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별노조운동의 현단계

노동사회

산별노조운동의 현단계

admin 0 6,805 2013.05.11 09:40

1. 들어가는 말

한 국의 노동조합은 대부분 기업별 노동조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임금·단체협약 교섭 역시 기업별 교섭이 주된 형태이었다. 비록 1961~1980년까지 산업별 노동조합의 형태를 취했던 경험이 있지만, 그 조직재편은 권력에 의해 강제로 이식된 것일 뿐만 아니라 기업별 노동조합의 구조가 그대로 유지된 산업별 노동조합이었다.

노동조합은 기업별 노동조합의 구조를 산업별 노동조합으로 전환하기 위한 노력과 의지를 계속 천명해왔다. 노동조합들은 기업별노조가 ① 기업별로 조직되기 때문에 중소영세 사업장의 노동자와 비정규직을 조직하기 어렵고, ② 기업 이기주의를 부추기고 노동자간 연대와 단결을 해치며, ③ 기업간 임금격차로 노동시장의 이중 구조를 가져오고, ④ 사회보장이나 제도개선에 취약하고, ⑤ 노동자의 정치세력화에 취약하다는 등의 한계를 가지고 있으므로 이러한 문제점들을 해결할 수 있는 산별노조로 전환해야 한다고 계속 주장했다.

그러나 1997년 이전에는 기업별노조의 산별노조 전환이 각 조직별로 객관적 목표나 당위로서 제시되긴 했지만 실질적으로 시행되지 않았으며 고작해야 과기노조 등 소산별노조의 경험이나 실천 이외에는 없었다. 실제로 산별연맹 자체가 산별노조로 전환한 사례는 1997년 이전에는 전혀 없었다. 이런 측면에서 산별노조 전환의 필요성과 배경으로 기업별 노조의 한계가 지적되는 측면이 강하다.

지금 시기 산별노조 건설운동의 이유 중 하나는 경제위기 이후 급격한 노동시장 상황의 변화이다. 경제위기 이후 대대적으로 진행된 정리해고와 인력감축, 아웃소싱 등 노동시장의 유연화, 임금 및 단체협약에서의 수세 등으로 인해 노동조합은 그동안 기업별노조에서 쟁취한 고용안정과 임금을 비롯한 노동조건 개선의 성과를 한순간에 날려버렸다. 산별노조를 건설한 노조 간부들의 다음과 같은 글들은 단적인 예이다.

“IMF 구제 금융은 기업별노조의 한계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었다. 기업 내 임금이나 근로조건, 복지만을 다루던 기업별노조의 실력으로는 고용이나 구조조정, 사회적 복지 문제는 기업 밖의 사안이었다. 언론 종사자 8천명이 잘려나가도 노조는 속수무책이었다. 심한 경우, 조합원들의 정리해고를 용인해주는 대가로 특파원으로 나가는 기업별노조 위원장도 있었다. 조합원들은 고용안정을 위해서는 개별 기업노조로는 힘들다는 것을 체득해갔다.”

“1997년 12월 우리나라는 IMF의 지원국가로 전락하고 대규모 금융구조조정을 겪게 되었다. 5개 은행 퇴출, 5개 은행의 합병 등 4만여 명의 금융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었다. 특히 IMF와 정부의 정책합의 사항을 금융정책에 반영하는 과정에서 수천 개의 기업이 도산하고 실물부분의 부실이 그대로 금융권으로 전가되어 금융기관이 국가신용을 유지시키는 중추기관으로서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거액의 공적자금이 투입되지 않으면 안되었다.…또다시 제2차 구조조정의 태풍이 태동하기 시작하였다. 1998년 9월 ‘금융인 대학살’로 불리는 이 시기에 금융노동자들은 자발적인 내부 동력에 의해 3만여 명이 명동성당에 집결했고, 퇴출대상 직원숫자를 줄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은행측과 교섭을 벌이던 금융노련 지도부는 총파업을 선언했다. 그러나 몇몇 노조의 이탈로 인하여 조직의 대오가 무너지면서 총파업 돌입에 실패, 대규모의 감원 바람에 휩싸이게 되었다. 이러한 쓰라린 경험을 가지고 있던 금융노련은 1999년 이용득 집행부가 탄생하면서 과거의 실패가 전술, 전략의 실패에 있다기 보다 기업별노조와 연맹체제라는 태생적 한계에 그 원인이 있다고 판단하고 금융산별노조 건설을 제1차 목표로 설정하게 되었다. 금융산별 건설만이 다가올 제2차 금융구조조정이라는 후폭풍을 막아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판단하였던 것이다.”

“IMF 직후의 경제위기와 이를 틈탄 자본의 공세로 임금, 근로조건, 고용의 측면에서 10년 노동운동의 성과가 허물어지고 있으며, 기업별노조 체계로는 정권과 자본, IMF와 같은 초국적 자본의 공세를 막아내기 힘들다는 평가는 금속산업연맹 내에서 자연스럽게 산별노조 건설의 필요성을 제기하게 했다.”


정리해고, 인력감축, 비정규직화 등 고용불안은 그동안 고용안정에 기초한 노동조건의 개선에 몰두하던 기업별노조에게 치명적인 위협이었다. 그동안 한국의 노동시장에서 비정규직이 늘어나긴 했어도 자신과 관련이 없는 문제로 여겨왔던 기업별노조들은 본격적으로 조합원들이 정리해고되거나 비정규직으로 변화하는 현실을 보면서 기업별노조의 무기력함을 뼈저리게 느꼈다. 노동조합의 조직률이 1987년 이전 상황으로 후퇴하면서 노동조합의 대표성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되었다. 결국 기업별노조의 한계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면서 산별노조 전환의 당위성이 보다 분명하게 조합 간부들과 조합원에게 각인되었다.

산별노조 건설 운동의 두 번째 이유는 1997년의 노동법 개정으로 인한 법제도의 변화이다. 1997년 노동법 개정은 기존의 기업별 노동조합을 강제하던 틀을 해체하고 산업별 노동조합의 출범을 용이하게 했으며, 동시에 기업별노조체제의 위기감을 느끼게 했다.

