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서비스 노동조합운동의 역할과 과제

노동사회

공공서비스 노동조합운동의 역할과 과제

admin 0 3,264 2013.05.11 09:44

(비현업) 공무원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하면서 공공서비스(부문) 노동조합운동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지고 있다. 공무원 노동조합들의 결성은 그동안 공공부문 노동조합운동이 주로 공기업 및 공공서비스 현업 부문에 한정되었던 것이 극복됨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이제는 보건의료 및 교육부문을 포함하여 국가활동의 거의 전 영역에 노동조합운동이 자리잡게 된 것이다.

공무원의 노동조합 결성이 사회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반(反)노동조합 세력의 최후의 보루라고 할 수도 있었던 정부 또는 공공서비스 부문에서도 노동조합이 결성됨으로써 자주적(민주적) 결사의 원리가 사회적으로 확산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점에 있다. 그렇다면 남는 문제는 자주적 결사체로서의 공무원 노동조합이 사회적 연대의 원리를 어느 정도 체현하는가에 있다. 사회적 연대를 부정하는 자주적 결사체는 사회의 진보적 발전에 역기능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글은 이상과 같은 맥락에서 한국 공공서비스 노동조합운동의 역할과 과제를 구체적으로 찾아보도록 한다.

공공서비스 노동조합운동의 구조적 조건

공공서비스 노동조합운동론을 모색할 때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고려하여야 할 것은 공공서비스의 사회적 함의가 불변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과 특히 최근 몇 십년간 공공서비스의 사회적 지위가 계속적으로 변화하여 왔다는 점이다. 그것은 국가-(시민)사회 관계의 양적, 질적 변화의 구체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떠한 요인들이 국가-시민사회 관계의 변화를 가져온 힘으로 작용하였는가, 공공서비스 변화의 구체적인 양상들은 무엇인가, 이러한 변화들은 공공서비스 노동조합운동에 어떠한 조건으로 작용하는가 등의 질문들이 다루어질 필요가 있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하면서 공공서비스 노동조합운동의 구조적 조건에 대해서 간단히 살펴보도록 하자.

우선 공공서비스에 대한 국가론적 접근의 필요성이 강조될 필요가 있다. 공공서비스는 국가의 활동이다. 국가의 경제적, 사회적 역할이 구체화되는 영역이 공공서비스이고 그것은 국가-사회 관계가 어떤 방식으로 설정되는가에 따라서 다양하게 나타난다. 따라서 공공서비스에 대한 논의는 국가에 대한 논의의 틀, 특히 국가-사회관계에 대한 논의와 맥락을 같이 한다. 그리고 국가-사회관계라는 맥락에서 국가와 공공서비스를 바라보는 것은 국가의 제반 행위가 국가-사회관계의 특징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국가가 여타 사회영역과 구체적으로 어떠한 관계를 설정하고 있는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는 것은 바로 공공서비스의 역할과 기능에 대해서 논의하는 것과 동일한 말이 된다. 그런데 이 국가-사회관계는 선험적으로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그 관계는 계속적인 발전 및 변화하는 유기적인 망으로 구성되어 있다. 공공서비스의 변화 또는 국가의 역할과 기능의 변화는 바로 국가-사회관계의 변화를 다른 말로 표현한 것과 같다. 대처리즘 하의 영국은 국가-사회관계 변화의 급격한 모습을 보여준 예라고 할 수 있다. 대처리즘의 중심적인 의제는 기존의 국가-사회관계를 특정한 방식으로 해석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재조정하는 것, 대표적으로는 국가가 경제적으로 기능하는 방식을 급격하게 변화시키는 것이었다. 영국에서의 공공부문 구조조정과 민영화는 국가-사회관계의 구조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다(홍주환 외, 2001: 54-57).

