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 세계화, 대안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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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 세계화, 대안은 있는가?

admin 0 6,391 2013.05.11 09:10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미국이 추진중인 전쟁을 통한 패권 추구에 맞서 투쟁하는 활동가들이 브라질 포르토알레그레에 모여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며 저항과 꿈을 나누고,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이끌고 있는 자본과 정부의 대표들이 스위스 다보스에 모여 “신뢰 만들기”에 머리를 쥐어짜고 있던 지난 1월 말 필자는 민주노동당 권영길 대표와 함께 워싱턴을 찾았다.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 모두 세계사회포럼(WSF)이 열리는 포르토알레그레에 몰려가서 없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워싱턴의 주요 단체들은 ‘당직’을 두고 사태 추이를 점검하고 있었다. 특히 1월28일 저녁으로 예정된 연두교서에서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 전쟁 계획과 관련하여 돌출적인 내용을 발표하지 않을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내가 워싱턴을 방문할 즈음, 부시 대통령의 이라크 전쟁을 막아내기 위해 의회가 휴회 중인 기간에 지역구에서 의원들에 대한 설득 압박 작업을 펼친 50여 평화 단체 실무자 30여 명이 모여 점검회의를 하고 있었다. 이들은 애초 계획보다 많은 123명의 하원의원들이 부시 대통령에게 보내는 전쟁 반대 공동 서한에 참여한 성과를 공유하며 후속 작업에 대해 의논했다. 최근 불거지고 있는 미국과 북한의 핵무기를 둘러싼 긴장 고조로 인해 전체 상황이 복잡해지고 있다며, 두 상황의 상호 작용을 어떻게 유리하게 이끌어 갈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었다.

이 글은 미국 방문에서 이뤄진 면담 가운데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에 관련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권영길 대표와 필자를 위해 이야기를 나누어준 정책연구소(Institute for Policy Studies) 존 카바노흐(John Cavanagh) 소장, 경제정책연구소(Economic Policy Institute)의 제프 포(Jeff Faux) 특별연구원에게 감사를 전한다. 이 글은 이들의 이야기를 재구성한 것이다.

신자유주의가 경제성장을 추동한다?

십 년 전만 하더라도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은 다양한 피해자 집단과 각 부문 또는 사안별 운동 세력 등 진보세력에 국한되어 있었지만, 지금은 노벨상을 수상한 경제학자들도 동의한다. 이들은 한국에서 극렬하게 전개된 신자유주의 반대 투쟁의 계기가 된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거센 물결이 한 풀 꺾였으며 전반적인 흐름이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반대하는 세력에게 유리하게 흐르기 시작했다고 내다보았다. 특히 미국의 엔론 스캔들, 아르헨티나 사태 등으로 인해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문제와 폐해가 부각되었고, 이에 대한 동의가 폭넓게 형성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경제학자들인 스티글리츠, 로드릭, 바그와티 등이 논의를 이끌고 있으며, 지난 몇 년 동안의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비즈니스위크 등의 유력 언론 사설의 기조 변화도 감지된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핵심 원동력인 금융 세계화의 물결을 타고 부상한 조지 소로스는 올해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서 또다시 IMF에 비판의 화살을 날렸다.

“동 아시아는 닫힌 금융체제를 바탕으로 성장하였다. 아시아는 IMF와 미국의 압박 때문에 금융 체제를 개방하기 전까지는 문제에 빠져들지 않았다. 나는 세계화의 팬이지만, 세계화에는 문제가 있다. 이를 고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신주류의 세계화 논의가 신자유주의 반대 세력의 주장을 20~30% 정도 수용하는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실제 정부나 국제기구의 정책은 5~10% 정도 바뀌었다고 볼 수 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추종자들과 포로들은 세계 곳곳에서, 기층 민중들로부터, 개도국 정부로부터, 비판적인 지식인들과 시민사회로부터 분출되는 거센 반발에 직면해 있다. 그들은 뭘 해야 할지 모르고, “신뢰 만들기(Building Trust)”를 주제로 내건 세계경제포럼처럼 신도들에게 “믿음을 재확인하자”라고만 되새기고 있다. 그런데 고액의 참가비를 내고 스위스 휴양지를 찾은 사람들조차도 “우리는 여기 다보스에서 신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데 내가 개도국 사람이라도 선진국들을 믿을 수 있는지에 대해 매우 심각하게 의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선진국들은 신뢰받을 수 있는 근거를 보여주지 못했다”라고 토로하는 실정이다.