우선 상급단체의 복수노조 설립이 허용됨으로써 민주노총과 민주노총 소속 법외 연맹의 합법화의 길이 열리고 기존 상급조직과 조직대상을 같이 하는 전국적 산별 단위노조의 결성도 가능하게 되었다. 이는 조직 확대와 산별노조 건설에 유리한 조건이 형성된 것을 의미한다. 기존의 민주노총 산하 연맹의 경우에는 산별노조 건설을 지향했다 하더라도 합법적 상급단체로서 인정을 받지 못하였기 때문에 산별노조 전환의 주체 역할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상급단체 복수노조의 설립 허용은 민주노총 산하 연맹의 합법화로 이어졌으며, 이는 곧 산별노조 전환을 가능케 하는 법적 지위를 가지게 됨을 의미하였다.

그 리고 노조 총회나 대의원대회의 결의를 통해 조직형태의 변경이나 합병이 가능해짐에 따라 기업별노조에서 산별노조로의 조직형태 전환이 쉬워졌다. 과거에는 조직 해산이라는 극단적 방법을 쓰지 않고서는 기업별노조의 산별 전환이 불가능했던 데 반해 합병이나 조직형태 변경이라는 보다 유연한 방법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교섭 및 체결권 위임의 자유화에 따라 공동교섭, 통일교섭, 대각선 교섭 등 교섭형태의 다양화와 산별노조로의 전환이 촉진되었다.

2002년부터 시행하기로 돼있던 기업별 복수노조 및 전임자 임금 지급금지 허용은 기업별노조의 토대를 허물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불러 왔다. 실제로 노동조합 전임자의 대다수가 기업별 교섭을 통해 사측으로부터 임금을 지급받고 있는 현실에서 평균 조합원수가 230명 정도인 기업별노조가 전임자 임금을 지급할 여력이 없는 것은 분명하였고, 이 마저도 기업단위 복수노조가 허용될 시에는 더욱 재정적 어려움이 증폭되리라고 예견되었다. 따라서 노동조합 건설을 통한 재정과 인력의 집중화가 유력한 대안으로 제시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따라 기업별노조들은 2002년이 다가올수록 더더욱 산별노조로의 전환을 서두르는 계기가 되었다. 보건의료노조를 시작으로 1997년 이후 산별노조 전환이 대대적으로 이루어졌다. 현재는 양대 노총 산하 약 40만 명의 조합원이 이미 기업별 노동조합의 틀을 벗어난 산별노조의 조합원으로 있으며, 아직 산별노조로 전환하지 못한 조직 중에서도 공공연맹, 사무노련, 민주화섬연맹처럼 산별노조 건설을 계획하고 있는 조직들이 상당수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산별노조 건설과 산별노조 전환과 관련된 이론 연구는 아직 취약한 실정이다. 대부분의 논의들이 산별노조 건설의 당위성과 성과라는 측면에서 제기되었을 뿐 전환 과정과 이후의 여러 가지 문제점들에 대한 논의들을 포괄하지 못하고 있다. 산별노조 전환에 성공한 조직들이 직면한 과제는 무엇인지, 산별노조 전환이 어려운 이유는 무엇인지, 또 이미 산별노조로 전환한 조직들이 과연 얼마만큼 산별 조직 운영과 실천을 통해 기업별 관행과 활동을 벗어났으며 산업별 노동조합의 문제점(관료화, 현장 공동화) 등을 극복했는가와 같은 실천적 연구가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아울러 산별노조로의 전환이 노동시장이나 노사관계, 노동정책 전반에 던지는 새로운 문제들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전반적인 검토보다는 즉흥적이고 일회적인 문제제기에 그치고 있다.

실 제로 노동조합의 조직형태는 경제 변화에 따른 산업구조와 노동시장구조, 작업장 노사관계 등의 객관적 요인으로부터 영향을 받는 동시에 이러한 객관적 제도와 요인의 변화를 촉진하기도 한다. 서구의 산업별 노동조합 건설운동은 독점자본주의 시대에 걸맞지 않는 기존의 숙련공 중심의 직종별 노동조합의 한계를 깨뜨리고 반숙련, 미숙련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조직화에 성공하였으며 산업별 단체교섭제도로의 변화를 가져오기도 했다. 따라서 현재의 한국 노동조합운동의 산별노동조합 건설운동이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기존 노사관계에 어떤 변화를 불러올지에 대한 보다 깊은 연구가 필요하다.

이 글은 이런 의미에서 현재까지 한국노동조합의 산별노조 조직화의 현황을 살펴보고, 산별노조로의 전환이 한국의 노사관계에 가지는 함의를 살펴보고자 한다.

2. 노조 조직화와 산별노조 현황

2001 년 말 현재 전국노동조합 수는 6,150개, 조합원수는 1,568,723명으로 조직률은 12%이다. 조합수와 조합원수는 1989년 최고치를 기록한 이후에는 1997년까지 지속적으로 감소했으나 최근 들어와서 정체상태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지금의 노동조합 조직률은 1987년 이전 상황인 1986년의 16.8%에도 못 미치는 12%대의 낮은 수준이다. 조합원수는 1994년 1,659,011명에서 1997년 1,484,194명까지 축소되다가 2001년에는 1,568,723명으로 회복되었다. 조직률이 회복된 이유는 경제위기 이후 구조조정과 인력감축 등 생존권의 위협을 느낀 노동자들이 조직화에 나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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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체 노동조합 중에서 산별 노동조합 수는 [표2]에서 드러나듯이 27개, 산하 지부(지회)수는 1,530개이며 조합원수는 391,854명이다. 이는 2001년 말 현재 전체 노동조합수의 0.5%, 조합원수의 25.0%를 산별노조가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전체 조합원의 네 명중 한 명이 산별노조의 조합원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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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 이들 산별노조의 설립일을 살펴보면 대부분의 산별노조가 1997년 이후 건설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8개 산별노조 중에서 1997년 이전에 건설된 노동조합은 전교조와 전국과학기술노동조합, 전국강사노동조합을 제외하고는 없다. 게다가 전교조는 교사의 노동조건 동질성, 국가를 교섭상대로 하는 중앙집중성과 비합법으로 출범할 수밖에 없었던 시대 조건, 합법 노조로의 전환이 1998년 이후였다는 점등을 고려한다면 1997년 이전의 실제 산별노조는 두 개 밖에 되지 않는다. 이 두 조합마저도 강사와 과학기술자라는 직종별·소산업이라는 좁은 조직 형태인 점을 고려하면 본격적인 산별노조의 출범은 1997년 이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1997년 경제위기 이후에서야 한국의 노동조합들은 기업별노조의 한계를 보다 분명히 인식하고 본격적으로 산별노조 전환운동을 시작한 것이다.

