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퇴직금제도의 문제점과 개선방향

노동사회

법정퇴직금제도의 문제점과 개선방향

admin 0 5,573 2013.05.11 09:49

재 정경제부는 지난 3월10일 과천 정부청사에서 노무현 대통령에게 업무보고를 하면서 기업연금제도 조기도입방안을 밝혔다. 노 대통령은 이날 “기업연금제도는 꼭 필요한 것”이라며 “이해당사자간 충분한 협의를 거쳐 추진하라”고 수락했다. 재경부는 이어 3월13일 산자부, 건교부, 기획예산처, 금융감독위 등 경제부처와 여·야·정 민생경제대책협의회를 열어 주가하락에 따른 증시의 중장기 수요기반 확충방안으로 연기금의 주식투자를 확대해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 연기금의 주식투자를 제약하고 있는 기금관리기본법을 개정하고 기업연금제도 조기 도입 방안을 제출했다. 재경부는 지난해만 해도 3월초, 6월말, 10월초 등 주가폭락 시점마다 증시안정방안으로 기업연금제도 도입을 주장해 왔다.

권기홍 노동부장관은 같은 날 이에 대해 “재경부가 주식시장 안정이란 시각에서 기업연금 도입을 추진하는 것은 근로자들이 오해할 소지가 있다”면서 “기업연금 도입은 근로자 노후소득보장이 우선이고 나중에 증시안정에도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는 게 올바르다”고 지적했다. 노동부는 이어 3월19일 청와대 업무보고를 통해 ‘퇴직(기업)연금제’ 추진방향을 밝혔다. 이에 따르면 △ 퇴직일시금을 연금으로 전환, △ 사업장간 이동시에도 퇴직적립금이 누적되는 통산장치 마련, △ 사외적립 유도, △ 5인 미만 사업장과 1년 미만 단기근속 노동자까지 적용범위를 확대한다는 것이다. 노동부는 이런 내용으로 상반기 중 정부안을 마련해 근로기준법 등 관련법률 개정을 추진하고 내년 7월부터는 실제 가입할 수 있도록 내년 상반기까지 연금상품 개발 등 준비를 끝낸다는 계획이다. 노동계와 재계는 그간 기업연금제와 관련해 서로 양보하기 어려운 견해차를 보여왔으며 정부의 발빠른 추진으로 인해 올 상반기 중에 노동계와 재계, 정부 사이에서 이를 둘러싼 논의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 글은 정부의 기업연금제 도입에 앞서 노사정 각 주체가 제기하는 법정퇴직금제도의 문제점을 살펴보고 올바른 개선방향을 검토하기 위해서 작성한다.1)

노사정간 견해차이

기업연금제 도입은 그간 노동계, 재계, 정부 사이에서 뚜렷한 입장 차이를 보인 쟁점 사안이다.2) 기업연금제는 1999년 10월 노사정위원회 노사관계소위 7대 중요과제로 포함돼 2001년 7월부터 논의에 들어갔다. 노동부는 지난 해 3월13일 ‘퇴직금제도 개선방안(안)’을 통해 법정퇴직금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다층형 노후소득보장 장치 필요성을 제기하며 기업연금제 도입방안을 밝혔다. 그러나 노사정위 논의는 전반적으로 가다서다를 반복했으며 지난 3월19일 합의를 보지 못한 채 종결됐다. 한국노총은 기업연금제 반대를 주장하다가 5인 미만 사업장으로 확대적용, 확정급여형 기업연금만 도입할 것을 제기한 데 반해, 재계는 퇴직금제도 폐지를 전제로 기업연금제 도입을 주장하다가 현재 △ 5인 미만 사업장 확대 반대, △ 확정기여형만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3)

지난 해 10월 발표된 정부안의 뼈대는 △ 사업장별로 기업연금을 도입해 서서히 법정퇴직금 제도를 대체하고, △ 기업연금 형태는 확정급여형과 확정기여형(확정갹출형) 중 노사에게 선택권을 부여하고, △ 회사 이전 시 연금 이전이 가능하도록 개인퇴직계정 제도를 도입하고, △ 기업연금 기여금에 대한 세제혜택으로 제도 확대를 유도한다는 것이다. 2000년 2월24일 노사정위를 탈퇴한 민주노총은 그간 정부의 기업연금제 도입 방침은 노동자의 노후소득보장을 위한 퇴직적립금을 주식시장에 쏟아 붓겠다는 위험천만한 발상이라며 강력히 반대해왔다. 이번에 발표된 정부안은 기존의 정부안에다 5인 미만 사업장과 1년 미만 단기근속 노동자 적용확대 추진방침이 포함돼 보다 진일보한 것으로 비쳐지는 측면도 있다.

