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부 출범과 노동운동의 과제

노동사회

노무현 정부 출범과 노동운동의 과제

admin 0 3,422 2013.05.11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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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2003. 3. 3(월)
곳: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사회: 이원보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

토론: 김성태 (한국노총 사무총장)
        김형탁 (민주노총 부위원장)
        윤진호 (인하대학교 교수 경제학)

정리: 윤효원 한국노동사회연구소 편집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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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노동운동을 둘러싼 정세

forum_01_11.jpg이원보 2월25일 노무현 정부가 출범했습니다. 새 정부는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게 아니라, 오랜 격동기의 산물이라 생각합니다. 노동운동은 늘 새로운 도전을 맞아왔지만, 지난 김대중 정부 5년은 특별한 충격과 고통의 시기였습니다. 국가와 자본의 공세가 거셌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노동운동이 외부의 도전과 급격한 상황 변화에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대처했는가라는 아쉬움이 남는 것도 사실입니다. 많은 이들이 노동운동의 침체와 위기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비단 '침체'와 '위기' 국면이 아니더라도 현재의 좌표를 확인하고, 침로를 모색하려는 노력은 노동운동 주체에게 늘 필요한 작업이라고 봅니다. 이런 취지에서 오늘의 좌담회도 마련되었습니다. 노동운동을 둘러싼 상황과 환경부터 짚어보았으면 합니다.

윤진호 정치적 측면에서 살펴보자면, 새 정부가 과거 어느 정부보다 더 노동개혁 의지를 갖고 있어 기대되는 측면이 있습니다만, 다른 한편으로 새 정부를 둘러싼 환경이 만만치 않아 과연 노동개혁정책이 얼마나 실현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북핵 문제 때문에 개혁의 목소리가 작아질 수 있고, 미국의 영향력이 새 정부 정책에 부정적인 영향력을 미칠 수도 있습니다. 또 원내 과반수를 차지하는 보수적 야당의 존재는 큰 부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재벌이나 보수언론의 저항도 만만치 않습니다. 아마 총선이 다가올수록 진보적 입법의 통과가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다행인 것은 진보적 정치세력이 다음 총선에서 원내에 진입할 희망이 보인다는 점입니다.

김성태 향후 정세를 예측하기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다만 윤 교수님 지적대로 노무현 정권이 개혁과 분배를 주창해왔으므로, 역대 어느 정권보다도 노동자들의 기대가 큰 것도 사실입니다. 반면 노무현 정부는 역대 어느 정권보다 정치적 기반이 취약한 만큼 정책을 추진하는데 있어 거대 야당과 보수 기득권층의 반발 등 도전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속단과 섣부른 기대는 금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이미 지난 DJ정권에서 경험한 바입니다. 특히 정권 초기의 이라크 전쟁, 북핵문제, 경제불안 등 어려운 변수가 발생되고 있는 상황에서 노무현 정부가 노동정책을 개혁적으로 추진해 갈 수 있을지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김형탁 노무현 정권은 김대중 정권보다 홀가분하게 출발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대중 정권이 경제위기 이후 IMF의 요구를 정신없이 따라가는 상황이었다면, 지금은 상대적으로 정책 집행의 자율성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노동이 처한 상황이 근본적으로 변하지는 않았습니다. 작금의 현실을 돌아볼 때 노동자들의 형편이 더 나아질 게 없다는 점이 이를 반증합니다. 물론 정부 정책이 사회 불평등 축소를 주장하고 있지만, 약자의 수준을 높이는 상향식 차별 해소냐, 아니면 전체적인 하향평준화냐 하는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차별 해소를 얘기하면서 정규직이 일정 정도 희생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면, 결국 하향평준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죠.

윤진호 물론 경제적인 측면에서 어두운 면이 많습니다. 미국 경기가 회복되지 않고 이라크 전쟁과 북한 핵문제 같은 불안 요소가 있으며, 국제금융자본의 유동성이 더 커질 수 있습니다. 세계화에 따른 국제금융자본의 충격, 쌀 개방 문제 등 해외의 불안 요인이 국내 경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입니다. 정부는 경제성장률 7%를 내걸었지만, 해외 불안요인으로 5%도 낙관하기 어렵다는 전망이 많습니다. 국제 경제나 국내 경제가 어려워지면 노동운동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forum_02_6.jpg김성태 윤교수님이 말씀하신대로 국내외적 경제정세가 노동진영에 부정적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우려에 대해서 저도 공감합니다. 지난 경제위기 이후 소득격차가 크게 확대된 것처럼 현 경제상황이 또다시 부익부빈익빈 현상의 심화로 이어지게 될지도 모릅니다. 또한 정규직노동자의 비정규직화, 노동조건 차별문제도 더욱 심각해질 것입니다. 미국의 경제잡지 『포브스』에 따르면, 한국의 노동시장 유연성은 미국, 캐나다에 이어 세계 3위라고 합니다. 노동사회연구소에서도 우리나라의 노동시장 유연성이 미국보다 더 높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현상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사회통합 노사관계, 차별해소를 통한 평등사회 구현을 국정과제로 내세운 노무현 정권이 풀어야 할 과제는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김형탁 노동시장은 물론 한국 경제의 구조 역시 매우 취약한 상태에 있습니다. 산업구조가 반도체와 자동차 등 일부 업종에 편중되어 있으며, 금융시장은 1/3 이상이 외국자본에 넘어간 상황입니다. 이런 점들은 노무현 정부의 경제 정책 집행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입니다. 기업의 자유로운 영업활동 보장이라는 점에서 이전 정부와 현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는 큰 차이가 없습니다. 결국 해외 자본과 국내 자본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기 위해 '구조조정' 공세가 계속되리라 전망합니다.

