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노동운동의 현황과 과제 2. 필리핀

노동사회

아시아 노동운동의 현황과 과제 2. 필리핀

admin 0 4,162 2013.05.11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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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민주노총이 추진한 동남아시아 노동운동 조사사업의 일환으로 필리핀을 방문한 보고서의 일부이다. 짧은 기간의 방문이었으며 필리핀의 일부 노동조합 간부들과 노동운동 단체 활동가들을 만나면서 조사한 자료를 근거로 작성한 글이기 때문에 필리핀 전반의 노동운동 상황을 충분히 담고 있지 못한 측면이 있을 수 있다.-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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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에서 현재 활동하고 있는 총연합단체는 10개 정도로 파악된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KMU(5월1일 운동), KMU에서 분리된 BMP(필리핀노동자연대)와 NCLP(필리핀전국노동연맹), 사회민주주의 노선을 가지고 있는 APL(Alliance of Progressive Labor: 진보노동자동맹)과 LMLC, 기독교민주주의와 반공주의 노선을 가지고 있는 FFW(자유노동자연합), 세계노련(WFTU)에 가맹한 TUPAS, 국제자유노련(ICFTU) 가맹조직인 TUCP(필리핀노동조합회의), 그밖에도 PDMP, CLAMOR 등을 총연합단체로 들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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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MU 간부들과의 간담회 ]

총연합단체 현황

조합원수도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려운 것이 필리핀 노동조합의 현실이다. 2001년 현재 필리핀에는 14,606개의 노동조합이 활동하고 있으며, 민간부문 노동조합은 13,908개 공공부문 노동조합은 698개가 있다. 168개의 전국규모 노동조합이 있으며 9,400개의 노동조합은 독립노동조합으로 활동하고 있다. 공공부문에서는 PGEA-TUCP-PSI(필리핀공무원연합), COGEO( 공무원노동조합연맹), ACT-EI(교사동맹), AHW(보건노동자동맹), CIU-PSI(공공부문독립노동조합연맹), COURAGE-PSI, PSLINK-PSI(공공서비스노동자독립연맹) 등 7개의 연맹이 있다.

민간부문의 조합원은 368만 명이라고 보고되어 있다. 이는 전체 노동자의 11%이며 임금노동자의 27%에 해당한다. 그러나 정부에서는 조합원이 120만 명이라고 보고하고 있다. 노동조합에서 주장하고 있는 숫자와 정부가 집계하고 있는 노동조합원의 숫자가 크게 달라 정확한 조합원의 숫자를 파악하는 것은 어려운 실정이다. 그리고 공공부문에 조직된 노동자는 178,166명이다.

조합비를 납부하는 주요 노총별 조합원수를 추정한 국제노동기구(ILO)의 자료에 의하면 TUCP와 KMU가 각각 15만 명, FFW가 8만 명, 세계노련(WFTU) 가맹조직이 5만5천 명, LMLC가 5만 명으로 집계되어 있다. 그리고 위의 노총에 가입하지 않은 조합원을 65만 명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조합비를 납부하는 전체 조합원을 113만5천 명으로 파악하고 있다. 전체 조합원의 50% 이상이 주요 연맹 밖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민간부문에서 단체협약의 적용을 받고 있는 조합원의 숫자는 55만4천 명이며 3,123개의 단체협약이 있다. 단체협약의 적용을 받고 있는 조합원은 노동조합이나 정부 통계에 의한 조합원 수에 비해서도 매우 적다. 단체협약 적용을 받고 있는 노동자들은 임금노동자의 7%, 전체노동자의 1.6%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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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조직의 상태와 특징

필리핀의 노동운동은 이념적인 성격을 분명히 하고 있다. KMU는 모택동주의를 따르고 있는 대표적인 공산주의 노선의 노동조합이다. KMU에서 이탈한 BMP는 트로츠키즘 노선을 가지고 있어서 KMU와 BMP를 대표적인 좌파노선의 노동조합이라 할 수 있다. 1996년 건설된 APL은 사회민주주의 노선을 가지고 있는 노동조합이다. 다른 한편 오래된 보수성향의 노동조합으로는 FFW가 있다. FFW는 기독교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있으며 반공주의 노선을 가지고 있다. 필리핀에서 가장 보수적인 정치성향을 가지고 있는 노동조합으로는 TUCP를 꼽을 수 있다. 좌파계열의 노동조합에서는 TUCP를 친자본-친제국주의 노동조합이라고 비판하고 있을 정도로 TUCP는 보수적이다. PDMP는 TUCP에서 떨어져 나온 친 마르코스적인 노동조합이다. 