이들 산별노조의 수와 조합원수를 총연합단체별로 보면 한국노총은 3,940개 노조, 877,827명의 조합원 중에서 금융, 택시, 한교조 3개 노조가 산별노조이며, 조합원은 136,986명이다. 이에 비해 민주노총은 899개 노조, 59만3천881명의 조합원 중 전교조, 보건의료노조, 금속노조를 비롯한 25개 산별노조와 25만4천868명의 조합원을 포함하고 있다. 전체 산별노조에서 양대 노총 조직이 차지하는 비중을 보면, 한국노총은 조합수에서 10.7%, 조합원수에서 35.0%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민주노총은 조합수에서 89.3%, 조합원수에서 65.0%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한국노총은 산별노조의 조합원수가 전체 조합원수의 15.6%인데 비해 민주노총은 전체 조합원수의 42.9%를 차지할 정도로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즉, 한국노총에 비해 민주노총이 산별노조로 전환한 노동조합수와 조합원수, 그리고 전체 조합 및 조합원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월등함을 알 수 있다.

3. 산별노조의 성과

그 러면 기업별노조에서 전환한 산별노조는 어떠한 성과를 이루었는가? 첫째로는 조직의 확대·강화를 들 수 있다. 전교조는 전국적 단일 산별노조라는 조직틀이 있었기 때문에 정권의 가혹한 탄압과 10년간의 법외 노조라는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조직을 사수·보존하였으며, 합법화된 이후 조합원이 9만 명을 넘을 정도로 비약적 조직 발전을 이룩하였다. 보건의료노조 역시 3년간 약 4천 명이 신규가입 하였으며, 2000년 투쟁에서 약 3천5백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금속노조 역시 출범 당시 약 3만 명에서 35,514명으로 조직이 확대되었다. 조직 확대뿐만이 아니라 조직 강화의 측면도 주목할 만하다. 금융노조는 금융권 노조가 결성된 이후 40년만에 사상 초유의 총파업투쟁을 전개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조합원 교육과 토론, 파업기금 100억 모금 등 조직의 강화가 이루어졌다. 금속노조는 회의시간을 반드시 엄수하고 결정하면 반드시 실행하는 등의 기풍을 정립하였다.

둘 째는 산별노조의 강력한 투쟁력이다. 금융노조는 사상 초유의 총파업에 6만5천 조합원 중 4만 이상이 참가하였으며, 구조조정의 완전한 저지는 아니었지만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다. 보건의료노조 역시 2000년 투쟁에서 87개 노조가 조정신청을 하고, 1만3천 명이 파업에 참가해 산별 통일 투쟁을 이루었다. 전교조 역시 비록 법적으로는 단체행동권이 금지되어 있지만 집단 연차휴가 투쟁을 비롯한 다양한 투쟁을 할 수 있었다.

셋째는 산별 협약을 쟁취한 점이다. 금융노조는 공동 단협과 공동 임금협약을 가장 먼저 체결하였으며. 2002년에는 주5일제 협약을 쟁취함으로써 주40시간제가 법제화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은행권 전체의 주5일제를 실현하였다. 이런 성과는 제2금융권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전교조는 합법화와 더불어 교육부 장관과 교섭하여 산별 단협을 체결하였으며 각 교육청과 시도 지부의 협약도 쟁취하였다. 증권노조 역시 금융노조처럼 통일 단협과 임금협약, 주5일제 협약을 쟁취하였다. 특히 증권노조는 사용자의 집단교섭권 위임을 받은 경총과 단협을 체결함으로써 더욱 의미있는 통일 단협의 성과를 거두었다고 할 수 있다. 과기노조는 통일 교섭에 실패하였으나 내용적으로 실질적 통일협약에 가깝게 통일 공동 임·단협안을 마련, 사용자에게 공동으로 제시하여 준비한 단협안과 유사한 내용으로 타결짓는 성과를 거두었다.

넷째로는, 산별 연대활동의 진전을 들 수 있다. 보건의료노조는 조합원 1인당 500원씩 해고자기금을 마련하여 해고자에게 월90만원을 생계비로 지급했다. 또한 2000년에는 장기투쟁 사업장 투쟁기금 모금과 산별 최저임금을 요구하여 25개 지부에서 타결하였다. 금속노조의 경우 세원테크 투쟁을 해당 지역의 공동투쟁과 공동파업으로 맞섰는데, 이것은 기존 기업별노조체계에서는 이뤄내기가 어려운 성과라고 할 수 있다.

그 러나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산별노조가 많은 한계와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점을 조직화, 중앙집중성과 기업별노조 체계의 잔존, 단체교섭 구조의 변화, 산별노조의 장애요인 등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한다.

4. 산별노조와 조직화

산 별노조의 조직대상은 원칙적으로 그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 전체이다. 여기에는 정규직, 비정규직 등 취업노동자뿐만 아니라 해고자, 실업자까지 포함된다. 외국의 산별 노동조합에서는 퇴직노동자, 연수생 등도 흔히 조합원으로 참여한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의 기업별 노동조합은 기업에 취업한 노동자, 그중에서도 정규직만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매우 많다. 노조 규약에 조합원 자격을 정규직으로만 한정하는 경우도 상당히 많으며 규약상의 제약이 없더라도 비정규직의 조직화에 신경을 쓰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아울러 기업별로 완결된 구조를 갖추어야 하는 기업별노조의 특성상 자체 조합비만으로 운영하기에 어려움이 많은 중소영세사업장은 더욱 조직화가 어렵고, 조합이 결성되더라도 계속 유지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적절한 방식으로 산별노조로의 전환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면 현재 산별노조 전환의 사례로 제시된 5개 노조의 사정은 어떠한가?