윤진호 경제 구조와 관련해서 가장 큰 화두는 재벌개혁과 민영화 문제입니다. 노무현 정부는 과거 어느 정부보다 재벌개혁을 강하게 표방하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 사회의 진보를 위해서는 당연히 개혁돼야 할 부분이지만, 노동운동의 입장에서 볼 때 재벌개혁 문제가 해당 기업에서는 노사갈등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습니다. 민영화는 새 정부가 속도를 늦추고 논의 과정에 노동자를 참여시킨다는 방침을 밝혔기 때문에 과거보다는 갈등이 완화될 것으로 봅니다만, 민영화 방침 그 자체를 바꾼 것은 아니기 때문에 갈등 요인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2. 노동운동 주체의 상태와 조건

이원보 노동운동의 방향과 과제를 조망하기 위해서는 객관적 상황과 환경을 살펴보는 것만큼 주체적 조건에 대한 진단도 필요합니다. 노동운동이 처한 조건을 살펴볼까요?

김성태 노동조합은 그동안 확대되는 비정규직을 조직화하는 데 실패했으며, 조직률도 1987년 이전의 12% 수준에 머물러 있으므로 전체 노동자의 대표자로서의 위상이 흔들리는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경제위기 이후 한국노총을 비롯한 노동계 전체가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신자유주의와 노동유연화 공세는 많은 노동자들을 실업자로 내몰았고, 고용구조를 악화시켜 비정규직 노동자를 양산했습니다. 이런 속에서 노동운동 진영이 중장기적 노동운동 방향의 설정과 자기개혁을 위한 실천에 노력을 기울이지 아니한 채 종전과 같은 방식의 투쟁과 협상으론 시대의 변화와 신자유주의 공세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김형탁 기존의 활동 방식에 대한 반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상황의 불가피성도 있었지만, 노동운동이 중장기적인 전망을 갖지 못한 채, 단기적인 투쟁에 매몰된 측면이 없지 않습니다. 그때그때 사안에 따른 방어 투쟁이 주를 이루었고, 정세를 주도하는 투쟁이 아니었던 것이죠. 여기에는 기업별노조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큰 배경으로 작용합니다. 이에 따라 조합원들의 의식도 아직 종업원 의식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지금 많은 노조가 산별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형식만이 아닌 내용에서도 산별을 만드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민주노총도 산별노조 건설을 단순히 바라만 볼 것만이 아니라 자기 역할을 해야 합니다.

김성태 산별노조 건설이란 노동계의 핵심과제가 정규직 중심의 단위사업장 중심의 투쟁과 협상에 매몰되어 단순히 구호에 그친 것이 사실입니다. 그 결과 노동조합의 조직률이 10%대에 머물고, 비정규노동자들은 미조직 상태로 남게 되었습니다. 그나마 한국노총 산하조직 중 금융산업노조, 택시노련 등이 산별노조로 전환하였지만 아직도 기업별노조의 조직 이기주의를 극복하려면 가야할 길이 멉니다. 또한 비정규직노동자를 조직화하는 문제도 정규직 중심의 기업별노조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이 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forum_03_3.jpg김형탁 낮은 조직율과 비정규직 문제는 산별노조를 건설하지 않고는 해결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조직 체계에서 보자면 기업별노조라는 기존의 관성과 타성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1998년 보건의료노조를 시작으로, 금속, 언론, 대학노조가 산별노조로 전환했고 전교조 조합원을 포함해 민주노총 조합원의 1/4 이상이 이미 산별노조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비정규직 사업과 관련해서도 민주노총은 각 연맹에 10% 이상의 예산을 비정규직 조직화에 배당하도록 주문했습니다. 민주노총은 20% 이상을 계획하고 있습니다만, 아직 많이 부족한 실정입니다.

윤진호 1987년 이후 노동운동이 많은 굴곡을 겪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양과 질에서 많이 발전했고, 사회적 위상도 높아졌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노동운동이 제도권 속에 진입하면서 기존의 관성과 타성이 고착된 측면도 있습니다.

1987년 이후 노동운동의 특징을 세 가지로 분류합니다. 조합원의 임금, 복지, 고용에 집중하는 경제적 조합주의, 조합원 보호가 주로 단위 기업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기업별 조합주의, 노동자를 직접 동원하여 투쟁을 통해 자본과 국가를 압박하는 전투적 조합주의가 그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세 가지 모두 변화를 요구받고 있습니다. 과거의 운동 방식으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문제들이 생겨나고 있어요. 이를테면 산업구조조정에 따른 고용 문제의 경우는 기존의 방식으로는 도저히 풀 수 없습니다.

저는 잠깐 노사정위원회에 참가했었는데, 당시 노동운동이 당장의 경제적 이해관계를 넘어서는 사회 개혁적 요구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물론 당시는 IMF 경제위기 이후라 관련 의제가 모두 경제 영역인 점도 있었지만, 경영참가법을 예로 들자면, 노사 모두 관심이 적었던 게 사실입니다.

김형탁 노동운동의 이념 수준도 낮은 편입니다. 노조 활동가들 사이에서 뭔가를 찾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 지 오래지만, 아직 제자리걸음입니다. 사회 전반적 구조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뿐 아니라 노동운동을 어떻게 이끌 것인가에 대한 합의가 없는 상태입니다. 민주노총 내부에 여러 정파들이 있지만, 이념 논쟁을 해본 기억이 없습니다. 쓸데없이 서로의 힘을 낭비하는 구도인데 빨리 극복되어야 합니다.

