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파·경제주의·운동의 위기

노동사회

정파·경제주의·운동의 위기

admin 0 2,813 2013.05.11 09:36

현자노조 집행부는 작년부터 산별노조 전환사업을 최대 과제로 설정하고 추진해 왔다. 그러나 현장조직들의 충분한 동의를 얻지 못해 산별노조 전환 총회 일정이 올해로 연기되었다. 이 과정에서 숱한 주장이 난무하여 조합원들은 누구의 주장이 옳은지 헷갈려 하고 있다.

얽히고 설킨 활동가 이해 관계

금속노조 가입에 따른 지부형태, 조직형식, 가입시점, 비정규직 조직화 방안 등에 대해 조직마다 서로 다른 견해를 갖고 있다. 집행부는 이러한 사안을 하나하나 정리하자면 시간이 많이 들고 숱한 갈등이 조성될 터이니 일단 총회를 통해 산별 전환 여부를 결정해 놓고 공식기구에서 하나씩 결정하자는 방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현장조직들은 자신들이 주장하는 사안의 중요성을 감안해 구체적인 문제들부터 결정하고 정리한 다음 총회로 가야한다고 주장한다. 또 한 축에서는 투쟁 속에서 산별 전환 즉, 지역 비정규직의 총체적인 요구를 내걸고 투쟁한 다음 그 성과를 바탕으로 산별 전환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집행부가 주장하는 산별 전환 조합원 총회를 시기상조라고 못박고 있다.

그 러나 산별 전환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나 조합원 교육과정에서 드러났듯이 산별 전환이 언제 어떻게 이뤄지느냐는 조합원들의 관심사항이 아니다. 그들에게는 조합비가 오르는 게 중요하고, 내가 낸 조합비 중에서 우리 구성원을 위해 쓰여지는 몫이 줄고 상급단체로 많이 빠져나가는 것이 불만이다. “현자노조만의 힘으로도 무엇이든 할 수 있는데 굳이 더 큰 힘이 뭐가 필요하냐, 오히려 전체 노동자들의 수준에 우릴 맞추면 손해보는 협상하는게 아니냐”는 경제적 이해관계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또한 우리끼리도 이렇게 속시끄럽고 맨 날 싸우는데 범위가 커지면 운동하는 놈들 권력 투쟁하다 판이 깨질거라는 위기의식을 갖고 있기도 하다.

이 현상을 산별노조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지 않아서 생긴 이기적이고 몰계급적인 생각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지만, 한꺼풀만 벗겨보면 활동가 또는 활동가 집단의 치열한 이해관계가 스며있음을 느낄 수 있다.

집행부 발목 잡기

집 행부가 추진하는 일이면 일단 부정적인 측면을 들춰내어 깍아 내려야 하고, 성과를 안겨줘서는 자신의 입지가 약화된다는 일부 활동가들의 계산이 대중들이 사안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을 가로막고 있는 셈이다. 지난해 현자노조는 산별전환 사업을 위해 다양한 토론회, 간담회, 교육을 배치했다. 모든 현장조직 의장들과 토론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어느 조직의 의장은 당시에 진행되던 경제특구법 반대투쟁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토론 일정을 무조건 연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요한 투쟁이 진행되고 있는데 이런 토론 일정을 잡는 것은 투쟁 의지가 없다는 증거라며 집행부가 제시하는 일정대로라면 토론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처럼 운동의 전략 과제를 실현하는 도중에 다른 사안이 있다고 해서 무조건 일정을 연기하자고 한 이면에는 집행부가 계획하고 있던 조합원 총회 일정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자신들 내부의 사정이 반영된 것이라 보여진다.