해당 5개 산별노조는 조합원 자격으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규약에 대상을 명시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적으로 비정규직을 조직하고 있느냐 일 것이다. 이점과 관련해서 모든 조직이 규약에서 비정규직을 조직 대상으로 분명히 적고 있는 것과 달리 실질적인 조직화에서는 아직 초기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노총 산하 금융노조의 경우 많은 비정규직이 은행에 있지만, 이들은 기업지부에 소속돼 있지 않을뿐더러 금융노조에 직가입하고 있지도 않다. 택시노조 역시 기업별 분회에 모든 것을 맡겨두고 있는 상태이다. 한편 민주노총은 나름대로 비정규직을 조직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조직화에서 한국노총 소속 산별노조와 별반 차이가 없다. 교사의 경우에도 최근 비정규직이 늘어나는 추세여서 전교조가 이들의 정규직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조직화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보건의료노조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일정 정도 달성했지만 비정규직 노동자가 노조에 대대적으로 가입한 상태는 아니다. 금속노조에서는 기아사내하청노조를 비롯한 사내하청 노동조합의 조직화 시도가 있었으나 산별노조의 적극적 노력이 아닌 사내하청 노조의 자율 투쟁에 의한 것이었고, 가입한 비정규직 조합원도 아직 소수에 불과하다.

종합해 보면 산별노조의 결성이 즉시 비정규직 노동자의 조직화로 연결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비정규직 조직화를 위한 별도의 조직, 예산, 사업의 집중 등 보다 목적의식적인 노력의 뒷받침 없이 산별노조로의 전환이나 규약상의 조직 대상 확대만으로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실질적 조직화가 쉽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취업 노동자만이 아니라 미취업, 해고자, 실업자까지 포함하고 있는 조직은 금속노조와 보건의료노조뿐이다. 금융 노동조합과 택시 노동조합은 분명하게 명시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노동자란 “노동력을 판매해서 생계를 유지하는 자”라 정의할 수 있으므로 취업과 미취업 여부를 가릴 것이 아니라고 확대 해석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전교조는 조합원 자격을 교원노조법에 따라 유치원, 초·중등 교원으로 제한하므로 취업 상태가 아닌 교사를 조합원으로 계속 유지하기는데 어려움이 있다.

5. 산별노조의 중앙집중성과 기업별 조직체계의 변화

산별노조로의 전환은 기업별노조를 중심으로 한 조직 체계를 어떻게 변화시켰는가? 과거 연맹 시절에 비해서 어느 정도 중앙 집중력을 쌓았으며, 기업별노조체제의 뼈대는 얼마나 해체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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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 약을 살펴보면 산별노조의 권한은 연맹 시절에 비해서 중앙 집중성이 매우 높아 졌다. 산별노조는 조합비 배분에서도 20~50%를 중앙 및 지역으로 배분하고 있다. 보건의료노조는 정액에서 50% 올랐으며, 금속노조는 연맹 시절 1인당 1,500원에서 조합비의 50%로 인상됐다. 금융노조도 2006년까지 현재 1인당 900원에서 조합비의 25%까지 본조 배분비율을 올리기로 결정한 상태다. 택시노조만이 연맹 시절과 마찬가지로 1,000원의 본조 의무금과 지역본부별로 1,000원~2,500원의 의무금을 납부하고 있다. 따라서 택시노조를 제외하고는 모두 연맹 시절에 비해서 의무금 배분에서 중앙 집중력이 강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전임자를 나누는 데도 중앙 집중성이 높아졌다. 전교조는 이미 모든 전임자가 중앙집행위를 통해 배정될 뿐만 아니라 현장 단위인 분회에는 전임자가 전혀 없다. 금속노조의 경우에도 현재 본조와 지부에 75명의 전임 및 반전임 간부가 근무하고 있으며 그중 현장 파견 간부는 50여 명이라고 한다. 현재 금속노조 전체 전임자 수가 300여 명이므로 금속노조로 전환하면서 과거 기업별노조 전임자중 16.7%가 상급 단위 활동에 파견되어 있는 셈이다. 보건의료노조도 본조에 임원 9명과 전문 스탭 17명을 합해 총 26명이 전임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지역본부 11개 지부에 13명이 전임하고 있다. 기대만큼은 아니지만 과거에 비해서 전임자수가 증가한 것은 사실이다. 유일하게 택시의 경우 전임자수가 연맹 시절과 별반 차이가 없다.

아울러 단일노조의 특성상 모든 산별노조에서 본조 뿐만 아니라 지역 및 지부의 모든 교섭권과 단체협약 체결권한이 본조 위원장에게 있는 것으로 규약에 정리되어 있다. 그러나 아직 산별 중앙교섭이 제대로 전개되지 않는 상황이어서 위원장이 기업별 교섭을 산하 조직에 위임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단, 대부분의 노조들이 협약을 체결할 때 위원장의 사전 승인을 얻도록 하고 있어 협약이 본조 방침에 어긋나지 않도록 하고 있다(보건의료노조, 금속노조, 택시노조). 또한 쟁의를 할 경우 조정 신청도 각 조직별로 위원장이나 중앙기구의 승인을 얻어야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보건의료노조, 금속노조, 택시노조). 조합원이나 산하 조직의 임원 및 조직에 대한 징계에 있어서도 중앙 기관이 결정권을 가지고 있다.

보건의료노조나 금속노조의 경우 전임자의 인사권도 위원장이 가지고 있다. 택시노조는 산하 조직의 임원에 대한 인준권을 위원장이 가지고 있으므로 가장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다. 따라서 현재 설립된 한국의 산별노조는 기존의 연맹에 비해 재정, 단체교섭 및 체결권, 조합원에 대한 통제권, 산하 조직에 대한 인준권을 포함해 매우 높은 중앙집중성을 제도적으로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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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러나 현재의 산별노조 조직운영에서는 기업별노조의 전통을 그대로 유지하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제도 변화에 따르는 산별노조의 중앙집중성을 강력히 구현하기 어렵다. 사례로 제시된 노동조합 중에서 전교조를 제외하고는 기업별 조직체계가 굳건히 유지되고 있다. 금융노조와 보건의료노조의 지부, 택시노조의 분회, 금속노조의 지회 등이 그 예이다. 전교조 분회는 독자적인 전임자나 대의체계 등을 갖고 있지 않지만, 다른 산별노조는 지부, 지회, 분회 등 명칭이 어떠하던 간에 기업별노조의 전임자, 대의체계, 집행부서 등의 완결체계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더구나 택시노조는 조합비 배분에 있어서도 기존 연맹에서 납부하던 만큼의 의무금만 본조에 납부하며 지역본부도 연맹 시절처럼 지역본부 자체에서 결정한 의무금을 납부하고 있다. 결국 사례로 제시된 노조들이 형식에서는 산별노조로 전환했지만 기업별노조의 틀을 전혀 바꾸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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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별노조 체계가 분회, 지회, 지부 등으로 명칭을 변경했다는 측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기업별노조의 독자성이 이들 지부, 지회, 분회 체계에서 얼마만큼 유지되고 있으며 산별노조의 관할권은 어느 정도인가 하는 점이다.