미국 재무부, 국제통화기금(IMF), 월스트리트 등 신자유주의 선동가들이 공기업의 민영화, 자본시장 개방 등을 성장의 기본 동력으로 내세우는데, 이에 따른 해외 투자는, 투기에 치중되는 것을 제외하더라도 민영화되는 공기업, 특히 수도, 에너지, 통신, 운수 등 네트워크산업과 병원, 교육 등 전통적인 서비스산업을 사들이는 데 집중되어, 신자유주의가 목표로 내세우고 있는 경제성장을 추동하는 데는 별 효과가 없다. 서비스산업에의 “투자”는 제조업에 대한 투자와 달리 생산성의 향상을 가져오지 않기 때문에 고용 확대와 생활 수준 향상 등 경제 성장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빈익빈 부익부의 심화

또 한 신자유주의자들은 완전 개방과 자유화가 개도국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선전하는데 이는 실제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 산업국이 경제의 선진화를 이룬 실제 경험을 부정하거나 감추는 것이다. 이들 국가들은 자국 산업의 보호와 육성을 근간으로 고용 확대와 경제 발전을 이루어냈다. 그리고 저임금 강요, 노동 조건 후퇴 등 비용 삭감이 아니라, 임금인상, 노동조건 향상, 복지혜택의 확립 등을 통한 구매력 강화와 생활수준 향상을 통해 국내 시장의 확대를 이뤄냈다. 선진국들이 선진국으로서 모습을 갖추어 갔던 시기는 바로 노동조합운동의 확산과 강화를 통한 노동권의 확립과 동시에 진행되었다.

경제 강대국의 경제 발전이 내수 시장에서의 소비 수요 확대를 통해 이루어졌는데 신자유주의는 세계 모든 나라에게 성장 동력이 되는 소비 수요를 자국 시장이 아닌 미국, 유럽 등 한정된 몇몇 다른 나라의 시장에서 찾을 것을 강요하고 있다.

자본이 자행하는 농간의 가장 좋은 사례가 중국 들먹거리기다. 많은 나라의 정책 입안자들은 중국 등 신흥경제권의 경쟁력을 바라보며 노동시장 유연성 등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통한 효율성 증대의 규모가 중국처럼 임금이 절대적으로 낮은 나라의 경쟁력을 상쇄할 수 있을까?

그리고 만일 중국과 경쟁하기 위해 생활수준을 삭감하는 것이 중요한 국가 과제라면, 모든 국민이 이 부담을 같이 져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실제 상황을 따져보면 생활 수준이 악화되는 계층과 생활 수준이 급격하게 높아지는 계층이 따로 있음을 우리는 분명히 알고 있다.

세계 각국의 정치는 임금인상, 소득상승, 복지확대 등 생활 수준 향상이 국가 발전에 좋다고 규정하는 정책 모델과 나쁜 것이라고 규정하는 모델 가운데서 하나를 선택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이를 바탕으로 노동시장 유연성, 개방, 자유화를 강요하면서 경제 성장의 원동력인 수요를 자국이 아닌 몇몇 다른 나라에서 찾고 있는 신자유주의 논리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현재 세계화된 경제에서는 생산 능력의 부족보다는 수요 부족이 문제의 핵심인데, 이에 대응하여 세계적 차원의 수요 증진 정책을 만들어 내는 것은 불가능할지 몰라도 지역 협력을 통해 거시경제 정책을 조율하고 조정하면서 규모의 경제 확립과 지역 차원의 소비 수요 증진을 추진하는 연대의 정치는 가능하다.

