유권을 가질 수 없는 기형 형태이다. 화물 운송노동자는 큰돈을 들여 차량을 구입하더라도, 현행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에 5톤 이상 사업용 화물차량은 5대 이상을 보유하고, 1억원 이상의 자본금이 있어야 한다는 조항에 따라 화물운송업자들에게 한 달에 대당 15∼20만원의 지입료를 납부하고 운송면허를 빌려야만 한다. 또한 차량 3년 제한법에 따라 차량 수령이 3년이 넘으면 소속된 지입회사에서 다른 지입회사로 이전할 수 없는데 만약 지입회사를 옮기려면 차량의 소유권을 인정받지 못하게 된다.

다단계 알선 근절도 화물연대의 주요 요구사항이었다. 정상적인 화물운송회사라면 자체 물류를 가지고 있으면서 화물 운송을 알선해 줘야 하지만, 현재 자신의 물량을 가지고 있지 않은 화물 운송업체들이 68%에 이른다. 이런 기형적 형태는 화물 운송회사가 본업인 화물운송에는 관심이 없고 화물 운송면허를 빌려주고 지입료를 받는 것으로 이익을 챙기기 때문이다. 결국 화물운송노동자들은 스스로 알선업체를 찾아다니면서 화물을 배정 받아야 하기 때문에 지입료를 지불하면서 동시에 영업까지 해결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정부가 화물연대와의 협상과정에서 막판까지 양보하지 않으려고 했던 것은 다름 아닌 경유가 인하문제였다. 부경대 윤영삼 교수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화물운송노동자의 월평균 수입은 4백18만8천원인데 비해 운송 지출비용은 5백42만6천원으로 나타났다. 결국 매달 평균 1백23만여원의 적자를 감내하고 있었으며, 운송지출비용 중 기름값이 차지하는 비율이 49%에 이르고 있다.

상황을 종합해 보면, 화물 노동자들이 전반적 빚더미에 오를 수밖에 없는 구조적 모순이 뿌리깊게 존재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화 물연대는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지난해 6월 민주노총산하 전국운송하역노조에 준조합원으로 가입했다. 운송하역노조도 2001년 준 조합원 규정을 신설해 ‘현실적으로 당장 노조를 조직하기 어려운 부분에 종사하는 노동자’를 조합원 자격에 포함시켰다.

화 물연대는 지난 3월부터 지속적으로 고속도로 준법운행, 포항, 부산 등지의 집회를 통해 자신들의 요구를 알려 나가는 동시에 정부와 협상을 벌였지만 정부가 제대로 협상에 임하지 않아 결국 물류대란을 자초하게 됐다. 화물연대는 올해 2월만 해도 조합원이 6천 명에 불과했지만, 파업을 시작하면서 조합원이 2만 명을 넘어서게 되는 등 화물운송노동자들의 폭발적인 지지를 등에 엎고 정부와 맞서게 됐다.

안일한 정부 대응이 문제 확대시켜

화물연대가 5월 15일 아침 8시30분, 부산대 학생회관에서 총회를 열어 조합원들의 압도적 찬성으로 노정합의안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하고 파업을 철회하는 순간 여의도 민주당사 회의실에서는 화물연대 사태 논의를 위해 민주당 확대간부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정대철 대표를 포함해 핵심당직자들이 모여 관련부처 장, 차관에게 현황과 대책을 보고 받는 자리에서 “소관부처가 모호해 혼선이 빚어졌고 대처가 미흡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그러나 여당인 민주당이 관계부처 장, 차관을 불러 대책을 논의하기 시작한 것은 화물연대가 파업을 철회하는 당일이 처음이었고, 국회 건교위가 전체회의를 연 것도 이날이 처음이었다.

민 주노동당 이상현 대변인은 “집권당은 신당창당 문제, 제1야당인 한나라당은 당권경쟁으로 화물노동자의 절박한 요구를 외면했다”고 꼬집으며 “정부와 정치권은 노동자의 절박한 요구를 정치적으로 수렴할 수 있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파업이 한창이던 5월13일 집권여당 정대철 대표는, 고위당직자회의에서 “열악한 근로조건을 개선하려는 충정은 이해하지만 대통령 방미 중에 국내경제에 불안을 야기할 수 있는 파업은 자제해야 된다”고 말한 것도 정치권의 안이한 인식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건 설교통부가 화물연대 파업 2개월 전부터 민주노총과 전국운송하역노조로부터 화물운송체계의 개선방안 모색을 위한 정책토론회와 장관 면담을 3차례나 요청 받았으나 실무진이 이를 장관에게 보고하지 않고 모두 묵살한 일도 5월15일 밝혀져 문제가 됐다.

