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님, 그냥 사진이나 찍고 오실 것을

노동사회

노 대통령님, 그냥 사진이나 찍고 오실 것을

admin 0 2,689 2013.05.11 10:07

노 무현 대통령의 미국 방문 결과는 매우 충격적이다. 한반도 평화를 열망하면서 북한 핵문제의 실마리를 풀어 오리라 기대했던 사람들은 큰 실망감에 빠졌다. 특히 지난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를 지지했던 사람들은 깊은 배신감을 느끼고 있는 듯하다.

노무현 대통령은 평소 “미국에 사진 찍으러는 가지 않겠다”고 말해 왔다. 그런데 이번 방미 결과를 보면, 차라리 그냥 사진이나 찍고 오지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도대체 왜 미국에 간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평소 강조해 왔던 ‘당당한 외교’니 ‘대등한 한미관계’는 고사하고 미국의 비위나 맞추는 친미사대적인 발언과 민족의 이익과 자존심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친 대미 굴욕외교만을 보여 주었을 뿐이다. 스스로의 자화자찬에도 불구하고 공동성명의 내용은 미국의 정책과 입장을 사실상 그대로 수용하고 추종한 내용들로 채워져 있다. 실제로 알맹이가 하나도 없다.

알맹이 없는 방미 결과

방미 기간 중 노 대통령이 한 잇단 친미발언들은 국민들을 어리둥절케 한다. 단지 외교적 성과를 위한 ‘외교적 수사’라고 하기에는 너무 지나친 발언들이었다. 노 대통령은 정상회담 뒤 기자간담회에서, “미국과 합의를 얻기 위해 왔는데 미국에 듣기 싫은 소리, 나쁜 소리, 입바른 소리나 한다면 되겠는가”라고 항변한 것은 우리를 더욱 실망시킨다. 한 나라의 국가원수로서 정상회담을 위해 방문했으면 상대에게 듣기 좋은 소리를 하더라도 좀 당당하고 품위 있게 말할 수는 없었나. 외교부 미주국장 정도가 상대국의 체면을 세워주기 위해 예의상 립서비스로 말했어도 자존심 상했을 내용들이다.

더욱이 15일 미국 PBS와의 인터뷰에서 행한 발언들은 노무현 대통령의 한반도 정세와 통일문제에 대한 인식과 관련해 매우 충격적인 내용들을 담고 있다. 눈과 귀를 의심할 정도이다. 노 대통령은 “부시 대통령에게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을 중단할 것을 요구했느냐”는 질문에 “그런 요구를 하지 않았다”고 말하면서 사실상 미국의 군사적 행동에 동의할 의사가 있음을 밝혔다. 또한 “북한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나는 북한을 믿을 만한 파트너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그 정권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싫든 좋든 북한과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어가야 할 상황에서 북한의 강한 불만과 거부감을 불러일으킬 신중치 못한 발언이다.

자화자찬에도 불구하고 이번 방미는 한마디로 졸작이고 실패이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노 대통령과 주변의 외교안보 책임자들이 이번 방미 결과와 공동성명이 지니고 있는 문제점들에 대해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부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북한 핵문제를 평화롭게 해결하기로 미국과 합의했고, 미국으로부터 미 2사단의 후방 재배치를 유보하기로 약속을 받은 것을 가장 큰 성과로 꼽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이것은 미국의 립서비스에 놀아간 것에 불과하다.

북핵 해법 더 어려워져

우리의 가장 큰 관심사는 한반도를 위기상황으로 몰아넣고 있는 북한 핵문제와 관련해 미국으로부터 평화로운 해결에 대한 확고한 확답을 받고, 그 해결을 위한 실마리를 찾는 것이었다. 그러나 회담 결과는 군사적 방법을 포함한 미국의 강경입장에 동조하고 이를 사실상 승인하고 말았다. ‘평화적 수단’을 통해 해결하기로 한미간에 합의했다고 하나, 이것은 그동안에도 부시를 비롯해 미국의 고위관리들이 밝혀온 일반 원칙을 재천명한 것에 불과하다.

오히려 ‘추가적 조치’의 가능성을 열어 놓음으로써 미국이 경제제재와 해상봉쇄 그리고 군사행동을 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 주었고, 북한 핵문제의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든 꼴이 되었다. 정부는 ‘추가적 조치’가 당장 실행되는 것이 아니라 북한의 핵보유가 사실로 드러나는 상황을 가정한 것에 불과하며,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북한에 대한 여러 가지 압박 수단을 열어놓는 것이 유익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정부의 이러한 판단은 북한 핵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결과이다. 지금 북한 핵문제가 풀리지 않고 있는 까닭은 북한을 압박할 수 있는 다양한 옵션이 없어서가 아니다. 그동안에도 미국은 북한에 대해 북폭을 비롯해 군사행동 가능성을 여러 차례 흘려 왔다. 심지어 정상회담을 전후해서도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외교안보 보좌관 등도 이런 발언을 했었다.

