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 대구 지하철 참사의 또다른 이유

노동사회

'구조조정', 대구 지하철 참사의 또다른 이유

admin 0 4,255 2013.05.11 09:22

지난 2월18일 대구 지하철 방화 사고로 시민들이 사망, 실종되거나 부상당한 일이 발생했다. 3월4일 경찰의 중간수사발표에 따르면 인적피해는 사망 198명, 부상 145명 등 모두 343명이며, 실종 신고된 605명 가운데 생존자, 사망자, 부상확인, 이중신고 등을 제외한 미확인자는 257명으로 잠정 집계됐다. 물적 피해는 전동차(109억원), 전기통신분야(161억원), 역내장비 8억원 등 총 278억원으로 추정했다. 사고의 1차 책임은 방화를 저지른 사람에게 있다. 그러나 경찰의 사고 수사 과정에서 기관사, 종합사령팀 직원 등 11명이 검거되었고 9명이 구속되었다. 게다가 경찰은 대구지하철공사 윤진태(63) 전 사장과 감사부장 등 지하철공사 관계자 8명에 대해 녹취록 조작 등 사건은폐와 관련, 추가 수사를 벌이고 있으며 폐쇄회로TV 위·변조, 전동차 제작사 및 내장재 납품업체 비리 여부 등에 대해서도 계속적으로 수사할 방침이라 밝혔다.

대구 지하철 화재 사고의 피해를 규명하는 과정에서 밝혀지고 있는 사실들을 꼼꼼히 보면 놀라운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그 놀라움이란 바로 지하철 공사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단행된 조치들이 아니었다면 어쩌면 지금과 같은 큰 인명 피해를 줄일 수 있었던 가능성이다.

일은 있는데 사람이 없다

서 울지하철을 비롯해 인천, 부산, 대구 지하철 대부분이 구조조정 과정에서 역무 인원을 축소하거나 매표소를 위탁해 운영하고 있다. 역무는 단순히 표를 파는 일에 한정되지 않는다. 인원이 감축되기 전엔 승강장 안전 요원이 배치돼 있었고, 안내 방송을 전담하는 요원도 있었다. 하지만 서울지하철은 2000년 구조조정 과정에서 1,621명을 감축하면서 역업무 정원 703명을 감축했다. 정원이 감소하면서 과거의 안전 업무를 맡았던 사람이 없어졌다. 서울지하철 노조 법규부장은 “현재 인력으로는 규모가 큰 역의 업무조차 4명이 맡아서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부산 지하철은 1998년 406명을 감축하면서 역무 업무 통합으로 177명을 감축했다. 2000년에 184명, 그리고 2002년 8월부터 3차 감축을 위해 33개 역사에 34개 매표소를 민간 위탁했다. 인천지하철 노동조합 정현목 위원장은 인천 지하철의 경우 정원대비 현원 80%로 지하철이 운영되고 있다며 인력충원이 절실하다고 했다. 대구 지하철 역사와 차량, 시설은 주로 위탁상태이며 방재 시설도 용역이 담당한다. 결국 역무원이 안전요원의 업무를 겸하는 식으로 운영된 것이다. 매표처럼 돈이 되는 업무를 중심으로 정원을 산정한 결과 안전을 위한 필수 인력을 최소화하거나, 모니터 감시로 대체했다.

인력이 없다보니 역의 모든 업무가 표 판매를 중심으로 운영될 뿐 그 이상의 업무를 볼 형편이 못된다. 결국 이번 사고처럼 사고가 발생할 경우 초동대응인력이 모자라 대형사고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혼자하라굽쇼?

대 구 지하철 사고와 관련되어 철도와 지하철 궤도 노동자는 2월20일 발표한 성명서를 통해 사고의 피해가 확대된 원인으로 ‘1인 승무제’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1인 승무제란 열차 운행을 기관사 1인이 도맡아 하는 것을 말한다. 1인 승무제가 도입되기 전에는 열차 운행을 담당하는 기관사와 열차에 타고 내리는 손님들을 주시하고 안내하는 차장이 동승하는 ‘2인 승무제’였다.

현 재 부산, 대구, 인천 지하철(1998년 시행)과 수도권의 5, 6, 7, 8호선 그리고 3호선 분당선(2001년 시행)은 1인 승무로 운행 중이며 1, 2, 3, 4호선은 아직 2인 승무제로 운행 중이다. 그러나, 서울 지하철 공사는 2006년까지 전 지하철에서 1인 승무제를 실시할 방침이다. 이처럼 지하철에서 1인 승무제를 추진하는 배경에는 지하철이 자동화되어 더 이상 2인이 운행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데 있다. 그러나, 이번 사고에서 알 수 있듯이 기계화와 자동화가 만능은 아니다. 

1 인 승무제의 도입은 지하철에 국한되고 있지 않다. 철도에서도 1인 승무제 도입이 추진되었다. 철도청은 1995년 12월 ‘국유철도특례법’을 제정하여 철도의 경영개선을 추진해 왔다. 당시 이루어진 경영평가에서 승무 업무는 점차적인 1인 승무제 도입이 계획되었다. 그리고 작년 철도청은 1인 승무제 도입을 통해 정원 1,481명 감축 계획을 단행했다. 구체적으로 여객 열차 500명, 화물 열차 981명, 총 1,481명 승무 정원을 감축한 것이다. 철도의 기관차는 지하철보다 기술적 상황이 더욱 열악하다. 현재 철도청은 기술적 문제와 사회 여론을 문제삼아 1인 승무를 실행하고 있지 않지만 곧 화물열차 981명에 대해서는 대체 감축을 시도하더라도 인원을 감축할 계획이다.

