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별교섭의 현황과 과제

노동사회

산별교섭의 현황과 과제

admin 0 2,894 2013.05.11 10:03

금 융, 보건, 금속, 증권을 비롯한 산별노조들을 중심으로 산별교섭 요구가 증가하고, 작년 금속과 보건의 장기파업이 원인이 교섭구조의 개편과 관련이 있는 등 교섭구조의 변화를 둘러싼 노사간의 대립이 잦아지고 있다. 그러나 경영계가 아직까지도 기업별 체제를 선호하여 노조의 산별전환을 따라오지 못하는 한계가 있고, 법제도의 변화도 지체되고 있는 등 공식적으로 산별교섭 체계를 둘러싼 노사정 3자의 적극적인 논의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노동조합에서 산별로의 전환이 끊임없이 얘기되었지만 진척이 느렸던 점을 감안한다면 올해 금융, 보건, 금속을 비롯한 산별노조들의 교섭은 주목할 가치가 있다.

금융노조, 사용자단체 구성 완료

지 금까지 3년의 산별교섭 경험을 가지고 있는 금융노조의 올해 교섭형태는 사용자측의 변화로 예년과 달라지고 있다. 31개 사업장 사용자가 전국은행연합회에 교섭권, 체결권, 교섭위원 선정권을 위임하여 사실상 사용자단체의 역할을 시도함으로써 실질적인 산별교섭의 형태에 한 걸음 더 다가가게 된 것이다.

산별노조 중 공동단협과 공동임금협약을 가장 먼저 체결한 금융노조는, 2002년에는 주5일제 협약을 쟁취함으로써 주40시간제가 법제화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은행권 전체의 주5일제를 실현한 경험을 갖고 있다. 물론 조합원들의 관심이 임금과 복지에 집중되는 반면 단체협약에 대해서는 관심이 소홀한 편이어서, 사실상 산별협약 이후 지부의 보충협약이 중요해지는 문제점을 노출하기도 했지만 산별교섭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해 왔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5 월19일 교섭을 시작한 금융노조와 은행연합회는 임단협 개정요구안 확인, 교섭방식, 교섭위원 선정 및 교섭일정에 대해 논의했다. 교섭의 내용으로 노조측 요구안을 정식의제로 채택, 정규직·비정규직 임금 11.4% 인상, 모성보호 조항 강화를 포함해서 일반단협 121개 조항, 고용안정협약 12개 조항, 경영참가협약 13개 조항 등을 다룰 계획이다. 이 과정에서 노사는 사용자단체 대표로 ‘은행연합회’와 노조대표로 ‘금융노조’를 인정하는 것에는 합의하였으나, 교섭위원 선정과정을 둘러싸고 노사간 의견대립으로 합의를 찾지 못한 채 정회되었다. 그러나 5월22일 2차 회의에서 노사는 교섭위원을 각 7인으로 구성하며, 노측은 이용득 금융노조 위원장을 포함한 7인의 대표자로, 사측은 은행연합회 신동혁 회장을 포함한 은행장급 7인으로 합의함으로써 교섭 전망을 밝게 했다. 또한 금융노조와 은행연합회 노사 양측은 오는 5월26일부터 2003년 임단협 실무자교섭을 개최키로 하였고, 이어서 오는 6월4일 노사교섭위원을 중심으로 하는 차기 교섭일정에 합의했다.

은행연합회가 실질적으로 사용자단체들에 대해 통제력을 갖고 교섭에 대응함으로써 올 산별교섭은 과거 어느 해보다도 힘이 실릴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비정규직 문제 등 교섭 내용이 쉽게 해결될 수 있는 사항이 아니고 은행별로 편차가 심해 은행연합회가 이 부분을 어떻게 조율하느냐가 교섭의 관건이 될 전망이다.

