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관계 측면 평가

노동사회

노사관계 측면 평가

admin 0 4,218 2013.05.11 10:17

1. 머리말

O 김영삼 정부는 1996년 상반기 노사관계개혁위원회를 출범시키면서 ‘참여와 협력적 노사관계 구축’을 노동정책 기조로 제시했다. 그러나 1996년 하반기 경기가 하강국면으로 접어들자 재계는 ‘경제위기설’을 확산시켜 정부의 ‘신재벌정책’을 무산시킨데 이어, 노동법 개정을 노동법 개악으로 전환하기 위한 공세를 강화했다. 이에 따라 애초 기획했던 ‘노동법 개정’은 ‘노동법 개악’으로 뒤바뀌고, 당시 집권 여당인 신한국당은 12월 국회에서 ‘노동법 개악안’을 날치기 통과시켰다. 그 결과 연인원 5백만 명이 참가한 1996~97년 총파업 투쟁이 촉발되고, 차기 집권을 자신하던 신한국당은 1996~97년 총파업과 1997년 11월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O 2003년 2월 출범한 노무현 정부는 12대 국정과제의 하나로 ‘사회통합적 노사관계 구축’을 노동정책 기조로 제시했고, 이를 위한 정책과제로 ‘⑴ 국제기준에 부합하는 노사관계 구축 ⑵ 중층적 구조의 사회적 파트너쉽 형성 ⑶ 자율과 책임의 노사자치주의 확립 ⑷ 근로생활의 질 향상 ⑸ 노동행정 서비스의 역량 확충 ⑹ 일자리 창출과 고용안정’을 제시했다. 

- 노동정책을 노사관계와 노동시장 정책으로 구분하여 살펴보면, 노사관계 정책은 ⑴ 국제기준에 부합하는 노사관계 구축 ⑵ 중층적 구조의 사회적 파트너쉽 형성 ⑶ 자율과 책임의 노사자치주의 확립을 제시한 점에서, 과거 정부보다 진일보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노동시장의 수량적 유연성과 불평등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음에도, ‘노동시장 불평등 해소, 괜찮은 일자리(decent work) 제공, 근로빈민(working poor) 해소’ 등을 목표로 하는 ‘사회통합적 노동시장 정책’은 찾아 볼 수 없고, 사후 보완책으로 사회적 안전망 확대와 취업알선 등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만 제시한 점에서, 노동시장 정책은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다. ‘근로생활의 질 향상’을 얘기하고 있지만, 그 내용을 살펴보면 ‘사회적 안전망 구축’에 불과하다.

O 2003년 상반기 노무현 정부는 노사정위원회가 중심이 되어 ‘노사관계 발전전략(노사관계 로드맵)’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했다. 7월18일 노사정위원회 산하 노사관계발전추진위원회는 “노사관계 발전전략 수립을 위한 기초토론 자료”에서 ‘사회통합적 노사관계 구축’을 위한 정책과제로 ⑴ 국제기준에 부합하는 법·제도의 선진화 ⑵ 중층적 노사관계 체제의 구축 ⑶ 공공부문의 노사관계체제 정비 및 선도 역할 제고 ⑷ 유연안전성(flexicurity) 제고를 통한 노동시장의 활력 증진 ⑸ 사회적 형평성 제고를 통한 사회통합 기반 조성을 제시했다.

- 세부안이 제시되지 않아 평가하기는 이르지만, 노사관계 정책은 ‘⑴ 국제기준에 부합하는 법·제도의 선진화 ⑵ 중층적 노사관계 체제의 구축 ⑶ 공공부문의 노사관계 체제 정비 및 선도 역할 제고’를 제시한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통합적 노동시장 정책’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에서 여전히 한계가 있다. 물론 김영삼·김대중 정부 때 사용하던 유연성(flexibility) 대신 유연안전성(flexicurity = flexibility + security)이란 개념을 사용하고는 있다. 그러나 그 내용을 살펴보면 ‘유연안전성 = 노동시장 유연화 + 사회적 안전망 구축’으로 김영삼·김대중 정부 때와 차별성을 발견할 수 없다. 수량적 유연성과 불평등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음에도 현재의 노동시장 구조를 방치한다면, 사후적 보완책인 사회적 안전망과 취업알선 등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 역시 붕괴하거나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는 사실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더욱이 ‘사회통합적 노사관계 구축’을 위한 첫번째 정책과제인 ‘국제기준에 부합하는 법·제도 선진화’ 방안 마련을, 노사단체 참여가 배제된 상태에서 노동부에 일임한 것은 중대한 흠결이라 할 수 있다.