김성태 한국노총은 이념 측면에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비가 소홀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닙니다. 세계화 흐름이나 정부의 구조조정 정책에 대해 거시적인 시야에서 이해하고 그 대안을 마련하기 보다는 단기적인 사업 방식에 그친 면이 없지 않습니다. 윤 교수님 지적대로 경제주의에 치중한 노동운동의 시대는 지났다고 봅니다. 우리 노동운동의 이념도 서구처럼 '경제적 노동운동'에서 '사회적 노동운동'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김형탁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측면을 살펴보고 싶습니다. 민주노동당이 작년 지방선거와 대선에서 얻은 성과는 주목할 만 합니다. 2004년 총선에서는 원내 진출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의 활동이 현장 조합원들과의 밀접한 관련 속에서 이뤄지지 않는 문제점이 있습니다. 아직 민주노동당이 현장 조합원들을 위한 정치공간을 마련해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민주노동당이 선거에 매몰되기보다는 전체 사회를 주도하고 지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윤진호 정치세력화에 앞서 전투적 조합주의 문제를 좀더 다뤄보고 싶습니다. 이것은 노동운동의 소중한 자산입니다. 다만 전투성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모든 일을 거리에서 해결하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자본주의에서 노동조합은 두 가지 측면을 갖습니다. 하나는 자본 및 국가와의 교섭이고, 다른 하나는 전투성 발휘를 통한 투쟁의 측면입니다. 두 측면을 다 발휘해야지, 한 편에만 치우치면 문제가 있습니다. 이제 노동운동은 무조건 억압받는 세력이 아니며, 어느 정도 사회적 시민권을 얻은 조직입니다. 따라서 노동운동은 자신의 실천이 국민경제, 전체 사회, 기타 소외 계층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노동운동 내부의 합의에 따른 것이 아니라, 노조 내부의 파벌 사이에서 벌어진 정파 대립 과정에서 단지 소리가 큰 세력의 의견을 따르는 식은 지금까지의 투쟁 사례를 돌아볼 때 과연 노동계급 전체를 위해 올바른 것이었던가를 회의하게끔 합니다. 노동운동은 변화를 요구받고 있고, 자기 개혁의 당위성도 제기되고 있지만 변화의 속도는 느립니다. 이제는 변화에 대한 갖가지 말 잔치보다는 실천해야 할 때입니다. 그 고민을 위한 첫걸음은 노동운동의 초심으로 돌아가서 노동자계급 전체의 의사를 조직 노동운동이 대변하는 방식이 되어야겠지요.

김성태 한국노총은 지난 대선에서 민주사회당을 창당했습니다. 지금까지도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겪고 있습니다. 또한 조합원을 위한 정치 교육은 크게 부족하고 조합원들의 당 활동 참여는 활발하지 못해, 조직 안팎에서 비판이 높은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조합원의 정치의식을 높이고, 조합원의 정치참여를 활성화하기 위한 정치 방침을 확정하고 실천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작년부터 한국노총 개혁특위가 설치되어 조직 개혁의 청사진을 마련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개혁특위의 활동목표는 노총의 개혁과 노동운동 역량의 강화입니다. 특히 개혁특위는 노동자 정치세력화와 관련한 다양한 개혁과제를 제시하였습니다. 저도 민주사회당이 민주노동당과 개혁당 등 진보세력과 함께 정치개혁을 위한 공조 틀을 확고히 하고, 중장기적으로는 통합 논의도 추진해야 한다는 안을 내놓은 바 있습니다.

forum_04_1.jpg윤진호 노동운동이 지방선거와 대선에서 성과를 얻은 점은 인정하지만, 노동운동의 분열이 민주노동당과 민주사회당의 분열에서도 드러나듯이 정치세력화 과제에서도 이어지고 있는 점은 걱정입니다. 정치세력화 만큼은 분열을 극복해야 합니다. 이 분열을 극복하지 못하면 전체 노동자에게 비춰지는 노동운동의 모습은 무척 실망스러울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유의할 것은 다른 나라의 정치세력화 사례를 보면, 노동운동이 정치세력화하면서 노동운동의 순수성과 성격이 변화하거나 개인이 운동을 발판으로 삼아 정치적 진출을 꾀하는 경향이 나타납니다. 한국 노동운동에서 당장 나타나고 있는 현상은 아니지만, 미리 정비하고 경계해야 합니다.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원래의 목표에 충실해야 합니다. 몇몇 개인을 위한 정치세력화가 안 되도록 노력해주실 것을 당부하고 싶습니다.

3. 노무현 정부의 성격과 향후 전망

이원보 이제 노무현 정부의 성격을 살펴보았으면 합니다. 김성태 총장은 기대를 할 수 있지만 우선은 좀 지켜보자는 입장인 듯 하고, 김형탁 부위원장은 변화가능성은 있지만 지금 구조에서 큰 변화가 이뤄지겠냐는 입장인 것 같습니다. 김대중 정권 하에서 민주노총은 정부와 대립했었고, 한국노총은 정책연합을 했었지만 파기한 경험이 있습니다.

김형탁 노무현 정권을 바라볼 때 극단적인 시각은 위험합니다. 지나치게 큰 기대를 거는 편향과 반대로 신자유주의 정권이니까 뻔하다는 식의 편향은 둘 다 위험합니다. 냉정하게 바라봐야 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대선 과정과 당선 이후 지금까지의 행보를 돌이켜 보면 파격의 연속이었습니다. 일례로 이전 정권에서는 노동부장관도 방문하지 않았던 민주노총 사무실을 당선자가 직접 왔던 점을 들 수 있습니다. 민주노총 방문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은 신자유주의자가 아니지만 사회경제적 압력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점이 있으므로 협상과 대화로 차근차근 풀어나가자는 요지의 이야기를 한 바 있습니다. 노동부장관 인선에서도 민주노총 임원 출신 인사가 거론되는 등 어찌 보면 노동계가 과거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기회 구조가 마련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편으론 이런 접근을 통해 노동운동이 얻을 수 있는 게 얼마나 될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합니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까지 다 잃는 경우가 생겨서는 안 됩니다.