그 런 측면에서 한국의 산별노조는 기존의 기업별노조 체계에서 전임자 중심의 활동 관성을 극복할만한 조직 토대를 형성하지 못했고, 지부의 통제력이나 지도력, 집행력이 불충분한 상태이다. 금속노조와 보건의료노조 모두 전임자수가 늘어났지만 전임자를 본조와 지부로 올리는 데 실패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기존의 기업별노조의 전임자가 축소되는 데 대해 기업 단위 조직체인 지부(지회)의 강력한 저항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금속노조 전임자 문제와 관련해서 “대의원대회에서 전임자 파견원칙과 기준을 결정한 바 있으나 유일하게 ‘전면적으로’ 지켜지지 않는 결의사항”이 되었다는 평가는 이러한 실정을 잘 보여준다. “조합활동의 중심이 여전히 지회이기 때문에 지회에서 지도력을 가진 핵심 인력이 파견되는 경우가 많지 않고, 조합 간부들은 훨씬 고생이 심한 지부활동을 기피하는 것이 일반적이다”는 지역활동가의 의견은 산별노조 전환 이후에도 여전히 기업별 조직 중심의 의식과 관행이 일반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전임자 문제만이 아니다. 단체교섭의 실질 권한이나 내용에서도 이 문제가 여전히 드러난다. “금속노조의 임단협의 협약 체결권은 본조 위원장으로부터 지부장에게 위임되지만 실제 교섭을 지회장이 책임을 지고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은 경남1지부나 2지부 역시 동일하다”고 지회 조직 운영을 조사한 연구자는 결론지었다. 아울러 본조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잠정합의에 대해서 결국은 지회의 요구가 관철되었다는 금속노조 두산지회나 효성지회의 사례는 규정에 존재하는 본조의 교섭 체결권과 통제권이 현실에서는 여전히 기업별노조 시절과 마찬가지로 기업별노조 중심의 관행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산업별 교섭이나 지역교섭을 못하고 있는 보건의료노조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일 것으로 보여진다.

산별노조가 통일된 방침이나 지침을 고수하기 위해 노력한다 하더라도 사업장 조직의 현실과 충돌한다면 일방적으로 지침을 준수하길 강요하거나 징계권을 발동시키기는 매우 어려운 실정이다. 보건의료노조의 본조 간부 역시 “규약상 본조에 징계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징계 집행에 대해서는 신중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실제 징계가 집행되어도 내부에서 반발하고 거부하면 활동과 권한 행사에 대한 제약 이외에는 달리 제재할 방법이 없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아직은 기업별노조로도 생존할 수 있다)”고 토로하고 있다. 아직까지 기업별노조로 존속이 가능한 현실에서는 본조의 징계권이란 오히려 기업별 조직의 산별노조 이탈과 기업별노조 존속이란 결론으로 이끌어 질 수 있기 때문에 실제로 지침이나 방침을 위배하더라도 징계를 내리기가 매우 어려운 것이다. 특히 그 사업장이 대공장일 때에는 더욱 그러하다.

6. 단체교섭 구조의 변화

산별노조를 건설한 노조들의 단체교섭 구조는 어떻게 변화했는가? 기존의 기업별 교섭의 틀은 일정하게 해체되거나 중층적 교섭이나 산업별 교섭으로 진전이 있었던가?

이 문제와 관련해서 긍정과 부정의 양 측면이 존재한다. 우선 긍정적 측면으로는 산업별 교섭으로의 진전이 일정하게 확인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전교조는 합법성을 얻은 이후 교육부와 시·도별 교육청과의 교섭을 통해서 단체협약을 체결하였다. 아울러 금융노조는 2000년 통일 단체협약을 체결하고 2002년에는 주5일제와 관련된 협약을 체결함으로써 가장 모범을 보여주고 있는 조직이다.

기존의 소산별노조인 사무노련 산하 증권사노조의 경우에도 증권업협회로부터 교섭권을 위임받은 경총과 통일 단체협약과 주5일제 협약을 2002년 체결한 바 있다. 택시노조는 지역별로 임금협약을 공동으로 체결하기도 하였다.

따 라서 산별노조 전환과 함께 산업별 교섭이 일정하게 확대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교섭체계의 변화는 주체적인 노력과 더불어 객관적인 조건이 많은 부분에서 작용했다는 점을 무시할 수 없다. 예를 들어, 금융노조의 산별 협약이 이루어진 데 대해서 한 노조 간부는 “수년간 시중은행노조, 국책은행노조, 지방은행노조, 농수축협 중앙회노조와 협의회별 공동교섭 경험이 있다는 점, 따라서 단협 내용이나 임금구조 등 노동조건이 비슷하다는 점, 사업장 단위에서 노사마찰을 갖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공기업 사용자들의 특성, 7월 파업 등 급격한 구조조정에 따른 노조의 거센 물리적 대응 등이 협약 체결의 배경이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즉, 우선적으로 기존의 공동교섭의 경험이나 노동조건의 동질성이 산업별 교섭이 이루어진 가장 큰 요인이었던 것이다. 택시노조의 지역별 교섭 역시 기존의 노동조건의 공통성이나 지역별 교섭의 경험이 있었다는 점이 많이 작용했다. 전교조의 경우에는 교원노조법이 교육부 및 시·도 교육청과의 교섭을 법적으로 강제하고 있고 임금 등 노동조건이 동일하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점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이에 비해서 공동교섭의 경험이 없고, 기업 규모간 격차가 큰 산업의 경우 산별교섭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루어지더라도 어려움에 봉착해 있다. 우선 가장 먼저 산별노조를 건설한 보건의료노조의 경우 2000년 교섭과정에서 병원협회를 산별 사용자단체로서 교섭을 요구하였으나 병원협회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리고 협회 정관을 사용자단체의 성격으로 바꾸는 정관개정운동도 실패하였다. 노조는 결국 개별 사용자들을 대상으로 해서 “산별교섭에 응한다”라는 합의안을 도출하는 수준에 머물러야 했다. 금속노조의 경우에도 비슷한 과정을 겪었다. 다양한 제조업이 속해있는 금속노조는 초기에 사용자 총연합단체인 경총을 대상으로 산별 중앙교섭을 요구하였으나 거부당하고 지역별 집단교섭 중심으로 진행하였고, 2002년 교섭에서는 기초적인 5개항만을 대상으로 137개 사업장 중에서 97개 사용자들과 집단교섭에서 합의하였다. 그러나 이 조항들은 아주 기초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에 노동조건의 통일성을 추구하는 단협의 기본 과제의 입장에서 살펴볼 때는 산별교섭을 위한 기초 준비단계에 불과한 실정이다. 더구나 금속노조와 보건의료노조는 2002년 대공장 노조인 두산중공업의 산별교섭 이탈, 가톨릭대학병원들의 파업 장기화로 인한 후유증 등 산별교섭 추진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될 것이다.