또한 필리핀의 주요 노동조합들은 정치조직과 연계되어 있다. KMU는 BAYAN(모택동주의 조직)이라는 조직에 소속되어 있으며 BAYAN은 모택동주의 지하정당인 필리핀 공산당(CPP) 계열의 조직이다. KMU와 BAYAN은 CPP와 공식적인 관계는 없다고 하였으나 많은 조합원이 CPP의 당원임을 부인하지 않았다. 한편 KMU과 관련된 ‘바이언문나’는 의회정당으로서 3명의 국회의원을 가지고 있다. APL은 AKBAYAN과 관련을 가지고, 현재 1명의 국회의원을 배출하고 있다. BMP는 PM과 SANLAKAS(마르크스-레닌주의 대중정당)와 관련이 있으며 PM과 SALAKAS는 각각 의회에 국회의원 의석을 가지고 있다. BMP도 PMP(마르크스 레닌주의 정당)라는 지하정당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KATIPANAN은 PKP(마르크스-레닌-스탈린 정당)와 관련이 있으며 보수적인 성향의 노동조합인 TUCP는 정부와, 같은 보수계열의 노동조합인 PDMP, CLAMOR 등은 보수정당과 관련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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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KMU
1980년 건설된 KMU는 필리핀 노동운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1980년대에는 전체 조직노동자의 절반 정도를 포괄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진보적인 노동운동을 이끌어 가는 위치에 있었다. KMU는 파업이 금지된 계엄령 상황에서도 파시즘과 계엄을 반대하는 투쟁에 집중하였다. 1982년 KMU의 주요 지도자들이 대거 구속되고 KMU가 불법화 되었지만 투쟁을 계속 전개하여 많은 노동자들의 지지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최근 KMU 세력은 상당히 위축된 것으로 보인다. 현재 KMU는 7개 지역조직과 8개 연맹을 산하에 가지고 있다. KMU의 정치적인 역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필리핀 공산당 CPP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PKP 지도자였던 시손이 중심이 되어 1969년 창설한 CPP는 필리핀 사회를 반제반봉건 사회로 규정하는 한편, 프롤레타리아와 농민, 도시빈민 등이 중심이 되어 인민민주주의 혁명으로 권력을 장악하고, 농촌에 근거를 둔 신인민군을 조직하여 지구전적인 해방전쟁으로 도시를 포위하는 전형적인 모택동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1970년대 초에는 대규모 신인민군(NPA)을 조직하여 해방구 건설을 위해 투쟁하였으나 해방구 건설에 실패하는 등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반마르코스 투쟁이 격화되면서 CPP는 필리핀의 대중운동과 일정한 갈등을 겪게 되었다. CPP는 1980년대 필리핀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도시에서의 투쟁에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하면서 영향력이 크게 감소하였다. CPP가 겪는 정치 역정은 KMU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CPP의 활동방식에 대한 대중조직의 문제제기는 KMU 내에서의 갈등을 촉발하였다. 많은 노동조합들이 마오이즘에 근거한 전달벨트식의 KMU 활동방식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KMU를 떠나 새로운 조직을 만들면서 KMU는 영향력의 위축을 감수해야 하였다. 마르코스의 노동운동 탄압에 맞서 노동자의 투쟁을 이끌었던 KMU는 그 조직적 영향력이 크게 위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필리핀 노동운동의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하고 있으며 진보적인 노동운동 블록의 대표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표2] 생략, 95페이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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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겔마트 투쟁현장에서 조합원들이 정문을 사이에 두고 집회를 하고 있다. ]