김성태 저는 노무현 정권이 개혁과 분배를 주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전 정권보다 개혁적이라 보며, 노동현안 해결을 위해 참여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봅니다. 계급 계층간 갈등으로 인한 사회적 모순이 어느 시기보다 심각한 상황에서 노무현 정부의 역사적 과제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 지향점에서 노동운동의 방향과 비슷한 측면도 많습니다. 노동운동이 취할 수 있는 정부에 대한 입장은 압박과 공세를 통한 직접 해결과 참여를 통한 노동현안 해결, 이 두 가지가 있다고 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노무현 정권이 초기인 만큼 좀더 지켜볼 필요가 있고, 한국노총 내부적으로도 아직 압박 공세와 참여 사이에서 입장 정리가 되지 않았고, 시기적으로도 이른 측면이 있는 게 사실입니다.

윤진호 저는 노무현 정권의 성격에 대해 두 가지 정도를 지적하고 싶습니다. 첫째는 파격성입니다. 이 파격성은 과거의 제도와 관행을 허무는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둘째는 불안정성입니다. 노무현 정부는 과거 어느 정권보다 불안정합니다. 이를 보수세력은 '불안'으로 받아들이는데 저는 '불안'이 아니라 '불안정'으로 표현하고 싶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역 기반이 없을뿐더러 지지 세력의 실체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개인 스타일이 논리보다는 감정이 앞섭니다. 그리고 집권세력의 기반이 대단히 취약해요. 이런 불안정성은 두 가지 형태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과감한 개혁도 가능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고립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김대중 정권은 초기에 '시장경제와 민주주의의 동시 발전'을 주장했지만, 점점 민주주의가 사라졌지 않습니까. 노동 부문은 파산했고요. 그 이유는 자민련과의 공동 정부라는 자기 취약성, IMF라는 외부의 함정, 두 가지가 합쳐지면서 김대중 정부가 지지 기반을 넓히지 못한 상태에서 결국 관료의 손아귀에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노무현 정부의 불안정성에 대해서도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김형탁 개혁 의지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정권은 자본과 연결된 부분 등에서는 쉽사리 개혁의 칼날을 들이대지 못할 것입니다. 이 점은 노무현 정부의 근본적인 한계입니다. 따라서 노동운동이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할 부분이 바로 이 지점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노동운동의 영역이 사회적인 의제로 확장돼야 합니다. 그 예로는 사회적 필수 서비스의 공공성 확보, 빈부격차 확대 저지, 부유세 도입을 위한 국민투표 실시 등이 있을 겁니다.

김성태 노무현 정부가 약속대로 개혁과 분배를 실천한다면, 참여를 통해 현안을 해결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습니다. 노동운동 조직이 정책입안과 결정에 참여해 노무현 정부의 정책을 견제해야 합니다. 동시에 압박과 공세도 준비해야 하지만, 신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경험을 되돌아 볼 때 조합원들의 동의를 얻고 국민적 설득력을 구하는 작업이 선행되는 '준비된' 투쟁이 아니라면, 성과가 미미할 수밖에 없습니다.

윤진호 출범 당시의 상황을 보자면 노무현 정권은 김대중 정권보다 사정이 낫지만, 노무현 정부의 지지기반이 취약한 것은 사실입니다. 따라서 갈수록 관료 의존도가 높아질 것으로 보입니다. 그럴 경우 김대중 정부와 비슷한 상황이 나타날 수도 있어요. 그러나 노무현 정부의 불안정성은 곧 개혁 가능성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고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노동운동이 개입할 경우 변화의 가능성이 커진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노동운동이 정권 초기에 팔짱만 끼고 있을 것이 아니라 어떤 식으로든 개입해야 한다고 봅니다. 개입이 반드시 무조건적인 참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방법이 참여든 아니면 노정교섭이나 혹은 다른 방식의 압박이든 개입을 통해 정권 초기부터 올바른 방향으로 나가도록 해야 합니다.

4. 노사정위원회

이원보 지금부터는 노동운동의 쟁점을 점검해 보도록 하죠. 노사정위원회 참여, 구조조정 대응방식, 공무원노조, 주5일 근무제, 손배와 가압류 등 많은 쟁점이 있습니다. 어떻게 정부와의 관계를 설정하고 문제를 풀어야 할지 얘기해 보도록 하죠. 우선 노사정위원회부터 얘기해 봅시다.

김성태 김대중 정부 하에서의 노사정위원회를 돌아보면 말도 많고, 탈도 많고, 기대도 많았지만 결론적으로 실망스러운 활동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노사정위원회가 독립성이 없고 위상 자체가 제대로 정립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한국노총은 노사정위원회에 앞으로도 참여할 계획입니다. 물론 노사정위원회의 독립성과 위상을 강화해야 하고, 사회적 합의기구로서 제대로 역할을 하도록 장치가 확보돼야 합니다. 그리고 대통령과 노사정 대표와의 정례 미팅을 통하여 합의사항의 이행을 점검·보고하고, 노동부 산하 기관을 벗어나 인사, 예산, 운영에서 자율성을 보장받아야 합니다. 또한 노사정위원회의 구성도 달라져야 합니다. 공익위원의 역할이 중요한데 편향적인 경우도 있습니다. 공익위원의 중립성과 전문성을 강화해야 합니다. 노사정위가 실질적인 조사권을 가져야 하며, 관련 당사자들의 출석 요구권도 보장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산업별, 지역별 노사정위원회를 설치해 실질적인 분권화, 자율화를 실현해야 합니다. 한국노총은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한 가운데 위원회의 발전적 재편을 추진할 계획입니다.

