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보다 더 울산적인’ 고용관계?

노동사회

‘울산보다 더 울산적인’ 고용관계?

admin 0 5,564 2013.04.19 02:52

 

1. 문제의 제기

2000년대에 들어 현대자동차(이하 현대차)의 세계화는 그야말로 ‘현대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특히 수출이라는 상업적 세계화에서 해외 생산이라는 생산의 세계화로 그 중심을 옮겨가면서 현대차의 세계화는 가속화되고 있다. [표1]에서 보듯이 현대차의 국내 생산과 수출은 2000년대에 들어 정체 내지 소폭의 증가를 보이는 반면, 해외 생산은 2000년의 10만 대에서 2010년에는 188만 대로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 국내 생산을 14만 대나 능가하는 규모다. 현대차의 세계화는 무역마찰이나 관세장벽을 우회한다거나, 규모의 경제의 달성, 소비자(시장)에 대한 접근, 비용 절감 등 다양한 목적을 갖고 추진되고 있다. 이 글은 지난 2011년 10월 초 현대차의 러시아 및 체코 공장, 그리고 기아차의 슬로바키아 공장을 방문하고 그때 얻은 느낌을 정리한 것이다. 몇 가지 자료는 국내에서 추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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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방문의 취지는 ‘해외 공장을 통해 울산 공장을 본다.’는 것이었다. 즉 울산 공장을 중심으로 한 국내 공장의 고용관계를 객관화시켜 재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이었다. 기본적인 문제의식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 현대차 해외 공장의 고용관계는 울산 공장(국내 공장)을 닮았을까, 아니면 나라마다 제각각일까? 다시 말해 모(母)공장이 해외 공장의 고용관계를 주도함으로써 ‘울산형 고용관계’를 갖고 있을까, 아니면 해외 공장들이 자율적이고 분권화된 상황에서 현지적응형 고용관계를 살려가고 있을까? 둘째, 해외 공장의 고용관계와 거기에서 비롯되는 경쟁력이 국내의 고용관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까? 나아가 글로벌 현대차에 걸맞은, 이른바 글로벌 고용관계는 어떻게 설계될 수 있을까? 

2. ‘울산형 고용관계’의 공간적 확산? 

쿠크(Cooke, 2003)에 따르면 다국적기업의 해외 공장이 갖는 노사관계는 모국중심형(ethnocentric)과 현지적응형(polycentric), 그리고 두 가지 성격을 동시에 갖는 혼합형(hybrid)으로 나누어진다. 그렇다면 현대차 해외 공장의 노사관계는 어떠할까?

우선 조우와 란스베리가 현대차 베이징 공장과 울산 공장의 고용관계를 비교한 글(Zou and Lansbury, 2009)을 살펴보자. 결론적으로 이 글은 한국의 본사가 한국의 정책과 관행을 중국에 이전함으로써 중국의 고용관계를 통제하려고 노력하였으나, 제도의 차이나 전략적 선택, 그리고 현대차 베이징 공장을 둘러싼 정치적 역학 등으로 인해 중국에서는 양국의 특징을 갖춘 혼합형 모형이 나타났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동구권에 진출한 현대·기아차 공장들은 어떠할까?

현지 공장을 방문하여 노사·노무를 담당하는 주재원을 면담하였을 때 대답은 한결같았다. 현지 고용관계에 대한 모국의 통제 내지 개입은 없으며, 이른바 현지적응형 고용정책을 펴고 있다는 것이었다. 

“법인마다 성숙도가 다르다. 따라서 본사의 노무관리와 현장 노무관리의 혼합 정도가 다르다. HMC(모공장)로서는 ‘현지화’가 기본 모토이다. 인사·노무·생산에서 그러하다. 본사의 가이드라인은 필요하지만 현지정서를 무시한 노무관리는 불가능하다 …… 중앙집권적이라지만 동의하기는 어렵다. 지방분권이 발생하고 있다. 노사관계는 사람들과의 관계이다. 따라서 필요하다면 현지인이 하는 게 맞다. 현지에서도 분권화와 더불어 현지의 자율성을 살릴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 (현대차 러시아 공장)