② BMP
BMP는 KMU의 수도권지역(NCR) 노동조합과 KPUP(필리핀노동조합대표자모임; 600개 노동조합) 소속 지역노동조합, 노동조합자문동맹(Labor Consultative Alliance; 200개 조직) 소속 노동조합들이 모여서 조직한 단체이다. BMP의 대부분 조직은 KMU에서 이탈한 조직으로 구성되어 있다. BMP의 중요 활동은 연대 활동으로 지역단위의 조직화와 공동투쟁을 조직하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BMP는 KPUP로 불리는 지역노동조합 대표자조직을 조직하고 다른 내셔널센터나 연맹으로까지 지역노조조직과 정치구조를 넓히고 있다. NCL 프로젝트에도 참여하였으나 NCL에서는 이탈하였으며 최근에는 LC3(Labor Caucus Consultative Committee)라는 연대투쟁조직을 구성하여 활동하고 있다. LC3에는 NCL, BMP, AGLO, MAKABAYAN, FTA 등의 노동조합들이 참여하고 있었다. BMP는 LC3를 NCL 프로젝트 이후 새로운 공동연대투쟁 조직으로 설정하고 있다. 

공동투쟁을 중심으로 하는 BMP의 사업방식은 산하조직에게 BMP 산하의 연맹조직 가입을 강제하지 않고 있다. BMP에서 활동을 함께 하는 노동조합은 BMP 소속이 아닌 연맹에 가입하여 활동하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현재 BMP 위원장의 사업장인 겔마트도 BMP 소속이 아닌 NFL에 가입하여 활동하고 있다. 이러한 방침을 가지고 있는 이유에 대해서 BMP는 투쟁을 중심으로 사업을 하고 있으나 개별노동조합은 교육, 선전, 교섭 등에서 상급단체의 지원이 필요하고 이러한 지원은 별도의 연맹에서 지원 받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정치적인 결사와 투쟁은 BMP와 함께 하지만 노동조합의 일상적인 활동은 다른 연맹의 지원을 받고 있는 형태라고 할 수 있다. 

BMP는 KMU에서 이탈한 주요한 조직이기 때문에 KMU를 매우 비판적으로 평가한다. BMP는 KMU의 분파주의적 사업과 정치지향적 사업방식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KMU는 정치운동의 센터기능을 하지만 BMP는 사회운동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강조하였다. BMP는 트로츠키즘의 노선을 가지고 있어서 KMU와는 정치노선에 있어서 차이가 있으며 사회운동과 정부에 대한 태도에서도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였다. KMU에 비하여 BMP는 개방적인 자세를 가지고 공동 투쟁사업을 전개하고 있었다. BMP는 투쟁사업을 중심에 놓고 넓은 연대를 통한 조직화를 위해서 분주히 움직이는 모습이었으나 조직의 결속력은 KMU에 비하여 강력하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 

③ APL
사회민주주의 좌파를 자칭하고 있는 APL(Alliance of Progressive Labor)은 노동조합 교육연구기관인 LEARN과 떼어놓을 수 없다. LEARN은 KMU가 노동조합의 결정을 일방적으로 따르도록 하는 운동방식(전달벨트식 운동)을 비판하면서 1986년 만들어졌다. 

LEARN과 파트너십을 형성하는 APL은 노동조합의 민주주의, 균형 잡힌 이데올로기, 노동운동의 통합을 내세우며 1996년 설립되었다. LMLC가 사회민주주의 조직(PANBAYAN과 PDSP)과 사회주의 조직(BISIL)으로 분열할 때 LMLC에서 떨어져 나온 사회민주주의 노선의 두 조직은 독립노동조합과 민다나오 지역의 KMU 이탈 조직과 합하여 APL을 결성하게 된다. 

