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물연대 파업이 남긴 문제들

노동사회

화물연대 파업이 남긴 문제들

admin 0 4,400 2013.05.11 10:11

물류의 멈춤, 산업의 동맥이랄 수 있는 물류의 마비는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났다. 철의 도시 포항에서 노동절인 5월1일의 대규모 집회를 마치고 돌아온 화물연대 조합원들이 포항 진입로에 자신의 화물차를 세우는 것으로 시작된 물량 운송의 중단은 5월9일 부산으로 이어졌고, 이어 수도권에까지 파급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이 사건은 포스코의 물류가 움직이지 않아 다른 산업으로 연쇄 충격이 가해지게 된 5월6일부터 본격적으로 언론에 보도됨으로써 알려지기 시작했다.

지역마다 천 명에서 수천 명에 이르는 화물운송 노동자의 파업으로 갑자기 물류가 멈춘 것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노동자에게 의존하고 있었는지를 단적으로 드러내었다. 전국적으로 2만 명의 회원을 가진 화물연대의 노동 거부, 운송 거부로 한 사회의 물류 전체가 마비되고, 문자 그대로 대란(大亂)이 일어나고 말았다.

그 동안 노무현 정권은 ‘물류 선진화’니, ‘동북아 중심 국가 건설’이니, ‘허브 경제’니 하면서 장밋빛 미래를 그려왔는데, 이번 사건은 정권이 꿈꾸는 미래가 물류를 담당하는 노동자의 어깨에 달려있음을 잘 보여주었다. 노동절 집회에서 울려 퍼진 ‘물류를 멈춰 세상을 바꾸자’는 구호를 화물연대가 몸으로 웅변해준 것이다.

물 류를 멈춘 파업은 또한 법적인 노동자성 조차 인정받지 못한 지입차주들의 조직체인 화물연대를 정부 대표와 교섭을 하는 당당한 주체로 만들었다. 화물연대는 지입차주제도 폐지, 다단계 알선 폐지, 도로비 인하, 노동3권 보장 협의, 교통세 인상에 따른 보조금 지급, 산별 중앙교섭 지원 등 법·제도의 개선을 쟁취한 것이다.

지입제와 다단계 알선, 물류대란의 원인

어 느 날 갑자기 돌출한 듯 보이는 이 파업은 사실 화물연대로 결집한 조직화의 결실이었으며, 그동안의 전근대적 착취구조가 빚어낸 모순의 분출이었다. 이번 사태의 본질적 원인은 1997년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에 의해 합법화된 지입제와 (법적으로 금지된) 다단계 알선에 있었다. 현재 사업용 화물차의 90% 이상(약 13만대)가 지입제로 운영되고 있는데, 이는 5톤 이상의 경우 5대 이상이어야 사업자 등록이 가능한 법의 맹점을 이용하여 영세지입차주 기사들의 차량번호판을 등록해주는 대가로 지입료 수입을 챙기는 시스템이다. 운수회사는 운송업 자체보다는 번호판 장사와 지입료 수입을 챙기고, 노동자들은 수천만 원의 돈을 들인 자신의 차량에 대한 소유권도 행사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악덕 운수업자들로 인해 차량이 담보되는 불운을 겪기도 한다.

법적으로는 영세자영업자에 가까운 기사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결코 노동자로 보이지 않는다. 알선업체를 통해 자기 영업을 하고, 운임 중에 자신의 비용을 제외한 수입을 얻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사실 이들 지입차주 대부분은 운수업체가 직접 고용한 정규직 노동자였다가 자신의 의지와는 관련 없이 위수탁 노동자로 바뀌었고, 다시 자영업자로 둔갑한 ‘위장 자영업자’이자 특수 고용 노동자이다.