O 노동부는 5월10일 ‘노사관계제도 선진화연구위원회’를 구성한 뒤 8월 말 ‘노사관계 법·제도 선진화 방안’을 마련했고, 9월4일 노동부장관은 위 방안을 노사정위원회에 회부하면서 ‘노사합의에 이르지 못 할 경우 위 방안을 중심으로 해서 노사관계 법과 제도를 개선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지난 15년간 우리나라 노사관계에서 핵심 쟁점이었던 노동기본권 관련 조항을 중심으로, 과연 노동부가 제출한 ‘노사관계 법·제도 선진화 방안’이 노무현 정부의 노동정책기조인 ‘사회통합적 노사관계 구축’에 부합하는가, ⑴ 국제기준에 부합하는 노사관계 구축 ⑵ 중층적 구조의 사회적 파트너쉽 형성 ⑶ 자율과 책임의 노사자치주의 확립에 부합하는가를 평가하도록 한다. 

2. 선진화 방안 검토 

가. 단결권 관련 조항


O 한국의 노사관계는 10%대의 낮은 노조 조직률과 협약 적용률, 대기업·정규직 중심의 기업별 노조·교섭 체계 등 ‘극도로 분권화된 노사관계(decentralized labor relations)’로 특징지워진다. 이처럼 분권화된 노사관계는 한국 노동시장의 특징인 ‘중층적으로 분단된 노동시장(segmented labor market)’과 맞물려, 노동시장의 수량적 유연성(고용불안)과 불평등을 극단으로 치닫게 하고, 대립적·배제적 노사관계를 온존·강화시키고 있다.

O 한국 노사관계의 핵심 문제인 ‘대기업·정규직 중심의 기업별 노조 체계’가 지배적 조직형태로 자리잡은 것은, 1981~87년에는 법률로 기업별 노조를 강제했고, 1988년 이후는 복수노조 금지조항으로 기업별 노조를 강제한데서 비롯된다. 1987년 11월 노동법 개정으로 ‘기업별 노조 강제’ 조항이 삭제되고, 1997년 3월 노동법 개정으로 복수노조 금지조항이 삭제되었지만, 노동조합법 부칙 제5조는 한 차례 개정을 통해 2006년 말까지 사업장단위 복수노조를 금지하고 있다.

- 기업별 노조 체제에서 중소 영세기업은 설령 노동조합이 결성된다 하더라도 조직규모가 영세해 정상적인 유지·운영조차 쉽지 않다. 비정규직은 단체협약, 규약, 관행 등으로 노조가입 대상에서 제외되기 십상이다. 이에 따라 기업별 노조 체제는 중소영세업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초보적인 노동조합 결성 및 가입권을 제한하고, 한국의 노조 조직률이 10%대를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주된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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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조합은 일차적으로 조합원의 요구와 이해를 실현하기 위해 투쟁하는 조직이다. 따라서 노조 조직률이 10%대에 머물고, 조합원 구성이 특정 산업, 대기업, 남자, 정규직에 편중된 상태에서는 지도부의 의지와 관계없이 전체 노동자 대중의 요구와 이해를 실현하는데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다. 더욱이 기업별 노조 체제에서 집행부의 활동은 기업 울타리 내에서 임금인상 등 노동조건 개선에 주력하기 십상이어서, 한국의 노동조합운동은 경제주의, 실리주의로 내몰리고 사회적 고립은 심화되고 있다. 

- 최근 노동조합운동은 기업별 노조·교섭 체제를 극복하고 산업별 노조·교섭 체제를 확립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 결과 2002년 12월말 현재 기업별 노조를 해산하고 산업·업종·지역·고용형태별 초기업적 노조로 조직형태를 전환한 조합원수가 40만명에 달하고, 금년에는 금융노조, 금속노조 등에서 산별교섭이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금년 상반기 현대자동차 조합원 가운데 62%가 찬성표를 던졌음에도 3분의2 이상 정족수를 확보하지 못해 산별노조로 조직형태 전환에 성공하지 못한데서 알 수 있듯이, 복수노조 금지조항은 산별노조 건설을 가로막는 장애요인으로 자리잡고 있다.