사회운동적 노동조합주의(Social Movement Unionism)을 지향하는 APL은 단체협약과 정규직 중심의 노동운동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지프니 운전사(대중교통 수단으로 우리나라의 시내버스와 같은 역할을 함), 트라이클 운전사(오토바이에 옆좌석을 설치하여 영업을 함), 서비스 종사자, 이주노동자 등 비공식부문의 노동자를 조직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APL은 도시빈민을 NGO그룹이 주로 조직화하여 계급적인 관점이 부족하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도시의 비공식부문의 조직화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APL은 NCL의 참여를 검토하였으나 참여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독자적인 활동을 벌이고 있으며 현재 공공부문 노동조합인 CIU와 공동사업을 하고 있다. APL은 가장 조직이 많은 민다나오 지역에서 CPP와 심한 갈등을 겪고 있으며 NPA에 대해서 지극히 부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다. 1998년 선거에서 APL은 AKBAYAN을 지지하여 한 석의 국회의원을 확보하였으나 AKBAYAN과는 비공식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APL 조합원은 개인으로 AKBAYAN에 가입하고 있다고 하였다. APL은 분명한 자기 입장을 가지고 대중적인 사업에 충실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보였으나 아직 조직력은 상대적으로 약한 것으로 비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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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겔마트 조합원들과 함께 ]

④ NCLP
NCLP는 KMU 소속 출신 노동조합과 WFTU 소속 노동조합 출신으로 조직이 구성되어 있으며, 정치적으로는 혁명적 노동자당(RWP: 마르크스-레닌 지하정당)의 영향을 받고 있다. 1998년 RWP가 분열하면서 도시빈민과 노동조합에 기반을 둔 MR분파와 SPP(마르크스-레닌주의)는 NCL에서 활동하게 되었다. 그러나 NCL 프로젝트의 핵심그룹은 1999년 필리핀 노동자당(PMP)을 만들었으며, 이들 그룹은 BMP와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다. 

BMP가 NCL을 주도하려 했으나 다른 그룹의 반대로 NCL에서 이탈하자 NCL의 세력은 약화되었다. 그리고 NCL 프로젝트의 한 분파는 1998년 혁명의 불꽃(ALAB-KATIPUNAN: 마르크스-레닌주의)이란 내셔널센터를 만들어 곧바로 PKP라고 불리는 소련식 공산당에 가입하였다. 결국 PMP와 PKP가 NCLP에서 분리되면서 NCL에는 노동조합 운동에 기반을 두려는 조직만 남게 되었다.

⑤ FFW, LMLC, TUCP
기독교 민주주의의 전통을 가지면서 ‘정치로부터의 자유’를 주장하는 FFW는 기독교 민주주의 정당 출신인 라모스 시기에 두 명의 국회의원을 포함한 정부 요직을 차지하며 TUCP와 함께 각종 정부위원회의 의석을 차지하고 있다. FFW는 WCL에 가입하여 활동하고 있다.

노르웨이 LO로부터 지원을 받고 있는 LMLC는 본래 사회민주주의 입장을 가지고 있었으나 우익사회민주주의 그룹과 연계를 맺고 있으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좌파 정당인 PRP(People's Reform Party)의 노동영역을 담당하고 있다. 이와 같이 LMLC는 폭넓은 스펙트럼을 가지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조직인 반면 정치적인 응집력이 약하다. 결국 LMLC는 1996년 분열의 운명을 겪게 되었다.

1975년에 조직된 TUCP는 마르코스 시기에는 공인된 내셔널센터였으며, 국제자유노련(ICFTU)에 가입하면서 국제적으로도 인정된 조직이다. TUCP는 미국국제노동연대센터(ACILS)와 일본노동조합으로부터 지원을 받고 있으며, 정부와 타협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는 보수적인 노동조합이다. 1995년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여당을 지지하여 4명의 국회의석을 확보하기도 하고 각종 정부위원회의 의석을 차지하는 등 친정부적인 정책을 유지하면서 특권적인 대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TUCP 소속이었던 친마르코스 그룹이 독립하여 PDMP를 만들었으며 KMU에서 떨어져 나온 제조업 노동자들이 KILUSBAYAN을 구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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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실업률과 불안정 고용

필리핀은 1980년에서 1995년 사이에 연평균 -0.4%의 경제성장을 할 정도(같은 기간 한국은 연평균 7.5% 성장)로 경제상황이 악화되어 실업률이 매우 높다. 정부 공식실업률은 12% 수준이지만 노동단체들이 파악하는 실제실업률은 이보다 훨씬 높은 20~30%대에 이르고 있으며(BAYAN과 KMU 인터뷰), 불완전취업자의 경우 정부 발표에 따르더라도 20%대에 달한다. 한편 노동자들의 실질임금도 1990년대에 크게 떨어지고 있다. 

