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노동사회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admin 0 2,892 2013.05.11 03:23

작년 성탄절 217일 동안의 보건의료노조 카톨릭중앙의료원(CMC) 지부의 파업이 종결되었다. 보건의료노조는 작년 5월 23일 △ 산별교섭 쟁취, △ 주5일제 도입과 모성보호관련법 시행에 따른 인력확보와 변형근로 금지, △ 의료의 공공성 강화, △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차별철폐 등 4대 핵심요구를 내걸고 일제히 파업에 돌입했다. 이후 병원노조 산하 50여 개 사업장은 노사합의를 통해 단체협상을 마무리지었고, 경희의료원마저 파업 백일을 넘기면서 타결을 이루었지만, 여의도·강남·의정부 성모병원 등 카톨릭중앙의료원만은 2백일을 넘는 장기파업을 이어가야 했다.

파업 종결을 결정하고 현장 복귀를 선언하면서 지도부는 ‘구속, 수배, 해고, 무노동무임금, 손해배상, 가압류, 병원 출입금지 가처분, 경찰병력 투입과 강제해산을 당하면서도 정당한 요구를 갖고 끝까지 평화적으로 싸웠지만 병원의 대화 회피로 아무런 합의 없이 복귀한다’면서 ‘현장에서 더 큰 승리를 위한 싸움을 준비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로써 파업은 종결되었고, 조합원들은 12월30일 아침 8시를 기점으로 전원 병원에 복귀하였다.

7 개월에 걸친 파업투쟁 내내 ‘선 복귀·후 대화’만을 외치며 일체 대화를 거부했던 의료원 측의 태도에, 결국 어떠한 합의도 이루지 못한 채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천막을 거두고 현장으로 돌아가야만 했던 파업지도부와 조합원들의 마음이 어떠했을까. 보건의료노조 카톨릭중앙의료원지부를 찾아 현장 복귀 뒷얘기를 들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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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말이 된 ‘선 복귀·후 선처’

12 월30일 조합원들은 현장에서 약식 집회를 가지며 복귀 첫 날의 아침을 시작했다. 그러나 복귀한 조합원들은 배치전환 기준에도 어긋난 부서 이동을 겪어야 했다. 배치전환에 대한 노사합의에 따르면 ‘반드시 본인의 동의를 얻어야 하며, 부득이한 경우는 노동조합과 협의’하기로 되어 있다. 그러나 파업에 참가한 조합원들에게는 선택권이 없는 일방적인 부서이동을 강행했다. 8년차 내과 간호사를 외과로 이동시킨다든지, 최소한 1년에서 3년의 트레이닝 기간을 거쳐야 하는 수술실 간호사들을 일반병실로 이동시키는 등 재정 손실을 감수하면서까지 진행된 부서 이동이었다. 특히 과 특성상 파업에 참여하기 힘든 중환자실이나 응급실에 배치시키는 등의 보복성 부서 이동에 조합원들은 당혹감과 함께 울분을 느꼈다.

“선 복귀·후 선처를 주장하던 의료원 측의 말을 믿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또 어떤 형태로든 탄압이 가해질 것이라는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맞닥뜨렸을 때의 당혹감과 배신감 같은 거죠… 또 모르는 분야를 새롭게 공부해야 하는 것도 하나의 스트레스구요. 힘들게 일 끝나고, 공부해야 할 자료들을 이 만큼씩 안고 노조사무실로 내려오는 조합원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프죠.” 여의도성모병원 최희선 씨의 말이다. 

그 뿐만 아니다. 복귀 이후 의료원은 조합원 면담을 통해 자술서와 사실조사서 등을 작성하게끔 하고 있다. 의정부 성모병원 간호부의 경우, 1대3 면담(조합원 1명에 수간호사, 간호과장, 간호부장 등 3명)을 통해 조합원으로 하여금 파업기간 동안의 잘못을 시인하도록 종용하였다. 자술서의 내용은 △ 불법파업임을 인정하게 하고, △ 노동조합의 복귀 선언이 아니라 자의에 의해서 들어온 것이며, △ 이후 인사위원회나 징계위원회의 결정에 불문하겠다는 것이었다. 여의도와 강남 성모병원은 징계 수위를 결정하는 데 참고하기 위해 ‘파업기간 사실조사서’라는 9장 분량의 조사서를 작성하게 하였다. 조합원들은 ‘사실조사서’의 내용은 경찰서에서 범죄자를 수사하는 것보다 더 구체적이고 굴욕적인 내용들이라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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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12월 24일 장기파업 해결기원 성탄절 십자가 촛불시위에 참여한 CMC 노조원들  ▷ 출처:오마이뉴스 ]



‘진 술인은 인사위원회 또는 비위사실을 조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은 자에게 고의로 허위진술을 할 경우 그 사실만으로 징계처분을 받을 수 있으며, 다음의 질문에 대한 귀하의 진술내용이 허위 또는 거짓으로 판명되면 그에 대한 처분을 내릴 수 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이렇게 시작되는 조사서는 △ 근무지를 이탈하고 파업에 가담한 경위를 6하 원칙에 따라 진술하고, △ 근무지 이탈을 권유한 자가 누구이며, △ 진술자가 맡은 직책과 역할이 무엇이었는지, △ 파업대책본부 조직의 역할과 조직개편이 어떻게 되었는지, △ 향후 파업에 재가담 할 의사가 있는지 등 31개 큰 문항과 부분 문항까지 합해 50여 개에 달하는 문항에 서술하도록 하고 있다. 최씨는 ‘같이 투쟁한 동료들의 이름까지 적으라고 하니까 조합원들의 마음 고통이 무척 심했다’고 전했다. 이는 지난해 10월 서울지방노동위원회가 발전회사에서 실시한 조합원 개별감사 문답서 부문을 부당노동행위로 인정한 바 있는 만큼, 부당노동행위 시비를 면키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무노동 무임금’ 논리로 파업 동안 급여를 받지 못해 생활고에 시달렸던 조합원들은 1월 월급명세서를 받아들고 허탈해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의료원은 1월 급여에서 파업기간의 사학연금과 의료보험료를 공제하고, 지난 5월 급여에서 파업이 시작된 23일 이후의 급여, 즉 9일 간의 일당과 상여금 90%(파업기간을 무단결근으로 처리, 무단결근 1일당 상여금 10%를 공제한다는 내부 규정을 적용함)를 공제하였다. 그렇게 해서 조합원들에게 돌아온 한 달치 급여는 15만원에서 30만원 정도. 심지어 마이너스 임금도 있었다.