O 노사관계 법·제도 개선이 ‘사회통합적 노사관계 구축’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노동조합법 부칙 제5조를 삭제하여, 산별노조 건설을 촉진하고 중소영세업체 및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조합 결성 및 가입권을 보장해야 한다. 이것은 ⑴ 국제기준에 부합하는 노사관계 구축 ⑵ 중층적 구조의 사회적 파트너쉽 형성 ⑶ 자율과 책임의 노사자치주의 확립에 부합하는 첩경이기도 하다. 그러나 선진화 방안은 노동조합법 부칙 제5조 삭제를 검토한 흔적을 발견할 수 없다(사업장 단위 복수노조 허용이 노사관계에 미치는 영향에 관해서는 『노동사회』2000년 12월호에 실린 필자의 글을 참조 바람).

O 선진화 방안은 ⑴ 2007년부터 노조전임자 임금지급을 금지하되 법령이 정한 기준 내에서 임금지급 허용 ⑵ 실업자의 초기업단위노조 조합원 자격 인정 ⑶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 허용에 대비하여 다른 노조·조직에 가입할 경우 불이익을 줄 수 없도록 유니온숍 규정 정비 ⑷ 노조의 부당노동행위는 별도로 신설하지 않되, 개별 규정에서 노동조합의 행위준칙 명시 ⑸ 부당노동행위 구제제도의 실효성 확보 방안과 현행 직접 형사처벌규정의 정비(구체적 방안은 추후 검토)를 제시하고 있다.

-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은 노사간에 자율적으로 결정할 사항으로, 법으로 금지할 사항이 아니다. ILO 결사의 자유위원회는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는 입법적 관여사항이 아니므로 현행 노조법 상의 관련규정을 폐지할 것’을 한국 정부에 권고한 바 있다. 이 조항은 ⑴ 국제기준에 부합하는 노사관계 구축 ⑶ 자율과 책임의 노사자치주의 확립에 어긋나므로 삭제해야 한다. 만약 2007년부터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가 강제된다면, 가뜩이나 취약한 중소영세업체 노조는 생존할 수 없는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가 산별노조 건설을 촉진하는 긍정적 측면도 있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산별노조 체계에서도 사업장에 노조 전임자가 없으면, 노동 현장의 요구와 이해를 대변하기 어려워져 현장이 공동화할 가능성이 높다.

- ‘실업자의 초기업단위노조 조합원자격 부여’는 98년 2월 노사정위원회 합의사항이다. ILO 결사의 자유 위원회는 ‘조합원 및 임원 자격요건의 결정은 노동조합이 그 재량으로 규약으로 정할 사항’이라 하여, ‘노조법 제2조 4호 라목 및 제23조 제1항의 폐지’를 권고한 바 있다. 따라서 뒤늦게나마 ‘노조법 제2조 4호 라목’을 삭제하겠다는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기업단위 노조의 조합원 자격을 제한하는 특칙을 마련하겠다는 것은 해당 노조 스스로 결정할 사항을 입법을 통해 제한하겠다는 것으로 결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며, 기업단위 노조에서 해고자 등의 조합원 자격을 부인하는 근거로 악용될 소지가 크다. ILO 권고 사항인 노조법 제23조 제1항 “노조임원 자격제한”도 함께 개정해야 할 것이다.

- 선진화 방안이 ‘유니온숍 조항은 유지하되, 복수노조 허용에 대비하여 소수 노조의 단결권 또는 개별 노동자의 단결선택권을 보장하는 취지에서 규정을 정비하겠다’는 것은 타당성이 있다. 그렇지만 현행법에서 유니온숍 조항 체결 요건인 “근로자의 3분의2 이상 대표”를 “과반수 대표”로 함께 개정해야 할 것이다.

- 노조의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지금도 민형사상 책임이 부과되어 매년 수백명이 구속되고 가정 파괴와 분신이 잇따르는 상황에서, 추가로 노조의 부당노동행위 신설 방안을 검토했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노동조합의 행위준칙을 명확히 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것도 노동조합을 타율적인 규제 대상으로 바라보는 과거 노동행정의 연장선에서 비롯된 것으로 판단된다. 선진화 방안이 예시한 사항을 살펴보더라도, “법이 허용하는 기준 이상으로 유급전임을 사용자에게 강요(?)하는 행위”는 ILO 권고를 무시하고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를 강행한 경우를 상정한 것이고, “교섭대표 노조가 아닌 노동조합이 사용자에게 교섭을 강요(?)하는 행위”는 소수 노조의 단체교섭권을 부인하는 방향에서 위헌적 입법이 이루어진 경우를 상정한 것인 바 타당성이 없다.