또 금속노조로 전환한 이후 현자노조의 조직체계를 재편하는 문제, 산별 전환시 비정규노동자를 조직화하는 방안 등은 집행부가 분명한 대안을 제시하지 않고 내부의 의견이 모아지면 그 방향대로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자 한 조직은 집행부가 계획도 사업 방향도 없이 일을 추진한다며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그에 앞서 이 조직은 집행부가 산별 전환에 대한 추진 일정과 기본 방침을 천명하자 내려박기식 사업방식이라면 비판을 했던 조직이다. 방침을 제시하면 내려박기, 내부 논의를 위해 여지를 남겨두면 생각 없는 사업 방식이라고 비난하는 풍토가 운동하는 사람들의 논리로 타당한 것인지 되묻고 싶다.

책임감 없는 태도가 문제

요즘 현자에서는 다임러 크라이슬러사와 상용사업합작이 추진되고 있다. 전주 지부에서 전개된 상황 하나를 소개한다. 단, 회사가 추진하고 있는 이 사업이 객관적으로 조합원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지는 논외로 한다. 전주지부 3대 집행부를 책임졌던 H조직은 자신들이 집행부였던 시기에는 상용합작을 수용하고 조건강화 투쟁을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3대 집행부는 전주 조합원을 대상으로 여론 조사를 실시하고 이를 바탕으로 합작사로의 전적에 대한 조건을 강화하자는 지부대의원 회의 결의를 바탕으로 이런 방침을 채택했었다. 그러나 현장으로 내려간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다면서 사실상 반대투쟁을 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 집행부를 맡고 있는 N조직은 이전에는 전면 반대를 주장하다 지금은 조건 강화를 전제로 합작을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세우고 있다. 반대를 주장할 당시에는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는데 집행을 맡고 보니 제대로 알게 되었다는 얘기이다.

필자가 보기에는 회사의 합작에 따르는 사정이나 상용사업부문의 기술적인 문제는 전혀 바뀐 게 없다. 다만 조합원들의 요구를 책임지는 노동조합 집행부의 주체가 바뀌었을 뿐이다. 노동조합의 집행 단위는 문제를 제기하거나 요구만 주장한다고 해서 할 일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해결하고 마무리해야할 책임도 있다. 일이 생길 경우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가도 생각해야 한다.

또 일선 현장의 간부를 경험한 동지들은 다 아는 일이지만, 일선 활동가로 활동하다 공적 지위를 얻게 되면 회사측 간부들과 다양한 형태의 관계가 맺어지기 시작한다. 총자본과 노동의 관계보다 인간적인 정(?)이 끼어 들어 막말을 하기 힘든 관계가 형성되는 일도 더러는 있다. 상황에 따라 때론 협박하고 때로는 인간적으로 접근해서 해결되는 문제도 있고, 논리적으로 잘 설득하면 해결되는 일도 있지만 때로는 완고하고 분명한 태도로 해결해야 하는 일도 있다.

공적 지위를 갖게 되면서 바뀌는 것이 있다면 이러한 ‘책무’와 ‘관계’에서 자유로움의 정도가 바뀔 뿐이다. 책무와 관계로부터 자유로운 정도가 주장의 차이를 만들어 내는 핵심요인인 것이다. 우리는 흔히 대중은 통박으로 안다고 얘기한다. 어림짐작으로도 뻔히 알 수 있는 논리와 자기합리화를 보고 있는 조합원 대중은 무슨 생각을 할까? 누구의 주장이 옳다고 생각할까?