법정퇴직금 제도의 문제점 검토

기 업연금제 추진 주체는 정부와 재계다. 이들은 법정퇴직금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그 대안으로 기업연금제를 제출하는 만큼 이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재계와 정부는 우선 법정퇴직금 제도가 국민연금·고용보험과 퇴직금 기능이 중복돼 역할이 축소됐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국민연금공단에 따르면 2001년 현재 65세 노령인구가 최소한 8백84만5천명 이상으로 추정되는 반면 국민연금 수혜자 수는 94만8천1백64명에 그치고 일인당 연평균급여액이 1백65만5천1백10원꼴이어서 기능중복을 논할 단계가 아니라는 점을 알려준다. 또한 고용보험은 자발적 실업자가 아닌 비자발적 실업자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법정퇴직금제도의 역할 축소 주장 또한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

정부는 또한 OECD와 세계은행의 권고를 이유로 다층형 노후소득보장 장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세계은행 등 국제금융기구는 세계 곳곳에서 공적연금 약화, 기금운용의 주식시장 투자를 주장해왔으며, 이들의 관심은 노후소득보장체계 다층화 자체라기 보다는 국민연금 급여수준 대폭 인하(60→40%), 사적 연금인 기업연금제 도입, 그리고 연금기금의 주식시장 투자다.

노동자의 시각에서 법정퇴직금 제도의 문제점은 무엇보다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이 적용 대상에서 배제되고 있다는 점이다. 2001년 현재 전체 임금 노동자 1천2백47만 명 가운데 절반을 넘는 6백21만 명이 법정퇴직금 제도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IMF 이후 노동자간 임금소득 격차가 날로 커지고 빈익빈부익부 현상이 심각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에게도 전면 확대 적용해야 한다. 이는 법정퇴직금 제도의 역사를 살펴봐도 바람직한 일이다. 법정퇴직금 제도는 1953년 근로기준법 제정과 동시에 임의제도로 도입돼 2년 이상 근속한 노동자가 매 1년에 30일분, 10년 이상의 1년에 대해서는 60일분의 퇴직금을 받을 수 있도록 법제화됐다. 이어 1961년 근기법 개정으로 법적 강제제도로 성격이 바뀌어 30인 이상 사업체에 1년 이상 근속한 노동자는 1년에 30일분의 퇴직금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이어 적용 대상은 꾸준히 늘어나 1989년 근기법 개정으로 5인 이상 사업체까지 확대됐다. 재계의 주장처럼 법정퇴직금제도가 약화된 게 아니라 확대 일로를 걸어온 것이다.

노동자의 시각에서 법정퇴직금 제도의 또 다른 문제점은 지급보장 장치가 불안정하다는 점이다. 이는 국가복지제도에 걸맞지 않게 노동자가 퇴직할 때 받는 임금을 전적으로 기업에게 운영과 관리를 맡기고 있다는 데서 발생한다. 현행 퇴직보험제는 법정퇴직금으로 인정된다는 점, 수급권이 노동자에게 있다는 점, 퇴직금을 담보로 대출 또는 양도를 할 수 없다는 점 등 장점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임의제도’라는 점, 전액 사외적립이 아니라는 점에서 지급보장성의 문제를 낳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현실적인 대안으로서 현행 퇴직보험제를 강제적용하고 퇴직금 전액을 사외적립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4)

기업연금제도의 문제점

정 부와 재계는 법정퇴직금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기업연금제를 대안으로 제출하고 있다. 정부안은 일단 노동계가 꾸준히 요구해왔던 적용대상 확대를 담고 있으나 재계의 반발을 고려해 즉각 시행보다는 몇 년간 유예기간을 둘 가능성이 높다.

