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의 광주, 부안사태

노동사회

2003년의 광주, 부안사태

admin 0 3,725 2013.05.11 09:40

넉 달을 넘게 끌어온 핵폐기물처리장을 둘러싼 부안 사태가 주민과 정부 사이의 첨예한 대립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부안 주민들은 공권력을 상대로 일부 매체들에 의해 '민란'이라 명명된 '저항'을 했다. 정부는 곧 "질서 확립 후 대화를 하겠다"면서 인구 7만여 명이 사는 부안에 경찰 8천여 명을 파견했다. 7만여 명 중에서 선거권자가 3만여 명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사실상 '계엄' 상태라 불러도 무방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을 부안 주민들은 스스로 "마치 1980년 5월의 광주를 연상시킨다"고 한다. 일부 언론이 부안 주민들이 자신들의 모습에서 "1980년 5월 광주"를 연상한다는 점을 소개하자마자, 부안 외지인들은 벌떼처럼 달려들어 "왜 기껏해야 지역이기주의에 불과한 부안 주민들의 폭도 같은 행동이 '민주주의를 향한 숭고한 투쟁'인 광주 항쟁과 비교되어야 하느냐"고 타박했다.

대개 이렇게 함부로 부안 주민들의 저항을 폄하하는 사람들은 이 싸움에 대해서 한 번도 진지한 고민을 해본 적이 없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1980년 5월에 광주 외지에 살면서 광주 시민들을 '빨갱이의 사주를 받은 일부 폭도'로 몰아붙였던 많은 사람들도 광주 사람들의 싸움을 알고,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다. 확실히 말하겠다. 지금 부안 주민들의 공권력에 대한 저항은 명백히 '제2의 광주 항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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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7일째 촛불집회에서 등장한 노란색 안전모   - 출처:참세상 ]

부안 주민 저항은 실질적 민주주의를 향한 걸음

많은 정치학자들은 절차적 민주주의와 실질적 민주주의를 구분한다. 그리고 한국 사회는 절차적 민주주의를 달성하는 데는 어느 정도 성공했지만 실질적 민주주의가 제대로 실현되기에는 여전히 많은 장애물이 남아있는 사회라고 지적한다. 실질적 민주주의는 바로 노무현 정부가 정체성처럼 내세우는 '참여'가 온전하게 이뤄지는 상태를 말한다. 그리고 그 '참여'는 정당 활동과 같은 좁은 의미의 정치 참여뿐만 아니라, 경제·사회·문화·과학기술의 각 영역에서 당사자인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것을 이른다. 

많은 사람들이 민주 항쟁이라고 얘기하는 '광주 항쟁'은 바로 절차적 민주주의의 시발점인 '정권의 정통성'과 깊은 관계가 있다. 군홧발로 권력을 차지한 정통성 없는 정권이 문제를 제기하는 남도의 한 지역 시민들을 총칼로 희생시킨 것이다. '정권의 정통성' 논란을 극복하기 위한 일종의 자구책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군홧발 정권의 장본인들이 쇠고랑을 찼고 '광주 항쟁'이 '민주주의를 향한 광주 시민들의 숭고한 저항'으로 재평가 받았다는 것은 이러한 절차적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자리잡았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셈이다. 

부안 주민들의 저항은 바로 이 점에서 '광주 항쟁'의 연장선상에 있다. 광주에서 시작된 한국의 민주주의가 지금 부안에서 실질적 민주주의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국책사업이란 이유로 의사결정 과정에서 주민들이 배제되는 관행에 대해서 당당히 "그건 아니오"라고 하며 나섰다. 공권력에 의한 행정의 객체가 되기를 거부하고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런 주민들에게 군수가 주민이나 대표체인 군의회의 결정을 무시하고 독단으로 핵폐기물처리장 유치를 결정한 것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

이들은 역대 대통령 선거에서 가장 절차적 민주주의가 잘 구현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는 지난 대선에서 극적으로 당선된 노무현 대통령의 엄포와 위협, 압력에도 꿋꿋이 맞서고 있다. 사실 부안 군민들 대부분은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했던 이들이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이 기껏해야 민주주의의 한 절차에 불과한 선거에서 받은 지지를 무기 삼아 '참여'를 욕되게 할 때, 부안 주민들이 "대통령에게 직접 '참여'를 가르치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렇게 실질적 민주주의와 참여 민주주의를 향한 부안 주민들의 노력에 대해서 정부는 공권력을 동원한 사실상의 '계엄'으로 맞서고 있다. 이는 양상만 바뀌었지 바로 1980년 광주에서 있었던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
 
'반핵'을 상징하는 노란색 옷을 입은 할머니가 중무장한 손자뻘의 경찰들에게 둘러싸여 오도 가도 못하는 풍경이 벌써 닷새 째 반복되고 있다. 1백일이 넘게 노란색 촛불이 밤을 밝혔던 수협 앞 광장에서는 검은 옷을 입은 전경들 1천여 명이 가득 메운 채 일체의 접근을 막고 있다. 터미널 주위나 동네 길목마다 지켜 선 사복 경찰들은 가방을 멘 사람을 수시로 불러 세워 소지품 검사와 검문을 강요한다. 이런 일상적인 억압이 일으키는 흥분은 지난 1백일 동안 매번 시위 때마다 경찰들에게 폭행 당한 주민들의 울분을 염두에 두면 아무것도 아니다.

