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노동자에게 노동3권을

노동사회

외국인 노동자에게 노동3권을

admin 0 5,383 2013.05.11 10:25

외국인 산업기술연수제(이하 산업기술연수제)의 폐지와 새로운 외국인력도입제도의 마련과 관련하여 많은 공방이 오고가고 있다. ‘현대판 노예’라고까지 비판받았던 산업기술연수제의 폐지 시도는 그 동안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번번이 실패했고, 역대 어느 정권에서보다도 가능성이 높았던 현 정권에서조차 두 번의 임시국회를 거쳤으나 폐지되지 않은 채 6월 임시국회로 이월되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6월 임시국회에서조차 그 가능성을 낙관할 수 없다는 것이 현실적인 판단이다.

지난 몇 년간 이 문제를 둘러싼 공방은 치열하면서도 총체적이었고, 그 과정에서 논의될 수 있는 모든 문제가 논의되었기에 실로 새롭게 논의해야 할 그 무엇조차 남아있지 않은 상태이다. 그럼에도 현재의 정치권의 움직임을 보면 원점에서부터 다시 논의를 진행하겠다는 것은 아닌가라는 우려가 들 정도로 지지부진하다.

서로간의 공방의 핵심을 구성하는 요소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외국인력을 어떤 방식으로 도입할 것인가’이다. 즉, 한국경제에 필요한 외국인력을 연수생으로 도입할 것인가, 노동자로서 도입할 것인가이다. 이에 대해 산업기술연수제의 막대한 수혜자인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이하 ‘중기협’)는 연수생으로 도입하자는 주장이고, 노동·인권단체나 노동부에서는 노동자로서 도입하자는 주장을 펴왔다. 구체적인 제도의 측면에서는 중기협은 연수제의 확대를 주장하고 노동·인권단체는 노동허가제를, 노동부에서는 고용허가제를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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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년 8월 인천에서 열린 외국인노동자 강제추방 반대집회 .  ▷ 한국이주노동자인권센터 ]

산업기술연수제의 문제점

1994년 시행된 이래 현재까지 끊임없이 비판받아온 산업기술연수제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그 중요한 점만 지적하면 다음과 같다

첫 째 합법을 가장한 편법 제도라는 점이다. 산업기술연수제의 핵심 문제점은 이 제도가 외국인력을 편법으로 사용하고 있는 제도라는 점이다. 연수생으로 입국하고 연수생으로 규정되고 있음에도 연수는 없고 노동만 있는 기만적인 제도라는 것이다. 한국경제에 필요한 인력이라면 정정당당하게 도입하여 정당한 대우를 해주어야 하며, 편법을 사용하는 것은 문명국가에서 취할 정책이 아니라는 점에서 산업기술연수제도의 편법성은 이 제도의 폐지 주장의 첫 번째 논거이다.

둘째 저임금 강제형 제도라는 점이다. 산업기술연수제의 정책적 출발점은 저임금 단순노동력의 도입이었다. 현재 산업기술연수생들은 최저임금법상의 최저임금을 받고 있다. 사실상 정책적으로 저임금을 강제하고 있는 제도인 것이다.

셋 째 비리수반형 제도라는 점이다. 중기협 연수생(산업기술연수생은 도입하는 기관에 따라 중기협 연수생, 해외투자기업연수생 등으로 나누어진다. 산업기술연수제의 폐지에 가장 격렬하게 반대하는 기관이 중기협인지라 산업기술연수생이라고 할 때는 중기협 연수생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의 경우 연수생의 선발과 배치, 사후관리 등 전 과정에 개입하고 있는 민간이익단체인 중기협에 막대한 이익을 남겨주는 제도이다.

넷째 인권침해 유발제도라는 점이다. 불법체류자보다 낮은 임금, 열악한 근로조건 등은 이들의 사업장 이탈을 부추기는 요인이 되고 있다. 입국을 위해 들어간 막대한 송출비용을 갚기 위해 실제 이탈이 속출하자, 현지의 송출업체나 연수업체에서는 이들의 이탈을 막기 위한 갖가지 인권침해조치를 취하게 된다.