국가-사회관계의 구조변화는 공공서비스의 공급과 관련해서 기존의 관점들 간의 경합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Naschold, 1996). 하나는 시장의 실패와 관련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국가의 실패와 관련된 것이다. 전자는 복지국가론과 관련된다. 복지국가론은 국가가 공공이익을 위해서 복지를 극대화하여야 한다는 입장에서, 공공부문의 확장을 통해 공적인 사회보장을 적극적으로 실현하며 시장에 대한 정부 규제를 강화할 것을 주장한다. 서구의 케인즈주의적 복지국가 형태들이 복지국가론이 구체화된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후자는 신자유주의 국가론과 관련된다. 신자유주의 국가론은 사적 영역인 시장과 공적인 제반 제도가 상보적인 관계가 아니라 경쟁적인 관계에 있다고 보며, 따라서 시장을 중심으로 한 자원의 배분과 그것의 효율성을 주장하고 결과적으로 국가 활동의 범위가 최소화되어야 하는 것으로 설정된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국가가 수행한 대내적 역할은 한편으로 경제활동의 기반을 구축하는 것과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력의 재생산 기반 또는 사회복지제도의 기반을 확장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따라서 위의 복지국가론 및 신자유주의 국가론은 이러한 국가의 역할을 둘러싸고 서로 다른 관점에서 접근한 것이었다.

특히 최근 30여년간의 국가 역할의 변화는 기존의 케인즈주의적 복지국가가 자유주의적 국가로 그 형태가 변화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시장의 실패를 보완 내지 극복하기 위해 등장한 케인즈주의적 복지국가가 국가의 실패를 노정하자 이를 시장의 작동을 통해서 해결하고자 하는 신자유주의 국가가 대처리즘과 레이거노믹스를 필두로 확대되기 시작한 것이다. 따라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공공서비스 내지 공공부문의 구조변화는 국가-사회관계의 신자유주의적 개혁과 관련되어 있는 것이다.

국가-사회관계의 신자유주의적 개혁

신자유주의적 국가-사회관계 재편은 민영화와 공공서비스 혁신으로 구체화되어 나타났다. 민영화는 국가의 시장에 대한 직접 개입을 철회하는 것이었으며 공공서비스 혁신은 공공서비스에 기존의 행정 개념 대신에 경영 개념을 도입하여 효율성을 제고시키고자 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국가의 철수 또는 축소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한편으로는 국가의 활동 영역을 재규정하고 민영화, 각종 서비스의 외주화 등의 방식을 통해서 국가가 수행하던 기존의 특정 활동들을 철수시키는 것이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공공서비스 공급 방식을 개혁하기 위해 민간부문의 경영 개념을 공공서비스에 도입하여 시장 논리를 정착시키는 것이었다. 이러한 양상들은 결국 공공부문 또는 공공서비스의 사회적 기능이 수행되는 방식, 국가가 사회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 및 논리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고, 특히 국가의 내부 조직 및 관리방식의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었다(Ferner, 1994).

그런데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개혁도 결국 국가 실패 또는 시장 실패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었던 것이며, 이것은 국가-사회관계에 대한 위의 두 관점 사이의 갈등이 더 이상 유의미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사적 소유와 그 처분권, 시장 메커니즘, 국가의 시장 규제 등의 전체적인 관계를 재조정하는 것이 요구되는 것이다. 최소국가론이나 국가 개입주의의 문제점을 모두 극복하는 방식으로 국가의 역할, 즉 공공부문 및 공공서비스의 역할을 재조정하는 것, 이를 위해서 기존의 관료주의적 행정주의와 다른 한편의 공공서비스의 효율성 중심주의의 긍정적인 측면을 결합시키는 것 등이 필요하다(Naschold, 1996).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한국의 경우는 어떠한가. 한국의 국가-사회관계 변화의 핵심은 개발독재로 상징되는 발전국가가 쇠퇴하고 시장지향 국가가 등장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한국의 자본주의적 산업화 과정은 국가 주도하의 압축적 경제발전 과정이었으며, 그것의 국가주도성은 서구의 경우와는 달리 시장 실패에 대한 대응으로서가 아니라 시장의 부족 상황에서 요구된 경제발전의 필요성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한국의 경우 국가-사회관계의 특징은 발전국가의 형성, 전개 및 재편이라는 개념에 함축되어 있다고 하겠다. 특히 현재 한국의 국가는 더 이상 발전국가로서 존재하지 않고 스스로가 주도적으로 형성한 시장에 순응하거나 또는 그것에 적응하는 상태에 있다. 그에 따라서 국가-사회관계의 성격도 변화하고 있다. 기존의 국가주도의 경제성장 중심적 국가-사회관계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됨에 따라서, 예를 들어 국가와 시장의 관계는 국가의 "시장에 대한 개입이 간접적인 형태와 협상을 추구하는 형태로 변화"하고, 이제 국가는 "시장의 질서를 지배하기보다 시장의 질서를 보호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방향으로 변모하고 있는 것이다(김윤태, 2003: 321). 더욱이 90년대 말의 경제위기는 전사회적인 구조변화를 초래하였고, 특히 공공부문과 공공서비스의 급격한 구조조정을 가져왔다.