김형탁 노사정위원회는 한국 사회에서 리트머스 시험지와 같은 역할을 하는 듯합니다. 겉보기는 같은 듯 하지만, 이 문제에서는 어떤 사람은 빨간색, 어떤 사람은 파란색의 결과가 나오는 일이 많습니다. 이것은 노사정위원회의 역사적 성격에서 비롯됩니다. 정리해고 법제화, 파견제 합법화 등의 경험에서 보듯이 노동자들이 워낙 당해서 그런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제는 노사정위원회 얘기만 나오면 '악몽'이 떠올라 다시 논의하기 힘들게 되었습니다. 민주노총은 현재 존재하는 노사정위원회에 반대합니다.

윤진호 노사정위원회는 워낙 많은 얘기가 오간지라 정부와 노동운동에게 부탁하고 싶은 점만 말하겠습니다. 양쪽 모두 노사정위원회에 대해 잘못 이해하거나, 잘못 생각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우선 위원회의 독립성 확보와 위상 강화를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이것에 너무 중점을 둘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노사정위원장을 총리나 대통령 산하에 둔다고 해서 위원회가 강화되는 것이 아닙니다. 합의기구니 협의기구니 하는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합의기구로 만들 경우 노사가 합의를 안 하면 유명무실하게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김형탁 저는 노사정위원회를 유럽처럼 생각하고 가치판단의 기준으로 삼는 방식에는 시각을 달리해야 한다고 봅니다. 물론 교섭 문제가 있기 때문에, 이를 풀기 위해서 민주노총은 총체적 교섭구조의 확보를 주장합니다. 노정교섭, 산업별교섭, 노사정교섭을 제안하는 것이죠. 노사정위원회가 모든 이슈를 포괄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의제를 구분해 의제 성격에 맞는 틀을 갖춰야 해요. 가령, 노정이 할 것과 노사가 할 것을 노사정위원회 틀이 포괄해서는 안 된다는 얘깁니다. 민주노총은 의제의 틀을 나눠서 하자는 입장이며, 정부는 전체적으로 하되 지역과 산업별로 가자는 입장입니다. 우리가 걱정하는 것은 만일 지역과 산업별로 나눌 경우 전국 단위 노사정위원회에서 안 풀리는 문제를 하부 단위에서 풀려고 함으로써 노동운동을 계속 노사정위원회에 묶어 두어 전체 노동세력이 집중하지 못하고 분산되지 않겠는가 하는 부분입니다.

윤진호 노사정위원회가 제대로 운영되려면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첫째는 합의 가능성의 문제입니다. 합의를 위해서는 참가 당사자 사이의 신뢰가 필요한데, 노사나 노정간 신뢰 수준이 지극히 낮습니다. 독일에서는 다양한 수준에서 노사, 노정이 토론하고 교섭하는 과정을 거쳐 전국 차원에서 합의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전국 차원의 노사정위원회만을 고려하는데, 창구뿐만 아니라 체계를 다양화하는 방식도 고려해야 해요. 기업별 경영참가가 이루어지고, 산별 노사교섭 및 협의가 이루어지면서 여기서의 경험과 토대를 바탕으로 전국적 차원의 논의가 이뤄질 수 있을 것입니다. 채널도 노사정 교섭에만 의존하지 말고, 전국적 차원의 노사교섭, 노정교섭 등 사안에 따라 다양화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정부도 사용자와의 협의는 늘 하면서 노동자와의 교섭은 안 하려 하는데 이래서는 곤란합니다. 다음은 일단 합의가 이루어진 후 이행가능성 문제입니다. 어쩌면 노사정위원회가 실패한 이유가 바로 이 문제 때문일 겁니다. 경제부총리에 상응하는 사회부총리를 만들어서 사회정책과 경제정책을 대등하게 만들어야 하고, 노사정위원회에 법률제안권 부여, 각급 공무원에 노동문제 교육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합의 이행을 관철해야 합니다.

노동조합에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사실 노동운동 내부에도 노사정위원회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양한 것 같습니다. 이 때문에 지도부가 노사정위원회 참여를 상당히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습니다. 노사정위원회 합의안 가운데 여러 가지가 노동조합에게 이로운데 비해, 한 두 개가 불리하면 합의 자체를 틀어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노조 내부의 민주주의를 강화해야 합니다. 노사정위원회에서 논의되는 중요 안건에 대해서는 사전에 조합원들에게 직접 의견을 물어보는 방식을 통해 노동조합 내의 의사를 통일하고 직접민주주의를 확립한다면 노사정위원회에의 참여에 대한 지도부의 부담도 많이 줄어들고 합의사항의 이행가능성도 높아질 것입니다.

5. 구조조정 민영화

이원보 노사정위원회 문제는 역시 의견 차이가 큰 것 같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한가지 말하고 싶은 것은 사물을 고정시켜놓고 한가지 측면만 봐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상황과 조건은 변하게 마련이고, 그 속에서 특정 제도나 토대도 변하기 마련입니다. 이제 민영화와 구조조정 문제로 넘어갈까요.

김형탁 공기업 구조조정은 공공성 강화를 목적으로 해야 합니다. 정부와 자본은 민영화, 즉 사유화가 공기업의 방만한 운영을 해결할 수 있는 열쇠며 운영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여기에 대해서는 반론이나 이견이 많습니다. 사유화된 기업에서 공공성이 약화되고, 나아가 운영이 방만해졌으며, 효율성이 떨어졌다는 사례가 많이 보고됩니다. 결국 사유화는 이윤을 최대의 목적으로 함으로써 공공성을 침해할 것입니다. 노무현 정부는 여러 가지 의견을 듣겠다고 했지만, 사유화라는 기조를 바꾸지 않고 있습니다.