나. 단체교섭 관련 조항

O 지난 20년간 한국의 노조 조합원수는 최대 193만명(1989년), 최소 98만명(1982년)으로 1백만명 대에서 오르내렸고, 노조 조직률은 최대 18.6%(1982년), 최소 11.2%(1997년)로 10% 대에서 오르내렸다. 노동조합운동이 폭발적으로 전개된 1987년 7~9월 노동자 대투쟁 직후에도 노조 조직률은 10%대, 조합원수는 백만명대를 벗어나지 않았다. 앞으로 1987~88년과 같은 정치·사회적 격변기가 쉽사리 도래하지는 않을 것인 바, 현재의 노사관계 패러다임 하에서 한국의 노조 조직률이 10%대를 넘어서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O [그림2]에서 노사관계 제도가 분권화된 영미권과 동아시아권은 노조 조직률과 단체협약 적용률이 엇비슷하다. 그러나 노사관계 제도가 집중화된 유럽대륙 국가는 노조 조직률에 관계없이 단체협약 적용률이 80~90%대에 이르고 있다. 한국보다 조직률이 낮은 프랑스도 단체협약 적용률은 90%이다. 이것은 노사간에 체결한 단체협약 효력을 확장하여 비조합원에게도 동등하게 적용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유럽대륙 국가들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 임금격차가 크지 않고, 임금소득 불평등이 크지 않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Freeman and Katz, Differences and Changes in Wage Structures,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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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전체 노동자의 80%가 넘는 미조직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그리고 노사관계 법·제도 개선이 ‘사회통합적 노사관계 구축’과 ‘사회통합적 노동시장 구축’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산업별 단체교섭 촉진과 단체협약 효력확장 방안을 집중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그러나 선진화 방안은 이러한 방안을 검토한 흔적이 없다. 

O 선진화 방안은 단체교섭과 관련하여 ⑴ 복수노조 창구 단일화 강제 ⑵ 의무적 교섭사항으로 근로조건의 결정사항, 집단적 노사관계에 관한 사항 명시, 권리분쟁은 제외 ⑶ 단체협약의 유효기간 3년으로 연장 ⑷ 제3자 지원신고제 폐지를 제시하고 있다. 이 가운데 ‘복수노조 창구 단일화 강제’는 앞으로 노사관계의 안정에 최대 걸림돌이 될 것으로 판단되는 바, 여기에 초점을 맞춰 살펴보도록 한다.

- 우리 헌법은 모든 노동조합에게 자주적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보장하고 있다. 그럼에도 선진화 방안이 ‘교섭창구 단일화 강제’를 전제로 배타적 교섭대표권과 비례대표권 2가지 방안을 제시한 것은, ‘모든 정당(또는 야당)은 하나의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해야 한다’고 강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비민주적·비현실적 요구이자 위헌이며, ‘자율과 책임의 노사자치주의 확립’ 원칙에 어긋난다. 더욱이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를 조장하고, 노동조합간 과잉경쟁을 유발하며, 노노갈등과 노사갈등을 심화시켜 산업평화를 저해할 소지가 크다.

- 첫째 과반수(또는 과반수 득표) 노조에게 배타적 교섭대표권을 부여하는 것은 ① ‘과반수 의석을 확보한 정당만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다’고 강제하는 것처럼 비민주적·비현실적 조항이고, ② 소수노조의 단체교섭권을 배제하는 위헌 조항이며, ③ 과반수 여부를 둘러싸고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특정 노조 탈퇴·가입, 투표 권유 등)가 집중될 유인을 제공하여 노사갈등을 심화시키고, ④ 노동조합간에 과잉경쟁을 유발하고 노노갈등을 심화시키는 등 산업평화를 저해할 소지가 크다. 