시장중심적 구조조정

결국 현재 공공서비스 노동조합운동은 기존의 국가-사회관계가 새로운 방향으로 변화하는 구조적 조건에 처해 있다고 할 수 있다. 소위 공공부문 "상시개혁체제의 구축"에 따라서 중앙정부 및 지방정부의 조직개편이 급격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성과 및 능력 위주의 인사제도가 도입되고 있다. 행정기관에 대한 경영진단을 추진하고, 책임운영기관 제도를 도입하는 등 공공서비스의 효율성 제고를 위한 제도개혁이 체계적으로 진행되는 한편, 성과주의 예산제도, 성과주의 급여제도를 도입함으로써 조직간 구성원간의 경쟁제도를 확산시키고 있다. 그 과정에서 인력 감축도 대대적으로 이루어졌다.

이러한 공공서비스 구조조정은 국가-사회관계를 시장중심적인 방향으로 재조정하는 것이었는바, 이것은 한편으로는 공공서비스가 어떤 사회적 함의를 가져야 하는가 하는 문제와 관련된 의제를 제기하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공공서비스의 구조조정에 따른 공공서비스 종사자들 즉 공무원들의 노동조건의 변화와 관련된 의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은 공공서비스 노동조합운동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논의의 근거가 된다. 특히 공공서비스의 사회적 특성은 공공서비스 노동조합운동이 노사관계를 통해서 공공서비스의 사회적 함의와 구체적으로 그것이 실현될 수 있는 기제의 모색을 좁게는 공공서비스 노사관계상의, 넓게는 전 사회적 범위의 의제로 삼도록 한다. 우리는 그것을 "공공성의 정치의 제도화"라는 개념으로 담아내고자 한다.

공공서비스에 대한 사회적 재규정

위에서 간단히 살펴보았듯이, 서구 선진자본주의 사회의 케인즈주의적 복지국가형태나 신자유주의적 국가형태 모두 공공부문의 사회적 역할과 기능에 대한 적합한 대안이 될 수 없는 상황이 도래하였다. 즉 케인즈주의적 개입주의 국가나 신자유주의 국가의 "사회 관리 기능"이 의문시되고 있고, 따라서 국가 및 공공부문의 역할과 지위에 대한 사회적인 차원의 재조정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하나의 공식 또는 공리로서의 '공공부문의 핵심 활동'이라는 개념이 더 이상 유용하지 않게 되었으며, 그것은 일종의 민주적 정치결정 과정의 결과로서만 의미를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는 분석적이고 경험적인 현대 과학의 여러 방법들을 동원하여 뒷받침하여야 하는 것이다(Naschold, 1996).

그렇다면 이제 필요한 것은 국가-사회관계의 성격과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공공서비스의 성격에 대한 사회적 토론이다. 무엇보다도 국가-사회관계의 성격에 대한 사회적 규정은 그 사회의 공공서비스 및 공공부문의 지위와 그 위에 서있다고 할 수 있는 공공서비스 노동조합 및 노사관계에 대해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또한 그것은 공공부문과 민간부문, 공공서비스와 그 수혜자 사이의 유기적이고 균형있는 결합에 관한 밑그림을 제공하며, 이것은 공공서비스 노동조합운동의 목표설정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근거가 된다. 공공서비스 개혁은 공공서비스의 사회적 함의에 대한 재규정을 의미함과 동시에 공공서비스 노동자들의 노동생활 조건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공공서비스가 만약 사회적으로 안정적인 함의를 지니고, 그에 근거해서 공공서비스 노동조합이 자신의 명확한 정책 목표를 갖고 활동할 수 있다면 공공서비스 노동조합운동은 사회발전의 중요한 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기 때문에 공공서비스의 사회적 함의에 대한 전 사회적인 토론과 (잠정적이라 할지라도) 일정한 합의의 도출은 중요한 과제가 되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민주적 정치과정을 동반하는 것이기도 하다.