독선과 타협의 기로에 서는 지도부

얼마 전 현자노조는 임ㆍ단협 갱신 요구안을 만드는 과정에서 콘베어 수당 20만원 요구안을 확정하였다. 현자노조 조합원 3만8천여 명중에서 이 수당을 지급 받는 인원은 3천7백여 명 정도이다. 이들은 현재 비통상 수당으로 3만7천 원을 받고 있는데 통상급 20만원이면 월 평균 40만원의 인상 효과가 있는 금액이 요구안으로 상정된 것이다. 집행부는 현재 3만7천 원의 비통상 수당을 1만3천 원 인상하여 5만원을 통상 수당으로 요구하자고 하였고 이럴 경우 대략 10만원 정도의 인상 효과가 있는 금액이었다. 우리 내부에서는 콘베어 노동이 가장 힘들다는 것을 모두가 인정하고 있다. 또 이들에 대한 직무보상이 강화돼야 한다는 운동 논리도 설득력을 얻고 있어서 어떻게든 상향조정되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번 단협 요구안에서 3천7백여 명에게 적용되는 직무보상 수당이 3만7천 원에서 한꺼번에 40만원으로 올려 요구된 것이다. 이것 외에도 휴게 시간을 하루에 주야 40분씩, 하루80분을 추가하자는 요구도 통과되었다. 현재 휴게시간은 오전, 오후 10분씩이다.

의장부 소속 대의원들은 이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다른 대의원들에게 당신들의 요구안에 무조건 손들어 주겠다며 ‘품앗이 손들어주기’까지 제안했다. 또한 자신들의 요구가 관철 안되면 전원퇴장 한다는 방침까지 세웠다고 하니, 이쯤 되면 운동에서 지도부의 통제란 이미 무용지물이 된 셈이다. 집행을 해보면 다양한 조합원들의 끝없는 요구 앞에서 무기력해질 때도 있다. 자신이 직면한 현실의 한계와 합리적이지 못한 요구, 그리고 내부의 다양한 주장 때문에 쉽사리 의사 결정을 하지 못하게 될 때는 독선과 아집에 대한 유혹을 받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제기된 문제나 요구에 대한 책임 때문에 가급적 문제를 확대시키지 않고 현실적인 타협을 선호하게 된다. 이러한 흐름과 경향이 결과적으로 경제주의, 조합주의, 개량주의라는 비판에 직면하게 하는 요인이다.

운동의 대의를 논하는 조직이 되어야

운 동이 조합원 대중의 요구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맞는 말이지만, 한편으로 구체적인 현장의 요구들은 일방적이며 자기만을 위한 요구인 경우가 있다. 이것을 전체 운동의 문제와 결부시키면서 요구를 집중하고 조화시켜내는 것이 활동가들과 지도부의 대중지도에 대한 기본 책무일 것이다. 전주 지부의 사례나 콘베어 수당 요구사례, 그리고 산별노조 사업에 대한 활동가 그룹의 주장과 사업방식은 운동의 전략 목표를 앙상하게 만들고 오히려 대중의 단결을 흩뜨리는 분열 요소로 작용할 가능성을 안고 있다.

활동가들과 개별적으로 이야기해보면 운동의 대의나 객관적 현실을 나름대로 이해하고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해결방식에 동의한다. 그러나 문제는 이것이 집단화되고 조직적인 이해와 맞물리면 안면이 싹 바뀐다는 것이다. 조합원의 적나라한 욕구에 영합하여 대중적 선명성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에 몰두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정파의 정치적 이해관계나 입지 때문에 상대 조직이나 파벌이 대중에게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을 두려워한다. 운동에 나선 모든 활동가들의 곤경은 곧 운동의 위기라는 아름다운 등식은 이제 우리의 기억에서 사라진 것일까?

필 자는 운동권 내에 있는 정파나 부문의 주장을 폄하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운동 내의 상호경쟁에 따르는 건강성의 유지나 원칙의 견지, 개량주의적인 흐름을 방지하는 순기능을 옹호하는 사람이다. 다만 도가 지나쳐 운동의 대의를 훼손하고 대중의 단결과 판단을 흐리게 하는 패권주의적 경향을 경계하는 충정일 뿐이다. 더불어 노동조합의 사업방식과 요구가 정파의 입지를 강화하는 수준에 머물거나 대중적 영합에 머문다면 운동의 질적 발전은 어렵다. 세상은 무섭게 변하고 있는데 내부의 권력에 몰두하여 전체를 조망하지 못한다면 대중을 지도할 전망을 갖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활동가 동지들이 함께 인식했으면 하는 안타까운 심정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7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