- 둘째 조합원수에 비례하여 비례대표권을 부여하는 것은 ① ‘모든 정당(또는 야당)은 의석에 비례하여 하나의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해야 한다’고 강제하는 것처럼 비민주적·비현실적 조항이고, ② 교섭위원단 내부의 의견 조정이 쉽지 않아 교섭이 비효율적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으며, ③ 교섭 과정에서 무임승차, 책임전가 등 노노갈등을 유발할 소지가 크고, ④ 사용자가 지배·개입이 가능한 소수노조를 통해 교섭위원단 내부 갈등을 조장할 가능성이 높으며, ⑤ 단체교섭권이 배제되는 소수노조가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바 여전히 위헌 소지를 안고 있다.

- 셋째 선진화 방안은 교섭창구 단일화를 강제하기에 앞서 자율적 단일화를 시도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1안처럼 ‘자율적 단일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과반수 노조에게 배타적 교섭대표권을 부여’하는 것을 전제한다면, 과반수 노조가 다른 방식에 동의할 가능성은 기대하기 어렵다. 2안처럼 ‘자율적 단일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소수노조에게 비례대표권을 부여’하는 것을 전제한다면, 소수노조가 스스로 교섭권을 포기할 가능성은 기대하기 어렵다. 1안과 2안 모두 ‘자율적 단일화 시도’는 무의미한 사족일 뿐이다.

- 넷째 노동조합법 부칙 제5조 제3항 ‘교섭창구 단일화 방안 강구’는 1997년 3월 노동법 개정 당시 노동계의 반대에도 정부가 사용자측 우려를 반영하여 삽입한 것이다. 이에 따라 지난 6년 동안 교섭창구 단일화 방안을 둘러싸고 무수히 많은 검토가 이루어졌지만, 법률로 ‘교섭창구 단일화’를 강제하는 경우에는 어떠한 방안을 강구하더라도 그에 따른 문제점과 폐해가 뒤따를 수밖에 없다. 해법은 간단하다. 우리 헌법대로 모든 노동조합에게 자주적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보장하면 된다. 이 때 발생하는 부분적인 문제점은 이미 일본에 많은 판례가 축적되어 있으므로 이를 원용하면 된다. 

- 다섯째 ILO 결사의 자유 위원회는 “단일노조가 노동자에게 이익이 된다 해서 법률로 단일노조를 강제하는 것은 조약 제87호 2조에 위배된다. 법률로 단일노조를 강제하는 상황과 자발적으로 단일노조를 구성하고 있는 상황 사이에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노동자들이 경쟁적 복수노조를 피하는 것이 노동자들의 권익 실현에 유리하다 해서 국가의 직간접적 개입, 특히 법률에 의한 국가의 개입이 정당화되지는 않는다”라 하여 복수노조 금지조항 삭제를 한국 정부에 권고한 바 있다. 이러한 ILO 권고의 정신은 단체교섭에도 똑같이 적용 가능하다. “법률로 교섭창구 단일화를 강제하는 상황과 자발적으로 교섭창구를 단일화한 상황 사이에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교섭창구 단일화가 설령 바람직하다 하더라도 법률에 의한 국가의 개입은 부작용과 폐해를 낳을 뿐이다.”

다. 단체행동 관련 조항

O 노동조합법 제1조는 “이 법은 헌법에 의한 근로자의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보장하여 근로조건의 유지·개선과 근로자의 경제적·사회적 지위의 향상을 도모하고, 노동관계를 공정하게 조정하여 노동쟁의를 예방·해결함으로써 산업평화의 유지와 국민경제의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라 하고 있다. 

- 그러나 노동조합법을 살펴보면 노동조합의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세세한 규정과 엄격한 벌칙을 부과하고 있지만, 사용자의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부당노동행위 금지, 쟁의행위 기간중 대체근로·하도급 금지, 공격적 직장폐쇄 금지’ 3개 조항에 불과하고 벌칙도 경미하다. 이에 따라 노동자들은 매년 수백명씩 구속되지만, 사용자가 구속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럼에도 금년 상반기에 주요 언론은 몇몇 대형 파업을 빌미로 사용자의 대항권(?)을 강화해야 한다는 여론을 조성했다. ([표1]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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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외환위기 이후 파업은 증가 추세에 있다. 1997년에는 78건에 불과하던 파업이 2000년에는 250건, 2002년에는 322건으로 증가했다. 이처럼 파업이 증가 추세에 있는 것은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와 부당해고 증가에서 일차적으로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

- [표2]에서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은 1997년 495건에서 2000년 1,040건으로 증가했고, 부당해고 구제신청은 1,928건에서 3,918건으로 증가했다. 파업발생과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 부당해고 구제신청 사이에 상관계수를 계산하면(로그값 기준) 각각 0.99와 0.89로 매우 높은 상관관계를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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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혹자는 파업 때문에 해고가 증가한다고 주장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단체행동에 참가한 것을 이유로 한 해고 등 불이익’(5호) 때문에 구제신청을 한 경우는 4건(2000년)에 불과하고, ‘노조 가입, 조직 또는 노조활동을 이유로 한 해고 등 불이익’(1호) 때문에 구제신청을 한 경우는 831건(80%)에 이르고 있다. 파업 증가의 주된 원인은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와 부당해고 증가에 있는 것이다.