금속노조, 집단교섭에서 중앙교섭으로

기 본협약과 주5일제, 비정규직을 비롯한 교섭내용으로 중앙교섭을 하는 금속노조의 산별교섭은 금융노조의 그것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작년의 지부별 집단교섭에서 한 단계 진전한 교섭형태로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금융노조와 달리 공동교섭의 경험이 없는 데다, 두산그룹 박용성 회장의 전근대적 노조관에서 볼 수 있듯이 금속 사용자들의 경우 금융권 사용자와 달리 산별노조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어 금속의 산별교섭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재 금속의 산별교섭은 중앙교섭과 지부집단교섭, 대각선교섭으로 진행되고 있다. 중앙교섭에서는 기본협약(유효기간, 자동갱신조항)과 노조의 4개 통일요구안(주5일제, 비정규직, 근골격계, 조합활동 보장)을 다루며 노조의 중앙교섭위원은 18명, 사용자 교섭위원은 15명이다. 한편 지부집단교섭에서는 지부공동 요구와 임금인상 요구를 다루고 대각선 교섭에서는 사업장 단협을 다룰 전망이다. 중앙교섭이 결정된 지난 4월30일 전까지 금속노조는 사용자측의 준비가 미약한 점을 감안하여 산별 중앙교섭을 2004년 이후의 과제로 설정하고, 4월1일 상견례를 시작으로 지부별 집단교섭을 지부별로 5∼7차까지 진행한 상태였다. 이처럼 집단교섭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갑작스럽게 중앙교섭을 갖게 된 원인은 사용자측으로부터 사용자 대표단을 구성할 테니 중앙교섭을 하자는 요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따라 금속노조는 4월30일 임시대의원대회에서 중앙교섭 추진에 관한 건을 논의하였다. 중앙교섭에 대한 준비 부족과 교섭 내용을 둘러싸고 많은 의견들이 오고 갔으나, 78.6%의 찬성으로 중앙교섭을 하기로 결정했다.

2003년 5월6일 첫 중앙교섭을 시작으로 세 차례에 걸쳐 중앙교섭을 벌인 금속의 산별교섭은 사용자측이 교섭장소, 참관인 문제 등을 놓고 ‘트집잡기’를 하고 있어 교섭이 진척되고 있지 않은 상태이다. 게다가 사용자측이 3차 교섭까지 요구안을 준비하지 못하는 등 중앙교섭을 하고자 한 의도를 의심케 하고 있다.

한편 이번 중앙교섭에 임하고 있는 사업장들의 지불 능력과 업종, 조합원 규모가 천차만별이라 사측의 의견조율이 중앙교섭의 최대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현대차노조, 대우조선노조, 대우종합기계 등 금속연맹 산하 산별 미전환 노조의 산별전환 실시 투표가 얼마 남지 않아 금속노조의 중앙교섭 결과가 산별전환 투표에 영향을 미치리라 전망된다. 이처럼 산별조직에 대응하는 산별 중앙교섭이라는 큰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한계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애초 노조가 올 중앙교섭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중앙교섭이 성사되어 중앙교섭에 대한 준비가 미흡하고, 교섭대상도 기본협약과 통일요구안에 머물고 있다. 금속노조는 준비가 부족하지만 사용자의 교섭요구에 제대로 대응하기 위해서 현장의 투쟁력을 바탕으로 사용자의 적극적인 교섭 자세를 끌어낼 작정이다.

보건의료노조, 산별 집단교섭으로 돌파

보 건의료노조의 산별교섭 상황도 올해들어 새롭게 변하고 있다. 그동안 보건의료노조는 다양한 방식으로 산별교섭 제도화를 모색해 왔으며, 2002년에는 지방공사의료원 27개 지부에서 집단교섭이 성사되었다. 그리고 단협에서는 63개 병원에서 “노조가 산별교섭을 요구할 시 이에 응한다”는 문구로 합의되었다.

보건의료노조는 2003년 4월 임시대의원대회를 통해 사용자단체가 정식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은 조건을 고려하여 산별 통일교섭은 어렵더라도 과도기로 보견의료노조 산하 노사 전체가 참여하는 산별 집단교섭을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교섭의 형태는 1단계 시기에서는 산별 집단교섭과 지부교섭을 병행하되 지부교섭에서는 지부 요구안을 다루지 않으며, 2단계에서는 대정부교섭과 산별 집단교섭과 함께 지부교섭을 병행, 3단계에서는 산별 집단교섭과 지부 요구를 동시에 쟁취하기 위한 집중교섭과 총력투쟁을 배치한 상태다.