북한 핵문제가 풀리지 않는 것은 미국의 비타협적인 자세 때문이다. 미국은 ‘선 핵포기, 후 협상’을 주장하면서 사실상 북한과 대화를 거부해 왔다. 이것이 북한 핵문제가 풀리지 않고 있는 근본적 이유다. 북한이 이른바 ‘새롭고 대담한 제안’을 한 지난 베이징 3자회담에서도 미국의 이러한 비타협적 자세는 조금도 변화가 없었다. 이번 한미공동성명에도 이러한 미국의 비타협적인 입장이 그대로 들어 있고 한국은 여기에 동의해 주었다.

공 동성명은 북한 핵프로그램의 “완전하고 검증가능하고 되돌릴 수 없는 제거”를 요구하고 있다. 이것은 이른바 ‘과거핵’을 포함해 북한의 모든 핵을 무조건 제거하고 이를 검증절차를 통해 확인한 후에야 비로소 북한과 대화하겠다는 것이다. 적어도 수년 이상이 소요될 일을 완료해야 대화를 하겠다는 것은 사실상 대화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더구나 미국의 일방적 요구는 북한으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다. 무장해제하고 항복하라는 소리와 똑같기 때문이다. 북한의 입장은 자신의 핵포기와 미국의 북한체제 보장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미국이 북한의 체제를 보장해 준다면 핵포기를 받아들이겠다는 것이다.

한반도 냉전체제의 유지를 원하는 미국

이 번 북한 핵문제의 배경에는 미국의 NSA(소극적 안보보장: negative security assurance) 위반이 자리잡고 있다. 북한의 NPT 탈퇴선언과 불가침조약 체결 요구도 이와 깊은 연관성이 있다. 어떤 국가가 핵무장을 포기하고 불평등한 NPT(핵무기확산금지조약)체제에 편입되기 위해서는 중요한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핵무기 국가들이 해당 비핵무기 국가에 대해 핵무기를 사용하거나 사용하지 않겠다는 안보보장을 해주어야 한다. 이것을 전문용어로 ‘소극적 안보보장(NSA)’이라고 한다. 1970년 NPT의 탄생과 1995년의 재연장 합의는 핵무기 국가와 비핵무기 국가간에 이런 약속과 전제에서 가능했다. 더구나 미국은 1994년 「북미제네바합의문」 제3조 1항에서 북한에 대해 이 NSA를 문서로써 약속한 바 있다.

그런데 미국이 이러한 NSA 약속을 정면으로 깬 것이다. 이것이 북한 핵파문의 본질이다. 미국 국방부가 2002년 1월8일 의회에 제출한 「핵태세보고서(NPR: Nuclear Posture Review)」와 9월20일 백악관이 발표한 「미국의 국가안전보장 전략(The National Security Strategy of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보고서는 기존의 전략을 수정하여 핵무기를 선제공격용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언급하면서 잠재적 공격대상 국가로 북한을 거명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이 핵을 포기하기 위한 전제조건은 미국이 신뢰할 수 있는 방법으로 북한의 체제안전을 보장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북한 핵해법의 실마리를 푸는 방법이다.

미국도 이것을 모를 리가 없다. 그럼에도 부시 행정부가 입장을 누그러트리지 않고 비타협적인 자세를 취하는 것은 목적이 다른 데 있기 때문이다. 이라크전이 끝난 상황에서 미국은 일방주의적 패권주의 정책과 MD(미사일방어)계획, 핵무기 선제사용전략의 명분을 확보하고 정당화 시키기 위해서 새로운 적이 필요하다. ‘북한위협론’의 명분을 만들어야 하고 ‘북한위협론’을 계속 유지해야 하는 것이다.

이번 북한 핵문제는 충분히 조기에 수습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사태가 극단의 상황으로까지 악화된 데는 미국의 책임이 크다. 미국은 의도적이라고 할 만큼 북한 핵파문을 악화일로로 몰고 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북한 지도부의 안일한 현실 인식과 상황판단의 미숙, 미국의 전략에 말려든 무모한 맞대응도 사태 악화에 한 몫을 했다.