O 사실이 이러함에도 선진화 방안은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형사처벌 조항 삭제를 검토한데 이어, 부당해고에 대한 형사처벌 조항을 삭제하고 금품정산제를 신설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형사처벌 조항이 있어도 부당노동행위와 부당해고가 급증하는 터에, 형사처벌 조항을 삭제하면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와 부당해고는 더욱 급증할 것이며, 그에 따른 노사갈등과 파업 역시 크게 증가할 것이다. 그럼에도 선진화 방안이 부당노동행위와 부당해고에 대한 형사처벌 조항 삭제를 검토 내지 제시한 것은, 한국의 노사관계에 대한 잘못된 진단에서 비롯된 것으로 판단된다.

O 선진화 방안이 단체행동과 관련하여 ⑴ 조정대상을 권리분쟁 등 노사분쟁의 원인이 되는 모든 사항으로 확대하고, ⑵ 필수공익사업 직권중재 제도를 폐지하며, ⑶ 불법쟁의행위에 대한 손배·가압류 범위를 제한하겠다고 한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⑴ 쟁의행위 찬반투표는 노조 규약으로 스스로 정할 사항이며 법률로 강제할 사항이 아님에도 현행 노조법상 요건을 더욱 강화하겠다는 것은, 노동조합을 타율적인 감시·감독·규제 대상으로 바라보는 과거 노동행정의 연장선에서 비롯된 것으로 결사의 자유를 더욱 침해하는 것이며, ⑵ 공익사업에서 쟁의행위시 대체근로, 신규채용, 하도급을 허용하겠다는 것은 특히 중소규모 사업장에서 사용자의 파업파괴·노조파괴 수단으로 악용되어 노동자들간에 갈등을 유발하고 노사갈등을 심화시킬 소지가 크다.

3. 맺는 말

O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선진화 방안은, 노무현 정부의 노동정책 기조인 ‘사회통합적 노사관계 구축’과, ⑴ 국제기준에 부합하는 노사관계 구축 ⑵ 중층적 구조의 사회적 파트너쉽 형성 ⑶ 자율과 책임의 노사자치주의 확립에 부합하지 않는다. 이것은 한국의 노사관계에 대한 종합적인 진단 하에 ‘사회통합적 노사관계 구축’을 위해 어떠한 법제도 개선이 필요한가라는 차원에서 접근하지 않고, 지금까지 노동행정의 연장선에서 각 조항별로 얼마간 덧셈, 뺄셈을 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판단된다.

O 선진화 방안은 적어도 내년 상반기 총선 때까지는 입법 시도 자체가 불가능할 것이다. 빨라야 내년 하반기 정기국회 때나 입법 시도가 가능할 것이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의문이 생긴다. 노동부는 왜 하필 지금 이 시점에, 노정간에 갈등을 조장하고 ‘사회통합적 노사관계 구축’을 어렵게 할 ‘선진화 방안’을 서둘러 내 놓았는가? 

- 1980년대 후반이래 한국의 노사관계·노정관계는 “상반기는 임단투(임금·단체협약갱신투쟁), 하반기는 노개투(노동법개정투쟁)”로 응축되듯이, 노동법 개정을 둘러싼 대립과 갈등으로 점철되어 왔다. 노동법 이외에 개선해야 할 제도와 관행이 산적해 있음에도 정부와 재계는, 노동계의 ‘노동기본권 보장’ 요구에 대해 ‘노동시장의 수량적 유연성 확보’로 맞불을 놓아 왔고, 그 결과 지난 15년 동안 노동법 개정은 적대적·대립적 노사관계를 증폭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해 왔다. 