이 렇게 본다면, 전반적으로 산별노조로 전환한 조직들의 교섭 형태는 전국적 산업별 교섭이나 지역별 집단교섭 등 기업별 교섭을 벗어나 중층적 교섭으로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교섭형태의 변화는 주로 기존의 공동교섭의 경험이나 노동조건의 동질성 등이 강한 조직들에 한정되고 있으며, 기업별 노동조건의 편차가 크거나 공동교섭의 경험이 없는 조직의 경우 어려움에 봉착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어려움은 노동조건의 기업별 편차, 산별교섭 경험의 부재, 교섭대상으로서의 사용자단체의 부재, 사용자들의 산별교섭에 대한 거부감(주로 대공장)으로부터 비롯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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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산별노조 전환의 장애요인

산 별노조 전환에서 직면하는 문제점들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산별노조를 추진하는 당사자인 노동자나 노동조합이 가진 주체의 문제점이고, 다른 하나는 객관적 문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양대 노총의 산별노조 건설방침에서 살펴보았듯이 양대 노총은 산별노조 건설방침을 내놓았지만 실제 이행에 성공한 조직들이 아직 과반수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는 3개 노조만 산별노조로 전환한 한국노총의 경우 특히 그러하다. 산별노조 전환이 더딘 것은 객관적 여건과 조건의 문제점도 있지만 주체 당사자의 문제도 무시할 수 없다고 보인다.

① 주체의 장애요인 중에서 가장 먼저 들 수 있는 것은 기존의 기업별노조의 기득권 문제이다. 여전히 많은 노조들이 기존의 기업별노조가 갖는 독자적이고 완결적인 지위에서 산별노조의 지부나 지회와 같은 하부 기구로 편재되는 것에 대해 저항감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대공장일수록 더욱 심하다. 한국노총의 대다수 조직들이 산별노조 전환에 실패하거나 어려움에 봉착하는 것은 기존의 단위노조 간부들이 기득권을 포기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러 산별연맹의 대의원대회에서 산별노조 추진까지는 결의되지만 막상 조직 전환을 결의할 상황이 오면 대부분 대의원대회에서 부결되고 만다. 한편으로 민주노총 산하 조직들은 대규모 사업장의 조합원 이기주의 때문에 고민하고 있다. 예를 들어, 금속산업연맹의 경우 금속노조로 전환한 조직이 전체 16만 명 가운데 4만 명이 채 못되는 상황이며, 5천 명 이상의 대공장 노조들의 총 조합원 약 10만여 명은 전부 산별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상태다. 이들 조직들은 조직 전환을 위한 규약 개정 투표에 실패했거나 투표안을 상정조차 하지 못했다. 적게는 수 천 명에서 많게는 수 만 명의 조합원을 거느린 거대 노조에게는 자신의 힘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기 쉽고 중소사업장과의 연대가 그리 큰 매력으로 다가오지 않는 것이다.

더구나 2002년 기업별 복수노조 허용과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가 5년 간 유예되면서 기업별노조 간부들에게 기업별노조로도 계속 존속이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가 더욱 커졌다. 당연히 기업별노조 해체의 위기감이 약해진 것도 사실이다.

② 노조 내의 분파나 정파주의의 문제점이다. 대규모 조합원을 가진 조직 내에 이견의 존재는 당연하며 민주주의는 다양한 이견을 통일시켜내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러나 다양한 정파는 자그마한 차이를 크게 만들고 자신의 조직이 중심이 되기 위해서 전체의 결정을 훼손하거나 그 시행에 제동을 가하기도 한다. 현재 한국의 대공장들 내부에는 다양한 현장조직들이 존재하는데 어느 한 조직이 분명한 반대를 표시할 경우 산별노조 전환을 위한 규약 개정안은 통과하기 어렵다. 대공장 조합원의 이기주의와 결합한 분파주의는 조직형태 전환이라는 새로운 시도를 무산시키기에 충분한 힘을 갖고 있다.

③ 내부의 이견을 모아내고 통일시킬 수 있는 지도부의 지도력 부족이다. 산별노조 전환에 착수하였으나 실패한 많은 조직들에서 대부분 전반적 홍보, 교육이 부족하였거나 전체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채 서두른 점 등 다양한 문제점들이 발견된다. 조직형태 전환은 단순한 조직 형식의 전환만이 아니라 한국 노조 체계의 혁신에 해당하는 사업이다. 이를 이루어내기 위해서는 지도부의 면밀한 계획과 사업수행, 전술적 유연성, 지도력 등이 요구되기 마련이다. 금속노조의 산별 전환 당시 산별노조 건설 방침이 연맹내에서 겨우 2표 차로 통과했다. 여기에는 각 정파 조직간의 이견이 존재했던 탓도 컸지만 지도부의 미숙한 지도력도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산별노조 건설의 대의에는 동의하면서도 건설방식, 조직체계 등에 대한 이견이 해소되지 않은 채 집행부의 안을 무리하게 밀어붙이면서 내부의 의견 차이가 여과되지 않은 채 충돌한 것이다. 결국 건설된 산별노조는 중소사업장을 중심으로 한정되었으며 대공장은 참여하지 않았다. 다음으로 노조나 조합원 주체를 제외한 객관적 문제를 들어보자.

