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정치세력화의 동지, 김 형에게 보내는 편지

노동사회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동지, 김 형에게 보내는 편지

편집국 0 3,172 2013.05.05 04:53

김 형, 세월이 참 잘도 흐르는구려. 쏜살 같이 빠르다는 세월의 흐름을 새삼 절감하는 가을입니다 .

그러니까 꼭 10년 전, 민주노총 초대 위원장 권영길 위원장이 김 형의 입장에서 보면 충분한 논의도 없이, ‘상층의’ 갑작스런 결정으로 대통령 후보로 나서면서 김 형과 제가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지요. 

벌써 10년의 세월이 흐르고 이제 다시 권영길 후보가 세 번째 대통령 후보로 나섰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우리는 ‘노동자 정치세력화’에 관해서 여러 가지 경험을 했습니다. 다양한 희망과 좌절을 느꼈고, 기쁨과 슬픔을 맛보았습니다. 덕택에 이제는 노동자 정치세력화에 대해서 무언가를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합니다. 

이제는 우리 경험을 통해서 반성과 전망이 가능한 시점이 된 겁니다. 말로만 듣고 책에서만 보고 이론으로만 알았던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이제 우리의 구체적인 현실문제가 된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이번 대통령 선거운동 과정이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대중적으로 반성하고 전망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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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25일 개최된 2007년 민주노총 단위사업장 대표자 수련대회 중 노동자 선거대책본부 발족식 모습. ▶ 민주노동당 ]

그렇지만,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아직 미완성입니다.

김 형, 먼저 미안하다는 말씀부터 드립니다. 노동자 대중정당을 만들겠다던 우리의 굳은 약속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음을 솔직하게 인정합니다. 그동안의 애씀에 비해서 성과가 작은 것 같기도 합니다. 저같이 노동자계급의 ‘충직한 머슴’을 자처하며 노동운동의 정치세력화를 도와온 사람들의 노력 부족이라 생각됩니다. 

김 형은 애초부터 정치세력화에 대해 회의적이셨지요. 김 형이 정치는 “먹물 먹은 사람들의 일이고 노동자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말씀하실 때 저는 아니라고 강변했지요. 그런데 지금에 와서는 김 형에게 제가 할 말이 없게 되었습니다. 작금 현실이 노동자들이 진보정치의 주체로 나섰다고 말하기 힘든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조금 삐딱하게 보면 민주노동당은 아직 노동자 대중정당이 아닙니다. ‘청년당’이고 ‘먹물운동권당’입니다. 그렇게 말하면 저 역시 김 형에게 사기를 친 것이 됩니다만, 어쨌든 지금까지 우리가 해온 일들에 시행착오가 많았습니다. 당세 확장에 급급하여 때때로 어느 정도 노동자 정당의 길을 벗어나기도 했음을 고백해야 할 것 같습니다. 

노동자들이 얇은 지갑을 열어서 당비를 내고 세액공제 후원금을 내고, 그도 모자라 선거철마다 특별당비를 내주셨는데, 지난 10년 동안 월차 휴가를 내고 아니면 출근 전 새벽에 일찍 나와서 퇴근 후 밤중까지 선거운동을 했는데, 아직도 우리는 온전한 노동자정당을 만들어내지 못했습니다. 

김 형, 그렇다고 포기하거나 절망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아직 ‘미완성’입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이 전부는 아닐 것입니다. 지금 시작하는 새로운 출발은 그래도 10년 전보다는 훨씬 나을 겁니다. 특히 우리가 지난 경험을 통해 배운 ‘민주주의 정치철학’과 ‘선거 제도’는 중요한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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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26일 민주노동당 익산시위원회에서 열린 한솔홈데코, 동양실리콘 노조 조합원 105명의 집단입당 기자회견. 민주노동당이 ‘노동자정당’이 되기 위해서는 노동자 당원들의 활동이 더 왕성해져야 한다. ▶ 민주노동당 ]  

대선은 ‘노동자정당’으로 가는 시작이어야 합니다.

김 형, 그래서 저는 이번 대통령 선거를 통해서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다시 시작하자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경험을 토대로 새롭게 출발하자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올해 대선은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이제 진정한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시작합시다. 이제 제대로 한 번 해보자는 겁니다.

민주노동당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냉소주의로 흐르지 말고, 다시 “다 도둑놈들이야!”라는 반(!)정치주의로 돌아가지 말고, 혹시 우리의 책임은 없는지 돌아봅시다. 심지어 노동자 도시인 울산이나 창원에서마저도 민주노동당이 노동자당이 아니라 청년당이 된 것은 노동자에게도 책임의 일부가 있습니다.

