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지 않고 일할 수 있게 해 달라

노동사회

죽지 않고 일할 수 있게 해 달라

admin 0 3,442 2013.05.11 09:57

4월20일 총파업을 예고한 철도노동자들의 투쟁이 본격화되고 있던 지난 4월3일, 또 한 명의 철도노동자가 철길에 쓰러져 사망했다. 두 딸(2살, 4살)의 아버지로 한 가정을 책임지는 가장인 순천전기사무소 광주신호분소에서 근무하던 고 김상순(36세)씨는 혼자서 선로 순회를 하다 선로변에 쓰러졌다. 당시 순천발 목포행 기관사가 선로변에서 비틀거리는 사람을 발견해 역무원에게 연락하자, 연락을 받은 역무원이 현장에 달려가 병원으로 후송했으나 결국 사망했다. 규정에는 2인 1조로 선로 순회를 하도록 규정되어 있지만, 인력감축으로 혼자서 선로 순회를 할 수밖에 없는 철도 현실이 또다시 귀중한 생명을 죽음으로 몰아 간 것이다. 2003년이 4개월이 채 지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벌써 10명의 철도노동자가 일을 하던 도중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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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 4월 13일에 열린 총파업 승리전진대회  ▷ 출처;철도노조 ]

열악한 철도의 노동 조건

주 5일 근무, 주 40시간 노동이 노사정 사이에서 논의되고 있지만 정부기관인 철도청 노동자의 노동시간은 너무도 가혹하다. 철도노동자는 전체 근무자 중 24시간 맞교대 근무자(차량, 역무원)가 45%, 교번근무자(기관사, 차장) 21%, 일근자(시설유지보수) 34% 등으로 불규칙,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철도노동자의 45% 이상을 차지하는 24시간 철야 맞교대 근무자의 경우 주당 노동시간이 63시간(월 270시간)으로 한국노동자의 평균노동시간(월 204.8시간, 주47.8시간, 2000년 기준)보다 무려 15.2시간이 많다. 또한 열차승무원이나 시설관리원(선로보수)의 경우 연장근무로 주당 노동시간이 75시간 이상(월평균 300시간)을 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러한 수치는 동종업계인 서울지하철과 도시철도 노동자의 월평균 183시간, 동일본 철도주식회사(JR) 철도노동자의 월평균 155.5시간과는 비교할 수도 없다.

철도청의 경영개선계획은 애초 ‘자율적인 경영체제 확립 및 정부의 시설투자에 대한 분명한 책임, 단계적 운임현실화를 통한 경영자립기반 마련’이 목적이었다. 하지만 철도청은 정부의 구조조정 정책의 가시적인 성과를 위해 무려 7,700여명의 철도노동자를 줄였을 뿐이다. 일감은 줄지 않고 사람만 줄어든 셈이다. 그 결과 최소 인력을 정해놓은 정원이 줄었으며, 김대중 정부의 ‘공무원총정원제’ 정책으로 업무가 늘어도 인력을 충원할 수 없는 상태에서 철도노동자는 힘겨운 노동을 계속하고 있다. 부족한 인력으로 늘어난 업무를 처리하다보니 2001년에는 34명, 2002년엔 20명에 달하는 철도노동자가 과로나 사고로 사망했다.

철도는 2003년 2월6일 단체교섭이 최종 결렬되어 무단협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그 사이 새정부가 들어서고 새로운 철도청장이 부임했지만, 철도청은 열악한 철도 현실을 바꿔야 한다는 철도노동자의 요구에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또한 작년 국가기간산업 사유화저지 공동투쟁본부(철도, 발전, 가스)의 연대 파업으로 이미 파산선고를 받은 ‘철도사유화 정책’을 또다시 일방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1인 승무 철회, 부족인력 충원

1996년 이후 철도청은 현실을 무시한 ‘실적올리기식 인력감축’으로 전체 직원의 20%에 달하는 7,739명을 감축했다. 2003년 1월1일 현재 철도 인력은 정원보다 현원이 627명 많지만 이것은 문서상의 허수에 불과하며 실상은 1,000여명에 이르는 인력이 부족한 상태이다. 인력이 부족한 이유는 2000년 철도청이 기관차 1인 승무제를 도입하겠다며 1,481명의 정원을 미리 감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관차 1인 승무는 이번 대구 지하철 참사에서 드러났듯 열차 안전을 심각히 위협하여 현실적으로 도입할 수 없는 제도임이 밝혀졌다. 따라서 정부와 철도청은 정책의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고, 정원을 환원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철도청은 이미 감축된 정원을 다른 분야에서 대체 감축하거나 외주화를 통해 해결하려고 한다.