“노사관계는 한 마디로 ‘현지완결형’이다. 여기 사정을 감안하여 여기에서 판단하고 결정한다. …… 노사관계에 대한 본사의 가이드라인은 없다. 여기에서는 예방 노무관리를 한다. 법을 준수하고 고충처리를 한다. 노무란 개념은 없다. ER(Employment Relations, 고용관계)이라는 개념을 쓴다. 본사는 지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원이 중요하다. 정서나 문화, 가치와 제도가 다른 상황에서 권한의 하향화가 필요하다.” (현대차 체코 공장)

“노사관계에서 본사의 개입은 없다. 독자적으로 한다. 경영에서 노사관계가 차지하는 비중은 높지 않다. 노사관계를 보러 왔다는 게 이상할 정도다. 노사관계에 관한 한 여기에서 볼 것은 없다.” (기아차 슬로바키아 공장) 


이러한 사실은 적어도 현지 공장은 상당한 자율성을 갖고 독자적으로 고용관계 정책을 펴고 있거나, 모국의 통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한다. 그럼에도 흥미로운 사실은, 현대차 해외 공장이 고용관계 측면에서 국내 공장과 많은 특징들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공통점으로서는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들 수 있다. 

① 노조회피적이거나 노조배제적인 노무관리 
② 온정주의적 노무관리
③ 수량적/외부적 유연성에 대한 강한 의존 
④ 숙련형성에 대한 상대적으로 낮은 관심과 유연 자동화에 대한 높은 관심

먼저, ‘노조배제성’은 울산의 경험이 가장 강력하게 힘을 발휘하는 지점이다. “노조가 만병의 근원”이라는 생각이 그것이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소댕 보고 놀란다고나 할까, 국내에서 노조로 인한 부정적인 학습효과가 해외에서조차 노조라고 하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게 만든다. 이는 노조회피전략 내지 무노조 전략으로 나타난다. 또한 현지의 정책이나 관행으로 노조를 인정할 수밖에 없더라도, 노조를 주변화하기 위해 종업원 대표조직과 같은 비노조형태의 협의기구를 설치하기도 한다. 이러한 기구들은 선출된 종업원으로 구성되는데, 회사의 기능적 정보에 대한 접근이나 작업장의 이슈에 대한 협의, 주요한 작업장 결정에 대한 교섭이나 승인권을 갖기도 한다. 이러한 조직이 경영지배적이며 온정주의에 바탕을 둔 협의체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온정주의’는 시혜에 바탕을 둔 기업복지의 제공과 고충의 처리, 그리고 개별 근로관계를 특징으로 하는 인적자원관리(HRM)가 결합한 형태이다. 이러한 온정주의가 노조에 대한 배제와 수직적인 기업문화를 바탕으로 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온정주의적 노무관리를 전형적으로 드러내는 표현은 “여기 사람들은 현대차 사람들은 공산당원 자격이 있다고 말한다.”는 것이다(현대차 러시아 공장 면담). 인민(종업원)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한다는 것을 빗대어 하는 말이다. 이러한 온정주의는 노조회피전략의 바탕을 형성하지만, 한 단계 나아가 수량적 유연성에 대한 강한 의존이나 숙련에 대한 경시로 나타나기도 한다. 

자동차 생산에서 유연성이 핵심적인 경쟁력을 이룬다는 사실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생산기술이 국제적으로 표준화됨에 따라 그것을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는 능력의 중요성은 더욱 강조된다. 그런데 현대차 해외 공장에서 보이는 특징의 하나는 전환배치와 같은 내부적·기능적 유연성보다는, 해고를 바탕으로 하는 ‘외부적·수량적 유연성’에 대한 의존이 높다는 사실이다. 가령 체코에서는 비정규직을 많이 쓴다든지, 슬로바키아에서는 언제든지 해고가 가능한 3년 미만의 정규직을 많이 사용하는 것이 그 예이다. 이러한 수량적 유연성은 그것이 궁극적으로 해고를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노사갈등의 소지를 남길 뿐 아니라 회사에 대한 충성이나 헌신을 막는다. 수량적 유연성에 대한 의존은 인적 자원의 축적을 가로막기도 한다. 현대차에서 보이는 숙련에 대한 상대적인 무관심과 유연 자동화에 대한 높은 의존은 앞서 말한 노동배제성과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고 할 수 있다(조형제 외, 2008). 