전 세계적으로 국가 역할의 구조에 중요한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 변화는 소위 글로벌라이제이션에 따른 경쟁의 심화와 그에 따른 시장중심적 경제논리의 확산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공기업 및 국가 활동의 민영화와 공공서비스의 민간 경영기법 도입은 그것의 구체적인 양상이다. 한국의 경우 국가-사회관계의 변화는 1980년대 중반 이후 본격화하기 시작하였고 특히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급속도로 진행되었다. 1960년대 중반 이후에 형성된 발전국가 주도의 국가-사회관계가 "국내 민간자본의 성장, 민주화와 시민사회의 강화라는 국내적 요인과, 글로벌화 경향성 및 경제자유화·개방화 압력이라는 세계적 요인으로 인해 발전국가 운용의 전제조건이었던 국가의 정책적 자율성과 정책도구들이 상당부분 침식"(윤상우, 2001)됨에 따라 시장지향적인 새로운 형태의 국가가 등장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국가-사회관계의 전환이 국가에 의해서 일방적으로, 특히 노동배제적으로 이루어져 왔으며 한국사회의 통치구조 또는 지배구조에 대한 성찰적 논의가 생략된 것이었다는 점에 있다.

"공공성의 정치"의 제도화

여기에서 서구의 공공부문 노사관계에 대한 이론적 논의에서 도출된 "정치적 상황성"(political contingency) 개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것은 서구의 주요 공기업들에서 노사관계 갈등이 급속하게 증가하고 있는 상황을 공기업들이 운영되고 있는 정치적 상황의 변화에서 찾고자 했던 훠너(Ferner) 등의 논의에서 등장하는 개념이다. 정치적 상황성 개념은 그것이 공기업의 전략 구성을 민간부문의 기업들에서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불확실하게 만들지만, 결국 그것을 통해서 공기업의 행위 논리가 결정된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리고 또한 그것은 공공부문 및 공공서비스 노사관계는 정치적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상황이 이러하다면, 공공서비스 노동조합운동에게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국가-사회관계 변화의 방향과 내용을 정확하게 포착하고 사회적 차원의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고 그것의 관철을 위해서 실천해야 하는 것이다. 결국 "공공성의 정치"에 있어서 주도권을 잡는 것이 무엇보다도 관건이 된다고 하겠다. 공공성의 정치는 공공성을 진보적 사회발전의 관점에서 노동자계급·대중의 사회적 지위 향상을 보장하는 내용으로 채우고 그러한 공공성을 통해서 정치적 상황을 진보적 방향으로 형성해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공공서비스 노사관계는 공공성의 정치가 구체적으로 전개되는 다양한 영역들 중에서도 매우 중요한 영역이다. 공공서비스가 갖는 사회적 함의는 공공성의 정치의 결과라고 할 수 있지만, 공공성의 정치에 관련되는 제반 사회세력의 각축은 그것을 특정한 내용으로 고정시키지 않는다. 한 사회의 공적 영역은, 특히 민주화 이후 점차 확대되고 있는 자율적 공적 영역은 사실상 국가-사회관계의 형식과 내용을 시시때때로 규정하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자율적인 공적 영역에 공공서비스도 여러 가지 형태로 관계한다는 것은 이미 언급한 바와 같다. 문제는 그 공적 영역과 공공서비스 노사관계 및 노동운동은 어떤 관계를 갖는가 하는가이다. 우리는 공공서비스 노사관계가 공적 영역의 중요한 한 부분을 점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 공공서비스 노사관계가 의제로 삼는 것들은 어떠한 방식으로든지 공적 형태와 내용을 취하지 않을 수 없으며, 따라서 그 자체로 공적 영역에 발을 딛고 있다고 하겠다.

