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은 노동운동의 주변인?

노동사회

여성은 노동운동의 주변인?

admin 0 3,209 2013.05.11 09:20

민 주노총은 ‘세계여성의 날’ 제95주년을 맞아 산하 여성 조합원 94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를 보면, 여성 조합원들은 올해 임금·단체협상에서 노조가 ‘직장보육시설 설치’를 가장 먼저 추진해야 한다고 생각해 육아문제 해결이 가장 절실한 요구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성별 임금격차 해소’와 ‘여성승진 할당제 실시’를 과제로 꼽았다. 또한 민주노총이 올해 중점을 두어야 할 여성 문제로는 ‘공공 보육시설 확대’와 ‘여성 우선 해고나 성차별적 구조조정 근절’을 나란히 들었고,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의 실질적 사용보장’ 등 모성보호 강화의 요구가 뒤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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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8 여성대회 행사  ▷ 출처:한국여성단체연합 ]

여성노동자, 노동운동의 주변인?

노 동운동 내부에서 여성 문제는 아직 부차적이고 부분적인 문제로 인식되는 것이 현실이다. 여성을 대변해 여성 문제를 적극 제기하고 사업을 진행할 수 있는 조건도 미약하다. 민주노총의 경우 중앙위원회와 대의원의 여성비율은 7%에 불과하며, 단위노조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민주노총의 여성조합원 비율은 23%다. 한국노총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여성노동자들의 노조활동 참여가 저조한 이유는 무엇일까. 앞의 설문결과에 따르면, 여성노동자들이 노조 활동의 가장 큰 걸림돌로 35.8 %가 ‘가사와 육아, 자녀교육의 부담’을 지적했고, 17.6%는 노조간부가 대부분 남성이거나 술자리 등 남성 중심 문화 때문에 노조활동 참여가 꺼려진다고 밝혔다.

여성조합원들의 참여율을 높이고, 여성 문제를 여성만의 문제가 아닌 전체 문제로 받아들일 수 있는 ‘여성 친화적인 노조 만들기’를 위한 첫 단추는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이 ‘여성할당제’를 말했다. 민주노총은 규약 11조에서 ‘민주노총의 임원(위원장 및 사무총장은 제외), 중앙위원, 대의원에 대해서는 30%이상의 여성할당제를 실시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노총이 여성할당제를 실시하는 데는 적지 않은 어려움이 있다.

민주노동당이 창당을 하면서 여성할당제를 실시하자 민주노총에서도 여성할당제 논의가 시작되었다. 반발은 생각보다 컸다. ‘당과 노조는 수준이 다르다, 노조는 아직 그 만큼의 조건이 성숙되지 않았다’는 현실론부터 원색적인 여성 폄하까지 등장했다.

한 여성 간부는 할당제를 “단순히 자리 떼어먹기가 아니라 사업의 주체를 세우고, 문제를 제기하는 기회를 얻는 과정이며, 영향력을 넓혀 가는 과정”이고 설명했다. 노조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여성노동자는 소외당해왔다. 여성 상근자들의 부서 배치에서도 마찬가지다. 사정이 이러니 노조에 대한 여성조합원들과 여성노동자들의 불신과 불만이 커질 수밖에 없다. 여성 문제와 관련된 의제는 단체협상 과정에서 빠지거나 뒤로 밀리는 것이 십상이다.

남성 중심의 노조문화

제도를 바꾸는 것은 쉽다. 하지만, 문화와 관행을 바꾸는 것은 어렵다. 노동조합의 남성 중심 문화는 몇 가지의 단편들로 설명될 수 있다. 여성이 별로 없기 때문에 여성들은 자기 의견을 강하게 주장할 수밖에 없고, 이 때문에 여성활동가들은 ‘대가 세고, 드센 여자’로 여겨진다.

특 히 여성 사업을 열심히 할라치면, “여성 문제에만 왜 그렇게 열심히 매달리냐”는 남성활동가들의 불만이 터져 나온다. 여성 문제만 나오면, ‘활동가’에서 ‘남성’이 되고, ‘활동가’에서 ‘여성’이 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대의원대회나 공식회의에서 할당제를 얘기하면 ‘왕따’가 되는 분위기는 아직도 여전하다. 여성 문제를 강조하면 “사고의 틀이 좁고, 운동 폭이 좁다”는 식의 분위기가 아직도 대세라면 지나친 생각일까? 의사결정 과정과 노조 활동에서 나이와 직책을 앞세울 때, 여성활동가로서는 힘이 빠질 수밖에 없다.

분명한 결론도 내리지 못한 채 소모적인 논쟁으로 새벽까지 이어지는 노조의 회의 문화도 문제다. 이 경우, 여성, 특히 기혼여성들이 참여하기 어렵다. 집회 문화는 또 어떤가? 지극히 남성 중심적임을 부인할 수 없다. 요즘 집회장에 가면 노동가나 구호를 마무리하면서 “개새끼, 씹새끼”같은 욕설을 아무렇지 않게 내지르는 모습을 접한다. 노동자들이 처한 어려운 처지를 감안한다 하더라도 몇몇 경우 시위 문화는 경망스러움을 넘어 살벌하기 이를 데 없다. ‘목소리 크고, 욕 잘 하는 게’ 좋은 집회 문화라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

외국의 경우, 노동조합이 집회장소를 정할 때 장소는 여성이 참여하기 좋은가, 탁아방이 있는가, 신호등이 있는가, 아이들을 데려갈 수 있는가의 세부 사항까지 검토한다. 여성, 아이, 장애인, 일반 시민 등 여러 사람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집회를 만들자는 취지다. 우리의 경우, 집회 문화와 더불어 1차, 2차로 이어지는 술 문화에 이르면, 노동운동에 여성이 참여할 가능성은 거의 사라져 버린다.

여성 문제는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다

요 즘 노동계에선 비정규직 문제가 가장 큰 화두다. 비정규직의 70%가 여성이다. 따라서, 여성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남성노동자의 60%에 불과한 여성노동자의 임금은 여성 노동자의 현실을 잘 보여준다. 정규직 노동자 내부에서의 성차별, 비정규직 확산을 통한 노동계급 내부의 성차별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이런 생각이 노동운동 내부에서 여성과 남성의 선긋기를 주장하는 것일까? 여성 문제는 여성 혼자만의 힘으론 풀어갈 수 없다. 남성과 여성이 함께 힘을 모을 때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여성노동자 문제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질문을 던져보자. 한국의 노동운동은 여성 문제에서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수준보다 진보적이고 민주적인가? ‘의미 있는 변화가 있어왔지만, 갈 길이 멀다’가 정답일 것이다. 여성 문제는 노동운동의 중심 과제가 되어야 한다.

“민 주노총이나 민주노동당에서 여성할당제 같은 문제를 여성들이 제기하고 추진했지만, 남성들이 찬성하지 않았다면 결코 가능하지 않았을 거예요. 진보진영의 남성들이 변해가고 있고, 남성들과 함께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는 거라 생각합니다. 다만 앞으로 좀 더 바라는 것이 있다면, 남성들이 대의에 이끌려 오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함께 준비하고 같이 대안을 마련하고, 그렇게 처음부터 함께 할 수 있었으면 하는 거죠.” 어느 여성 활동가의 말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7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