최 종찬 건설교통부장관은 국회 건설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정부의 위기대처에 문제가 많다”는 지적을 받고 “이번 사태가 마무리되는 대로 책임지고 사표를 낼 생각”이라고 밝혔고 고건 총리는 최 장관과 전화통화에서 “이제 수습하려는 참인데 주무장관이 그래서는 안 된다”고 사표를 반려하는 해프닝까지 있었다.

자기 반성 없는 언론

언론이 노동자에게 우호적이지 않다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언론은 화물연대 파업으로 물류대란이 일어나자 정부에게 날을 세우며 공격하기 시작했다.

문 화일보는 “사회내 집단이기주의가 만연하고 그때마다 정부가 굴복을 반복한다면 법과 질서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고 했고, 동아일보는 “이런 현상이 사회의 근본을 뒤흔드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위기감을 갖게 됐다.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에서 자진해서 수출 길을 막는다는 것은 가해의 단계를 넘어 자살행위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또한 정부가 사전에 막을 수 있는 것을 안이하게 대처해 결국 물류대란까지 일어났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언론이 이번 화물연대의 파업이 있기 전에 비정상적인 화물체계에 대해 한번도 지적한 적이 없었다는 자기 반성은 어디에도 없었다.

언 론은 또한 화물연대와 정부의 합의 결과를 놓고 ‘친노동정책의 결과’라고 불만을 터트렸다. 권기홍 노동부장관이 전경련 모임에서 “기업들이 노조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노조실체를 인정”해야 한다는 훈수와 “기업이 잭나이프를 들고 노조와 싸우겠다는 식으로 접근하면 여러분은 패자가 될 것”이라고 말하자, 조선일보는 “이 나라 장관에게 기업은 고작 잭나이프를 든 폭력배로밖에 비치지 않는 모양”이라고 강도 높게 비난하면서 정부의 친노동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민주노총이 5월 15일 성명을 발표해 “재계에서 화물연대 사태 해결을 정부의 친노동정책 때문으로 몰아가는 것은 사회갈등과 대결을 부채질하는 행위”라고 말한 것은 재계와 언론을 향한 비판이었다.

남은 과제

민주노총 이정영 조직국장은 “화물운송비의 경우 1998년 수준으로 인상하기 위해서는 현재 운송료에 80%가 올라야 할 정도로 심각하다”며 “노정교섭, 산별교섭, 노동3권 보장 등 향후 과제가 아직 산적해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국장은 또 “경제특구법이 시행될 경우 물류가 늘어나기는 하지만 반대로 물류비 인하가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에 경제특구법 저지를 위해서도 집중적인 투쟁을 준비중에 있다”고 밝혔다. 노동계는 법원 판례에서도 화물연대 조합원 및 레미콘 기사, 학습지 교사, 골프장 캐디 등 특수고용직의 ‘노동자성’은 인정되지 않고 있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5월21일 “전부 힘으로 하려고 하니 대통령이 양보할 수도 없고, 이러다 대통령직을 못해 먹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한 점은 주목된다. 또한 전교조가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도입을 반대하며 연가투쟁을 벌이겠다는 것에 대해 “자기 주장을 갖고 국가 기능을 거부해 버리면 국가의사 결정 프로세스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덧붙였다.

대통령의 이 말은 전교조 연가투쟁, 공무원노조 문제 등이 앞으로 예상되는 노동문제를 정부가 어떻게 대처하겠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정부가 화물연대와 합의했던 식으로 이후 노동문제를 풀지 않을 가능성이 클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강경한 태도로 노동문제를 풀 것임을 내비치고 있는 정부와 6월말 시기집중 투쟁을 통해 비정규직 관련문제, 주5일근무제, 위기관리법 저지, 경제특구법 폐기 등을 관철하려는 노동운동 진영간의 힘겨루기가 본격화 될 전망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7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