④ 산별노조와 산별교섭에 대한 사용자의 거부와 저항이 강력한 점을 들 수 있다. 아직까지 한국의 사용자와 사용자단체들은 산별노조가 노조의 집중화를 통해 노조역량을 강화시키는 것으로 여겨 산별노조 전환 및 산별교섭에 대한 거부감이 매우 강하다. 특히 세계적으로 교섭구조가 분산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산별교섭은 시대착오라고까지 주장하는 사용자들도 많다. 예를 들어 언론노조의 경우에도 산별노조 건설과정에서 사용자들의 심각한 반대에 직면하였으며, 금속노조의 대공장인 두산중공업의 장기파업은 사용자가 집단교섭에 불응하였기 때문에 발생한 경우이다. 한국경총은 매년 회원사에게 단체교섭 지침을 통해 노조의 공동교섭 요구에 응하지 말 것을 권고하고 있으며 교섭권 위임도 교섭 기간만 늘리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이를 사용자단체의 미성숙과 취약성 문제로 보기도 한다. 현재 경총과 각종 업종별 단체들이 조직되어 있지만 동업적 이익을 위한 로비단체의 성격이 강하고 사용자단체로서 산별교섭의 경험을 가지고 있는 단체는 거의 없다. 섬유, 운수 등의 업종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사용자단체는 전무하다고 할 수 있다. 가까운 일본만 하더라도 기업별노조 체계를 따르고 있지만 한국의 경총에 해당하는 「일본경영자단체연맹」(일경련)도 산하에 50여 개의 업종별 경영자단체와 47개의 지역별 경영자단체를 두고 있는 명실상부한 지역·업종 단체의 전국적 연맹체이다. 이에 비해 한국의 경총은 개별 기업회원이 가입한 협회에 가깝다. 따라서 그동안 사용자단체가 매우 취약했으며 업종이나 산업별 사용자단체의 역할은 거의 없었던 것이 한국 현실이다. 최근 소산별노조인 증권노조의 파트너는 증권협회가 아니라 개별 회원사의 교섭권을 위임받은 경총이었다는 것은 그만큼 한국의 업종·산업별 사용자단체의 미성숙과 취약함을 드러낸다. 따라서 이러한 사용자들의 반대나 사용자단체의 미성숙, 취약함을 제어하거나 설득하기까지 산별노조는 아직도 많은 과제들을 안고 있다.

⑤ 산별노조와 산별교섭에 대한 법제도적 제약도 심각한 수준이다. 1980년 국가보위입법회의에서 개정한 노동법은 강제로 기존의 산별노조 체제를 기업별노조 체제로 전환시켰다. 1987년 및 1997년 노동법 개정이 기존의 기업별노조를 전제로 하는 법체제를 상당히 개선했긴 하지만 여전히 기업별노조를 전제하고 있거나 기업별노조를 강제하는 법체계와 행정해석이 남아 있다.
법제도 문제로 산별노조에서 실업자, 해고자의 조합원 자격 문제를 들 수 있다. 학자들의 견해에 따르면 대체로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와 달리 노동조합법상의 근로자는 반드시 사업 또는 사업장에 고용되어 있는 근로자로 한정되지 않고 실업자, 또는 해고자라고 하더라도 자신의 노동력을 제공하고 임금·급료 기타 이에 준하는 수입을 받아 생활할 의사나 능력이 있는 자는 근로자에 해당한다는 주장이 통설로 여겨졌다. 그러나 그동안 판례는 일반적 학설과 달리 종업원의 지위를 상실하면 조합원 자격도 당연히 상실하는 것으로 판결해왔다. 그러나 최근에 서울행정법원은 서울여성노조가 서울시를 상대로 제기한 노조설립신고 반려처분 취소 소송에서 “노조법 제2조 제4호 단서는 ‘기업별 노동조합’의 조합원이 사용자에게 해고됨으로써 근로자성이 부인될 경우에 대비하여 마련된 규정으로 기업별노조의 경우에만 한정적으로 적용되는 것으로 해석함이 옳고, 사용자로부터 해고되었다 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근로자성에 영향을 받지 않는 산업별 노동조합 등의 경우까지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지역별 노동조합의 성격을 지닌 서울여성노조가 그 구성원으로 ‘구직중인 여성노동자’를 포함시키고 있다해도 ‘구직중인 여성노동자’ 역시 노조법 소정의 근로자에 해당하는 것으로 판단됨으로 ‘구직중인 여성노동자는 근로자가 아니다’라는 이유로 설립신고를 반려한 이 사건 처분은 위법하다”고 판시하여 기존의 판례와는 다른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따라서 실업자, 해고자, 구직자 등의 경우에도 산별노조의 경우에는 조합원 자격이 가능하도록 법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

⑥ 산별노조와 지부·분회의 노조법상의 지위 문제이다. 현행 노조법 시행령 7조는 “근로조건의 결정권이 있는 독립된 사업장 또는 사업장에 조직된 노동단체는 지부·분회 등 명칭 여하를 불구하고 법 제10조 제1항의 규정에 의한 노동조합의 설립신고를 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아울러 노동부의 업무지침은 설립신고증이 교부되면 단체교섭 및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 등이 가능하고 단체교섭이 결렬된 때에는 당해 노동단체의 총회(대의원회)의 의결을 거쳐 노동쟁의조정신청이 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 주장에 따르면, 산별노조의 산하 지부(분회)가 사업장별로 설립신고와 더불어 독자적 교섭, 쟁의를 할 수 있다는 셈이 된다. 그러나 앞에서 우리가 보았듯이 산별노조의 대다수는 자체의 규약에 의해 교섭, 쟁의권을 본조 위원장이 가지고 있으며, 위원장이 위임할 경우에만 지부(분회)차원의 교섭, 쟁의가 가능하므로 이는 서로 충돌하고 있다. 노동부의 주장에 따르면, 설립신고를 마친 지부와 분회는 산별노조의 규약과 달리 독자적 교섭, 쟁의가 가능하므로 산별노조의 통일성과 통제권 자체가 무너지게 된다. 이 문제는 결국 산별노조 하에서 교섭과 쟁의행위의 주체를 누구로 보아야 하는지의 문제이다. 노동부는 가능한 한 기업별노조 체제를 연장해서 근로조건의 결정권이 있는 사업장 단위의 경우에는 산별노조의 하부조직이라 하더라도 그 지부(분회)가 독자적인 교섭, 쟁위권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 입장이며, 산별노조는 이에 대해 노동자가 자주적으로 단결하여 산별노조를 결성하고 스스로가 결정한 규약에 따라야 하는 것이 자주적 단결권의 취지에 합당하다는 입장이므로 양 주장은 충돌하고 있다.