흔들리는 신자유주의 체제

이 러한 신자유주의 반대 진영의 목소리와 힘은 룰라 대통령을 배출한 브라질 사례에서 보여지듯이 정부간 협상의 장과 국가 관계에서도 제기될 전망이다. 세계사회포럼 참여 중간에 잠시 다보스를 찾아간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은 세계경제포럼에 모인 초국적 자본의 대표들과 각국 정부의 신자유주의 신봉자들에게 “오늘날의 부자 나라들은 과거에 누렸던 기회 때문에 부자가 되었다”고 지적하고, 이들 부자 국가들이 “자유무역을 설교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보호주의를 고수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리고 “부자 나라들이 자신의 성공을 솔직하게 인정한다면 개도국이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가로막아서는 안 된다. … 브라질 경제를 회복시키려는 우리의 노력은 세계경제질서의 대대적인 변화 없이는 실현 불가능하다”며 세계 경제에 대한 논의는 개도국에게 발전 기회를 보장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개도국의 성장 가능성을 옥죄고 있는 부당한 외채의 탕감이 이루어져야 하며, 각국 경제를 터무니없는 루머와 투기로 주물럭거리는 자본 흐름을 통제할 수 있는 규율을 확립해야 하고, 나아가 국제 협력을 통해 초국적 금융자본의 조세 피난처를 제거해야 한다며 새로운 세계 경제 질서의 단초를 제시했다.

룰라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신자유주의 반대라는 의제는 더 이상 거리의 아우성이나 메아리 없는 비판적인 연구자들의 볼멘 소리가 아니다. 이러한 새로운 흐름으로 인해 IMF, 세계은행의 정통성은 위협받고 있으며, WTO와 NAFTA 등의 신자유주의 경제 질서의 제도적 장치들에 금이 가고 있다.

1994년 체결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은 2008년 옥수수에 대한 관세를 철폐하는 것을 최종 목표로 15년에 거쳐 농산물에 대한 관세를 완전 철폐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2003년 1월1일로 예정된 밀, 쌀, 낙농 제품, 닭고기, 돼지고기, 사과 등의 주요 농산물에 대한 관세 철폐가 다가오면서 전개된 멕시코 농민들의 멕시코-미국 국경 폐쇄 위협 등을 포함한 대대적인 저항운동에 직면하여 미국과 멕시코 정부는 관세철폐 일정의 재조정을 검토하기로 하였다. 개별 국가의 민중의 정치적 생존권적 요구로 인해 거의 신성시되었던 NAFTA의 재협상이 국가간 논의 대상이 됨으로써 철통같은 신자유주의 체제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멕시코 농민들의 저항

작년 말부터 수 만 명의 멕시코 농민들은 농민운동 단체들을 중심으로 대규모 집회 등 강력한 투쟁을 벌여왔다. 멕시코 농민들은 고속도로를 점거하고 미국-멕시코 국경의 다리를 봉쇄하겠다고 위협하면서 NAFTA 재협상을 요구하였다.

이 에 폭스 대통령은 한편으로는 NAFTA가 고용을 창출했으며, 질 높은 상품과 용역을 값싸게 제공하여 소비자들의 가계 부담을 가볍게 해주었다고 시장개방의 불가피성과 혜택을 역설하면서도 농민 대표 등이 참여하는 농업에 대한 새로운 국민적 합의를 구하겠다고 농민 달래기에 나섰다. 그리고 NAFTA 체제의 완전 붕괴 위기를 막기 위해 미국 정부와 멕시코 정부는 1월23일 미국산 닭다리에 대해 6개월 동안 5만5천 톤까지에 대해서는 무관세 수입을 허용하고, 이 양을 넘는 시점부터의 수입에 대해서는 임시로 2001년 수준인 98.8%의 관세를 적용하기로 합의했다. 그리고 멕시코 정부는 농업 붕괴에 대한 사회적인 우려와 저항에 밀려 미국과 캐나다에서 수입되는 콩이 NAFTA 이외의 지역에서 유입된 것이라며 수입을 중단시켰고 미국산 닭고기에 대해 위생 문제를 내걸어 수입을 제한하는 등 우회적인 조치를 취했다.