노 동운동의 성장에 대응하고 인건비를 삭감하기 위해 운수업체들은 퇴직금을 담보로 차량을 불하하여 노동자들을 지입차주로 만들었다. 이들은 강제로 자영업자가 되었으며, ‘종속된 노동자’가 아닌 ‘자유로운 자영업자’라는 이름을 얻은 대가로 산재보험도 적용되지 않고 사고가 나도 자신이 책임을 져야 했다. 뿐만 아니라 영업도 자신들이 직접 알선업체를 통해서 할 수밖에 없었고, 불법적인 다단계 알선으로 수입의 20∼30%를 중간 착취상들에게 뜯겨야 했다. 세제개편을 통해 경유가는 올라가고 고속도로 통행료도 올라가는데 이들의 운임은 그대로였다. 자유로운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이들은 짓눌려지고 으깨어졌으며 파편화되었다. 그러나 인간이 언제나 짓눌리고 으깨어지는 것만은 아니다. 모순과 억압이 축적되면 연대와 조직화라는 대항의 힘이 분출하기 마련이다.

작 년 5월 휴게소 주차공간 확보와 통행료 및 기름값 인하를 요구하며 고속도로에서 50km의 서행운전 시위를 벌인 화물노동자 2명이 구속되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화물노동자들은 TRS(주파수공용통신)를 통해 모금운동을 전개하면서 조직화의 필요성에 공감하였다. 이들은 권익신장보다는 간부들의 이권수단으로 전락한 차주연합회가 아니라 화물운송 노동자로서 조합원의 권익을 위해 싸우는 노동조합을 선택하였다. 전국화물노동자공동연대(이하 화물연대)라는 긴 이름을 가진 이 조직은 현행 노동법상 노동자성을 인정받기가 어려운 만큼 전국운송하역노조의 준조합원 형태로 독자성을 갖기로 한 것이다. 지난 해 10월 부산에서 열린 출범식은 이들의 목마름을 단적으로 드러내주었다. 5백 명이 올 것이라던 출범식에 무려 1천8백 명이 몰려든 것이다. 개인별로 차를 몰고 다니는 이들을 하나로 묶어준 매개체는 바로 TRS였다. 같은 주파수를 공유하면서 이를 통해 화물연대의 조직화는 물론 교육과 투쟁의 3박자를 이뤄낸 것이다.

지 난 11월까지만 해도 조합원이 2천5백 명에 불과했던 이들은 올해 노동절 집회에 무려 1만 명이나 집결함으로써 조직화에 성공했으며, 태풍의 눈이 될 것임을 예고했다. 5월2일부터 이뤄진 물류대란은 이러한 조직화의 성공에 기반한 것이었다.

정부의 안이한 대응

이 번 물류대란은 정부의 안이한 대응과 시스템 부족 문제를 여실히 드러내었다. 화물연대의 조직화가 급격하게 이뤄지던 즈음인 3월24일 민주노총이 주최한 토론회에 정부관계자는 하나도 참석하지 않았다. 3월31일 노동부, 건설교통부, 산업자원부, 재정경제부의 4개 부처 과장들이 모여 화물연대와 간담회를 하였으나 어느 부처도 납득할 만한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 노동부는 노동자가 아니므로 자기 부처 주관이 아니라며 건설교통부로 넘겼고, 건교부는 흔히 있는 집단민원의 하나로 취급할 뿐이었다. 4월30일 건설교통부 장관과의 면담에서도 검토하고 있으니 기다려달라는 말만 되풀이하였다. 사태가 본격화된 5월6일 이후에도 ‘불법파업 엄금’이니 하는 원론적 입장만 주장하는 무능함을 보였다.

화물차를 견인하고 군용화물차량과 화물연대 비회원을 동원하여 물량을 운반하겠다는 대책은 누가 보더라도 비현실적 대안이었다. 이들의 운송거부는 노동자가 아닌 지입차주라는 입장을 정부가 고수하는 한 법적으로 노동자의 불법 파업이 될 수 없었고, 스스로 자신의 일을 하지 않는 것일 뿐이라서 도로교통 방해 이상의 죄를 매기기도 곤란하였다. 또 지도부를 구속하고 차량을 견인하고 소수의 군용 차량을 동원하더라도 이들 화물연대 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업무에 복귀하지 않으면 물류대란은 해결될 수 없었다.