김성태 국가가 소유한 기간산업의 무분별한 매각은 막아야 합니다. 특히 외국자본에게 소유권을 넘겨선 안됩니다. 국민경제가 달려 있는 문제이지 않습니까. 노사정위원회에 공기업 민영화를 다룰 기구를 두어 노사정을 비롯해 이해관계당사자의 협의를 거치도록 하는 방안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대구지하철 참사에서 드러났듯, 비용절감과 인력감축 중심의 구조조정은 공공성과 안정성을 무너뜨려 우리 사회가 위험에 빠질 수 있습니다.

윤진호 구조조정과 민영화에 대해서는 두 분과 비슷한 생각입니다. 구조조정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그 방향은 공익성을 강화하고 효율성을 확보하는데 맞춰져야 합니다.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부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 방향이 반드시 민영화인지는 다시 생각해봐야 합니다. 우선 공기업의 방만한 운영, 낙하산 인사 등 비효율적인 것을 제거하는 구조조정 과정을 거치고 그 결과를 평가한 후에야 민영화를 추진할지 여부를 생각할 수 있다고 봅니다. 처음부터 무조건 민영화를 거론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특히 국가기간산업의 경우 효율성보다 공익성을 훨씬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노조에도 부탁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겉으로는 공익을 표방하면서도 실제로는 해당 구조조정 사업장의 고용 보장만을 목적으로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 경우 국민적 설득력을 가질 수 없습니다. 물론 노동자의 고용 보장은 중요합니다만, 고용보장이 반드시 사업장 단위별로만 될 수는 없는 일입니다. 비록 기업 단위에서는 그런 주장을 할 수 있을지 몰라도, 내셔널센터는 좀더 합리적인 방식을 생각해야 합니다. 예를 들자면, 교육, 직업훈련, 직업알선, 사회보장의 강화 등을 통해 사업장을 넘어선 산별 단위의 고용보장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산별 노조나 내셔널 센터가 고민하는 모습이 필요합니다.

6. 공무원 노동기본권과 비정규직 문제

김형탁 공무원의 노동기본권은 헌법에 보장된 것입니다. 하위법으로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을 제약하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정부는 전교조 수준을 얘기하는데, 노동3권을 모두 보장해야 합니다. 주5일제는 기본적으로 전체 노동자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하지만 현재 법안이 전체 노동자들을 위한 것인지 의심스럽습니다. 임금 삭감의 경우, 조직 노동자는 어떤 식으로든 견딜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나머지 노동자들 특히 신규 노동자는 불리한 조건에서 노동시장에 들어올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새롭게 고민해야 하는데, 지금 정부 입장은 현재 안을 조금 바꿔 시행하겠다는 것이라 서로 부딪힐 듯 합니다.

김성태 공무원 노동기본권과 관련해서는 국제적 수준의 노동기본권을 부여하고 실질적인 노동조합 활동이 보장되어야 합니다. 교원노조법도 교섭권 제한 등 노조활동을 제한하는 문제의 조항은 하루 속히 개정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국회에 계류중인 "공무원조합법안"은 노사정위 합의사항조차도 반영하지 않고, 시행시기, '노조' 명칭 사용금지, 단협체결권·쟁의권 불허, 노조가입 및 연합단체 구성금지 등 노조활동을 금지하는 법안으로 반드시 폐기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노정간의 재교섭을 통해 공무원 노조활동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입법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윤진호 공무원 노동권은 국제기준에 굉장히 모자랍니다. 노사관계에서 보수적인 입장을 취한다는 경제개발협력기구(OECD)도 우리나라 공무원의 노동권을 후진적이라 평가합니다. 공무원 노동기본권 보장은 한국이 OECD에 가입하면서 약속한 것인데도 아직 지켜지지 않고 있습니다. 2000년 OECD 보고서를 보면 "한국이 공무원 노동기본권 제한을 두고 있는데, OECD 다른 회원국의 기준에 훨씬 못 미치는 합리성을 결여한 제도"라고 써 있습니다. 교원노조가 합법화되었지만 교원의 노동기본권도 제약이 많습니다. 특히 교수노조가 설립되었지만 합법 조직이 아닙니다. 이는 권위주의 정부 시절에나 있을 법한 일입니다. 실업자노조, 단체행동 자유 보장, 조정 전치주의, 노동위원회 강제중재, 공익산업 긴급조정 등은 글로벌 스탠더드(global standard)에 뒤쳐져 있는 대표적인 문제들입니다. 하루빨리 개선돼야 합니다.

김형탁 현 정권의 비정규직 정책은 후퇴하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대통령은 대선 공약에서 긍정적인 정책을 수립하는 듯 했으나, 당선 이후에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에 대해 속도 조절을 얘기하는 등 후퇴하는 느낌입니다. 손배·가압류는 기본적으로 노동운동을 범죄시 하는 시각이 바탕에 놓여 있습니다. 민주노총은 손배·가압류 금지법을 추진하고 있는데, 노동운동이 자기 권리를 충분히 보장받을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게 중요합니다. 손배·가압류뿐만 아니라 직권중재도 이번 기회에 개선해야 합니다.