농민단체를 비롯하여 환경운동단체, 야당, 주요 노조 등은 2008년 1월1일까지 옥수수, 콩, 설탕에 대한 관세 일정을 담고 있는 NAFTA가 멕시코 농업과 농민의 생존권을 파탄으로 몰아넣는다며 정부의 기만적인 조치를 거부하고, 2월1일 5만 명이 넘는 농민들이 말, 트랙터 등을 끌고서 수도 멕시코시티에서 NAFTA의 농업부분 재협상, 미국산 농산물 수입 반대, 농촌 뉴딜을 요구하는 대규모 집회 투쟁을 전개했다.

WTO 체제의 균열

개 별 국가의 자율성을 부정하는 신자유주의 세계 경제 질서에 구멍이 뚫리는 모습은 그 핵심 기구인 세계무역기구(WTO)를 둘러싸고도 나타나고 있다. 4년 동안 지속되어온 유럽연합(EU)의 유전자조작식품(GMO) 수입 금지 정책과 이에 대한 미국 정부의 WTO 제소 계획으로 인해 선진국들 간에도 WTO 체제를 위태롭게 하는 사태가 발생할 전망이다.

모든 전문가들은 미국이 제소를 하기만 하면 WTO 분쟁해결 패널은 미국의 손을 들어줄 것으로 예상하고 있는데, 미국은 EU와의 종합적인 관계를 이유로 차일피일 제소를 미루어왔다. EU는 역내 시민사회의 강력한 압박 때문에 WTO의 판결과 무관하게 유전자조작식품  수입 금지를 고수할 것이라고 선언해 왔다. 이 경우 미국은 EU에 대해 보복 조치를 취할 수 있는데, EU는 이에 대해서도 보복 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이어서 미국과 EU 간의 무역 전쟁이 예상되기도 한다. 미국 정부는 1월 말, 2월 초 WTO 제소를 공식 추진할 것으로 예고해 왔던 것과 달리 2월4일 제소를 미루기로 공식 결정하였다. 미국의 이러한 결정은 WTO 제소가 이라크전쟁에 대한 국제적 협력체제를 위태롭게 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미국 정부의 이번 결정은 성역으로 여겨져 왔던 WTO 규율 등 신자유주의 경제 질서가 개별 국가 내의 정치적인 고려와 국가간 정치 관계의 필요에 따라 “신축적”일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나아가 미국과 EU의 갈등은 WTO체제의 이름으로 지금껏 부정되어 왔던 개별 국가의 정책 자율성의 가능성과 의지를 부각시키는 계기가 되고 있다.

GMO에 관련된 EU의 입장과 EU의 WTO 농업 개방 협상 태도에서 과연 무엇을 지키는 것이 중요한 것인가에 대한 유럽 사회의 인식을 볼 수 있는데, EU 농업담당 집행위원은 1월 말 미국의 한 경제잡지와의 인터뷰에서 동물 복지와 식품 안전을 위한 국가의 예산 지출을 지키는 것이 EU에게는 중요한 협상 과제라고 설명했다.

새로운 농업정책의 방향

브 라질 룰라 대통령과 함께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 참여한 알렉 어윈(Alec Erwin) 남아프리카공화국 통상산업부 장관은 농업이야말로 개도국 발전의 출발점이라며 미국과 EU 등 선진국의 위선을 꼬집었다.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서는 유니레버(Unilever), 네슬레(Nestle) 등 초국적 기업의 대표들이 개도국 정부 대표들과 같이 선진국의 농업 보조금 문제를 제기했다. 이들은 미국 정부의 농업 보조금은 소 한 마리 당 1년에 9,240달러에 달하고, 유럽에서는 6,190달러에 이른다며, 이는 EU의 경우 15개 회원국에서 기르는 젖소 1마리 당 매일 2달러의 보조금을 지불하는 것으로 세계 인구의 1/3이 하루 2달러 이하에 살고 있는 현실과 대조를 이룬다고 지적하였다.