결국 5월13일까지도 ‘선조업 후협상’을 주장하던 건설교통부가 손을 들 수밖에 없었고, 노동부가 주도하는 가운데 협상이 타결되었다. 물론 여러 부처에 걸린 문제에 물류대란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겹쳐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정부의 안이한 대응과 사안에 대한 종합적이고 통일적인 대책의 부재는 사건을 키우기만 했다.

‘위기’와 ‘혼란’을 조성하려는 수구 언론

정 부도 문제지만, 언론도 문제였다. 언론사 가운데 물류대란 이전에 화물연대의 심상치 않은 움직임과 요구를 다룬 곳은 제대로 없었다. 그러다가 5월6일부터 포항에서 물류대란이 본격화되자 모든 매체는 화물연대 기사로 도배하다시피 하였다. 그러나 5월14일 타결 이후 조선·중앙·동아를 중심으로 한 보수 언론은 정부의 친노동자성을 드러낸 ‘일방적 퍼주기’, ‘정부의 백기투항’, ‘정부가 일방적으로 무릎을 꿇었다’라는 식의 비난을 퍼붓기 시작하였다. <건교부장관 혼자 책임질 일인가>(5월17일자 동아), <국가경쟁력 좀먹는 노사갈등>(5월14일자 동아), <밀리기만 하는 협상 반복할건가>(5월15일자 문화), <기업이 노조에 잭나이프 들이대다니>(5월17일자 조선), <불법이라도 파업하면 다 들어주나>(5월16일자 중앙) 등의 사설이 잇따라 실렸다.

보수언론의 작태야 그렇다 치더라도 문제는 이러한 담론이 지배적이 됨에 따라 정부의 대응이 점점 우향우로 변화하는 듯 하다는 점이다. 지난 5월20일 국무회의에서는 ‘화물연대 집단 행동의 원인과 향후 과제’ 보고 과정에서 정부가 국가적 위기상황을 일으킨다고 판단되는 파업과 집단행동 사태가 발생했을 때, 민간의 인력과 장비 징발, 업무복귀 명령 등을 할 수 있는 ‘국가위기대응특별법’ 제정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현행 노동법상 직권중재와 긴급조정제도를 통해 지나칠 정도의 파업권 규제가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권 침해와 노동권 침해를 불러올 특별법을 추진하려는 정부의 안이한 대응과 시스템의 문제를 전시에 준하는 대권을 가지고 풀어나가려는 발상에 벌려진 입을 다물 수 없다.

아 울러 5월21일 청와대는 브리핑을 통해서 “불법파업에는 단호히 공권력을 투입할 것”이라고 밝히는가 하면, 전교조 사태에 대해서도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나서 “국가기능을 거부한다”는 등의 극단적인 표현을 써가며 대량징계를 지시하였다. 한총련의 시위로 5·18 묘역에 뒷문으로 들어가 참배하게 된 노 대통령은 한총련에 대해서도 ‘난동자’라는 표현까지 쓰며 강한 거부감을 나타냈다. 이에 발맞추어 수구 언론은 <공권력 무력화 위기 수준>(문화일보), <정부는 없고 이익집단만 있다>(조선일보), <나라가 흔들린다>(조선일보) 등등의 표현을 써가며 정부의 무능과 위기감을 고조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 스스로도 이러한 위기감을 부추기는 표현을 하며 수구언론의 준동에 발맞추어 가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렇게 될 경우 전교조나 공무원노조의 집단행동은 ‘단호한 공권력’의 모습을 보여주는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크다. 과연 대화와 타협을 주장하며 사회통합적 노사관계를 주창하던 자유주의 개혁세력인 ‘참여정부’의 노동정책이 조기에 무너지고 과거의 공권력에 기초한 산업평화를 주창하던 식의 ‘배제의 노동정책’으로 바뀔 것인지 관심거리가 아닐 수 없다.

