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배·가압류가 노조를 파괴하고 있다

노동사회

손배·가압류가 노조를 파괴하고 있다

admin 0 3,542 2013.05.11 03:25

 

 

mk_01_2.jpg금 속노조 산하 두산중공업지회 배달호 조합원의 분신자살로 손해배상과 가압류의 피해가 사회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배달호 조합원은 유서에 생활의 어려움을 호소하며 '해고자 복직'을 촉구했다. 모든 재산과 임금을 가압류당한 배달호 조합원은 '출근을 해도 재미가 없는' 회사 생활이었고, '두산이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러나, 여전히 전국 50여개 사업장 이상에서 해도 너무하는 노동탄압이 한 노동자의 죽음을 비웃기라도 한 듯 버젓이 자행되고 있다.

지난 1월24일 총 51개 단체 주최로 '신종 노동탄압 손배, 가압류로 인한 노동기본권 제약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토론회가 열렸다. 토론회 발표문에 따르면 2003년 1월22일 현재 손배, 가압류로 인한 피해는 50개 사업장, 2천222억 9천752만 4천284원에 달한다. 더욱 놀랍게도 2002년 6월말 현재 손배, 가압류 금액이 38개 사업장 1,253억 원이었던 점에 비하면 불과 6개월만에 1천억 원이 증가한 셈이다.

이처럼 손배와 가압류가 무섭게 증가한 이유는 회사가 임단협 과정에서 노조보다 유리한 위치에서 교섭을 진행하려는 의도가 짙다는 시각이 있다. 하지만, 최근에 임단협을 넘어 노조 자체를 무력화시키려는 의도가 더 강해지고 있다. 임단협 타결과 함께 민·형사상 고발을 취하했던 것과 달리 지금은 가압류와 손배를 미끼로 조합원들에게 노조 탈퇴를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의 손배와 가압류 대상이 노동조합 자체에 한정되었던 반면, 최근엔 그 대상이 노조간부와 일반 조합원에게도 확대되고 있다. 심한 경우에는 노조활동과 무관한 조합원 보증인에게까지 확대해 조합원과 그 가족, 친지 모두에게 경제적, 정신적 압박을 가하고 있다.

노조탈퇴하면 가압류 취하

발전노조 및 조합원들에게 가해진 가압류 총액은 469억7백6십만원에 달한다. 최초에는 2002년 3월8일 노동조합과 노조 간부 111명을 대상을 62억2천577만원을 신청하였다. 다음으로 3월23일 2차로 노동조합 및 노조간부 114명을 대상으로 78억2천730만원을 신청, 총 140억5천307만원을 신청했다. 그 후엔 노동조합 조합비를 가압류했는데 그 규모는 145억7천472만원이었다. 과거의 가압류가 노동조합과 노조 간부에 그쳤던 발전노조 사례처럼 최근에는 전 조합원을 대상으로 가압류를 신청하여 조합원들을 옥죈다.

당 시 급여를 가압류 당한 조합원은 3,172명에 달했으며 금액은 182억8천251만원이었다. 사측은 조합원 4,917명을 대상으로 148억2천만원의 채권가압류를 서울지법에 청구하였다가 기각당하자 34개 지부 전국사업소 소재지 지방법원에 분할 청구하는 지독함을 보여 주었다.

손해배상과 가압류는 노동조합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파업 복귀한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현안이 해결 안된 상황에서 가압류와 손해배상을 풀어주겠다는 미끼로 '노사평화선언'을 요구했다. 말 그대로 항복하면 봐 주겠다는 식이었다.

2002 년 5월31일 발전노조 남동본부에서는 산별 탈퇴, 기업별 노조 전환에 대한 조합원 총회가 있었다. 우연찮게도 5월30일 사측은 각 사업소에 가압류 취하 대상자를 선정하여 본사에 보고토록 했다. 가압류를 미끼로 발전노조의 산별조직을 해체시키려는 의도였다. 가압류와 손배가 무엇을 노리고 있는 지 보여주는 예들이다.