민주주의의 새로운 영역, 에너지 민주주의

부안 주민들을 '지역이기주의'라고 폄훼할 수 없는 또 다른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그들이 한국 사회에서 새로운 화두인 '에너지 민주주의'를 내세우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한국의 에너지 문제는 심각하다. 한국인 한 사람이 2002년 1년 동안 사용하는 에너지는 석유로 환산했을 때 4,475kg이나 된다. 이것은 일본(4,029kg), 독일(4,015kg), 프랑스(4,384kg), 영국(3,270kg)보다 높다. 더구나 한국은 지난 4년 간 에너지 소비가 평균 6% 이상 증가해 일본·독일과 그 격차가 점차 커지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10년 후 한국의 1인당 전기소비는 미국과 같고 중부유럽 국가보다 두 배나 많아질 것이다.

더구나 대부분 전문가들은 현재 에너지의 중요한 연료인 석유가 2010년을 정점으로 그 생산량이 크게 감소할 것을 예상하고 있다. 정부는 곧 도래할 에너지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2010년 안에 전체의 50%에 가까운 전력을 핵발전으로 대체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현재 전 세계에서 6번째로 핵발전량이 많은 한국은 현재 18기를 운용하고 있는 핵발전소 숫자를 계속 늘리려 하고 있다. 2015년까지 8기를 추가로 건설하고 2030년에는 총 36기의 핵발전소를 가동할 계획이다.

노무현 정부가 기를 쓰고 핵폐기물처리장을 건설하고자 하는 것도 바로 이런 핵에너지 확대 정책을 추구하기 위해서다. 2004년과 2005년에 울진에서 가동이 시작되는 2기를 포함한 핵발전소를 지속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 정부가 우선적으로 확보해야 할 것이 바로 핵폐기물처리장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지적할 것은, 이런 정부의 에너지 정책과 관련해 국민들은 한 번도 '참여'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바로 부안 주민들이 이 지점에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 것이다.

『녹색평론』을 발행하는 김종철 영남대 교수는 부안을 방문해서 깜짝 놀랐다. 한 촌로에게서 다음과 같은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길거리에 불필요한 가로등은 그때, 그때 소등해야 해. 이렇게 전기를 많이 소비하니까 정부가 자꾸 핵발전소를 지으려 하고, 그 때문에 우리가 원하지 않는 핵폐기물처리장도 강제로 설치하려고 하잖아." 읍내에서 구멍가게를 하는 한 아주머니도 대뜸 "핵폐기물처리장은 부안에도 안 되지만 다른 지역에 설치해도 안 된다"고 얘기한다. "핵폐기물처리장을 짓기 전에 핵발전소를 계속 지을 것인지 먼저 국민 허락을 맡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사정은 중·고등학생들도 다르지 않다. 한 중학생은 "이렇게 골치 아픈 핵폐기물처리장을 끊임없이 지어야 하는 핵발전보다는 풍력이나 태양력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런 게 우리나라에서 가능하냐는 질문에는 코웃음을 친다. "모르시나본데, 한국의 자연 환경이 풍력이나 태양력을 널리 보급하고 있는 독일이나 덴마크 같은 나라보다 훨씬 더 좋다"는 것이다. 

부안 주민들의 에너지 문제에 대한 인식은 웬만한 지식인보다 훨씬 더 낫다. 불행하게도 한국 사회에서는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에너지 문제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는 이들을 찾아보는 것이 쉽지 않다. 하지만 7만여 부안 주민들은 1백일이 넘도록 진행된 투쟁과 그 동안 진행된 교육을 통해 에너지 문제에 관한 한 외지에서 찾아간 지식인들이 놀랄 정도로 깊은 고민을 갖고 있다.
이런 부안 주민들의 고민은 바로 에너지 민주주의의 필요성과 바로 연결된다. 기존에 정부에 의해서 강압적으로 그 선택이 강요되고, 공급되었던 에너지를 "국민들이 직접 선택해야 한다"는 욕구가 부안 주민들에 의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부안 주민들은 핵폐기물처리장이 꼭 필요한 핵에너지보다는 재생 가능한 대안에너지를 방향으로 할 것을 주장하고, 그를 위해서 필요하다면 적정 수준으로 전기 소비를 줄일 의향이 내비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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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경과 대치하고 있는 집회참가자    - 출처;참소리 ]

제2의 광주 만들지 말아야

11월 23일 성당 저녁 미사를 핑계로, 성당 안마당으로 모여든 1천여 명의 부안 주민들은 1백20일째 촛불시위를 했다. 외지인들은 이런 부안 주민들이 "질기다"고 말한다. 부안 주민들 스스로도 "질긴 놈이 모진 놈을 이긴다"고 공언한다. '질긴' 부안 주민들이 '모진' 노무현 대통령과 정부를 이기겠다는 것이다.

부안 주민들은 지금 전혀 다른 방식의 '민주주의' 운동을 하고 있다. 만약 부안 주민들의 이런 노력을 여전히 폄하하고 외면한다면, 1980년 5월에 광주에서 그랬듯이 우리는 2003년에 또 한 차례 비극을 가슴에 새겨야 할지 모른다. 이미 그런 조짐이 보인다. 1백일이 넘도록 자신감이 넘쳤던 부안 주민들도 읍내를 가득 메운 전경들을 보면서 조심스럽게 "이러다가 누구 한 명 죽어야 사건이 해결되는 게 아니냐"는 걱정을 토로한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성장한다고 했던가? 아니다. 민주주의는 '희망'을 먹고 성장한다. 제발 부안만의 몫으로 남겨놓는 우를 범하지 말자. 광주는 1980년 5월 한번으로 족하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8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