철도노조 조상수 정책기획실장은 “철도나 지하철의 1인 승무를 마치 자동차 운전자와 같은 오너 드라이버로 생각하면 큰 오해”라고 설명했다. 오너 드라이버는 운전 중 모든 것을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지만, 철도나 지하철은 운행과 관련된 모든 사항을 사령실을 통해 전달하고 전달받는다는 것이다.

지나친 업무외주화

2003 년 2월15일 새벽, 신태인역에서 발생한 사망 사고는 지나친 외주·용역화로 인한 관리 소홀이 어떤 결과를 낳는 지 보여주는 예이다. 이 사고는 호남선 신태인-감곡 구간 교량에서 철로보수 작업을 하던 용역회사 직원 9명 중 7명이 열차에 치어 사망한 사건이다. 이 사고는 철도청과 용역회사 직원들간에 열차운행에 대한 정보를 주고 받지 못해 일어난 것으로 밝혀졌다.

사 고에 대해 철도노조 조상수 실장은 “용역업체 직원들은 성과급으로 일한다. 선로 보수를 위해 열차를 잠시 차단하는 시간보다 1시간 일찍 나와 일을 처리하는게 관행화되었고, 철도청도 알면서도 묵인하고 있다. 신태인 사고도 용역업체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은데 1차 적인 책임이 있다.”며 지나친 외주, 용역화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철도노조 조상수 실장은 “1974년에 개통된 1호선의 방재 시설은 이후 유지·보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30년 가까이 된 것이다. 게다가 구조조정 과정에서 인건비 절감 차원으로 소방시설관리는 외주·용역을 줬다. 하지만 인력부족으로 관리를 전혀 못하고 있다”며 선진국 수준의 시설도 좋지만 제대로 된 관리를 위한 인력 충원이 필요함을 역설했다.

외주와 위탁은 선로 보수, 설비 분야(화장실, 배수), 차량(도장), 전기(역사 시설물 점검)등 모든 업무 영역에 걸쳐 있다. 그러나, 철도노조와 지하철 노조들은 지하철과 철도의 특성상 통합적인 시스템 구성과 관리가 필수적인데도 비용절감 차원의 지나친 외주화는 철도의 신태인 사고, 대구 지하철 사고처럼 사고의 원인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

적자논리

위탁과 외주, 그리고 1인 승무제 같은 조치를 취하는 정부의 입장은 철도와 지하철의 경직된 공기업 구조와 국가경영구조를 개선시켜 만성적인 적자를 해소하고 효율적인 경영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철도노조와 지하철노조도 지하철과 철도의 산업 역할과 도로 교통량 증가에 따른 사회 경제적 비용을 감소시키기 위해서라도 역할이 증대되어야 하는 데 이견이 없다. 문제는 ‘적자’를 바라보는 관점과 경영 개선을 위한 방식에서 정부와 노조가 서로 다른 데 있다.

노조는 정부의 적자논리에 대해서 이 적자가 운영보다는 건설부채임을 주장한다. 철도와 지하철 모두 중앙 정부의 재정적 분담금이 충분히 제공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 공공성을 추구하는 지하철과 철도에서 수익성을 바탕으로 하는 경영 평가와 경영 합리화 방식은 물과 기름처럼 조화가 이루어 질 수 없다고 본다.

지하철 공사에서 열차와 같은 상품을 구매할 때는 ‘최저가입찰제’를 적용한다. 예를 들어 지하철 열차를 제조하는 회사로부터 열차를 살 경우 가장 싼값을 제시한 회사로부터 열차를 구매하는 것이다. 이럴 경우 비용을 절감하는 측면은 있지만, 제대로 된 열차인지 검증할 수 있는 안전기준이 중요하다. 대구 지하철 사고에서 열차의 내부 마감재가 구매 당시에는 불연재 판정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사고 이후 실험에서 불길에 휩싸이는 것을 보았을 때 비용과 안전은 더 이상 저울질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이 판명 났다.

수익보다는 공공성을 우선해야

서울지하철 노조 김천호 실장은 “지하철과 같은 공익 기업은 시민에게 봉사하는 역할이다. 이용자의 만족도를 최우선으로 해야한다”며 수익 위주의 구조조정을 비판했다.

과연 정부와 지하철공사, 도시철도공사, 철도청은 시민의 만족을 높이기 위한 구조조정을 진행중인 것일까. 이번 사고는 정부가 그동안 지하철과 철도의 구조조정이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인지 의심케 한다.

공 공성은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이익이 될 때 비로소 실현되는 사회적 가치이다. 안전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제대로 관리되지 않았을 때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은 공공의 이익과 대립된다. 정부는 공기업 구조조정이 결국 시민의 이익으로, 국가의 이익으로 환원된다고 했지만 우리 사회는 그 무엇으로도 환산될 수 없는 수많은 생명을 잃었다.

지하철과 철도 노동자들은 대구 지하철 사망 사고를 계기로 노동조합과 시민단체를 포함하는 안전대책 수립기구 설립을 발표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3월4일, 재난관리청과 총리실 산하에 국가안전관리위원회를 신설하기로 했다. 

안 전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고 그것을 전담하는 기관이 필요한 것은 당연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공익을 우선으로 하는 사업장들을 운영하는 기본 원리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를 따져보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라 본다. 왜 인력 감축을 위해 위탁과 외주 용역을 주어야 하며 혼자서 열차를 운행해야 하는 지, 그리고 그것이 공공의 이익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인지 말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7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