결론적으로, 현대차 해외 공장의 고용관계는 울산 공장의 고용관계가 국경을 넘어 공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해외 공장의 노사관계에서 ‘모국효과’(country-of-origin effect)가 관철되고 있는 것이다. 조우 등도 지적하듯이, 울산 공장의 제도들이 동구권에서 도입되는가 하면, 울산에서 도입을 시도하였지만 실패한 것도 동구권에서는 지역적인 이점을 활용하여 실현되고 있다. 원활한 인력조정과 배치전환, 혼류생산, 유연한 잔업과 특근, 모답스(MODAPTS) 기준의 무리 없는 적용을 통한 생산차질의 최소화 등은 대표적인 보기에 속한다. 제도적이거나 문화적인 요인들로 인해 모국의 고용관계 시스템이 현지에서는 부분적으로 변용되기는 하지만, 이러한 변용이 현대차가 가진 본질적인 가치나 정체성을 다치게 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점에서 동구권은 강한 현장성을 갖고 현지화를 지향하고 있음에도 현대차 모국의 가치가 기본적으로 관철되는, ‘울산보다 더 울산적인 고용관계’를 실현시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해외 공장에서 현대차 고용관계의 가치와 관행이 재생산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3. 현대차 생산방식과 함께 수출된 현대차 고용관계 

특정기업이 고용관계, 즉 노사관계 및 인적자원관리에서 ‘소유 우위’(ownership advantage)를 갖고 있는 경우, 회사는 일반적으로는 모국의 고용관계를 확산시키는 전략을 취한다. 그런데 현대차의 경우 고용관계에서 국내 공장이 소유 우위를 갖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전투적이고 갈등적인 노사관계와 아울러 생산의 측면에서 비효율성이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해외 공장이 자율적으로 현지적응적인 노사관계 정책을 펴고 있고, 더욱이 국내 공장은 고용관계에서 비교우위를 갖지 않고 있음에도 국내외 공장이 고용관계에서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모순적이기도 하다. 그러면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현지 공장에서 노무를 담당하는 주재원은 예외 없이 국내 공장에서의 노무경력을 가지고 있다. 달리 말해 이들에게는 노조에 대한 부정적인 학습효과가 디엔에이(DNA)처럼 각인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심지어 노사관계에 대한 상상력이나 실험정신도 현대차나 기아차의 경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를 테면 노조참여적 수평적인 고용관계 모델은 그들의 상상력을 넘어서 존재하는 것이다. 이들에게 중요한 사명은 노사관계에서 울산에서 실패한 경험을 현지에서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그 결과 해외 공장의 고용관계 정책이 노동배제적인 울산모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둘째, 현대차가 가진 중앙집중식 경영방식이다. 모국 고용관계의 정책이나 관행을 확산하는가 아니면 현지에 적응하는가의 결정은 모국의 통제나 의사결정의 집중화 경향에 영향을 받는다. 실제로 쿠크(Cooke, 2003)는 노동관계에서 집중화나 모국 통제의 정도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모국에 대한 외국 자회사의 통합 정도라고 말한다. 현대차의 경우 해외 공장은 그 자체가 대규모 투자일 뿐 아니라, 100% 자본진출(중국 제외)이다. 게다가 현대차는 ‘제왕적 경영’이 이루어지고 있는 동네이기도 하다. 따라서 현상적으로 현지적응형 노사관계 정책을 갖고 있더라도, 핵심적인 경영지표에 대해 본사는 통제하고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항상 열려있다. 