김성태 비정규직 차별 금지는 부당한 차별의 시정과 취약계층 보호란 차원에서 강력하게 주장할 겁니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반드시 법제화해야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손배와 가압류는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의 산물이며, 인간관계를 말살하는 악랄한 행위입니다. 이것은 노동조합법 및 민사소송법을 개정해서라도 보완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윤진호 노무현 정부가 내놓은 비정규직 정책은 과거보다 크게 진전되었다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이에 찬성합니다. 다만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비정규직 문제 해결의 철칙으로 보는 입장이 있는데 저는 좀 다르게 생각해요. 비정규직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양적 증가를 막아야 합니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은 자칫하면 현재의 비정규직 노동자의 불안정한 고용상태를 그대로 둔 채 처우만 개선하자는 주장으로 오해받기 쉽습니다. 또 동일노동 동일임금은 원칙으론 당연하지만, 현실에 적용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일례로 남녀고용평등법에서도 이 원칙을 선언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 원칙을 제도화하기도 어려울뿐더러 법이 만들어져도 시행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따라서 동일노동 동일임금이라는 대원칙과 더불어 이에 보완되는 정책으로서 모든 형태의 비정규직과 정규직 저임금 노동자에게까지 적용하는 최소한의 일괄적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봅니다. 사회 임금 혹은 생존 임금의 설정이 그것인데요, 3∼4명의 가족을 거느린 가장 노동자가 생활을 영위할 수 있을 정도의 임금을 지불하도록 하는 걸 뜻합니다. 이건 법률을 개정하지 않아도 가능한데, 공공부문에서 우선 시행하고 공공부문과 계약하는 민간업체에도 조건으로 제시할 수 있을 겁니다.

8. 양대 노총의 사업방향

이원보 이상의 문제들은 하나하나 논쟁거리가 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주5일제에 대해서도 국민들의 지지가 많지만 어떻게 할 것인가도 문제입니다. 정부의 역할도 중요하겠지만, 무엇보다 노동운동의 몫이 아닌가 싶습니다. 지금부터는 양대 노총의 사업방향을 얘기해 보도록 합시다.

김성태 올해 한국노총의 사업은 통합·집중·연대라는 기조 속에서 집행하려 합니다. 무엇보다 조직화 사업, 특히 비정규직 조직화 사업을 우선 사업으로 진행할 계획입니다. 이를 위해 전체 예산의 8% 이상을 배당했습니다. 한편으로 유사 산별을 통합하고, 향후 한국노총 가맹조직을 5개 조직으로 재편하는 원년으로 삼으려 합니다. 또 작년에 마련된 한국노총 개혁보고서에는 양대 노총의 통합이 중장기 과제로 나와 있습니다. 다음으로 연대의 기풍을 확립하려 합니다. 단지 기존 산별의 현안 문제에만 집중하는 게 아니라, 가령 공공부문에서 집회를 하면 제조 산별도 결합하는 식으로 다채롭게 연대 틀을 만들어 가려 합니다. 올해 임단협은 예년과 비슷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하지만 올해는 임단투의 3, 4월 시기집중을 확정하지 않았습니다. 노무현 정권이 노동 현안을 어떻게 푸느냐를 보고 난 다음 임단투 시기를 조정할 계획입니다. 아마도 5∼6월에 집중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김형탁 민주노총은 향후 5년 방향으로 평등·자주·연대를 기치로 내걸었습니다. 평등은 신자유주의에 따른 사회 불평등 반대, 자주는 통일을 비롯해 반전 평화를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연대는 노동연대에서 나아가 사회연대, 국제연대의 강화를 의미합니다. 아직 추상적인 수준이라 좀더 구체화해야 합니다. 올해는 신자유주의 공세 저지 투쟁이라는 큰 방향에서 비정규 차별철폐, 노동3권 확보, 공공성 강화 등 3대 사회 의제를 선정했습니다. 민주노총은 상반기에 10대 노동개혁 과제를 중심으로 공동투쟁위원회를 구성해 싸워나갈 계획입니다. 10대 노동개혁 과제는 비정규직, 공공, 교육개혁 등 여러 가지가 포함되어 있는데, 만일 다양한 이슈들이 각개 약진할 경우 어떤 성과도 남기지 못하고 사라질 수 있다는 생각에 하나로 묶어 투쟁하자는 전망을 세웠습니다. 이런 방향 속에서 3월29일 민중대회를 개최하고, 5월1일 노동절에 집중 투쟁을 조직해 이슈를 부각시킨다는 계획입니다. 하반기에는 비정규직 문제, 사회복지 문제를 갖고 총력투쟁을 전개하려 합니다. 어떤 이슈를 중심에 놓고 투쟁을 할 것인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은 상황입니다. 임단협과 관련해서 민주노총의 임금 요구안은 11.1%입니다. 단협의 공동 요구안으로 비정규직, 근골격계를 비롯한 산재 문제 등을 공동 요구안에 포함시켰습니다. 그리고 6월 둘째 주에 시기집중투쟁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윤진호 저는 양대 노총의 사업방향에서 좀더 고려했으면 하는 문제들을 말해볼까 합니다. 저는 노동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준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특히 무엇을 우리나라 근로기준과 노동조건의 기준으로 삼을 지를 결정하는 게 중요합니다. 노조는 우리 사회의 노동조건과 근로기준이 약하다고 주장하는 반면, 정부와 사용자는 과잉보호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따라서 객관적 기준이 필요합니다. 노동조건과 근로기준에도 글로벌 스탠더드가 있고, 저는 우리 사회의 그것이 글로벌 스탠더드에 적합한 지를 따져봐야 한다고 봅니다. 1999년 국제노동기구(ILO)에서 '핵심노동기준'(core labor standards)을 마련했습니다. 이것은 결사의 자유, 강제노동 금지, 아동노동 철폐, 동등 대우 및 차별 철폐 등 네 가지 영역에 8개 조약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8개 조약 다 비준한 나라가 84개국이고, 7개 비준한 나라는 37개국으로 합치면 회원국의 2/3에 해당합니다. 우리는 그 가운데 4개 조약만 비준하고 있는데, 우간다나 인도와 같은 수준입니다. 한국이 비준한 4개 조약을 보면 단결권, 단체교섭권과 같은 영역이 아니라 우리의 긴박한 사정과는 거리가 먼 아동노동, 차별금지 등만 비준한 상태입니다. ILO 협약은 모두 184개인데, OECD 회원국들의 경우 평균 70개정도 비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18개만 비준했고, 비준한 협약들도 중요한 건 거의 없고 지엽적인 것뿐입니다.