철도청은 고속철도 운영인원, 수원-천안간 전철연장 및 수도권전철 연장운행 등 신규 사업에 대한 필요 인원을 충원하지 않은 채 진행함으로써 철도노동자의 노동강도를 강화시키고 있다. 더욱이 시설·전기 분야에서 사망 사고가 빈번히 발생해 작년 노사합의로 ‘열차감시원’을 두기로 했는데도 불구하고 인력 충원을 하지 않고 있다. 1인 승무 철회 및 정원환원, 부족인력의 충원은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철도노동자의 최소한의 요구다.

해고자 복직 약속 이행

2002 년 2월27일 철도노조 파업 타결 과정에서 ‘4자 대표자회의(철도노조, 철도청, 한국노총, 노사정위원회)’를 통해 철도 노사는 우선 복직대상자 45명을 복직시키는 데 합의했고 이후 수 차례 대표자회의를 진행했다. 그러나 철도청의 납득할 수 없는 거부로 단 한 명의 복직도 이뤄지지 않았으며, 오히려 파업과 관련해 19명의 해고자가 더 늘어났다.

철도해고자 복직 문제는 노사정위원회와 철도 노사간의 합의, 국회, 정당, 노무현 대통령의 약속(전 민주당 노동위원장시) 등 여러 경로를 통해 논의됐지만 전혀 진척이 없다. 현재 철도 해고자는 77명-1988년 7·26 파업(3명), 1991년 구로 열차 안전운행(1명), 1994년 6·23 파업(47명), 2000년 철도안전문제 폭로 및 조합민주화(7명), 2002년 2·25 파업(19명)-이나 된다. 1994년 함께 파업을 했던 서울지하철 조합원들은 그동안 전원 복직됐으며, 전교조의 복직 사례를 보더라도 철도해고자 복직을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

외주용역화 철회

철도 현장도 비정규직 증가에서 예외가 아니다. 청소를 비롯한 부분 업무에서 시작된 외주용역화는 유지보수업무 전체로 확대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비정규직도 늘고 있다. 1996년에 911명이던 비정규직이 현재 2,700여명을 넘어서고 있다.

철도의 외주용역화 확대는 통합적인 철도시스템을 파괴해 철도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또한 정부의 철도 시설과 운영의 분리 계획이 실행될 경우 시설 부문의 대폭적인 외주용역화로 열차 안전이 위협 당하고 비정규직은 증대될 것이다. 이것은 먼 미래의 일이 아니다. 현재 철도청은 전기설비 외주화, 병점역 차량보수기지 외주화(자회사), 정비창의 무개화(물)차 외주화, 운수분야 대매소 및 새마을 열차 여승무원 계약직화, 기지 안의 운전만을 담당하는 준비기관사 외주화를 계획하고 있으며 곧 현실화될 것이다. 외주용역화는 철도노동자를 비정규직으로 전락시키는 것으로 외주용역화 철회 투쟁은 철도노동자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

노조탄압 중단

철도청은 신종 노동탄압으로 사회적 지탄을 받고 있는 가압류, 손해배상, 파면 등의 징계를 서슴없이 진행해 왔다. 국가기관인 철도청이 노동탄압의 선봉에 서 있는 것이다.

철 도청은 2002년 2·25 파업 이후 15억여 원의 조합비 가압류를 진행했으며, 철도노동자의 자주적인 활동인 조합원 총투표(상급단체 변경건)에 영향을 주기 위해 조합비와 조합원 79명의 임금에 대해 64억여 원을 가압류했다. 현재 노사합의(1월23일)로 단체협상을 체결할 때까지 가압류가 보류된 상태지만 언제 탄압의 칼을 휘두를지 모른다. 철도청은 2003년 2월말 해고의 효력을 다투고 있는 해고자 7명에 대해서도 ‘철도시설물에 대한 출입정지 가처분’을 신청함으로써 일상적인 노조활동마저 탄압하고 있다.