셋째, 현대차 노조가 노동의 국제연대(labor internationalism)를 소홀히 하였다는 사실이다. 역설적이게도 현대차 노조는 해외 공장 노조들과의 연대를 소홀히 함으로써 현대차 고용관계의 확산을 돕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때문에 현대차로서는 별다른 저항이나 마찰 없이 울산의 가치를 현지에 정착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노조 역할의 부재가 현대차 해외 공장의 노동자들을 노동기본권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하는 결과를 낳은 셈이다. 이는 지구적 차원에서 현대차 노사관계의 구축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말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넷째, 표준화된 생산방식은 판박이 노사관계를 지원하는 데 유리한 영향을 미친다. 주지하다시피 현대자동차의 생산방식은 자동화 의존적이며, 숙련절약적인 작업조직을 특징으로 한다. 현대차는 유연자동화·정보화를 최대한 추진하여 왔고, 노동과정이 표준화되어 작업자의 숙련에 의존하지 않는 특징을 갖고 있기 때문에, 생산방식의 해외이전이 상대적으로 용이하다(Jo & You, 2011). 이처럼 표준화된 생산방식은 한편으로는 노사관계 정책의 유사성을 낳고, 다른 한편으로는 생산의 이동을 용이하게 한다. 이는 달리 말해 현대차가 구축한 이른바 현대차 생산방식이 노조의 반발이 약한 해외에서는 훨씬 강력한 경쟁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상으로 현대차 해외 공장은 울산보다 더 울산적인 고용관계를 실현시키고 있다는 점을 살펴보았다. 이는 현지 주재원을 통해 ‘울산 바이러스’가 전파되고 있다는 사실 이외에도, 현대차의 제왕적 경영체제, 국경 앞에 멈춰 선 노동조합의 닫힌 시각, 그리고 현대차의 표준화된 생산방식 등이 작용하고 있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무엇보다도 현대차 고용관계와 뗄 수 없이 얽혀있는 현대차 생산방식이 수출되고 있다는 사실이 자리하고 있다. 그러면 이러한 해외 고용관계는 국내의 노사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4. 국내엔 고용불안의 그림자가? 

그리어 등(Greer et al., 2008)에 따르면 다국적기업의 사용자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기업 내부의 경쟁을 촉진시킨다. 특히 자동차산업에서는 플랫폼 전략(소수의 플랫폼, 다양한 브랜드)에 따라 제품이 표준화되고, 린 생산방식이 도입됨으로써 생산방식 역시 표준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강압적인 비교(coercive comparison)는 더욱 용이하여졌다. ‘강압적인 비교’란 개별 공장의 성과들을 비교하여 이를 보상이나 제재로 연결시키는 방법이다. 성과를 비교하는 지표에는 생산성이나 비용, 이윤 등이 포함된다. 또한 보상이나 제재의 수단에는 임원 등에 대한 인사 이외에도, 투자나 생산량의 확대 또는 축소, 그리고 새로운 시장에 대한 접근 등이 활용된다. 

이러한 강압적인 비교는 합리화정책에 대한 작업장의 저항을 무력화시키는 수단이 된다. 예를 들어 합리화정책에 대한 반발은 모회사로부터 배정되는 생산물량을 줄임으로써 고용불안을 낳을 수 있다. 이로 인해 심지어는 완성차 해외 공장의 경우 고용안정(물량배정)을 확보하기 위해 노사가 공동책임으로 경쟁력 제고에 나서는 현상을 보이기도 한다(Block et al., 2009). 결과적으로 모회사는 해외 공장에 대한 투자와 생산량 조절 등을 무기로 삼아 내부경쟁(in-group Olympics: Grenier, 2006)을 부추김으로써, 노조로 하여금 작업장 구조조정을 수용하게 만든다. 이는 특히 위기의 시기, 또는 공장들이 비슷한 제품을 비슷한 기술과 과정을 거쳐 생산할 때 더욱 강력하다. 

그러면 현대차에서 국제적인 차원의 내부 경쟁은 어떻게 진행되며 그것은 국내의 고용관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까? 현대차의 경우 정보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해외 공장의 생산실적과 생산과정은 실시간으로 모국에 전달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내부 경쟁의 효과가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지점은 생산성이나 유연성과 같은 ‘경쟁력 지표’라고 할 수 있다. 가령 HPV을 살펴보면 국내 공장이 31.5시간을 기록하는 데 반해, 체코공장은 17시간, 슬로바키아 공장은 15.6시간을 기록하고 있다. 또한 편성효율에서는 체코와 슬로바키아, 그리고 러시아 공장이 모두 90% 이상이지만, 회사자료에 따르면 국내 공장은 50% 초반을 기록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낮은 생산성은 국내 노조에 대한 강한 압박으로 작용한다. 생산성이나 유연성을 비롯한 각종 지표를 해외 공장과 국내 공장을 비교하면 [표2]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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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적으로 규모의 경제를 추구하는 자동차산업의 경우 기업 간 경쟁이 가열될수록 생산시설 과잉이 불가피해지고, 주기적인 과잉생산에 따른 구조적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정명기, 2011). 현대차의 경우 과잉설비의 위험이 다른 업체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다고 할 수 있다. ‘글로벌 톱’(global top)전략에 의해 공격적으로 해외 생산설비를 확충하여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으로 경기위축이나 부정적인 환경변화가 닥칠 경우 생산물량 축소가 불가피할 것이다. 이 경우 상대적으로 낮은 생산성과 높은 인건비 등으로 인해 국내 공장의 물량을 우선적으로 축소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국내와 거의 동일한 모델을 생산하고, 동시에 플랫폼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회사로서는 물량이동 등의 공장 간 제재 전략을 쓸 수 있는 여지가 그만큼 커지는 셈이다. 이러한 물량이동이나 물량감소는 곧바로 고용문제와 연결된다. 더욱이 현대차의 경우 생산능력의 부족에 익숙한 상황이지 ‘설비과잉’이란 낯선 개념이었다. 1998년의 구조조정 이후 사실상 ‘브레이크 없는 질주’를 거듭하여 온 탓이다. 그만큼 고용안정 수단을 비롯한 설비과잉 상황에 따른 대비도 부족하다. 따라서 수요감소와 물량축소가 닥칠 경우 그 충격파는 더욱 클 수 있다. 