룰라 대통령은 선거 유세 중에 신자유주의 반대 기치를 내걸고, 브라질에 개방을 요구하는 미국 정부에 대해 철강 시장과 오렌지 시장의 개방을 요구하였다. 철강은 부시 대통령이 미시건 등 철강산업 지대의 표를 의식해서 결코 개방할 수 없으며, 오렌지는 플로리다 주의 표 때문에 수용할 수 없다는 점을 노린 것이다. 룰라는 미국의 개방과 자유화 압박을 물리치기 위해 미국에 대해 역공세를 취한 것이다. 룰라 대통령은 다보스에 모인 사람들에게 “이제 여러분들은 당돌한 대통령을 많이 보게 될 것입니다”라고 인사하고, “나는 교섭으로 단련되었습니다. 선진국들이 협상을 거칠게 한다면 저도 그에 못지 않게 할 수 있습니다”라고 앞으로 있을 WTO 등 각종 국제 협상에 대한 브라질 정부의 태도를 밝힌 바 있다. 

새로운 농업 정책은 500년의 식민주의적 세계 분업 체계로 인해 외화 수입의 대부분을 한 두 가지 작물 수출에 의존하게 된 남반구 국가들의 사정을 인정하는 것, 그리고 미국과 EU의 위선적인 농산물 개방 정책에 대한 올바른 비판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미국은 자국 옥수수 생산자들에게 매년 2만 달러의 보조금을 지급하고 멕시코는 최근에 와서 농민에 대한 보조금 지급을 시작했는데, 가구당 1천 달러도 안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옥수수 등 농산물 시장을 완전 개방하는 것은 농업을 파괴하고 농민을 말살하는 결과로 이어지기 때문에 최근과 같은 격렬한 투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대규모 곡물 자본과 대규모 기업농 중심의 선진국 보조금을 획기적으로 축소하고 남반구 농산물에 대한 선진국의 농산물 시장을 개방해야 한다. 그리고 이들 개도국 발전의 출발은, 남아공의 알렉 어윈 장관의 지적처럼 농업 발전에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국제 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 브라질 룰라 대통령은 이와 관련하여 새로운 세계적 과제로 ‘World Agreement for Peace and Against Hunger’라는 범세계적 사회협약의 체결과 이를 뒷받침하는 기금의 창설을 제안했다. 현재 선진국들이 지급하고 있는 3천억 달러에 달하는 보조금을 축소하고 현재 3백억 달러에 불과한 해외 원조를 확대한다면 룰라가 제안한 빈곤퇴치 및 발전 지원 기금의 창출은 그렇게 어렵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장기적으로 농업 정책은 직접 농업 생활자인 소가족농을 중심으로 식량안보, 식량의 이동 거리를 축소하는 생태주의 농업, 그리고 문화와 삶으로서의 농업을 실현하는 방향으로 구성되어야 한다. 지난 5백년에 걸쳐 확립된 세계적 농업 분업 구조를 극복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겠지만, 이러한 방향을 세우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공동 노력이 국제 협력을 통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한판 싸움, WTO 칸쿤 회담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흐름과 이를 저지하고자 하는 흐름 간의 “교착” 상태는 올해 9월 개최되는 WTO 각료회담에서 새로운 협상 라운드가 발족하느냐 마느냐에 따라 명암이 갈릴 수 있다.

9 월 멕시코의 외딴 휴양지 칸쿤에서 열릴 5차 WTO 각료회담에는 145개 회원국 경제 장관들이 모여 농산물과 서비스 교역에 대한 협상, 개도국에 대한 특별 조치 등 이미 합의된 사안의 이행 점검과 보장 문제, 개도국에 대한 특별 차별 대우 등의 의제를 논의하고 선진국들이 추가로 요구하는 투자·경쟁·정부 조달 등 세 가지 새로운 사안에 대한 개방 협상 착수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선진국의 의도대로 된다면 우루과이 라운드와 같은 새로운 무역자유화 협상체제가 발족하게 된다.

