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재해의 심각성과 노동조합의 과제

노동사회

산업재해의 심각성과 노동조합의 과제

admin 0 6,379 2013.05.11 03:18

산재 왕국

한국은 산재발생규모에 대한 정확한 통계가 없다. 단지 산재보험으로 인정된 통계만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 규모도 매년 8만 명 이상이 산재를 당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실제 노동현장에는 사업주의 회유와 협박으로 산재신청을 포기 당해 숨겨진 재해가 훨씬 많다. 정부의 산재통계가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002년 국정감사를 통해 밝혀진 대우조선의 산재은폐 규모는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근골격계질환 유소견자 255명 중에서 179명이 산재신청 포기를 강요당했다. 대우조선노동조합은 산업안전보건활동이 가장 활발한 노동조합이다. 이런 사업장에서도 산재은폐 규모가 이 정도라면 노동조합이 없는 사업장의 상태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정확한 숫자가 집계되었을 사망 만인율(노동자 1만 명당 사망자 비율)과 재해율(산재보험적용대상 대비 산재발생 비율)을 외국과 비교해 보면 한국이 여전히 세계 최고의 산재왕국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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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 년 기준으로 한국, 미국, 영국, 일본, 독일의 재해율은 한국이 영국과 비슷한 수준으로 낮게 나타났다. 그러나 사망 만인률은 영국에 비해 무려 20배가 높고 한국보다 재해율이 높은 미국과 일본에 비해서도 약 4배 가까이 높게 나타나고 있다. 이는 한국의 산재통계가 엉터리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죽음의 장시간 노동

세계 최고의 장시간 노동은 산업재해를 증가시키는 근본 요인이다. 저임금에 의해 강요된 장시간 노동은 노동자의 육체적·정신적 건강을 심각하게 훼손한다. IMF 경제위기 직후인 1998년, 경기침체의 여파로 다소 노동시간이 줄었으나, 그 뒤 다시 노동시간이 늘어나 1997년 주 46.7시간이었던 전산업 노동시간은 2001년 현재 47.0시간으로 오히려 늘어난 상태이다. 제조업 노동시간도 1997년 47.8시간에서 2001년 현재 48.3시간으로 늘어났다. OECD 고용전망보고서(OECD Employment Outlook)에 따르면 취업자 기준으로 한국의 노동시간은 2001년 현재 2,623시간으로 단연 1위이다. 2위권인 체코나 슬로바키아 등 구동구권의 2천시간대와 비교해도 연 600시간 이상 길고, 유럽에 비하면 연 1천시간 이상 긴 최장 수준이다. 쉴 틈도 없이 몰아치는 노동에 노동자의 건강은 회복불능에 빠져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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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병드는 노동자

1997 년 말부터 본격화된 IMF 경제위기는 노동자 건강의 직접적인 위협 요인이다. 구조조정에 의한 대량해고와 노동 유연화 정책은 노동현장을 살인적인 노동강도와 노동통제로 몰아 넣고 있다. 자본의 생산성 향상을 위한 노동시간 연장, 생산속도의 증가, 모듈화, 팀제 등의 작업조직 개편 등은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을 희생케 하고 있다.

과거 컴퓨터 작업자 등 특정 업종에서만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졌던 근골격계질환은 전 산업에서 광범위하게 발생하고 있다. 그 동안 노조단위에서 실시했던 실태조사 결과, 검진대상자의 약 10~25%정도는 직업병자로 추정할 수 있고 증상 호소율은 무려 40~50%에 달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전체 산재통계에서는 미비한 수준에 그치고 있어 그 심각성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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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표에서 보듯이 근골격계 질환자 수는 1999년과 대비하여 무려 470%나 증가했다. 또한 과로사로 불리는 뇌·심혈관계질환자 수는 1999년 대비 180%가 증가한 2,192명에 이르고 있다.

한 편, 외국에서는 이미 노동강도 강화에 따른 근골격계질환이 전체 직업병에서 상위를 차지하고 있어 비슷한 산재발생율을 가지고 있는 미국의 경우 전체 재해자중에서 근골격계질환이 차지하는 비율이 35%를 차지하는 등 이미 중요한 사회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이는 비슷한 산업구조를 가지고 있는 한국에서도 몇 년 안에 벌어질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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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 론적으로 장시간 노동과 구조조정 그리고 노동강도 강화로 인해 산업재해는 계속 증가추세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사망자와 중대재해의 증가 그리고 작업관련성 질환으로 분류되는 근골격계, 뇌심혈관계질환의 뚜렷한 증가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 이로 인한 경제적 손실액은 전체 국가 예산의 약 10%에 달하는 실로 엄청난 규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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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건강 파괴를 조장하는 정부정책

김 영삼 정권 이후 지속되고 있는 정부의 신자유주의정책은 규제개혁을 국정의 최우선 과제로 삼고 추진해왔다. 안전보건에 대한 규제완화는 한마디로 기업활동의 무제한적 자유 보장을 위해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을 희생양으로 삼는 것에 불과하다. 정부는 1998년 행정규제기본법에 따라 규제개혁위원회를 상설기구로 설치하여 안전보건에 대한 일상적인 제도 폐지를 구조적으로 추진해오고 있다. 1998년부터 2001년까지 77개의 안전보건제도가 완화, 폐지되었다. 그 주요 내용은 프레스·리프트 정기검사 폐지, 공정안전보고서 재작성·제출·심사제도 폐지, 유해위험방지계획서 제출·심사제도 폐지, 안전보건관리규정의 신고 및 심사제도 폐지, 작업환경측정 횟수 조정 등이다. 아래 표는 주요 규제완화조치로 결과된 재해현황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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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와 같은 규제 완화와 폐지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을 통해 ’자율안전보건관리체제‘로 구체화되었다. 산업안전보건법상의 안전관리자·보건관리자 선임 의무사항을 완화한 이후 노동현장에서 안전관리자와 보건관리자가 각각 41.3%, 15.2%가 축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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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자본의 최소 의무사항을 폐지하고, 국가가 가져야 할 노동자 건강권 보호의 기본적인 책무를 포기함으로써 노동자들은 산업재해의 고통 속에 신음하고 있는 것이다.