그런데 해외 생산이 늘어나고 동시에 해외-국내 공장 사이의 생산성 격차가 확대되면서, 현대차 노조에 대한 회사의 제재는 이미 시작되었다는 게 필자의 판단이다. 모국에서 일어나는 제재의 대표적인 사례들은 다음과 같다.

- 기존 설비에서 최대한의 물량을 뽑되 신규투자는 더 이상 일어나지 않고 있다.
- 고용(신규채용)이 사실상 중단되어 있다. 대신 유연성을 획득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사내하청이 광범위하게 활용된다. 
- 외주화와 모듈화, 자동화의 추진으로 인해 고용불안이 일상화되고 있다.
- 해외 물량이 국내 노조의 양보를 강요하는 수단으로 바뀌고 있다.

 

회사는 합리화를 겨냥하여 고용관계에 깊숙이 개입하는 것은 물론 노동조합에 대해 양보를 요구할 것이다. 인원에 대한 구조조정이 수면 위로 떠오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울산 공장은 낮은 생산성과 경직적인 작업조직, 갈등적인 노사관계, 그리고 낮은 영업이익률 등으로 인해 자충수를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현재는 ‘비정상’적으로 보일 만큼의 호경기에 의해 가려져 있을 뿐이다. 그런데 회사의 공격에 대해 노조는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거나 단기적인 기득권 논리에 젖어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노사관계에서는 여전히 고용보다는 임금이 전면에 나서고 있다. 이런 점에서 현대차 노조는 쓰나미가 몰려오는데도 둑을 쌓기는커녕 그 사실을 감지조차 못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5. 우물 속에 갇힌 노동조합의 ‘경쟁’ 전략

다국적기업의 강압적인 비교와 이를 바탕으로 하는 노동조합에 대한 제재에 대응하여, 노동자들은 국경을 넘는 연대를 강화시킴으로써 노동운동의 공간적 확산을 도모한다. 유럽종업원평의회, 초국가적인 단체교섭이나 지원, 정보교환 등이 그것이다. 이를 통해 노동자들은 노동자 권리와 표준을 확보하는 일, 기업 내에서 제재와 경쟁을 제한하는 일, 해고와 공장폐쇄를 피하는 일, 그리고 공장 간 생산물량을 공정하게 배분하는 일 등을 담당한다. 그러면 현대차 노조는 해외 생산의 확대에 어떻게 대응하여 왔을까? 여기에서는 노동자의 국제연대와 고용안정을 위한 노동조합의 노력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먼저, 노동자의 국제연대는 금속노조를 중심으로 관심의 대상이 되어왔다. 물론 그 중심에는 현대차 노조가 있었다(박태주, 2009). 그러나 현대차의 세계화에 대한 노동조합의 대응은 한마디로 실종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 결과 세계화는 사실상 사용자의 일방적인 게임으로 진행되어 왔다. 국제연대와 관련하여 현대차 노조의 역할은 기껏해야 ‘방어적 고립주의’(defensive isolation: Levesque et al., 2010)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현대차 노조는 실상 해외 생산의 확대는 물론 해외 공장의 고용관계를 애써 외면하여 온 것이다. 