경제활동인구의 50% 이상이 무급가족 종사자이거나 특수고용 노동자(own account workers)였다. 48.7%에 속하는 임금노동자들의 상당히 많은 부분은 임시계약직, 파견 등의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다. 필리핀에서는 6개월 미만의 단기 계약직이 널리 활용되고 있다(슈마트의 경우 2만 명의 피고용자 중에서 95%인 1만9천 명이 계약직이다: 가브리엘라 인터뷰). 이는 6개월 이상 계속 고용할 경우 정규직으로 간주될 수 있기 때문에 사용주들이 이를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6개월 미만의 단기 계약직을 사용하고 있었다. 

필리핀의 고용사정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것은 엄청나게 많은 취업자들이 비공식부문에서 일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제노동기구(ILO)의 조사에 의하면 전체 취업자의 51.1%가 비공식부문에서 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농업부문 종사자의 73.3%, 서비스 36.8%, 광업 34.7%가 비공식부문에 속해 있다. 노동단체에서는 비공식부분이 80%에 이를 것이라고 주장하였다(KMU 인터뷰).

필리핀 노동자들의 일자리 부족과 불안정한 일자리는 노동조합 활동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많은 노동조합들이 지역단위 활동을 전개하고 있으나 실제 조합원은 많지 않다. 특히 많은 노동자들이 비공식부문에서 일하고 있어서 단체협약의 적용을 받지 못하고 있다. 

필리핀의 많은 노동조합들이 조합원으로부터 받는 조합비는 극히 미미한 수준이었다. BMP는 2페소의 조합비를 받고 있으며 공공부문 노동조합인 COURAGE도 정규직 비율은 높지만, 월 5페소의 조합비를 받고 있다. 낮은 조합비와 조합비를 납부하는 조합원이 많지 않은 필리핀의 노동조합들은 노동조합 운영에 필요한 재원을 외국의 지원 등 외부에 의존하고 있다.

필리핀 노동조합은 극심한 일자리 부족과 고용불안정에 대처하여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그리고 비정규직을 포함한 엄청난 규모의 비공식부문의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과제 또한 필리핀 노동운동이 넘어야 할 산으로 보였다. 

분열의 극복

필리핀 노동운동은 이념적 지향에 따라 공산주의 계열, 사회주의 계열, 사회민주주의 계열, 보수주의 계열로 나누어져 있다.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노동운동은 정권의 탄압과 보수적인 노동조합에 맞선 치열한 투쟁 과정에서 노동조합을 건설하였다. 

KATIPUNAN이라는 혁명조직의 핵심을 이루던 필리핀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조직한 것은 미국이 지배하던 시절이었으며, 1902년에 최초의 연맹체인 UOD를 조직하였다. 미국이 노동조합 활동을 억압하였지만 사회주의적 경향을 가진 노동운동 지도자들의 주도로 사회주의 정당과 공산주의 정당이 만들어졌다. 자주적인 노조운동은 노동조직회의(CLO; the Congress of Labor Organizations)로 통합되었으나 ‘후크(HUK)단’으로 활동이 금지되는 반면 1953년 산업평화법이 제정되면서 다른 노동조합이 조직되었다. 

1960대 후반 민중의 투쟁이 거세지면서 1972년 마르코스는 계엄을 선포하였고 민중운동단체들이 탄압을 피해 지하조직화 되기 시작하였다. 마르코스는 노동운동을 통제하기 위해서 1975년 TUCP(필리핀노동조합총연합)을 출범시켰다. TUCP는 노동운동의 통합을 내걸었으나 태생적인 한계로 인하여 KMU 계열은 물론이고 FFW도 참여하지 않게 되어 TUCP에 속하지 않은 노동자의 숫자가 더 많았다. 1980년 건설된 KMU는 노동운동의 탄압에 맞선 투쟁을 주도하였다. 그러나 1980년대 필리핀 민주화운동 이후 KMU가 분열하면서 다양한 노동조합 운동이 나타났다. 1980년대 후반 임금인상 투쟁과 기름값 인상 반대투쟁이 한창이던 상황에서 LACC는 TUCP, KMU, FFW와 여러 독립노조들을 포괄하고 있었으나 1992년 선거에서 각 조직이 서로 다른 후보를 지지하며 정부와의 관계, 파업, 정부정책에 대한 대응 등의 문제에서 갈등을 겪는다. 이후 KMU에서 NCL과 BMP가 분리되는 노동조합 재편 과정을 거치면서 LACC는 더 이상 제 역할을 하기 어려워졌다.

