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회용 사람들

노동사회

일회용 사람들

admin 0 3,486 2013.05.11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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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빈 베일스 지음 | 편동원 옮김 | 이소출판사 | 16,000원


 

『일 회용 사람들』의 책표지는 브라질 금광의 한 광부(노예)와 무장 경비원의 다툼의 순간을 포착한 어느 유명 사진가의 1986년 사진이다. 1986년이라…. 한국에서는 아시안게임이 열렸던 해이다. 이 사진가의 다른 사진을 우연히 본적이 있지만 1986년 작품이란 것을 이번에 알게 되면서 이유없는 좌절감을 다시 맛보았다. 왠지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착각을 일으키는 이 사진은 브라질의 현실이었고, 저자의 노예제란 표현에 수긍을 하게끔 만드는 강력함이 있었다.

『일회용 사람들』은 과거의 제도라고 생각하는 노예제가 지금도 존재하고 있음을 세계 각국의 현지 조사를 통해 생생히 전달하고 있는 책이다. 현대에서는 ‘노예’를 소유하는 형태가 과거의 형태와 다르지만 분명 지금도 노예제가 한 가지 작업 방식으로 세계 곳곳에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 히, 세계 경제가 글로벌화 되면서 노예제는 과거와는 달리 사업 형태로 변했고  더 악랄해 졌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현대의 노예 소유자는 노예를 이용해서 부를 축적하며 그 관계가 끝나면 노예를 폐기처분 하면 그만이다. 저자는 현대의 노예제가 노예를 일회용 사람들로 전락시켰다고 주장하고 있다. 저자의 추정치에 따른다면 현재 약 2,700만 명의 사람들이 노예와 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 대부분 저개발 국가의 사람들이다. 세계화가 심화됨에 따라 현대판 노예제는 더욱 악랄해지고 반인간적이 되어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찬양하고 있는 세계화는 그 이면에 노예제라는 어두운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수익에 기반한 노예제

혹 여 책을 다 읽고 난 후 이걸 노예제라고 할 수 있나 하는 생각을 갖는 사람들은 아마도 노예는 과거의 노예제처럼 합법적 소유가 바탕이 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일 수 있다. 또한 노예제는 오래 전에 사라졌거나 금지된 것으로 알고 있고 책에 소개된 국가들이 자신의 국가보다 덜 문명화되어 있기 때문이므로 그들도 좀 더 발전한 국가가 되면 자연스럽게 노예제가 사라지는 문제일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저자는 이런 발상을 중세의 흑사병이 사라졌기 때문에 전염병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만큼이나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한다.

현대 노예제는 ‘수익성과 폭력’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 두 가지 요소는 현대의 인구 과잉과 세계화된 경제, 그리고 부패라는 환경들과 결합하면서 국가마다 다양한 형태를 띠게 된다.

어떻게 노예화에 취약해지는 구조가 만들어질까. 저자는 우선 빈곤과 인구 과잉의 함수관계를 꼽는다. 약을 살 필요가 있는 가족에게 갑자기 현금이 필요할 때 그들은 유혹에 빠져든다. 위조된 계약서와 부당한 계산에 의해 희생당한다.

둘 째는 세계화된 경제 사슬이다. 경제 불평등으로 생긴 채무와 빈곤은 노예화의 필요조건이다. 다국적 기업이 저개발 국가로 침투할 경우 채무는 세계 경제에 노예를 편입시키는 장치로 활용된다. 또한 이제 사업화된 노예제는 과거와 같이 분명한 노예 소유자를 찾기 어렵게 한다. 태국의 매춘업처럼 소유와 운영이 분리되는 등 현대의 기업구조를 갖고 있기도 하다. 이렇게 됨으로써 노예 소유자는 우리의 눈에서 증발한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현대 노예제를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노예 소유자들의 수익을 줄이는 것이 핵심 전략이다.

세계화는 서구 경제가 저개발 국가에 침투해서 지배력을 갖게 된다는 데 실제적인 의미가 있다. 이윤이 서구 경제의 지배를 정당화시키고 성공이 사회적 지위를 상승시킨다는 인식은 결과적으로 사람들의 희생을 무시하는 새로운 사업을 태동시킨다. 국가에 의해 공공성을 추구하는 활동이 영리적인 사업 행위로 변질된다. 정치가와 사업가들이 위법 행위를 하면서 새로운 소득원을 공유할 때 부패가 싹을 틔우게 된다. 그리고 저자는 위법과 법의 부재 속에서 탐욕은 인권을 압도하고 있음을 낱낱이 밝혀내고 있다.

“노예제”란 말을 사용하자

저 자는 노예제가 존재하는 국가의 정부들이 관료적 수사를 통해 노예제를 은폐시키려고 한다고 주장한다. 펜대가 춤을 추면 인도의 농부는 더 이상 ‘채무 노동자’가 아니라 ‘의탁 노동자’이며, 모리타니의 노예는 ‘노예 출신자’로 태국 매춘업소의 ‘고용인’은 ‘계약 노동자’로 불릴 수 있지만, ‘고문’이 ‘고통’으로 둔갑하는 순간 정치적 탄압의 실체를 알 수 없듯 저자는 어떤 주저함도 없이 그들을 ‘노예’라고 말하고 있다.

노예제 종식의 가장 어려운 점이 현재에도 노예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믿고 싶어하지 않는 우리의 인식에 있다고 힘주어 말하는 저자는 아마도 이 책을 읽으며 꼼꼼히 따져보았던 필자 같은 사람을 꿰뚫어 보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는 말한다. “만일 아직까지 노예가 존재한다면, 우리가 자유에 대한 긍지를 가질 수 있겠는가?”

끝으로 좀 더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위해 저자가 소개하고 있는 반노예 국제동맹 인터넷 웹사이트(www.antislavery.org)의 주소를 적는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7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