현재 두 차례에 걸쳐 산별교섭 상견례 시도와 두 차례에 걸친 간담회를 개최했다. 이 과정에서 사용자들의 간담회 참석은 높으나 실질적인 상견례 참여는 상대적으로 높지 않다. 그렇지만, 점차 참여하는 사용자 대표들의 수가 26개 단체에서 39개로 높아지는 등 산별교섭에 대한 태도가 변화하고 있어 산별 집단교섭 성사 전망을 조심스럽게 점치고 있다.

보건의료노조는 일단 5월말 6월초를 산별교섭 성사여부의 분수령으로 보고 있는 가운데 사용자들의 참여율을 높이고자 5월 20일, 21일 산별교섭 성취를 위한 상경투쟁을 벌였으며, 상견례 자리에 참석한 사용자대표들에게 산별교섭 참가확인서를 받는 등 압력을 가하고 있다. 산별 집단교섭 성사를 위한 적정 사용자 수를 얼마큼 확보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 되고 있다.

금융과 금속노조가 산별 중앙교섭을 시작한 가운데 교섭위원과 교섭내용 등을 놓고 교섭이 지체되고 있는 반면, 보건의료노조는 산별교섭의 성사 여부를 놓고 사용자들의 눈치보기가 극심한 상태이다. 그러나, 병원협회를 중심으로 산별교섭의 참가여부 설문조사, 노동정책에 대한 강연회 개최, 이사회에 산별교섭 참여문제가 정식 안건으로 상정되는 등 산별교섭의 시대적 흐름에 대응하기 위한 사용자들의 변화가 눈에 띤다.

정부·사용자의 인식전환 절실

현재 민주노총 산하 산별노조 조직율은 40%가 넘고 있지만, 산별교섭의 진행은 조직화에 비해 순조롭지 못하다. 이처럼 ‘조직 구조와 교섭 구조의 불일치’가 심한 까닭은 몇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첫 째는 사용자들의 산별노조에 대한 인식과 사용자단체 구성의 문제이다. 지난 5월21일 노동연구원 주최의 산별교섭에 관한 토론회에 참석한 보건과 금융 사용자, 경총 관계자들은 공통적으로 산별노조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음을 피력했다. 경총의 이동희 정책본부장은 “경영계는 노조가 기업단위 문제의 해결을 위해 옷만 바꿔 입은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는 원색적인 표현까지 쓰며, 이중교섭의 문제와 산별노조의 경직성에 대해 경영계가 갖는 불만을 토로했다. 한편 병원 관계자는 “산별교섭을 병원의 생사가 걸린 문제”로 파악하는 등 산별교섭을 하면 노동자에게만 이익이 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처럼 부정적 인식을 깔고 있기 때문에 자발적인 사용자단체 구성을 기대하기는 매우 어렵다. 따라서 노조의 압력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정부도 사용자의 인식 전환을 위해서 노력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산별협약의 적용 범위를 확장하는 등의 산별교섭의 진전을 위한 환경을 조성함으로써 사용자가 적극적으로 산별교섭에 응하도록 하는 장치가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둘째는 기업별 체제를 바탕으로 하는 현행 노동법의 문제이다. 현행 노조법 시행령 제7조에 따르면 산별노조 산하 지부·지회가 따로 단체교섭을 할 수 있어 산별노조에 악영향을 미치는 조항으로 지목받고 있다. 또한 노동부가 유권해석으로 산별노조 산하 지부, 지회에 총회를 통해 산별노조를 탈퇴할 수 있다고 함으로써 산별노조 체계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기도 하다.

이처럼 산별교섭을 위한 조건들이 미흡한 가운데서도 기업별교섭에서 산별교섭으로의 전환이 조금씩 진전을 보이고 있는 것은 노조가 기업별체제에서는 IMF 이후 제기 되고 있는 고용 문제와 비정규직을 비롯한 노동문제를 풀기 어렵다는 인식이 깔려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금융, 금속, 보건노조의 2003년 산별교섭은 진행 정도에 따라서 편차가 존재하지만, 지금까지 한국 노사관계가 기업별노조 체계와 교섭 구조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괄목할 만한 성장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올 산별교섭이 진행중인 노조들의 결과는 향후 노사관계의 방향을 가늠하는 척도로 작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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