미국은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보다는 북한을 계속 벼랑 끝으로 몰아, 사태를 악화시키고 오히려 북한을 핵개발 일보직전까지 가도록 만들었다. 미국이 정말 북한 핵문제를 해결할 의사와 의지가 있었다면 얼마든지 조기에 수습할 수 있었다. 미국은 처음부터 북한과 어떤 협상도 할 의사가 없었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가 미국의 일방적 주장에 동조해 버림에 따라 북한 핵문제의 해결은 더욱 어렵게 되었다.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해 우리 정부가 할 수 있는 역할의 여지를 스스로 없애버린 결과를 가져왔다. 게다가 3자 회담에 한국과 일본이 참여하는 5자회담을 동의해줘서 미국의 일방적 주도에 끌려다니게 되었다. 미국이 일본 참여를 요구하고 있는 배경은 경제 부담을 떠넘기려는 의도도 있지만 그 보다는 북일관계의 진전을 자신의 통제아래 두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 미국은 작년 고이즈미의 평양방문을 계기로 급속히 진전되던 북일수교 협상에 크게 놀란 바 있다. 사실 이것이 작년 10월, “북한이 농축우라늄으로 핵개발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고 미국이 일방적으로 발표하면서 북한의 핵의혹을 확대시킨 배경이기도 하다. 일본을 다자회담에 끌어들이고 북일수교를 북한 핵문제와 연계시킴으로써, 북일관계 정상화를 통제하고 한반도에서 냉전체제가 해체되는 것을 억제하려는 것이 미국의 의도이다.

남북문제 해법 비전 없는 정부가 문제

미 국은 공동성명에서 남북교류를 북한 핵문제와 연계시키는데 성공하여 남북관계마저 속도조절과 통제가 가능하게 되었다. 노무현 정부는 북한 핵문제와 남북교류의 병행추진 원칙을 포기하고 이 두 가지를 연계시키기로 함에 따라, 북한 핵협상과 남북관계에서 역할과 발언권을 축소하고 스스로 손발을 묶는 어리석음을 저질렀다. 1993년과 1994년의 북한 핵사태 당시와 같은 상황이 되풀이될 가능성이 커졌다. 당시 김영삼 정부는 대북강경론만을 고수하다 결국 남북관계가 단절되고 북한 핵협상에서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한 채 미국에 끌려다니다가 경수로 비용만 부담하는 꼴이 되었다.

정부가 또 다른 성과로 꼽고 있는 미 2사단 후방 재배치의 유보도 실질적인 내용이 없는 것이다. 공동성명에도 나와 있듯이 미 2사단 재배치는 취소된 것이 아니라 단지 시기가 다소 늦추어진 것에 불과하다. 미국은 주한미군의 재배치를 계속 추진하겠다는 것을 공동성명에서 분명히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정상회담 후에도 미국의 럼스펠드는 기자회견을 통해 주한미군의 감축과 재배치가 계속 추진될 것임을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당초의 계획대로라도 미 2사단 재배치는 1∼2년 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상당기간이 걸린다는 점에서 이번 합의는 그저 립서비스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우리 정부는 별것도 아닌 것을 얻어내기 위해 반대급부로 미국에 상당한 양보를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용산미군기지의 이전을 비롯해 주한미군 재배치에 따른 부지 마련과 이전비용에 관한 협상에서 일방적으로 양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 미국은 MD계획에 한국 참여와 관련 장비 및 무기 구매를 강요할 것이고 주한미군 분담금의 증액도 요구할 것이 뻔하다.

이번 한미정상회담을 계기로 미국은 다시 한반도에서 확고한 주도권을 장악할 수 있게 되었다. 더구나 북한의 핵보유 시인 발언으로 북한의 핵보유 의혹을 증폭시키는데 성공함에 따라 북한 핵문제를 중심으로 한반도와 동북아의 위기상황을 질질 끌고 가면서 미국의 정책과 전략의 명분을 쌓으면서 동시에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는 유리한 상황을 조성하는데 성공했다. 또 한미관계를 여전히 굴종과 불평등과 주종관계의 틀에 묶어 놓을 수 있게 되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미국과 부시에게 코드를 맞추고 온 결과는 한반도 평화와 민족의 장래에 어두운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현 정부가 한반도 평화와 남북문제를 해결할 비전과 정책을 가지고 있는지 의문이다.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현 정부의 외교안보 책임자들의 잘못된 상황인식과 무능이 여실히 드러났다. 자화자찬에 빠져 있는 이들은 이번 정상회담과 공동성명이 얼마나 잘못된 것이고 앞으로 얼마나 참담한 결과를 가져올 지에 대해 아직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그것을 깨닫는 데는 불과 몇 달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7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