실제로 현대차 노조가 국제연대에 나서기에는 다양한 걸림돌이 작용한다. 첫째, 국내외 공장들 간 물량에 대해 노조 사이가 경쟁적이다. 그 결과 생산물량과 차종을 둘러싼 노동조합들 간의 경쟁전략이 국제적으로 번질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경쟁전략이 분명하게 나타나는 부분은 ‘단체협약 제42조’이다. “회사는 세계불황 등으로 국내외 자동차 시장에서 판매부진이 계속되어 공장폐쇄가 불가피할 경우 해외 공장의 우선폐쇄를 원칙으로 한다.” 즉, 모국공장의 역할을 해외 공장의 불안정성을 보완해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경쟁적 관계’로 설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해외 공장을 고용의 안전판으로 인식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실효도 없는 ‘해외 공장 우선 폐쇄의 원칙’과 국제연대는 공존할 수 없다. 둘째, 노조가 없는 지역이 많고 노조가 있더라도 대부분 취약하다. 미국과 러시아에는 노조가 없고, 중국에는 공회(公會)가 존재한다. 

셋째, 한국을 제외하고는 노조가 전통적으로 갈등관계를 갖고 전투적으로 활동하는 국가가 없다. 최근 인도 공장에서 회사의 노조배제전략이 노조의 전투성이라는 역풍을 맞고 있을 뿐이다. 제한된 노조와 다른 노선이라는 점에서 연대의 기반이 취약할 뿐 아니라, 한국 노동운동의 지도력 역시 취약하다. 기업별 의식과 고질적인 경제주의를 앞세워 노동의 국제연대를 이끌 수는 없다(박태주, 2009 참조). 이러한 사실은 모국의 노사관계가 하나의 모델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한다. 마지막으로, 회사와의 갈등이다. 갈등적인 노사관계에서 회사의 협조를 기대하기가 어렵고,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조합의 국제연대가 탄력을 받기란 쉽지 않다. 결론적으로 세계화와 관련하여 현대차 노조는 내부적으로는 ‘저항적 실리주의’를, 외부적으로는 ‘방어적 고립주의’를 선택하여왔다. 어느 것이나 단기적인 실리를 중시하는 도구주의적인 접근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노동조합의 대응과 관련하여 또 하나 살펴볼 지점은 고용안정이다. 앞에서도 지적하였지만 해외 공장에서 실현되는 높은 생산성과 유연성은 국내 노동조합에 대해 양보를 강요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더욱이 현대차 제품에 대한 수요가 줄었을 때 국내 공장의 고용문제가 대두될 수도 있다. 고용안정은 단체협약의 변수라기보다는 경쟁력의 변수이다. 즉 고용안정을 보장하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제도적인 요인이 아니라 시장적인 요인이다. 그런데 현대차 노조가 실리주의에 매몰되어 있음에도, 실리의 최대치라고 할 수 있는 고용안정을 위해서 경쟁력의 제고가 필요하다는 데에 동의하지 않는 것은 또 하나의 역설에 속한다. 그 해답은 ‘단기주의’에 있다. 겉보기로 고용이 안정된 상황에서 눈앞의 곶감을 버리고 장기적인 고용안정을 위해 나설 수는 없는 탓이다. 결과적으로 현대차 노조는 해외 공장의 확대에 대해 연대의 관점에서 접근하기보다는 물량 경쟁의 관점에서 접근하여 왔을 뿐 아니라, 스스로의 경쟁력을 등한시함으로써 ‘고용의 무덤’을 파고 있다고 할 수 있다. 

6. 노사관계의 경쟁력을 외면한 회사의 경쟁력 전략

현대차 해외 공장의 고용관계는 의도적인 현지적응 노력에도 ‘울산보다 더 울산적’이라는 사실을 지적하였다. 그런데 고용관계 측면에서 현대차의 전략은 몇 가지 한계를 드러낸다. 노동배제적인 노무관리는 기껏해야 노조가 경영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최소화하는 데 기여할 뿐이다. 자동차라는 상품이 가장 세계화된 상품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중요한 것은 노사관계 역시 ‘경쟁력 요소’로 바꿀 필요가 있다. 그렇지만 현대차의 노동배제적인 노무관리는 경쟁적인 고용관계와 양립하지 못한다. 회사가 아무리 사람이 가장 중요한 경쟁력이라고 외친들, 이는 어디까지나 수사에 지나지 않는다(노사관계는 ‘사람에 대한 관리’가 본질이다).