필자가 만난 조진욱 발전노조 대외협력실장은 3월8일 1차로 해고되었다. 그도 가압류가 15억8천이 있으며 17억의 손배 소송이 걸려 있다. 세 아이의 아빠이기도 한 그는 노조의 집행부로 일하면서 받는 돈은 50만원에서 90만원정도. 이걸로 다섯 식구가 살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나마 저축해 놓은 돈이 있어 그 돈으로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다. 경제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아내가 발전노조 가족대책위 활동을 하면서 자신을 이해해 줘 큰 버팀목이 되었다 한다.

남동발전 전승욱(40) 조합원은 손배 및 가압류 총금액이 102억2100만 원에 달한다. 한 사람만이 아니다. 남동발전에 세 명이 더 있다. 뿐만 아니다. 손배와 가압류 금액이 88억원인 조합원도 7명이나 된다. 임금 가압류로 50%의 임금을 받았지만, 통장 가압류로 그것도 만질 수 없는 돈이다. 그간 저축한 돈이 없으면 당장 생활이 어렵다. 빚으로 살 수 밖에 없다.

노조파괴 시나리오

금속노조 한국시그네틱스지회는 2001년 7월23일부터 파업에 들어갔다. 파업은 7월에 시작됐지만, 가압류는 6월부터 들어 왔다. 회사는 공장이전을 앞두고 노조와 갈등을 예상하고 노조를 무력화시키기 위한 계획도 수립했었다. '노조파괴 정리해고'를 위한 시나리오 문건이 작성되었고, 업무방해 증거확보를 위한 카메라 조까지 편성시켰다.

김치순(35) 조합원의 가압류 사례는 사측이 말 그대로 얼마나 악랄한 지를 보여 준다. 그녀는 2000년 3월 재입사 하면서 신원보증인을 시골의 친정오빠를 세웠다. 사측은 이 점을 이용, 김치순 씨의 친정오빠의 주택을 가압류했다. 그 집이 어떤 집인가. 김칠순 씨네 7남매가 조금씩 돈을 모아 직접 손으로 지은 것이었다. 사표를 내면 가압류를 풀어준다는 사측의 말에 친정오빠는 그녀를 설득했다. 그러나, 김칠순씨는 사표를 내지 않았고, 오빠와 친정 식구의 원망은 그녀를 더욱 힘들게 하였다.

시그네틱스지회는 130명으로 파업을 시작해 지금은 96명이 남았고 전원 해고된 상태다. 인원이 줄어든 것은 사직하는 조합원에 대해서 고소고발을 취소하거나 가압류를 해지해 주었기 때문이다. 특히, 대부분의 남성 노동자들이 사표를 내고 공장을 떠나갔다. 남아있는 조합원들도 생계를 위해 임시직이나 일용직, 김밥집에 나가 생활비를 마련한다. 시그네틱스의 가압류 규모는 2003년 1월 현재 24억이다. 발전노조에 비하면 그리 큰 규모는 아니다. 하지만, 가압류에 따른 고통이 그 액수에 비례하지 않는다. 가압류를 당한 조합원들은 가족들과 주위로부터 마치 '범죄자' 취급을 당한다. 회사가 조합원 가정으로 가정통신문까지 보내 불법 행위를 한다며 가족들에게 조합원을 설득시키도록 강요하기까지 했다.

2 남1녀를 둔 이후랑 조합원의 남편은 IMF 경제위기로 회사를 그만두고 1년6개월 동안 실직상태로 있다 재취업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이후랑 씨가 해고를 당했다. 이젠 자녀교육비와 생활비를 충당키 위해 빚을 얻어 쓴 액수가 3천만 원에 육박한다. 파업이 장기화되면서 외박이 잦아지고, 출퇴근이 불규칙해지면서 가족 정서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어 걱정이다.

이 회사를 다니는 대부분의 여성 노동자들은 정말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일을 시작해 10∼20년 가까이 다닌 경우가 많다. "그리 큰 걸 원하는 게 아니예요. 그냥 안정된 일터에서 일을 하게끔 해달라는 건데… 정말 못살고 별 볼일 없는데 왜 고통을 받아야 하죠?"

mk_02_3.jpg두산중공업은 수용소?