노동계, ‘담론의 정치’에 관심두어야

최 근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은 한편으로 노동계의 입장에서 볼 때 ‘투쟁의 정치’뿐 아니라 ‘담론의 정치’에도 보다 관심을 기울일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전교조와 공무원노조의 투쟁, 6∼7월의 임금인상 투쟁, 노동시간 단축을 둘러싼 투쟁 등 대규모 투쟁이 연속으로 예고되어 있다. 자유주의 정권의 등장과 더불어 조합원의 요구가 터져 나오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그동안 역대 정권 하에서 짓눌려온 투쟁이 분출하기도 한다. 따라서 노동계로서는 투쟁의 고삐를 쥐고 조직화하는 데 힘을 기울이는 것은 당연한 노릇이다. 그러나 짓눌린 노동자의 인권의 외침을 <노조 공화국>(중앙일보)이니 <노조의 끝없는 외침>(한국경제신문)이니 하면서 공격하고 정부에게 ‘단호한 공권력 행사’를 주문하는 수구 언론의 준동을 그대로 보고 있을 때에는 요구를 쟁취하기에 어려움이 중첩될 수밖에 없다.

담론의 정치에서 패배하면 필연적으로 현실의 정치에서 패배하고 만다. 전교조, 공무원노조 의 투쟁 역시 이러한 대비를 하지 못할 시, 승리하기 어려울 것이다. 노동자는 투쟁 속에서 단련된다고 누군가는 말한다. 옳은 말이다. 그러나 이길 수 있는 투쟁에서 패배했을 때에는 많은 전사자와 낙오자가 발생한다. 투쟁력을 회복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생기는 것은 물론이다. 현 국면을 살펴볼 때 수구세력의 저항이 광범위한 힘을 얻고 있으며, 그 힘은 현재 수구 언론에서 나오고 있다. 여기에 개혁적 자유주의 세력이라는 현 정권의 무능과 오락가락이 수구세력의 준동을 부추기고 있다.

방미 과정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극단적이라고 느낄 정도로 친미 일변도의 모습으로 일관했다. 그리고 토론을 좋아한다던 그가 한총련과 전교조를 일방적으로 매도하고 대화를 단절하고 있다. 대북관계도 DJ의 햇볕 정책으로부터 후퇴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맞아 노무현 정부를 지지하던 층으로부터 혼란이 일고 있으며, 지지의 철회가 나타나고 있다. 이에 비례해서 정권의 권위주의로의 복귀 징후가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노동계의 입장에서 볼 때, 자유주의적 개혁주의에서 권위주의로의 후퇴는 억압적 노사관계와 공권력의 남용, 대규모 구속자의 양산이라는 과거의 낡은 틀로 이어질 것이다. 따라서 과도기인 지금 시점에서 노동계로서는 투쟁의 조직화와 더불어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인사들이 여론과 담론의 중심에 설 수 있도록 사회적 연대를 넓고 깊게 만들어야 한다. 이를 통해 인권과 노동과 연대의 목소리가 큰 힘이 되도록 해야 한다. 거리에서의 외침만큼이나 인터넷 매체와 개혁적 언론에서도 노동의 입장이 반영되고 울려 퍼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투쟁의 다양한 수단과 무기로 단련되지 않은 노동자는 패배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화 물연대의 요구를 대부분 수용한 것이 정부의 굴복을 뜻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동안 왜곡되고 낙후되었던 물류 시스템을 정상적으로 만든다는 의미가 더 크다. 한총련 문제나 전교조 문제, 그리고 공무원노조 문제 모든 것이 민주주의 사회라면 치러야 할 비용의 성격을 띠고 있다. 민주주의 사회가 치러야 할 당연한 비용을 ‘혼란’과 ‘위기’로 몰아붙이고, 공권력과 비상조치에 의존하려는 발상은 권위주의의 잔재일 뿐이다. 노무현 정권은 이전의 민간정부들이 왜 실패했는지를 곰곰이 돌아봐야 할 것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7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