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레닌!

노동사회

굿바이 레닌!

admin 0 5,840 2013.05.11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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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독에 사는 크리스티아네는 우아하고 헌신적인 공산주의자이자 초등학교 교사였다. 1989년 가을, 그녀는 독일 민주주의 공화국 창립40주년 행사에 참석하러 가는 길에 반체제 시위대를 만난다. 어수선한 그 속에서 그녀가 발견한 것은 충격적이게도 전경에게 끌려가는 스무 살 난 그녀의 아들, 알렉스. 그리고 경찰에 끌려가면서도 시위대 속에서 눈이 맞은 또래 여자 애에게 "이름이 뭐야!?"를 외치던 청년 알렉스가 발견한 것은, 곱게 차려입고 길 위에 쓰러진 그의 이상주의자 어머니였다. 혼수상태에 빠진 크리스티아네, 어릴 적 서독으로 망명한 아버지 때문에 한동안 실어증을 앓아야 했던 어머니에게 깊은 애착관계를 형성한 아들은 어머니를 극진히 간호한다. 8개월이 흐른다. 그리고, 알렉스가 시위대에서 눈이 맞았던 처자, 라라와 어머니 옆에서 진하게 입맞춤하는 사이 드디어 크리스티아네는 여름 햇살 속에 부스스 눈을 뜬다. 

그런데 문제가 조금 생겼다. 크리스티아네의 심장이 극도로 약해진 터라 미약한 충격도 피해야 할 상황이라는 것, 그리고 그녀가 잠들어 있던 8개월이었다. 그녀가 깨어나기 전 그 해에 충격적이라고 할 만큼 특별한 일이 있었다면 뭐, 독일축구팀이 90년 월드컵에서 우승했다는 것 정도일까? 그런데 문제가 일어나는 이유는 그것이 1989년 베를린장벽의 붕괴와 함께 독일통일, 정확하게는 자본주의 서독에 의한 사회주의 동독의 흡수로 치닫는 거대한 흐름의 전야제였다는 사실 때문. 그리고 그러한 흐름 속에서 대학을 때려치운 알렉스의 누나가 살포시 웃으며 "맛있게 드세요. 버거킹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를 외치는 모습이나 '천박한' 살덩이들을 노골적으로 들이미는 현란한 자본주의적 광고들이 나부끼는 동독의 거리를 크리스티아네의 심장이 버텨줄리 만무하다는 사실 때문이다. 어릴 적 동독의 우주비행사 지그문트 얀을 바라보며 꿈을 키워온 감성적인 청년 알렉스는 결국 거짓말을 조그맣게 시작한다. 오로지 어머니의 생명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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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우스꽝스럽고 애처로운 진실

집안 가구의 배치를 원위치시키고, 어머니가 좋아하는 품절된 동독산 오이피클 병을 구하기 위해 쓰레기통을 뒤지고, 철거되기 직전의 주인 없는 아파트에서 동독 물품들을 대량으로 발견하고 미친 듯이 혼자 웃어대고…. 애틋한 미소를 짓게 하는 이 열혈효자의 거짓말은 어머니가 몸을 회복하는 것과 궤를 같이하며 사회적으로 영역을 점점 확장한다. 알렉스는 영화를 좋아하는 괴짜 친구의 도움을 받아 거짓 텔레비전 뉴스까지 제작한다. 그리하여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가 기거하는 방은 코카콜라가 동독의 발명품이 되고, 신나찌주의자들 때문에 서독난민들이 '번영하고 있는' 동독으로 대량으로 피난을 오게 되는 세상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크리스티아네는 "진보는 계속되는데 나는 할 일이 없구나"고 푸념하는 변함 없이 우아한 공산주의자이다. 

그런데 알렉스가 만들어 낸 이 우스꽝스럽고 애처로운 세계는 단지 어머니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 '공산주의적 도덕'에 어긋나는 상품생산에 항의하는, 크리스티아네의 풍자적인 '건전한 비판'을 받아적던 이웃집 아줌마는 호탕하게 웃으면서 종이 위로 눈물을 펑펑 떨군다. 그 눈물과 웃음은 시대의 충격을 허황한 거짓말로 부정하며 만들어진 이 희극적인 공간에서, 우아한 이상주의자로 죽어 가는 크리스티아네를 향한 것이다. 그리고, 시대의 충격에 짓이겨진 자신의 삶을 향한 것이기도 하다. 알콜중독에 빠져 집에 처박혀 있던 교장선생이 크리스티아네의 생일날 비틀거리며 읊어댄 멋진 연설이 그녀의 삶에 대한 애처로운 존경의 표시이자, 자신의 삶을 향한 쓸쓸한 송가이기도 했던 것처럼. 크리스티아네의 방은 흡수통일의 충격을 수용할 수 없었던 동독의 지친 소시민들이 이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옛 것들을 불러내 서로의 상처를 보듬는 곳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곳의 창조주, 동독 청년 알렉스의 성장을 위한 공간이었다. 

결국 크리스티아네는 죽는다. 우아한 이타주의적 공산주의자를 주조한, 꼭꼭 숨겨 두었던 지난날의 상처와 두려움을 그녀의 가족들에게 고백하며. 그리고 자식들이 자신을 위해 만들어 놓은 그 애틋하고 허황한 거짓말들을 밑바닥부터 음미하며, 행복하게. 크리스티아네의 유골은 그 해 10월 독일통일을 축하하며 우렁차게 터지는 불꽃들과 함께, 알렉스가 동경하던 우주로 조용히 날아가 흩뿌려진다. 

이 영화 '굿바이 레닌!'은 예술성에 주안점을 둔다는 제53회 독일영화상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남우조연상 등 총 9개 부문에서 수상했고, 역대 자국영화 흥행 2위라는 기록을 달성했다. 그 여파는 동쪽을 뜻하는 오스트(Ost)와 향수의 노스탤지어(Nostalgia)가 결합된 오스탤지어(Ostalgia)란 신조어를 낳았고, 시장에서 퇴출 됐던 동독산 오이피클과 초콜릿의 부활을 거쳐 비웃음거리였던 동독산 트라반 승용차의 전시회로 이어졌단다. 정말 잘 만들어졌고 재미있는 영화다. 삶의 세세한 결을 풋풋하게 보듬으면서도 사회와의 끈을 놓치지 않는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8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