다섯째 소수 중소기업에게만 특혜를 주는 방식으로 운용되는 제도라는 점이다. 그간 중기협이 산업기술연수제의 폐지에 결사적으로 반대해 왔는데, 중기협에 소속되어 있는 중소기업체는 전체 중소기업의 불과 1.6%밖에 안 된다. 말하자면 중소기업중 상대적으로 규모가 크고 사업이 안정된 일부 중소기업들만 중기협에 가입해 있는 상태이다. 또 산업기술연수생을 채용하고 있는 중소기업은 전체 중소기업의 5.4%에 불과하고, 심각한 인력난에 시달리는 대다수 중소기업들은 불법체류(미등록) 이주노동자를 채용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중기협에 소속되지 않은 소기업주들이 집단적으로 고용허가제를 통해서라도 합법적으로 외국인력을 고용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요구하기도 하였다. 사실 산업기술연수제는 전체 중소기업체 중의 극히 일부에게만 특혜를 주는 사회적 덤핑(Social Dumping)에 해당되는 측면도 있다.

여섯째 불법체류자(미등록이주노동자)를 양산하는 제도라는 점이다. 중기협 연수생의 이탈률이 1년에 20∼30%, 해외투자기업연수생의 이탈률이 1년에 55.5%라는 사실은 산업기술연수제가 이미 제도로서의 유효성을 상실한 파탄 상태의 제도에 불과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외국인력도입 제도의 유형

수많은 문제점을 양산하는 산업기술연수제도는 마땅히 폐지되어야 하는데, 이를 대체할 새로운 외국인력제도로 노동·인권단체에서는 노동허가제를 주장하고, 정부에서는 고용허가제를 도입하고자 하고 있다. 두 제도는 모두 현행 한국의 노동법에 의해 ‘노동 3권이 보장되는 노동자’로서 입국하게 하는 제도이기 때문에 기존의 산업기술연수제와는 질적으로 다른 제도이다. 노동허가제는 취업할 이주노동자에게 노동할 수 있는 허가를 주는 방식이고, 고용허가제는 일정한 요건을 갖춘 사업주에게 이주노동자를 채용할 수 있는 허가를 주는 방식이다. 이 두 제도의 공통점은 이주노동자가 ‘노동자’로서 한국에 입국한다는 점이다. 또한 한국 노동시장을 보호하기 위해 비자발급을 통해 이주노동자의 숫자를 조절함과 동시에 노동허가나 고용허가를 할 때 일정한 제한이 가해지게 된다는 점 역시 공통점이다. 이와 관련하여 외국인력을 도입하는 제도의 유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째 유형은 노동력 이동을 완전 자유화하는 방식이다. 이런 제도를 채택하는 나라는 한군데도 없고, 다만 유럽연합(EU)국가들의 경우는 노동력 이동이 완전 자유화되어 있다. 즉 유럽연합 소속 국가의 국민은 유럽연합 소속의 다른 국가로 자유롭게 이동하여 취업할 수 있다. 이런 방식은 우리나라 현실에는 거의 적용될 가능성이 없다고 본다.

둘째 유형은 이민(Immigrant workers)방식이다. 주로 미국, 캐나다, 호주 등에서 실시하는 방식인데, 노동력 유입국에서 노동하면서 영주할 것을 예정하고 도입하는 방식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현재 이미 인구밀도가 매우 높은 상태인 점과 남북 통일시대나 남북간 노동력 교류협력시대에 노동시장에 새로 편입될 북한 노동력이 존재하고 있다는 점 등을 감안한다면, 이민 방식의 외국인력제도를 채택하는 것은 그리 간단히 결정하기 어렵고 종합적인 판단과 국민적 공론화 과정을 거쳐서 결정해야 할 문제라고 본다.