김 형, 저는 지금 마산 댓거리분회 분회장입니다. 그런데 우리 분회에는 두산중공업을 비롯한 창원공단의 여러 사업장에 근무하는 노동자 당원들이 20명이 넘습니다. 그런데 이 분들 중에 분회 모임에 나오시는 분은 두 분밖에 안 됩니다. 분회 모임에 참여하는 것이 당 활동의 다는 아니지만, 어쨌든 그만큼 민주노동당 활동에 참여들을 잘 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니 운동권 청년들이 당 활동을 주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차라리 노동현장분회를 더 많이 만들어서 참여율을 높이든지 무슨 방법을 강구해야 합니다. 이렇게 노동자들이 지역분회와 지역위원회 활동에 거의 참여를 안 하니 노동자의 당이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노동자는 단지 돈만 내고 표만 주는 들러리입니까?

이제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노동자계급의 힘을 보여줄 때가 되었습니다. 민주노동당을 딛고 넘어서서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새로운 전망을 열어젖힐 때가 되었습니다. 조직된 노동자와 노동조합이, 동원되는 대상이 아니라 당당한 주인의 자리로 돌아가서 새로운 그림을 그릴 때가 되었습니다. 

정직하지 못한 노동운동은 그만둡시다

우리나라 노동운동은 언제부터인가 “내 월급 올리는 노동운동”으로 위축되고 말았습니다. “노동을 해방시키고 사회를 혁명하자”던 호기나 “국민과 함께 가자”던 굳은 약속은 어디로 갔습니까? 우리가 의식하지도 못한 새에 어느덧 상황이 이렇게까지 된 데에는, 무엇보다도 정직하지 못한 노동운동을 해왔던 탓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정직한 노동운동을 합시다. 공연히 명분론에 치우쳐서 허세만 부리는 노동운동을 하지 맙시다. 실제와 언어, 행동과 말, 이론과 실천의 괴리가 너무 벌어졌습니다. 정직하게 자신의 위축된 모습을 보고 고뇌하여, 다시 모든 노동자와 모든 국민을 함께 살리는 노동운동으로 돌아갑시다.

노동조합이 대중조직으로서 당연히 조합원의 임금인상에 가장 일차적인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면, 진보정당, 노동자정당을 통해서는 보다 넓은 의미의 노동운동, 모두를 위한 노동운동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곧 노동운동의 시야와 실천 영역을 넓히는 과정일 것입니다.   

노동자계급이 노동조합 운동만 하지 않고 골치 아프게 정치도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조직되지 않은 노동자들을 위한 노동운동, 농민과 영세 자영업자, 다양한 계층의 서민들을 위한 노동운동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살 만한 나라, 복지국가를 건설하는 노동운동을 하기 위해서 입니다. 

지금 노동운동은 ‘집단 이기주의’로 규정되어 국민들의 신뢰나 기대, 지지를 받지 못하고 고립되어 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대통령 선거운동은 민주노총에 대한 미조직 노동자들의 인식, 서민들의 인식, 국민의 인식을 바꾸어 놓는 운동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노동운동을 한 단계 격상시키는 일입니다.

김 형, 원래 민주주의는 노동자의 것입니다.  

김 형, 지난 10년의 경험에서 가장 값진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경험인 것 같습니다. 민주주의는 실은 세계 노동운동이 100년간의 기나긴 투쟁을 통해 쟁취한 것입니다. 그만큼 민주주의는 우리 노동자에게 뜻 깊은 무기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민주주의를 우리 것이라 여기지 않고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모든 국민이 왕이라는 정신입니다. 그렇다면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숫자가 많은 노동자계급이 자본가계급에 비해 절대적으로 유리합니다. 1인1표 보통투표제도 속에서 노동자계급이 민주주의를 잘 알고 사랑하고 현명한 전략과 전술을 가지기만 한다면, 현대 민주주의는 노동자계급에게 훌륭한 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선거에 대한 부정인 인식, 패배주의적 사고, 심지어 피해의식마저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그럴만한 좌절의 경험과 좋지 않은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역시 우리가 민주주의에 적응을 잘 못함으로 비롯된 것이지, 숙명적으로 그런 것이 아니고, 우리의 힘이 없어서는 더욱 아닙니다.

노동자의 힘은 바로 민주주의를 통해서 더욱 빛날 것입니다. 민주주의를 통해서 계급투표와 노동자정당 건설을 통해서, 조직된 노동자는 조직되지 아니한 노동자와 동지가 되고, 노동조합의 힘은 배가되고 진정한 계급이 형성될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이러한 과정들이 노동조합운동도 강화시킬 것입니다.

이제 우리나라 노동운동이 그저 사회의 한구석으로 밀려나 옛날의 영광을 되씹는 미국의 노동운동처럼 될 것인가, 아니면 사회의 한가운데에서 거대한 힘을 발휘하는 유럽의 노동운동처럼 될 것인가를 선택해야 합니다. 그것은 민주주의와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바라보는 관점을 어떻게 갖느냐에 달려 있을 겁니다.

사실 인사치레로 건투를 빌기에도 무척 어려운 조건입니다. 그렇지만 온갖 어려움과 좌절 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았던 김 형의 낙관성과 성실성을 믿습니다. 곧 겨울입니다. 항상 건강하시기를 바라며, 두서없는 말씀 이만 줄이겠습니다. 

2007년 10월22일

주 대 환


 
  • 제작년도 :
  • 통권 : 제12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