1998년 “노동조합과 노동조직 연대(SULO)”라는 조직은 APL, NCL, 최근 KMU를 탈퇴한 조직, CIU와 여타의 독립노조들을 모아 큰 규모의 집회를 조직하는 등의 시도가 있었으며, BMP 등이 주도하는 LC3도 노동조합의 연대투쟁 공간을 만들고 있다. 최근에는 TUCP가 중심이 되어 ‘노동자연대운동(LSM)’을 추진하고 있다. 이 조직에는 TUCP, FFW가 참여하여 자유민주주의 노동조합을 지향하고 있다고 한다(TUCP 인터뷰). 그러나 LSM은 보수진영 노동조합의 모임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보여 필리핀의 노동운동을 통합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로 들렸다. 

필리핀 노동운동의 분열에 대해서 필리핀의 노동운동가들은 적지 않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 “노동운동의 투쟁목표는 분파간에 공통점이 많지만 이데올로기와 리더십에서의 분열이 심하여 상급단체에 소속되지 않은 노동자들이 적지 않다(노동조합 지원단체인 RCPD 인터뷰)”라고 지적하는 목소리가 상당한 공감을 얻고 있다. 필리핀 노동운동의 통일은 요원한 것으로 보인다. TUCP 간부는 “서로 다르다. 통일을 위한 시도는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잘라 말하였으며, APL 간부는 “5년 후에도 지금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느 노동조합도 필리핀의 노동운동을 주도적으로 정리하지 못할 것이다”라는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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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리핀 국회 본회의장. PM당 국회의원의 발표를 듣기 위해 방문하였다. ]

노동조합의 과제

임금결정은 단체교섭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조합원 20%의 지지를 받아 정부에 등록하게 되면 기업단위 노동조합이 단체교섭 기관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유일한 노동자의 대표임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인준투표에서 50% 이상을 득표하여야 한다. 필리핀의 노사관계에서 노동조합의 기본권은 법률적으로 상당부분 보장되어 있다. 그렇지만 개별 노동조합이 기업단위에서 경쟁 관계에 있기 때문에 노동조합의 분열을 초래하고 이로 인하여 노동조합이 약화되고 있다. 법률 중심적인 관료주의 때문에 법원의 결정이 더디며, 사용자에게는 노동권을 파괴할 기회를 마련해주고 있다. 수많은 사용자들이 사회보장기금을 납부하지 않고 있을 정도로 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 노동자들의 기본권을 보장한 법은 현실에서 별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노동조합의 단결력을 높이고 단체협약 적용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단체교섭제도를 개정하는 것이 시급하게 보였다. 

필리핀은 아시아의 어느 나라보다 개방의 길을 걸었다. 많은 산업이 외국자본의 수중에 들어가 있으며 석유, 발전, 은행들이 이미 사유화되어 있다. 그리고 아시아의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노동시장 유연화가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비공식부문과 계약직, LOC(Labor Only Contract)라고 불리는 특수고용노동자, 파견노동 등의 비정규직이 크게 늘어나고 있어 경제개방에 대한 대책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필리핀 정부가 외자유치를 위해서 설치한 경제특별구역에서는 노동권이 크게 침해되고 있으며, 노동자를 이주노동자로 다른 나라로 송출하는 정책을 추진하면서 많은 이주노동자들을 보호하는 문제가 노동운동이 담당해야 할 절실한 과제로 부각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미국에 대한 투쟁은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노동운동이 집중하고 있는 중요한 문제이었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8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