셋째 유형은 단기이주노동력, 즉 이주노동자(Migrant workers)를 활용하는 방식이다. 계절적으로 옮겨 다니면서 노동하던가 또는 단기간의 일정기간 노동하다가 본국으로 되돌아가도록 설정된 방식인데, 노동력 유입국에서 영주할 것을 예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민 방식과는 구별되는 유형이다. 신대륙이 아닌 유럽, 중동, 동아시아 등에서 채택하고 있는 방식이다. 전통적 국민국가 방식으로 운영되는 노동력 유입국 사회 내부의 여러 사정상, 영주하는 이민 방식의 외국노동력 도입정책을 채택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을 감안한 제도 선택으로 볼 수 있다. 또 단기이주노동력을 활용함에 있어 독일 등 유럽국가들은 대개 노동허가제도를 운영하고 있고, 대만, 홍콩 등에서는 고용허가제도를 운영하고 있으며, 싱가포르에서는 사업주에게는 고용허가를 주고 이주노동자에게는 노동허가를 주는 방식으로 노동허가제와 고용허가제를 병존 실시하고 있다. 독일의 노동허가제는 초기 5년까지는 취업하는 지역과 직종이 제한되는 일반노동허가를 받을 수 있고, 그후 독일 내에서 중단없이 5년 이상 노동허가를 받아 일하고 있는 이주노동자에게는 취업 지역과 직종의 제한이 없는 특별노동허가를 받을 수 있도록 운영되고 있다. 싱가포르의 노동허가제에는 취업 지역과 직종 등의 제한이 없는 특별노동허가제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이런 점에서 “노동허가제는 제한없이 사업장 이동이 가능한 제도”라는 식의 일각의 주장은 외국사례나 외국인력 관련 제도에 대한 부정확한 이해에 기초한 어설픈 논변이다.

넷 째 유형은 산업기술연수제도나 유학생 등의 파트타임 노동력 활용하거나 미등록(불법체류)이주노동자들을 활용하는 방식이다. 위 세 가지 유형은 합법적으로 외국인력을 도입하여 활용하는 방식인데 비해 네번째 유형은 합법적 도입은 하지 않고 편법적 수단을 활용하거나 불법체류 상태를 묵인하는 방식으로 외국인력을 활용하는 정책인데, 일본과 한국이 이런 유형에 속한다.

노동3권 보장이 우선

오 랫동안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에게 상담, 지원 활동을 해온 외국인이주노동자 상담소들은 산업연수제를 폐지하고 대신 독일형과 유사한 형태의 노동허가제를 실시하는 방안을 지난 95년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적극 주장하고 있지만, 현재 노동부 등에서 도입 추진하고 있는 고용허가제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반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한편 새 제도와 관련하여 운동진영 일각에서 고용허가제는 산업기술연수제보다 더 나쁜 제도라거나 신노예제도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고용허가제나 한국노동법체계에 대한 무지 혹은 왜곡의 결과로 생긴 잘못된 논변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을 실정법상 근로자로 입국시키는 이상 한국노동법 체계상 노동3권은 당연히 보장되는 것이고, 이를 제한하는 것은 한국 실정법체계상 불가능하다. 그리고 고용허가제를 도입한다는 것은 바로 이 제도를 통해 입국하는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에게 노동3권을 보장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이다. 상담, 지원단체들은 노동3권 보장이 다른 모든 문제들보다 중요한 문제이고 또 다른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보기 때문에, 노동부 등이 추진하는 고용허가제에 몇 가지 문제점이 있지만 일단 고용허가제라도 실시하여 이주노동자를 실정법상 “근로자”로 합법적으로 도입하는 것에 반대하지 않는 것으로 입장 정리하고 있다.

상담, 지원단체들은 다음 3가지 문제가 법제도 개선의 핵심과제라고 보고 있다. 첫째로 기만적인 산업기술연수제도를 철폐하는 것이고, 둘째로 그 대신 외국인력을 한국 실정법상 “근로자”로 합법적으로 도입하는 노동허가제 등 새로운 제도를 실시해야 하고, 셋째로 미등록(불법체류) 이주노동자들을 새 제도 실시와 동시에 사면 또는 양성화시켜야 된다는 것이다.

2003년 현재, 한국의 외국인 이주노동자 운동은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산업기술연수제가 드디어 폐지되고 그간의 왜곡된 외국인력의 유입과 배치경로를 정상적으로 되돌려놓을 수 있을 것인가. 그리하여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의 노동권이 정상적인 실정법의 작동원리에 의해 보호될 수 있을 것인지. 아니면 산업기술연수제가 확대되어 한국의 이주노동자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영영 잃어버림으로써 추후 감당할 수 없는 문제점들을 한국 사회에 안겨주게 될 것인가를 가늠 짓는 시기인 것이다. 이 시기에 무엇보다 요청되는 것이 한국 노동운동의 적극적인 활동이다. 그러나 현재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운동은 이주노동자문제를 몇 안 되는 상담지원단체에 맡겨놓고는 응당 수행해야 마땅할 과제를 사실상 내팽개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다.