근 로기준 문제를 보면 가장 큰 문제가 장시간 노동입니다. 최근에는 노동시간이 오히려 늘어나고 있습니다. OECD 회원국 중 우리가 2,447시간으로 가장 높고, 슬로바키아가 2,026시간으로 두 번째지만 400시간 이상 차이가 납니다. OECD 평균은 1,773시간으로 우리와 700시간이 차이납니다. 현재 국회 계류중인 주5일제 정부안을 보면 영세사업장 노동자에 대한 형평성이 제기됩니다. 물론 외국의 노동시간단축 사례를 봐도 단서조항을 두지만 길어봐야 3∼4년인데 우리는 2010년으로 7년이나 됩니다. 산업재해와 직업병 문제도 심각합니다. 제조업의 중대재해율(천명당 사망율)이 0.17입니다. 일본은 0.01이고 대만은 0.08입니다. 미국서 연구할 때 보니, 한국의 산업재해가 너무 심각해 미국 교수가 산업재해 모형에서 한국은 제외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도 규제완화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산업재해와 관련한 ILO 협약들에 대해서 한국이 비준한 게 전무해요.

한마디로 우리나라의 근로기준과 노동조건은 국제기준에 상당히 미달해 있는 실정입니다. 이런 문제를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양대 노총이 올해 사업으로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김형탁 마지막으로 정치세력화 문제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모두 알고 있듯이 민주노총은 민주노동당을 통한 정치세력화 방침을 갖고 있습니다. 민주노총 조합원 중 당원은 1만2천명으로 전체 당원의 40%가 넘습니다만, 당과 민주노총 모두 노동자 당원 비중이 작다고 판단합니다. 제 생각으로는 민주노동당이 조합원을 더 많이 흡수할 수 있도록 노동 사업을 강화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당이 민주노총과 함께 현장을 파고드는 사업, 비정규직 등 미조직 노동자를 위한 사업을 벌려나가야 합니다. 민주노총 소속 민주노동당 당원 가운데 지구당에서 활동하는 당원은 10∼20% 미만입니다. 나머지는 방치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대책 마련이 시급합니다. 민주노동당의 확대강화와 관련해서 민주노총은 전농에 애정이 많습니다. 올해 민중연대 본 조직이 건설되는데 올 하반기에 노동자와 농민이 함께 하는 사업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김성태 노동운동의 향후 과제와 관련해서는 장기적으로 양대 노총이 통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양대 노총의 불필요한 경쟁이라는 운동 내부의 비효율성을 제거해야 합니다. 분열로 인해 양대 노총 지도부가 전략적인 마인드를 갖고 공동 사업을 꾸리기가 힘든 구조입니다. 지도자는 대중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지만, 한편으로 대중을 설득하고 지도할 수도 있어야 합니다.

윤진호 노동운동은 두 가지 측면에서 스스로를 돌아볼 필요가 있어요. 우선 첫 번째로 노동운동이 제도화하면서 다른 소외계층을 따돌리는 모순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비정규직, 여성, 외국인노동자가 대표적입니다. 이런 문제에서는 노동운동이 기득권 세력으로 자리잡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듭니다. 이런 의미에서 산별노조는 교섭력 증대의 측면도 중요하지만, 이런 소외계층까지 포함한 노동자계급 전체, 나아가 사회 전체를 묶는 구심적 역할을 해야 합니다. 둘째로 노동운동도 사회적 책임을 고민해야 합니다. 물론 정부와의 관계가 가장 큽니다만 사용자와의 관계, 언론과의 관계, 본질적으로 국민과의 관계를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노동운동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국민경제에 영향을 끼칠 정도로 노동운동이 성장했습니다. 노동운동 스스로 성장에 걸맞은 틀을 갖춰야 합니다. 오늘 이야기한 정치세력화, 산별노조, 조직통합 문제가 모두 이것과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낮은 조직률은 그 원인을 공무원노조 불허나 비정규직 문제, 혹은 구조적이거나 제도적인 문제에서 찾을 수도 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많은 노동자들이 기존 노조에 불만을 갖고 있다는 점도 큰 원인입니다. 노동조합은 정책 마련, 재정 형성, 대정부 교섭, 언론 대처 능력을 강화해야 합니다. 노총과 산별 조직 모두 너무나 취약한 상태입니다. 가령 정책 형성만 해도 노동운동 주변의 네트워크를 제대로 조직하지 못하는 게 현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게 보아 노동운동에 낙관적인 전망을 가집니다. 그 동안 굴곡은 있었지만 정치적 민주화는 꾸준히 진행되어 왔고, 지난 월드컵이나 대선 과정에서 보았듯이 우리 국민들에게도 기본적인 저력이 있습니다. 1987년 이후 우리 노동운동의 경험은 세계 어디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자랑거리입니다. 십 년 넘는 과정에서 인적 역량과 조직 역량이 축적되어 왔습니다. 이런 점들을 고려할 때 오늘의 어려움을 극복할 힘을 노동운동이 갖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원보 잘 들었습니다.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오늘 이야기한 주제 하나하나가 따로 시간을 내어 논의해야 하는 중요한 사안들이었습니다. 어떤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그것은 환경적인 요인일 뿐, 주체 역량을 어떻게 갖추느냐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노무현 정권처럼 개혁적인 정권에 어떻게 대응하느냐는 문제는 운동이 크게 발전하느냐, 아니면 오히려 더욱 어려워지느냐 하는 양면성을 갖는 것 같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운동이 도약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길 기대하면서 좌담회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긴 토론 감사합니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7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