이번 WTO 각료회담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는 국제 사회의 시민사회운동은 브라질 포르토알레그레에서 진행된 3차 세계사회포럼에서 공동 전략을 수립한 바 있다. WTO에 대응하는 시민사회, 사회운동 단체들은 각국 정부가 자국 국민의 경제 사회 정치적 이해를 실현할 수 있는 협상을 전개할 수 있도록 자국 정부에 대한 압박과 로비를 전개하여 협상 과정을 복잡하게 만드는 노력을 한 축으로 하고, 신자유주의 경제 질서의 심화를 반대하는 대중 투쟁을 또 다른 축으로 하는 종합적인 대응 전략을 주도면밀하게 추진해야 한다는 결론을 모았다. 협상에 임하는 회원국 정부들이 협상에 가지고 들어가는 의제와 목표로부터 느끼는 압박감과 협상 회의장 밖에서 달구어지는 대중의 압박으로, 완전 전면 개방화를 향해 브레이크 없이 달리는 WTO 기관차를 “탈선(derail)”시키자는 것이 WTO 대응 전략의 핵심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운동의 중심에 있는 제3세계네트워크(Third World Network)와 같은 단체는 개도국 정부가 대규모 협상 과정에서 강대국의 압박에 맞서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자국의 이해를 관철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시 애틀의 재현을 준비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운동 세력들은 미국의 이라크 전쟁이 개도국의 WTO 협상 준비를 방해하고 미국과 EU 등 선진국들이 이를 틈타 새로운 협상 라운드를 발족시키려 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 2001년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4차 WTO 각료회담에서 미국이 9·11 테러를 마치 자유무역에 대한 테러인양, 테러를 반대하기 위해서는 자유무역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는 강압적인 분위기를 조성해서 합의를 강제했던 사례가 재현되는 것을 걱정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평화운동과 주요 국가의 요구에 밀려 이라크에 대한 전쟁 개시를 위해서는 유엔안보리의 동의를 확보해야 하기 때문에 전쟁에 반대하는 국가 정부들에 대해 다양한 압박을 가하고 있다. 최소한 7개 이사국이 기권 또는 반대하면 유엔 안보리에서 전쟁 결의안이 부결되는 데, 멕시코가 미국의 표적 이사국 중의 하나다. 미국이 NAFTA 재협상 또는 관세 철폐 일정 유예의 동의를 미끼로 멕시코의 표를 확보하려고 움직이는 것이 포착되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

WTO 칸쿤 각료회담이 시애틀에서처럼 협상에 임하는 회원국들간의 복잡한 이해 관계의 대립과 시민사회의 저항으로 좌초된다면 지난 이삼 십 년 계속된 신자유주의의 폐해 위에서 세워지고 있는 새로운 전망과 대안을 떠받치는 중요한 기둥들이 힘을 받게 될 것이다.

브 라질 포토알레그레에서 올해 3년째 진행된 세계사회포럼으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운동이 핵심 기둥이다. 이 힘과 흐름을 바탕으로 수립된, 반신자유주의를 내건 정당들이 이끄는 정부들이 또 다른 중요한 기둥이다. 베네수엘라, 브라질, 에콰도르에 이어 오는 3월에 아르헨티나에서도 신자유주의를 거부하는 정권이 탄생할 전망이다. 그리고 남아공, 말레이시아, 인도 등 몇몇 정부는 몇몇 사안에서 이들과 협력하여 WTO 협상 과정을 제어할 수 있다. 그리고 남반구-북반구에서 꾸준하게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과 대안을 모색해온 진보적인 정책 연구 집단이 또 하나의 기둥을 형성하고 있다.

이에 대해 1970년대 비동맹운동과 함께 활발하게 진행되었던 신국제경제질서(New International Economic Order, NIEO) 논의에 버금가는 새로운 실험이 시작될 수 있는 시점에 왔다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다보스에서 룰라 대통령은 “보다 공평하고 민주적인 신국제경제질서의 건설은 더 이상 관대함의 선물이 아니라 이제 현명한 정치적 결정”이라고 선언했다. 새로운 갈망의 물결을 타고 수립된 반신자유주의 정부들의 성공은 대단히 중요하다.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신자유주의를 반대하는 정치세력이 집권했을 때 신자유주의 저지라는 목표를 어떤 정책을 통해, 어떤 정치·외교 행위를 통해 추진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제기된다. 이것은 정치 권력을 장악한 브라질 노동자당(PT)의 고민이기도 하고, 나아가 진보정치의 희망을 세우려는 각국 진보정당의 고민이기도 하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7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