기업연금제는 금융세계화에 따른 연금기금의 주식시장 투자와 공적연금 체계 약화, 국가복지제도를 기업복지제도로 전환하려는 의도가 들어있다. 그간 민주노총은 기업연금제도는 첫째 연금기금의 주식시장 투자로 퇴직금 불안정화, 둘째 임의제도에 따른 영세사업장·비정규 노동자 소외, 셋째 공적연금의 약화와 사적연금의 강화, 넷째 확정기여형 기업연금의 심각성, 다섯째 정부의 일방적이고 무리한 추진 등의 문제점을 누누이 지적해 왔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자세히 설명하지 않겠다.

다만 정부는 그간 기업연금제를 임의제도로 도입할 것을 주장해왔다는 점을 지적하겠다. 노동부는 몇 년 전 기업연금제의 법적 강제제도 도입을 검토했으나 경제부처의 반발로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노동부안(3월19일) 어디에서도 이를 강제제도로 도입한다는 문구를 발견할 수 없다. 이는 국가복지제도인 법정퇴직금제도를 기업복지제도로 전환시키려 한다는 점에서 노동자의 시각에서는 엄청난 제도개악이다. 외국의 사례를 보더라도 퇴직일시금 또는 퇴직연금과 관련해 핵심적인 문제 가운데 하나는 임의제도인가 아니면 법적 강제제도인가에 달려있다. 임의제도인 기업복지제도일 경우 무엇보다 경제활동인구대비 적용율이 절반을 넘는 경우가 없다. 기업연금제도 역사가 1백 년도 넘은 미국의 경우 50%, 일본의 경우 39%가 퇴직금제도의 적용을 받고 있으며 독일의 경우 42%, 영국은 29%에 그친다. 프랑스만 기업연금제가 법적 강제제도로 경제활동인구 100%가 적용 받고 있다.

또한 법정퇴직금제도의 수급권 불안을 문제삼으면서 사외적립을 강제화한다는 내용도 발견할 수 없다. 다만 각종 인센티브 부여로 이를 유도한다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일 뿐이다.

법정퇴직금 제도의 개선방향

한 국의 법정퇴직금 제도는 앞서 제기했듯이 무엇보다 전체 노동자의 절반 이상이 소외된다는 게 문제다. 이는 현행 근로기준법을 전면 손질해야 하는 문제와도 결부돼 있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오직 5인 이상 사업장을 적용 대상으로 하고 있어 5인 미만 사업장은 근로계약기간(제23조), 근로조건의 위반(제26조 제2호), 해고 등의 제한(제30조 제1호), 경영상의 이유에 의한 고용조정(제31조), 퇴직금제도(제34조), 휴업수당(제45조) 등 상당수 조항에서 적용받지 못하고 있다. 이는 영세업체의 경영난을 이유로 사용자의 비용을 줄이려는 정책 판단밖에는 어떤 타당한 법적 논리도 없다. 따라서 근기법을 전 사업장으로 확대 적용하고 비정규 노동자에 관한 보호방안을 마련해 차별 문제를 해소해야 한다.

이는 IMF 이후 임금소득 격차가 날로 심해지는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노동부가 집계한 지난해 노동자 임금실태에 따르면 월 총액임금 300만원 이상인 사람이 2000년 8.2%에서 지난해에는 10.4%로 2.2%나 늘어난 반면 월 100만원도 못 받는 사람이 전체 노동자의 4분의 1(24.6%) 가량으로 여전히 높다. 그나마 이 조사에서는 1∼4인 규모의 영세사업장은 조사 대상에서 빠져 노동자의 실제 임금격차는 이보다 더 클 것이다.

정부와 사용자들은 퇴직금제도의 실제 적용율이 낮다는 문제제기를 하고 있으나 기업연금이 도입된다고 해서 적용대상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퇴직금제도를 모든 사업장에 적용해서 전체 노동자가 법적 청구권을 갖도록 해야 한다.

