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원 총투표 통한 ‘정책연대’로 노동자 정치참여의 문을 연다

노동사회

조합원 총투표 통한 ‘정책연대’로 노동자 정치참여의 문을 연다

admin 0 2,753 2013.05.05 05:14

19세기 이후 급격하게 대두된 자본주의 모순에 대항하는 노동의 유력한 투쟁수단이 바로 계급정치 또는 노동정치로 이해되는 ‘노동자의 정치참여’다. 서구 선진국과는 달리 한국 노동운동의 정치화는 해방 공간에서 이데올로기 투쟁 시기를 잠시 경험하기도 했지만, 한국전쟁 이후 분단과 이에 따른 억압적 정치체제로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동면으로 보냈다. 하지만 국민들의 꾸준한 정치의식 성장으로 21세기 초, 노동자의 계급정치가 드디어 부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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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노총 임원진들은 정책연대의 내용을 설명하고 조합원들의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현장대장정을 실시했다. ▶ 한국노총 ]

노동운동만으로는 2% 부족한 노동자 계급정치

한국노총은 지난 1997년 정책연합을 담보하는 친노동자 후보를 지지한 이후 지속적인 정치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지난 2002년 대선을 불과 1주일 앞두고 한국민주사회당을 창당하여 새로운 정치세력화를 추진하였으나 대선에서 영향력 확보에 실패했고, 이후 사민당, 녹색사민당 등으로 변신을 거듭하여 2004년 4·15 총선에 재도전하였다. 하지만 또다시 조합원들에게조차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정당해산이라는 뼈아픈 실패를 경험한 바 있다. IMF 체제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기득권 및 자본세력과의 치열한 투쟁을 겪은 노동진영이었지만, 그 정치적 정당성에도 제도권 정당화를 통하여 국민대중을 설득해내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정당화 실험의 실패는 낮은 자세로 임하는 노동운동의 겸손을 요구하였다. 냉철한 전략·전술로써 조합원들에게는 실질적 이득을, 노동운동 진영에게는 희망의 싹을 만들어내야 하는 고민을 안겨 준 것이다. 그 결과 기존 노동정당과 같은 이데올로기 투쟁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노동과 사회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공동투쟁 전선의 형성이 가능한 ‘정당 정책연대’로 방향이 잡혔다. 이는 전통적으로 민주당과 정책연합을 형성하여 노동운동의 대중화에 어느 정도 성공한 일본 렌고(連合)의 사례와 유사한 것이다. 

노동운동만을 후방에 둔 노동자정당으로서는 직접임금뿐만 아니라 사회안전망이라는 간접임금으로도 생활하는 국민 대부분의 생존권을 지켜내기에 한계가 있다. 특히 극도로 제한된 임금상승률이 폭등하는 물가, 세금, 집값 앞에서는 전혀 무력한 우리 사회에서, 노동만을 무기로 한 투쟁이 과연 어느 정도의 파괴력을 가질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자연스럽게 노동과 사회의 연대, 나아가 노동과 정치의 연대가 필요한 것이다. 성급한 노동자 정당화보다는 기존 정당과의 연대를 통한 정치세력화의 단계부터 이행하는 것이 국민들의 빈곤한 진보의식을 일깨울 수 있는 희미한 촛불이 된다.

영국과 같이 노동자정당의 역사가 오래된 국가나 북유럽과 같이 사회민주주의 이념이 지배하는 국가 외에는 노조의 정치세력화는 대부분 기존 정당과의 정책연합을 통하여 이루어지고 있다. 일본의 경우 위와 같은 렌고의 정책연합이 노동자정당 건설보다 오히려 유리하다는 평가가 많다. 미국노총(AFL-CIO)은 2차대전 이후 ‘불임의 결혼’ 이라는 비난에도 민주당과 전통적으로 굳어진 복지연대의 파트너로서 협력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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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원 총투표에 따라 연대후보 결정

한국노총은 국내외의 이러한 경험과 성과를 바탕으로 내부동력과 당위성을 점검한 결과 지난 2월21일 중앙정치위원회에서 새로운 정책연대 사업을 전개하기로 결정했다. 즉 기존 상층부 위주의 정치방침 결정관행을 획기적으로 전환하여, 전국 현장의 전체 조합원들이 직접 참여하는 조합원 총투표 방식으로 연대후보를 결정하기로 한 것이다. 이와 같은 사전절차를 거쳐 2월28일 임시대의원대회에서 절차적 투명성과 조직 내 민주주의를 확보한다는 원칙에 따라 조합원 총의를 물어 2007 대선 정책연대를 추진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한국노총이 추진하는 정책연대는 “특정정책의 실현을 도모하기 위하여 상호 간의 협의하에 제휴나 행동통일을 결정하는 사업”이다. 기득권 세력이 너무나 높게 쌓아 놓은 진입장벽이 엄존하는 한국적 상황에서 노동자가 치열하게 벌이는 정치세력화 투쟁이자, 선거라는 민주주의 발전공간에서 노동자 및 민중의 이익을 실현해 나가는 절차인 것이다. 