- 노동법 개정 과정에서 나타나는 대립적 측면을 완화하고, ‘참여와 협력적 노사관계’를 구축할 것을 목적으로, 김영삼 정부 때는 노사관계개혁위원회, 김대중 정부 때는 노사정위원회가 만들어졌다. 이들 기구는 노사단체의 정책결정 과정 참여를 제도화한 점에서, 한국의 노사관계 개혁에 중요한 단초를 마련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들 기구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설령 정부안이 있다 하더라도 이를 공식화하지 않고, 의제설정 단계부터 노사단체 참여 하에 합의 도출을 시도하는 관행이 형성되어 왔다.

- 물론 지금까지 이러한 사회적 협의·합의기구가 비효율적으로 운영된 측면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미합의 사항이 정부측으로 넘어가면 지금까지 논의보다 노동계에 불리한 방향에서 정부안이 마련되어 1996~97년 총파업 투쟁을 촉발하기도 했고, 합의사항이라도 노동계가 요구한 사항은 지연되거나 보류되기 십상이었다. 이에 따른 노동계의 불신이 누적되면서 1999년이래 민주노총은 노사정위원회에 불참해 왔고, 그 결과 노사정위원회의 정상적 운영과 효과적 논의가 불가능해졌으며, 특히 어느 한 당사자가 거부하면 필요한 입법조차 추진되지 않는 등 일종의 블랙홀(black hole)로 작용하기도 하였다. 

-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노사단체의 참여를 배제한 채 노동부가 서둘러 ‘선진화 방안’을 내놓은 이유가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그것은 “참여없이 책임없고 협력없다”는 격언에서 알 수 있듯이 노사단체의 정책결정 과정 참여를 제도화한 노사정위원회의 설립 근거를 허무는 것이며, ‘의제설정 단계부터 노사단체가 함께 참여하여 논의’하는 그나마 성과를 허무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동안의 비효율성을 개선하기 위해 ‘논의시한 종결제’를 도입한 마당에는 더더욱 그러하다. 노동법 개정을 둘러싸고 첨예하게 대립했던 1996년 노사관계개혁위원회 때도 반년만에 대략적인 합의점이 도출되었고,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1~2월 노사정위원회 때는 한 달만에 100여개 조항에 걸친 합의가 도출되었다. 중요한 것은 의제 설정 단계부터 노사단체가 함께 참여하여 논의하는 과정에서 상호간에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다. 

O 앞으로 선진화 방안은 노무현 정부의 노동정책 기조인 ‘사회통합적 노사관계 구축’을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지금까지 관성대로라면 노사간에 논의가 진척되지 않았거나 합의가 도출되지 않았음을 이유로, 내년 하반기 정기국회 때는 극히 부분적으로 수정된 ‘선진화 방안’이 정부 입법안으로 국회에 제출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이에 대해 노동계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 (방안1) 지금까지 관성대로 노동정책 결정과정에의 참여를 스스로 포기하거나 배제한 채, 집회 등 거리투쟁을 통해 선진화 방안의 문제점을 제기하고 ‘총파업을 포함한 총력투쟁’을 결의한다. ‘선진화 방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모든 책임을 정부에게 돌리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서 새로운 투쟁을 다짐한다. 

- (방안2) 노동정책 결정 과정에의 참여를 확대·강화하면서, 선진화 방안 가운데 협상을 통해 개선할 부분은 개선하고, 미진한 부분은 대중투쟁으로 돌파한다. 이와 동시에 ‘노동시장 불평등 해소, 노사관계 중층화(집중화)’를 사회적 의제로 제기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법·제도·관행 개선을 둘러싼 협상과 대중투쟁을 병행한다.

<참고문헌>
김유선(1998a), “민주노조운동의 혁신을 위한 제언”,『노동사회』1998년 9월호.
김유선(1998b), “민주노조운동 10년의 발자취”,『노동사회』1998년 10월호.
김유선(2000), “2002년 사업장단위 복수노조 허용이 노사관계에 미치는 영향”,『노동사회』 2000년 12월호.
김유선(2002), “노조가입 결정요인”,『노동경제논집』25권 1호.
김유선(2003), “한국의 노동시장과 노사관계 개혁방향”,『노동사회』2003년 10월호.
Freeman, Richard B. and Lawrence F. Katz, ed.(1995). Differences and Changes in Wage Structures.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ILO(1997), World Labour Report 1997-98 : Industrial Relations, Democracy and Social Stability.
 

  • 제작년도 :
  • 통권 : 제 8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