교 섭·쟁의의 주체 문제만이 아니라 기업별 지부(분회)의 산별노조 탈퇴 및 기업별노조로의 환원도 문제가 된다. 노동부는 지침에 근거하여 산별노조 산하 지부의 대의원대회를 통해서 산별노조를 탈퇴하고 기업별노조를 설립하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이 경우는 비록 그 이전에는 기업별노조였지만 현재는 단일 조직인 산별노조 산하의 부분 조직이 된 지부(분회)의 독자적 의결권을 인정해서 기업별노조 설립까지 인정하는 것이므로 산별노조의 강력한 반발을 사고 있다. 결국 이는 노동자들이 자주적으로 결성한 산별노조를 부인하고 시행령이나 행정해석·지침을 통해서 기업별노조체계를 강요함으로써 헌법상 보장된 노동자의 자주적 단결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⑦ 산별노조와 산별교섭의 문제이다. 현행법상 산별교섭의 당사자는 사용자단체이며, 현행법에 의하면 사용자단체는 “노동관계에 대하여 조정 또는 규제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노동조합법 제2조 3항)” 단체로 규정되어 있다. 하지만 현재 산별노조들이 사용자단체로 생각하고 있는 병원협회, 은행연합회, 사학법인협의회 등은 정관에서 이러한 권한을 전혀 명시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조직체계는 산별노조로 전환했어도 대부분의 산별노조들이 대각선 교섭이나 지역별 공동교섭 수준 이상의 산별 통일교섭을 성사시키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각 산별노조들은 각각 또는 연대해서 산별노조가 설립된 산업에서 산별교섭을 의무화하도록 강제할 수 있는 법제도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보건의료노조, 금융노조 등 양대 노총을 망라한 5개 산별노조는 2000년 5월10일 110주년 노동절을 맞이하여 공대위 차원에서 ‘한국사회에서 산업별 교섭의 전망과 과제’라는 주제로 정책토론회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노조의 요구대로 법적으로 강제하지 않더라도 기존의 기업별 교섭을 벗어난 다양한 형태의 중층적 교섭구조를 만들어내기 위한 제도적 정비가 요구되고 있다.

8. 나가는 말

한국의 노동조합이 기반하고 있는 정규직 중심의 기업별노조운동은 노동시장의 유연화와 고용불안정 시대를 맞아 조직과 투쟁의 측면에서 한계에 직면하고 있다. 따라서 양대 노총을 막론하고 산별노조 건설운동을 중요한 과제로 제시해왔으며, 최근 경제위기 이후 본격적인 산별노조 건설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이미 산별노조 건설운동은 시대의 대세로 떠오르게 되었다. 노동조합들은 산별노조의 건설을 통해 노동조합 조직의 확대·강화, 비정규직의 조직화, 산별 통일교섭을 통한 노동조건 격차의 해소, 사회보장제도의 확대와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 미 건설된 산별노조들이 그동안 조직의 확대, 산별교섭의 일정한 진전, 연대의 확산, 산별 공동투쟁의 확대 등 일정한 성과를 거둔 것도 사실이다. 재정, 인력, 단체교섭 및 규율에서 기업별노조의 분산성을 넘어서는 중앙 집중성 및 통일성이 강화되었다. 금융노조와 전교조의 경우에 산별 중앙교섭이 이루어졌으며, 택시의 경우에는 지역별 교섭, 보건의료노조와 금속노조의 경우 집단교섭이 확대되었다.

그러나 아직 한국의 산별노조는 외국에 비해 조합원 규모도 작고 기업별노조 체계를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다. 여전히 인력과 사업의 중심이 기업별 단위-그 이름이 분회든 지회든 지부든-에 있으며, 규약상의 중앙 통제력도 현실에서는 발휘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산별 중앙교섭도 일정한 진전이 있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사용자들의 강력한 저항에 직면하고 있다. 대공장들의 조직이기주의, 내부의 분파주의, 지도부의 지도력의 한계 등 주체의 한계도 상당하다.

한국의 산별노조 건설운동은 이제 첫 걸음마 단계에 불과한 수준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단기간에 서구와 같은 산별 중앙교섭의 제도화가 형성되거나 쉽사리 관료화된 중앙집중적 노조의 형태를 취하지도 않을 것이다. 주체적 한계와 객관적 장애를 극복해가면서 한국의 현실에 맞는 산별노조를 건설해나가기 위해서는 노동조합 스스로의 창조적 노력이 더욱 요구되는 시점이다.

한편으로 산별노조와 이에 따른 교섭구조의 변화는 노사관계 틀과 노동시장 구조의 변화까지 일으킬 수 있는 거대한 흐름이다. 따라서 산별노조 시대에 걸맞는 새로운 노사관계를 형성하기 위한 노·사·정 모두의 적극적 노력과 활동이 기대되고 있다. 특히 한국의 현실은 기업 단위의 치열한 노사대립과 중앙 차원의 절름발이식 노사정 논의 틀을 제외하고는 산업별 노사관계가 거의 부재하다. 노동조합은 산별로 전환되고 있지만 그 파트너가 되어야 할 산별 사용자단체는 거의 부재한 상태에 있다. 정부의 대응도 기존의 기업별 노동조합이나 교섭틀을 전제로 한 미봉책에 불과한 실정이다. 따라서 이러한 변화의 흐름을 인식하고 공동의 대안을 모색해나가는 노력들이 노·사·정 간에 요구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 시대를 맞이하여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산별노조 및 산별교섭 구조와 관련해서 ‘중층적 구조의 사회적 파트너쉽 형성’이라는 주제하에 “지역·업종·산업별 노사정 협의회 활성화, 기업별 교섭을 전제한 노동법 정비, 여건이 마련된 공공·민간부터 업종·산업별 교섭을 점차적으로 유도” 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다. 이전 정권에 비해서는 산별노조 전환의 시대 흐름에 적극적으로 맞추어 가면서 중층적 구조의 교섭구조를 마련하기 위해 전향적으로 노력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읽힌다. 바야흐로 새로운 대안이 보다 적극적으로 모색되어야 할 때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7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