법 정퇴직금 제도의 지급보장 문제는 노동자가 퇴직할 때 받는 임금을 기업이 적립하지 않고 다른 용도로 쓴 뒤 ‘돈 없으니 배째라’는 데서 발생한다. 다시 말해 퇴직금제도를 법적 강제제도로 만든 뒤 지급보장과 관리운영과 관련해 아무런 법적 강제조치가 없다는 데서 비롯되는 것이다. 이에 따라 기업의 파산 또는 여타의 재정문제가 발생할 경우 퇴직일시금 지급이 어려워진다. 이는 국가복지제도에 확실한 구멍이 난 것으로 시급히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할 사항이다. 따라서 퇴직금 지급보장을 위한 개선방향은 완전한 사외적립 입법화다. 현재도 퇴직금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근로기준법에 퇴직금중간정산제, 퇴직보험 등이 이미 도입됐으나 강제규정이 아니며 전액 사외적립조항이 없는 문제점을 갖고 있다. 퇴직금 전액 사외적립을 법제화하는 현실적인 방안은 현행 퇴직보험 등을 강제규정화하는 것이다.

따라서 법정퇴직금 제도의 개선은 비정규 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차별을 일소하기 위해 5인 미만 사업장으로 적용대상 확대, 국가복지제도라는 성격을 유지하기 위해 법적 강제성을 유지할 것, 퇴직금 전액 사외적립 법제화를 추진하는 방향이 되어야 한다.

후주
1) 민주노총은 지난해 10월 정부의 기업연금제 도입안에 대해 증시투자용이라며 반대방침을 밝힌 바 있으며 현재 법정퇴직금제도 개선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이 글은 전적으로 개인적 입장임을 밝혀둔다.
2) 재계와 정부는 최근 법정퇴직금제도를 사회복지 차원에서 제기하며 기업복지제도이자 법정복지제도로 보고 있다. 그러나 기업복지의 특징은 첫째, 복지의 제공자가 기업이고 둘째, 그 기업에 고용된 노동자가 수혜자이며 셋째, 기업이 노동자에게 임의적으로 제공하는 복지다(홍경준). 이 가운데 핵심적인 특징은 세 번째로 ‘임의성’이다. 이 시각에서는 기업이 노동자에게 지급하는 정규임금 이외의 보상 중에서 임의적으로 지급되는 것만을 기업복지로 파악한다. 따라서 고용보험, 국민연금, 의료보험 등 법적 규정에 의해 기업이 지불하는 법정복지비는 기업복지의 범주에서 제외된다. 이 입장에서 보면 퇴직금, 연·월차휴가, 육아시간, 장애보상 등 법정복지항목은 기업이 부담하지만 국가차원에서 법으로 정해지기 때문에 국가복지에 해당된다.(오건호, 2000)
3) 기업연금제의 형태는 크게 확정급여형(DB형, Defined Benefit Plan)과 확정기여(갹출)형(DC형, Defined Contribution Plan) 두 개로 나뉜다. 확정급여형은 노동자가 퇴직 뒤 받을 연금액(급부)을 미리 정해놓는 것으로 회사가 기금의 운용 책임을 지는 제도이고, 확정기여형은 월급의 일정 비율을 갹출(기여)금으로 정하고 기금의 운용 수익 결과에 따라 연금액이 달라지는 제도로 개인이 기금 운용 결과에 책임을 지는 제도다. 따라서 노동자들에게는 전체적으로 확정기여형이 확정급여형에 견주어 주식시장의 상황에 더 많이 좌우되는 만큼 위험도가 크다고 할 수 있다.(주진우, 2002)
4) 이에 대해 연기금의 투자를 위한 적립 자체를 반대해야 한다는 입장도 있다. 이는 적립형 사적 연금제도의 도입 및 전환을 통한 재정부담의 축소, 자본시장의 발달, ‘더 빠른 경제성장’, 그리고 주식 투자 수익을 통한 ‘노후소득의 안정적 보장’이라는 연금 개혁의 목표는 실제 객관성을 동원한 허구에 불과하며, 적립재정방식은 연기금의 금융자본화를 위한 기본 전제로 작동한다는 주장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7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