구체적인 방법은 다음과 같다. 먼저 전체 노동자의 정책요구안을 작성, 각 대선후보에게 제안하고 후보들의 이행계획서를 받아서 평가한 후, 그 결과를 전체 조합원들에게 알려 판단의 근거를 제공한다. 그리고 조합원 총의를 확인하는 전국노동자대회(11월24일)을 거쳐 마지막으로 총 조합원 ARS 총투표(11월28일~12월7일)를 치른다. 이렇게 결정된 연대후보와 정책연대 협약을 체결하는데, 이 협약에는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가 참여하여 연대후보가 당선될 경우 공약의 이행을 담보하게 된다. 2006년 5·31 지방선거를 역사상 최초의 매니페스토형 선거로 기록한 바 있는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의 결합으로 한국노총의 정책연대 사업은 한층 내실 있게 진행될 것이다.

정책연대 승리를 위하여 한국노총은 다양한 전술·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2월 임시대의원대회 의결로 사업방침을 확정하고 4월10일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위한 정책연대 찬반을 묻는 1차 전 조합원 총투표를 실시하여 76%의 찬성표를 받아 현장동력을 확인한 바 있다. 이와 함께 현장 노동자의 의식 확산을 위하여 전국 단위노조 대표자 워크숍을 개최하는 한편, 한국노총위원장을 비롯한 임원들이 수개월에 걸쳐 현장을 직접 순회하며 조합원들의 관심을 고조시켰다. 또한 실질적인 사업추진과 공약이행 담보를 위하여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와 협약을 체결, 공약평가지표를 개발하고 추후 공약이행 과정을 공동점검하기로 했다. 

뿐만 아니라 정책연대사업의 현장조직 주체성을 확인하기 위하여 각 산별 연맹 및 지역본부에서 정치활동 관련 소정의 소요경비를 노총에 납부했다. 노동운동 지도부들의 순수성을 담보하기 위하여 기존 정당원들은 전원 정당을 탈퇴하기로 결의하고 실제 탈퇴확인서를 노총에 제출하기도 했다. 한편 현장에서는 각 조직별 정치의식화 사업을 적극 전개하고, 노총의 각급 산하조직에서는 정치실천위원회를 구성, 노총의 정책연대 사업일정에 적극 결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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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책연대 관련 조합원총투표의 내용을 알리고 참여를 촉구하는 한국노총의 포스터. ▶ 한국노총 ]

핵심은 ‘조합원 명부 확보’와 ‘정책요구안 작성’

정책연대 승리를 위한 한국노총의 핵심전술은 무엇보다도 투표에 임할 ‘조합원 명부 확보’와 ‘정책요구안 작성’이다. 전자는 선거인단을 확정하는 사업이라 할 수 있고 후자는 그 선거인단에 판단근거를 제공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조합원 명부는 한국노총의 전국 조합원 87만 명 중 실제 의무금을 납부하는 노조원들을 대상으로 명단과 휴대폰 번호를 받게 되는데, 이미 약 75% 정도의 조합원이 적극 동참하였다. 정책요구안은 노총이 중심이 되어 14개 분야 85개 요구공약을 작성하고, 각 산별 정책담당자로 구성된 정책연대 T/F 팀에서 1차 토론회를 거치고, 다시 공약 전체에 대한 외부전문가의 검토를 받았다. 