철도청은 단체협상 과정에서 ‘서울에 있는 조합 본부를 대전으로 옮길 것’, ‘지방본부를 폐지하고 지부를 통폐합할 것’, ‘노조 전임자를 철도청에서 일방적으로 해제할 수 있도록 할 것’, ‘조합비 일괄 공제 거부’, ‘유니온샵 제도 폐지’, ‘철도청 임의대로 기부금 등을 공제할 수 있도록 할 것’을 제시하는 등 노조활동을 위축시키기 위해 혈안이 돼 있다.

철도노조는 비인간적인 노동탄압의 수단인 조합비 및 임금 가압류(손해배상)를 반드시 철회시키고 자주적인 노조활동을 할 수 있는 조건을 쟁취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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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0 총파업 지방본부 결의대회에 모인 지부쟁의대위원장들 ]

민영화법 폐기! 공공철도 건설!

지 난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철도를 포함한 국가기간산업 정책에 대해서 기존의 민영화 일정을 미루고 사회적 합의에 근거해 재논의 하겠다’고 공약을 했으며 철도노조의 질의에 대해서도 ‘철도산업 구조개편안에 대해 전면 재검토하겠다’는 답변을 한 바 있다. 그러나 정부는 기존 민영화 정책의 연장선에서 시설과 운영의 분리, 민영화를 전제로 한 운영부문의 공사화처럼 일방적인 철도 구조조정 정책을 발표했다.

진정한 철도개혁을 위해서는 정부의 국가기간산업 사유화 정책의 기조가 바뀌어야 한다. 철도노조는 현재 국회계류중인 철도민영화 법률안 폐기,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제출한 상하분리 단계적 민영화 방침 철회, 철도구조개혁에 관한 사회적 합의 추진 약속 이행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전제 조건이 충족될 때 ‘국민에게 안전하고 차별없는 철도서비스 제공’, ‘친환경적 종합교통망 구축과 동북아 물류중심국 성장을 위한 철도발전 교통정책 수립’, ‘국민이 참여하는 공공철도, 한국철도특별법인 설립’, ‘철도노동자의 인간답게 일할 권리 보장’ 등 철도의 공공적 발전 방안에 대한 논의가 진행될 수 있을 것이다.

단협 타결이 남긴 과제

철도노조는 6개월 간 계속된 5대 요구안 및 단체협약 쟁취투쟁을 막판 교섭 타결로 마무리했다. 전국 5개 지역(서울, 부산, 대전, 광주, 영주)에 모여 총파업 선언을 기다리던 철도노동자들은 승리에 대한 기쁨과 아쉬움으로 현장으로 다시 돌아갔다.

공기업 구조조정의 최대 희생자로 7천여 명의 인력이 감축된 죽음의 현장을 바꾸기 위한 인력충원 요구는 총 3,448명의 정원 충원으로, 10여 년 동안 단 1명도 복직되지 않았던 철도해고자는 비록 원직 복직이 이뤄지지는 않았지만 45명의 복직을 합의함으로써 그 물꼬를 텄다. 그리고 '철도민영화 철회'를 합의문에 명기함으로써 ‘사유화’라는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막아냈다. 더구나 배달호 동지의 분신으로 사회적으로 알려진 가압류, 손해배상 등 신종노동탄압 정책을 철도에서는 완전히 철회시키는 성과를 낳았다. '비정규직 제한', '교육시간 인정' 등을 포함한 새로운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철도구조개혁 방안에 대한 정부와 철도노조의 이견을 다시 한번 확인함으로써 그에 대한 일전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으로 가고 있다.

정 부는 교섭과정에서 마지막까지 ‘철도 공사화’, ‘시설-운영의 분리’, ‘6월까지 법안 처리’ 등을 철도노조가 수용할 것을 강력히 요구했다. 그러나 철도노조는 철도노동자 및 사회적 합의를 통해 공공적인 철도 발전 방안을 마련할 것과 졸속적인 법안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이유로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상태이다. 5대 요구안 및 단체협약 체결이라는 한 고비를 넘겼지만 이제 철도노동자는 100년 간 지속돼 온 철도의 변화를 스스로 만드는 투쟁을 시작할 것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7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