김 영삼 정권 이후 계속되고 있는 무재해 운동은 IMF 이후 더욱 많은 문제를 낳고 있다. 실제 사업장에서는 무재해 목표달성을 통해 안전보건 지도와 감독을 면제받기 위해 산업재해를 은폐하거나 무재해를 강요하는 사례가 많다. 2001년 한국산업안전공단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산업재해와 직업병으로 진료를 받은 노동자 중에서 겨우 18%만이 산재보험으로 처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산업재해 은폐 등 불법행위와 구조조정, 고용불안 속에서 노동자 건강문제의 심각성이 더욱 증폭되고 있다.

노동조합의 과제

위 에서 살펴본 대로 정부와 자본은 경제논리를 앞세워 노동자 건강을 이윤창출의 희생양으로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노동조합의 대응과 투쟁은 아직도 걸음마 수준이다. 단위사업장이나 상급조직의 산업안전활동은 조직사업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 담당자 활동력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현재의 활동은 대중조직인 노동조합의 활동 방식에도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조합원 대중을 산업재해로부터 지켜낼 수도 없다. 또한 정부와 자본의 총체적이고 공세적인 대응에 비해 노동조합의 대응은 수세적이고 단편적인 수준에 불과하다. 안전보건 규제완화, 자율안전관리 등은 정부와 자본의 신자유주의 정책의 핵심이다. 그러나 노동조합은 변변한 대응은 고사하고 문제의 심각성조차 제대로 인식하고 있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산업안전보건활동을 조직적으로 전개하기 위한 노동조합차원의 고민과 정부와 자본의 총체적이고 공세적인 대응에 맞설 장기적인 산업안전보건정책이 매우 시급하다.

먼저 노동조합의 산업안전활동이 조직사업과 긴밀히 연계되어야 한다. 자본의 현장통제를 극복하고 현장에 대한 노동조합의 주도력을 복원하기 위한 일상활동으로 산업안전활동은 매우 유력한 통로이다. 금속과 제조업 사업장에서 점차 자리잡고 있는 정기 안전점검활동은 현장의 조합원을 직접 만나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을 모색하기 위해 다양한 현장 소모임을 구성하고 있다. 이를 조직전체 활동으로 확대하기 위한 활동지침개발이 필요하다. 특히 최근에 쟁점이 되고 있는 근골격계 직업병 투쟁은 더 이상 산안담당자의 의지와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점차 근골격계 직업병 투쟁은 자본의 일방적인 생산성 향상에 대한 개입과 통제 그리고 인력충원 방식의 문제로까지 확대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산안활동에 대한 노동조합 차원의 대응은 필수불가결한 시대의 과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노동운동 더 큰 관심 보여야

다음으로 조직활동으로 가능하게 할 인력과 예산의 확충이 필요하다. 민주노총 가맹조직 중에서 산업안전활동을 전임으로 하는 곳은 금속산업연맹과 보건의료노조 뿐이다. 지역본부 중에는 단 한 곳도 전임자를 둔 곳이 없다. 단위사업장의 상황도 상급조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직도 산재문제를 금속제조업의 문제로만 인식하고 있을 뿐 조합원들이 어떤 상황과 조건에서 병들거나 죽어 가는지 알지 못하고 있다. 민주노총만 보더라도 전체 예산에서 산안 사업이 차지하는 비율이 고작 0.2% 수준으로 약 1200여 만원에 불과하다. 산안활동을 노동조합의 기본활동으로 만드는 것은 우선 인력과 예산을 확충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산업안전문제가 자신의 문제이자 과제라는 인식이 노동자 대중속에 광범위하게 자리잡혀야 한다. 구조조정과 노동강도 강화는 이제 산재발생의 직접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어 더욱 많은 수의 노동자를 산업재해의 위험에 직면하게 하고 있다. 하루에 10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죽고 200명이 넘는 노동자가 산재를 당하는 현실에서 어떤 노동자도 자유로울 수 없다. 따라서 산업안전보건활동은 직접적으로 노동자 자신의 건강과 생명을 보호하는 것일 뿐 아니라 본질적으로는 자본과 정권의 신자유주의정책에 반대하는 투쟁이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노 동조합의 산업안전보건활동은 자본과 정권의 약한 고리로서 산업재해를 바라보던 도덕적이고 인권적인 수준에서 벗어나 반노동자적인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계급적이고 정치적인 운동으로 발전해 나가야 할 중요한 시점에 와있다. 이제 노동조합은 산업안전보건활동에 대한 종합대책을 만들어야 한다. 중장기적인 정책과 이를 대중적으로 실천할 프로그램 마련을 위해 조직적 역량과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7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