이렇게 성안된 요구안은 한국노총 내부 산별대표자회의와 중앙정치위원회 의결로써 확정하였고, 비정규직문제 등 핵심공약 10개를 선별, 후보들의 구체적인 답변을 받기로 했다. 향후 이를 각 정당과 대선후보들에게 직접 전달하여 이행여부, 이행이 가능할 경우 예산 및 추진일정 등을 회신요구하고, 이를 적정하게 평가하여 전 조합원들에게 제공한다. 후보들의 회신내용이 간접적인 판단근거라면, 조합원들은 후보들의 면면을 직접보고 그들의 의견을 직접 듣는 기회도 가진다. 한국노총은 대선후보 동륵(11월25~26일) 직전인 11월24일 대규모 노동자대회를 개최하고 그 자리에 각 후보들을 초청하여 각각의 의견을 들을 계획이다. 이와 함께 선거법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유력 방송사와 공동으로 후보초청 토론회를 개최하여 노동과 사회 현안에 대한 전국적인 관심을 고조시킬 예정이다.

이러한 제반 판단근거를 가지고 조합원들은 드디어 11월28일부터 10일간 지지후보를 결정하게 되는 것이다. 조합원들의 선택을 받은 후보는 한국노총과의 정책협약식을 거쳐, 짧은 기간이지만 한국노총 본부를 비롯한 전 조직의 적극적인 선거운동을 지원받게 된다. 물론 당선될 경우 임기 내내 정책요구안 이행감시를 받게 될 것이고 적절한 이행이 계속될 경우 임기 내내 한국노총의 지지를 받게 될 것이다.
정점을 공략할 때다

대중운동 조직으로서 노동조합은 분명 그 존재의의가 크다. 특히 노동문제가 노동의 해법으로만 풀리지 않는 한국사회에서, 그동안 노동진영의 지위상승뿐 아니라 사회전체의 민주화와 진보에도 대중화된 노동조합의 기여가 컸다. 그러나 이제 정치적인 담론에 개입하고 그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노동조합 활동만으로는 한계가 있음이 드러났다. 민주노총의 전신인 전노협이 노동과 정치를 철저하게 분리하는 운동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한계를 우리는 이미 경험한 바 있다.

한국사회에서 모든 문제는 정치문제이다. 사회의 많은 세력들이 정치의 계절에 기민하게 운동하는 생리는 바로 정치의 정점화(頂點化)를 확인하는 것이다. 노동현안을 노조활동으로만 해결하라는 것은 사회공공성을 지키려는 노조의 대정부투쟁을 ‘정치투쟁’, ‘이데올로기투쟁’ 운운하는 보수언론의 행태와 다를 것이 없다. 임금인상률보다 주택가격상승률이나 유가인상률이 훨씬 높은 사회에서 노사 간 임금협상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아무리 높은 임금을 받는 대기업 노동자 가정이라 하더라도 살인적인 과외비 탓에 가장이 자살하는 현실이 개선되지 않고 있는데도 노조는 임금인상만 외치고 있어야 하는가? 그런 노조는 과연 정당하다 할 수 있을까? 한국노총의 뿌리 깊은 정치사업은 이와 같은 기본적인 고민에서 시작된 것이다. 

2017년 ‘영구 연대’로 이어질 정책연대 승리

2007년 대선은 그 어느 때보다 혼란스럽다. 선거일을 불과 한 달여 남긴 지금도 범여권은 단일화를 위한 각 후보들의 세불리기에 여념이 없다. 후보들 간의 정책토론은 거의 없고 언론의 ‘비교분석’만 난무하고 있다. 노동분야 공약은 미미하여 그 실체조차 파악하기 어렵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한국노총은 수십 일간의 작업과 토론 끝에 『2007년 대선공약요구집』을 발간하였다. 여기에는 부족하나마 노동과 사회에 대한 이 땅 민중의 요구를 담았다. 이제 대규모 노동자대회를 거쳐 전 조합원들이 정책연대 대상 후보를 결정하게 되면 당해 후보의 당선여부와 상관없이 2007년 대선공간에서 한국노총의 정치사업은 승리한 것이다. 전체 노동자의 결집된 힘이 사회변혁을 위한 ‘분노의 포도’로서 표현된 것이기 때문이다. 더 이상 정치는 정치인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 확인된 것이기 때문이다.

2007년 대선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노총은 2012년 대선에서 2차 정책연대 사업을 전개할 것이고, 2017년 대선부터는 특정정당과 영구 정책연대로서 결합할 계획이다. 부자(父子) 총리로서 깐깐하기로 유명한 일본의 후쿠다 신임수상이 취임 직후인 지난 7월 렌고 간부들과 만났다. 그가 참의원 선거에서 민주당과의 정책연대 승리를 이룬 렌고 간부들에게 “여러분의 힘을 빌려 달라.”며 허리를 낮춘 모습에서 한국노총은 이번 정책연대 승리의 희망을 본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2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