경총은 1월21일 두산중공업 분신사망사태와 관련한 성명을 내어 "사용자는 불법파업에 의해 손해를 입은 경우 노조나 조합원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고 사전적 보전조치로 가압류 등을 신청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 러나, 두산중공업의 떳떳한 성명과는 반대로 회사의 더러운 속내가 밝혀지고 있다. 블랙리스트, 선무활동 지침, 근태 현황, 현장 중간간부 수첩 메모의 내용이 공개되면서 두산중공업이 어떻게 노동조합을 무력화하려 노력했고, 조합원들을 감시해 왔는지 낱낱이 폭로된 것이다.

공개된 근태현황 자료를 보면 근태를 A(자립), B(관찰), C(주기관리), D(지속관리), E(방치)로 나누었고, 노조 참여도는 상·중·하로, 해결책을 다시 A, B, C, D, E로 나누었다. 만일 노조참여도가 '상'이고 해결책이 'E'이라면 그는 노조참여도가 매우 높아 사측으로써는 '방치'할 수밖에 없게 된다. 방치자는 어떻게 될까. 그는 특근과 야근을 비롯한 근무에서 불이익을 당하게 된다. 일례로 해고자인 최병석씨의 경우 노조참여도가 상, 등급은 E로 분류돼 있으며, 실제로 지난 2001년 8월에서 2002년 1월까지 반년 간 특근을 하지 못했다. 이같은 조합원 성향 분석 자료는 다양한 방식으로 치밀하게 작성되었다. '조합 오피니언 리더 현황'에는 조합원의 성향을 4가지(☆-온건, ☆☆-조합추종, ☆☆☆-강성, ★★★-초강성)로 나누었다. 회사는 '강경세력'에게 '철저한 근태관리 등 불이익 조치와 징계, 선무활동의 효과가 없을 경우 재배치 등으로 영향력을 축소'시키는 전략을 짜놓았다.

두산중공업의 노무관리는 더욱 주도면밀했음이 밝혀졌다. 분신대책위에 따르면, 두산중공업은 2001년 민영화 직후부터 노조파괴 계획을 세웠다. '신노사문화 정립방안'과 '실행방안' 자료에 따르면 연도별로 조합활동가 밀착관리(2002년) → 조합원과 비조합원의 차등관리(2003년) → 우호 합리적 집행부를 결성(2004년)하는 것이었다. 회사가 원한 것은 어용노조를 세우거나 노조와해가 최종 목표였다.

손배·가압류는 노동기본권 제약

노 동조합 활동으로 인해 형사처벌이 이루어 질 경우 노조 간부와 지도부에 한정되는 반면 손배와 가압류와 같은 민사 소송은 사용자가 마음만 먹으면 전 조합원으로 확대할 수 있다. 게다가 손배와 가압류는 형사소송과는 달리 판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아 사용자들이 선호하고 있다.

손배와 가압류의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서 현 노동법이 쟁의행위의 요건과 정당성을 너무 엄격히 규정하고 있으므로 요건을 완화해야 한다. 그리고 손해배상의 대상과 범위를 제한해야 한다. 집단적 의사결정의 산물인 단체교섭과 단체행동권에 대해 조합간부와 조합원 개인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부당하므로 노조에게만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소송의 대상을 제한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압류의 경우 특별한 변론절차 없이 사용자가 제출한 서류에만 의존해 결정됨으로써 사용자들이 악용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따라서 가압류 대상자에게 그 사실을 통보하고 변론권을 보장하는 개선이 필요하다.

그러나 법·제도 개선 차원에 앞선 것이 있다. 시그네틱스 지회장 정혜경씨 말마따나 "사용자가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가 바뀌어야"한다. 법원에서 복직판결이 났지만, 사용자가 이를 시행하지 않는 시그네틱스에서 보여지듯 노동조합을 '악의 축' 마냥 생각하고 대화를 거부한다면 노조가 설 땅이 없다.

사회의 모든 영역이 개혁과 희망으로 들 떠 있지만, 정작 사회 구성의 중요한 주체인 노동자들은 기본권조차 억눌리고 배제당하는 게 현실이다. '참여정부'를 자처하는 새 정부가 들어섰지만, 노동자의 조직적 단결과 실천이 더욱 절실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7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