한국내 외국인 이주노동자의 수가 이미 40여만 명에 육박하면서 이들은 한국 사회 곳곳으로 스며들어가고 있다. 이들이 취업하는 업종은 하루가 다르게 그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이들이 이미 한국의 비정규노동자 계층의 최하층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의 문제는 인권의 측면을 넘어서서 핵심적인 노동문제가 되고 있다. 광범한 외국인 이주노동자의 존재는 저임 노동력 공급의 증대로 인한 노동력의 교환가치 하락과, 또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을 분할 통치하는 기제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노동운동의 적극적 의지가 필요

‘노동자 국제주의’는 단순한 구호가 아니어야 한다.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에게 자행되는 차별을 철폐하고 동등한 권리가 보장되도록 투쟁하는 것은 곧 한국 노동운동의 미래를 위한 투쟁인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외국인 이주노동자 문제와 관련된 민주노총의 사업방식에 대해서는 몇 가지 유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로 이주노동자 문제에 대해 몇 가지 구호는 외치고 있지만 실질적인 관심과 노력은 거의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점이다. 둘째로,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을 조직화하는 문제에 매우 추상적이고 비효율적인 방법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주노동자의 조직화 초기에는 상담지원단체들과의 허심탄회한 협동작업으로 추진하는 것이 필수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이다. 그런데 민주노총은 각 상담지원단체와 유기적이고 효율적인 협동작업을 추진하는 것은 고사하고, 상담지원 단체를 “소 닭 보듯”하고 있거나 심하게는 “소원한” 관계를 구조화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다 보니 조직화를 위한 추상적 구호는 난무할지 모르지만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을 조직화하는 방안에 대한 고민과 모색이 진행되지 못하고 따라서 조직화 방침도 구체화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셋째로 민주노총은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노력이 매우 미흡하다. 민주노총은 외국인 이주노동자문제에 대해서는 현장과 상당히 유리되어 있는 셈이고, 또한 그 사이 제대로 노력한 점이 별로 없는 셈이나 다름없다. 외국인 이주노동자 문제에 대해 논문 몇 편 읽은 수준을 크게 넘어서지 않는 전문성의 부재에다가 현장도 잘 모르는 상태에서도, “용감하게” 오랫동안 현장에서 활동해 온 상담지원단체의 견해를 섣불리 묵살하거나 또는 성실하게 귀 기울이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는 것은 아무리해도 이해되지 않는 태도이다. 상대적으로 전문성도 더 있고, 또 시시각각 변화하는 외국인 이주노동자 대중의 흐름을 상대적으로 더 민감하게 포착하고, 그들의 현실을 상대적으로 더 깊숙이 파악하고 있으면서, 외국인 이주노동자들과 다양한 통로를 통해 교감하고 있는 상담지원단체들과의 관계맺기조차 소홀한 실정이다. 더 나아가 현장에 발을 딛고 활동하고 있는 전문가들이 활동하고 있는 상담지원단체들로부터 외국인 이주노동자 현실에 대해 작은 것이라도 배우고자 하는 기본자세조차 그 동안 찾아보기 힘들었다고 평가한다면 지나친 폄하가 될까?

위 와 같은 고언을 다소 과장된 어법으로 표현한 이유는, 그래도 민주노총이 외국인 이주노동자문제에 적극 나서리라는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 10여 년간 음지에서 피눈물을 흘리면서 노동했고 현재도 노동하고 있는 수십만의 외국인 이주노동자 문제의 올바른 해결에 민주노총이 지금이라도 조직적으로 또 적극적으로 나서주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 첫걸음인 산업기술연수제 폐지와 노동3권 보장이 가능한 새로운 외국인력제도 도입 및 미등록(불법체류) 이주노동자 사면, 양성화 투쟁에 지금이라도 민주노총이 올바른 입장을 갖고 적극 결합할 것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민주노총이 구체적이고 올바른 방침을 갖고 외국인 이주노동자 조직화 사업에 적극 나서기를 간절히 기대하기 때문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7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