217일 장기 파업이 남긴 상처는 그 뿐이 아니었다. 연차와 휴가 삭감, 2명의 수배자와 23명의 해고자, 593명 징계위원회 회부, 15억의 손해배상에 대한 조합비 가압류까지….

CMC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 렇듯 노조에 많은 문제들이 남겨져 있다. 그러나 복귀 후 한 달이 지나도록 병원 측과 대화의 통로가 없었다는 것이 노조 지도부들을 더욱 답답하게 하는 일이다. ‘선복귀 후대화’, ‘선복귀 후선처’를 내세우던 병원 측이 ‘해고자를 대화상대로 인정할 수 없다’고 나선 것이다. 이에 지도부의 임기가 끝난 여의도와 의정부 성모병원은 지부장선거를 마치고 2월 중 면담을 추진할 예정이다. 그러나 강남 성모병원의 경우는 지도부의 임기가 올해까지인데, 병원 측에서는 일체의 대화를 거절하고 있는 상태이다. 강남 성모병원의 이숙희씨는 ‘병원에서 한용문 지부장 이름의 모든 공문처리를 보류하고 있는 상황이다’라며 지도부의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보 건의료노조 이주호 정책국장은 이러한 문제들이 CMC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강조했다. 즉 무노동 무임금의 논리와 손해배상 가압류 등의 탄압은 이미 개별 사업장의 대응으로 해결될 수 없는 문제라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의 노동정책에 총노동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그리고 사회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어떠한 노력들을 해야 할 것인가의 문제를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계가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들이 산적해 있는 이러한 상황에서, 2월 10일부터 19일에 걸쳐 노동부가 현장복귀를 조건으로 약속한 특별근로감독이 실시되었다. 이번 특별근로감독은 대학병원에서 처음으로 실행되는 것이며, 카톨릭 기관에서 노사관계가 문제가 되어 특별근로감독을 받는 이례적인 일이다. 이번 기회로 노사가 더욱 성숙한 관계로 이어질 수 있길 노동조합은 희망했다.

지도부에게 힘이 되는 것은 건강한 조합원들의 모습이다. 지난 1월24일 구속자 석방 환영회에서 카톨릭중앙의료원 조합원들이 다시 모였다. 그 자리에서 조합원들은 ‘병원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그만두는 것이 최고의 패배이다. 끝까지 현장에 남아있어야 한다’고 결의를 다지기도 했다. 조합원들은 이 상황을 더 큰 싸움을 위한 과정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처음에 파업종료를 결정했을 때 망연자실해서 지도부의 결단을 받아들이기 어려웠고, 완전히 울음바다였어요. 그날 수련회에 가서 같이 토론하고 그러면서 지도부가 어려운 판단을 내린 것이라고 지도부의 결단을 인정하게 되었죠. 패배감 속에서 조직침체기가 지속될까봐 우려했었는데, 조합원들이 정말 건강하게 대응해 주고 있고, 견뎌주고 있어요” 이 말을 하면서 최희선씨의 눈에 또 한번 잠시 눈물이 머금었다.

강남 성모병원의 이숙희씨도 “그래도 우리 조합원들이 이 상황을 너무 잘 받아들이고 있는 분위기예요. 217일 간의 파업투쟁 경험 속에서 단련된 것 같아요. 놀라울 정도로 잘 견디고 있어요”라며 조합원들의 당당한 모습에서 힘을 얻는다고 했다.

‘얻은 건 사람이고 인생이다’

카 톨릭중앙의료원 노동자들은 민주노조 사수와 직권중재 철폐라는 과제를 가지고 싸웠고, ‘우리가 물러선다면 더 이상 민주노조는 없다’는 각오로 217일을 버텨냈다. 지난 12월26일, 카톨릭중앙의료원의 파업투쟁이 끝난 직후, 노동부는 현행 직권중재제도에 대해 위헌논란이 이어지고 있고 근로자들의 단체행동권을 지나치게 제한할 수 있다는 지적에 따라 직권중재 회부 기준을 명확히 해 꼭 필요한 경우에만 직권중재에 회부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할 방침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여전히 집권중재 철폐의 과제는 남아있다. 현장에 복귀했지만 병원 측이 약속했던 ‘후 선처’나 ‘후 대화’는 아직까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러나 노조는 지부장 선거를 치르고 대의원을 구성하는 등 조직 정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조합원들은 탄압에 위축되지 않고 ‘파업을 통해 잃은 건 돈이지만, 얻은 건 사람이고 인생이다’라는 생각으로 현장에서 또 다른 싸움을 준비하고 있다.

“‘조직적으로 복귀하고 끝까지 싸우자’는 지도부를 믿고, 복귀를 결정한 조합원들의 모습에서 조직의 건강성을 보았다”는 이주호 보건의료노조 정책국장의 말이 떠올랐다. 그런 건강함이 느껴져 애초의 우려가 오히려 부끄러워지면서, 감히 ‘희망’이란 말이 가슴에 박혔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7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