공적 영역에서 논의되지 않거나 또는 인정받지 못한 의제를 공공서비스 노동조합이 공공서비스 노사관계의 의제로 제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한편으로 그 의제가 공공서비스 노동조합의 협소한 이해관계를 담고 있는 것이어서 공적 영역에서 거부되는 경우, 비록 공공서비스 노동조합 스스로의 역량으로 그 요구를 관철시킬 수 있을지라도 그 "정당성"의 문제가 공공서비스 노동조합운동의 진로를 가로막게 될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그 의제가 사회의 진보적인 발전에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역사적, 구조적 요인에 의해서 사회적 의제로 삼아지기가 쉽지 않았던 경우 공공서비스 노동조합은 그것을 공론화하는데 선도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그것이 공공서비스 노동조합의 고유한 역할은 아닐 수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공서비스 노동조합이 그 역할을 수동적으로 부여받기만 할 필요가 전혀 없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공공서비스 노동조합운동은 공적 영역에서 활발하게 움직이는 의제설정자의 역할을 담당할 수 있고, 또 그래야만 비로소 (비록 그것이 협소한 이해관계의 발로로 비쳐지더라도) 공공서비스 노동자들의 노동생활 조건의 향상을 위한 요구도 같이 의제로 삼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사회운동적 노동조합주의와의 관계

공공성의 정치는 공공서비스 노동조합운동이 사회운동적 노동조합주의의 합리적 핵심을 체현하는 것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특히 공공부문 노동조합운동은 그 특성상 사회운동적 노동조합주의를 내포하고 있다. 결국 공공성의 정치는 사회적 의제를 자신의 의제로 삼도록 강제하는 제도적 틀 위에 있는 공공서비스 노동조합운동에게 중요한 전략적 지침이 되는 것이다. 특히 공공서비스 노사관계는 단체교섭 의제의 합법성이라는 제한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의제를 공론화하는 장, 공공성의 정치의 장이 된다. 단체교섭이라는 합법적이고 공식적인 틀의 제한에 매몰되지 않는다면 공공서비스 노동조합은 노사관계의 제반 수준, 영역에서 자신의 문제를 사회적 의제로, 사회적 의제를 자신의 문제로 지속적으로 전환시켜 제기할 수 있는 특수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것이다.

공공서비스 노동조합은 공공서비스 노사관계를 둘러싸고 있는 정치적 상황을 공세적으로 주도할 수 있는 구조적 역량을 담지하고 있다. 따라서 사회운동으로서의 공공서비스 노동조합운동은 국가-사회관계의 매개적 위치에 자리잡고 있으면서 시민사회의 활성화된 자율적 공적 영역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그 사회적 의제를 노사관계의 영역으로 유입시키고 이를 통해서 국가의 민주적 전환을 끊임없이 시도해가는 것을 자신의 사회적 역할과 기능으로 삼아야 한다. 이것은 공공서비스를 국가-사회관계에 있어서 반권위적인 조정자(coordinator)의 역할을 담당하는 제도로 전환시키는 것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따라서 주체적인 측면에서는 기존의 군림하는 공무원 이미지를 탈각하고, 국가를 사용자로 하는 노동자이면서도 단순히 그러한 것만 아니라 사회적 의제를 끊임없이 공적 영역의 담론 의제로 제기하고 또한 노사관계를 통해 실현시키는 공공서비스 노동자들의 대의체인 공공서비스 노동조합이 요구되는 것이다. 이 때 공공성의 정치의 제도화는 공공서비스 노사관계가 공공성의 정치가 제도적인 수준에서 다루어지는 장이 됨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공공서비스 노동조합운동 또는 공무원 노동조합운동은 이제 막 그 깃발을 들고 움직이기 시작한 셈이다. 물론 이전에도 일부 현업 직종에서 노동조합이 활동을 해왔으나 전 공무원을 포괄하는 노동조합들이 결성됨으로써 명실상부한 공공서비스 노동조합운동의 역사가 새롭게 시작된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것이 공공서비스를 그 조직적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비롯되는, 지금까지 논의된 공공서비스 노동조합운동의 구조적 조건에 있다. 공무원 노동조합의 출범은 그 자체로 매우 중요한 사회적 의제를 이 사회의 공적 영역에 던졌던 셈이고, 담론이 어떤 방향으로 전개되든지 이제 공무원 노동조합은 어떠한 난관에 부딪히더라고 헤쳐 나가야만 하는 상황이다. 사회적으로 고립된 채로 공공서비스의 사회적 중요성을 무기로 삼아 협소한 자기이해에 매몰될 것인가, 아니면 공무원 노동조합들의 선언들이 주장하는 바람직한 공공서비스의 사회적 실현을 위한 주체로 자리잡을 것인가는 공무원 노동조합의 주체적 역량에 달려있는 셈이다.