노동배제 전략은 노조불인정 전략의 다른 표현일 뿐으로, 이는 국제기준이나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양립하지 못한다. 노사 파트너십을 제고할 수도 없다. 노조가 없어져주기를 바라면서 노조와 파트너십을 맺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러한 노동배제전략은 노조 부정에 이어, 숙련에 대한 경시, 수량적 유연성(해고)에 대한 과도한 의존, 온정주의적 노무관리로 이어진다. 노동배제의 궁극적인 모습은 노조 부정으로 나타난다. 이는 해당 노조의 반발을 부추겨 탄압과 저항의 악순환을 낳을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현대차의 경우 노조가 만병의 근원이 아니라 노조를 인정하지 않는 경직적인 자세가 만병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다. 회사로서는 노조 결성권의 적극적인 인정은 물론, 노조 참가에 바탕을 둔 수평적인 조직문화에 대해서도 개방적일 필요가 있다. 

둘째, 수량적 유연성은 온정적인 노무관리에도 경기침체나 수요 감소가 닥칠 경우 해고를 전제로 하는 대응수단이다. 이는 기업의 유능한 인력을 상실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종업원의 헌신이나 충성심을 끌어내는 데 한계를 갖는다. 심지어 심각한 구조조정을 겪고 난 후 ‘살아남은 자의 증후군’(survivors' syndrome)을 경험하기도 한다. 여기에는 사용자에 대한 낮은 신뢰와 조직 및 직무에 대한 만족도의 저하, 죄의식, 사기의 저하와 동기의 결여 등이 포함된다. 해고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기능적 유연성이나 노동시간 활용의 유연성 등에 눈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울산형 고용관계’는 창조적인 현지적응 능력을 떨어뜨리는 역할을 한다. 울산 공장의 고용관계가 비교우위를 갖지 못한다는 점에서, 울산형 고용관계가 국제적으로 확산되는 것이 바람직스럽다고 하기도 어렵다. 대안으로서는 두 가지를 제시할 수 있다. 첫째, 고용관계에서 현지적응 노력을 배가하는 일이다. 이러한 적극적인 현지적응 노력이 성공할 경우 해외 공장의 고용관계는 궁극적으로 현지의 제도 및 환경과 모국의 가치가 접목되는 ‘혼합형 고용관계’로 나타날 것이다. 둘째, 이러한 노력에서도 중요한 것은 노동조합의 인정과 참여를 통해 노조배제적인 세계화가 아니라, ‘교섭된 세계화’(bargained globalization)를 추구하는 일이다. 다시 말해, 기업경영에 대한 노동조합의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고용관계를 경쟁력의 요인으로 바꾸는 일이 그것이다. 

7. 맺음말: 새로운 접근을 위하여

이상으로 현대차 러시아 및 체코 공장, 그리고 기아차 슬로바키아 공장을 둘러본 소감을 정리하였다. 자동차가 대표적으로 세계화된 상품이라면, 현대차는 세계화를 주도하는 한국의 대표적인 다국적기업이다. 그런 만큼 현대차의 국내 고용관계에 못지않게 해외 공장의 고용관계 역시 관심의 대상이 된다. 

이 글에서는 현대차 해외 공장의 고용관계를 살펴봄으로써, 현지 고용관계는 물론 그것이 국내 고용관계에 미칠 영향을 살펴보았다. 해외 생산의 급속한 확대와 국내-해외 공장 사이의 심각한 경쟁력 격차는 자칫 국내 자동차산업의 공동화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고용이 경쟁력의 변수라면 이는 국내 공장의 경쟁력이 고용의 안전판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와 동시에 생산의 세계화에 대응하여 국경을 뛰어넘는 노조의 연대는 노동운동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일에 해당된다. 한편 노동배제적 해외 경영은 노사관계를 경쟁력 요인으로 바꾸기는커녕 오히려 노사갈등의 불씨가 될 수 있다. 해고라는 수량적 유연성에 의존하는 유연화가 갖는 경쟁력 효과 역시 제한적이다. 종업원의 숙련과 헌신, 사용자에 대한 신뢰가 뒤따르지 않은 경쟁력이 온전한 경쟁력이 될 수는 없다. 

최근 현대차는 “새로운 생각 새로운 가능성”(new thinking new possibilities)을 광고의 카피로 내세우고 있다. 노사관계에서도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사고’를 필요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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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작년도 :
  • 통권 : 제16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