공공서비스 노동조합운동의 과제

노동조합운동이 사회적 시민권을 확보하지 못하면 본래적인 존재 의의를 실현할 가능성이 희박해진다. 노동조합운동의 위기는 노동조합이 '운동과 조직'을 유기적으로 결합시키지 못하기 시작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공공서비스 노동조합운동은 민간부문의 노동조합운동과는 달리 상대적으로 '운동과 조직'을 유기적으로 결합시키는데 있어서 유리한 구조적 위치에 있다. 공공서비스 노동조합운동이 어떻게 사회적 시민권을 확고하게 하는가는 공공서비스를 둘러싼 정치적 상황을 그에 유리한 방향으로 주도할 수 있는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주체적 능력과 관련되어 있다. 따라서 국가-사회관계의 매개적 위치에 있는 공공서비스가 공적 영역에서의 담론 의제를 자신의 것으로 하고 비권위적인 조정자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도록 공공서비스 노동조합이 조직의 전략적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하겠다.

공무원 노동조합들이 공공서비스의 민주화, 부정부패의 청산, 지역의 민주적 의사수렴을 주요 사업을 설정하고 매진하는 것은 공공서비스 노동조합운동의 구조적 조건을 주체적으로 승화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노동조합 불인정 집단들에 의해서 공무원 노동조합의 이러한 사업들이 공무원들의 이기적, 경제적 목적을 베일에 가리기 위한 상징정치를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선전될 가능성이 상존하는 것도 사실이다. 노동조합운동의 역사는 그러한 작태들이 노동조합운동에 대한 공격의 아주 전형적인 수법으로 자주 등장하였던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상황과 조건에 따라서는 그러한 공격이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고 노동조합운동이 수세에 몰리거나 위기에 처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이것은 노동조합운동의 역사적 정당성의 문제과 관련된 문제이다. 권위주의적 전제 하에서 일시적으로 침체상태에 빠지더라도 상황에 따라서 다시 활성화될 수 있는 것은 바로 그 정당성을 노동조합운동이 확보하고 있을 경우에 한해서인 것이다. 따라서 노동조합운동은, 특히 공공서비스 노동조합운동은 적극적으로 공적 영역의 담론에 참여하여 자신의 문제를 사회적인 의제로 전화시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

공공서비스의 질적 수준은 그 사회의 민주주의 수준을 보여준다고도 할 수 있겠다. 공공서비스가 민주적으로 운영된다는 것은 국가-시민사회 관계가 민주적 원리 하에 유기적으로 구성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 터이기 때문이다. 공공서비스 노동조합운동, 특히 공무원 노동조합운동은 사회의 민주적 전환에 있어서 어느 집단의 운동보다도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무원 노동조합운동은 이러한 역할과 기능의 수행을 위해서 필요한 제반 의제를 사회적으로 제기하고 이를 토대로 노사관계를 주도해가야 할 것이다. 이것이 미리 정해져 있지 않은 "공공성"을 주도적으로 구성해 나가는 공공성의 정치의 핵심이다. 그리고 이상적인 것은 그것이 노사관계를 통해서 제도화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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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작년도 :
  • 통권 : 제 8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