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제도를 사형시켜라

노동사회

사형제도를 사형시켜라

admin 0 13,825 2013.05.11 12:53

지난 1월11일, 미국 일리노이주의 주지사가 퇴임을 이틀 앞두고 사형수 167명 전원을 무기형으로 감형하였다. 세계 언론들은 앞다투어 이 소식을 머릿기사로 다루면서 전 세계 인권운동이 노력한 결과라고 축하했다. 국제앰네스티도 지난 수 년간 미국 일리노이주의 사형집행을 반대하는 활동을 해 왔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임기 안에 사형집행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켰고, 작년 12월31일에는 56명의 사형수 중 4명을 무기형으로 감형시켰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도 작년 한해 동안 사형수 전원 무기형 감형을 위해 캠페인과 대정부 로비를 펼쳤고, 만족스럽지는 않으나 작은 성과를 이루었다고 자축하였다. 1997년 12월 말 대통령선거와 IMF 경제위기로 어수선한 틈을 타 김영삼 전대통령이 23명을 사형 집행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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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의 사형제도 반대집회  ▷ 출처: 엠네스티 ]

사형, 구시대의 유물

최 근 각종 언론에서 사형제도의 찬반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사형 반대론자들은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인 생명권의 보호 차원에서 사형제도는 폐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사형 찬성론자들은 사형제도의 범죄억제 기능을 이유로 사형의 존속을 주장한다. 사형 찬반에 관한 TV 토론을 본 한 인권단체의 회원이 나에게 해준 이야기는 사형폐지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나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우리사회에서 아직도 사형 찬반 논의를 한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이제 어떻게 사형제도를 점차적으로 폐지시켜 나갈 것인가를 이야기할 때다." 이 사람은 어떻게 이렇게 자신 있게 사형제도에 반대할 수 있었을까?

사형제도의 역사는 인류사의 형벌의 역사와 함께 변천해 왔다. 역사를 돌이켜 볼 때 분명한 것은 사형제도는 인류사에서 점차 사라져가고 있는 구시대의 유물이라는 점이다. 국가가 성립하기 이전의 형벌은 개인간 혹은 집단 간의 복수심에 기반하여 죄에 대해 개인 또는 집단이 직접 벌을 주어 대가를 치르게 하는 형태로 이루어졌다.

고대국가가 성립하면서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책임이 국가에 주어지고 형벌은 국가의 고유 권한으로 자리잡았다. 당시의 형벌의 근거는 여전히 인과응보의 사상에 기반한 것이었다. 고대 함무라비 법전은 그 유명한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형태로 형벌을 규정하였으며, 고조선의 8조법 또한 인과응보의 법이다. 살인을 저지른 자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당연한 인과응보의 결과로 여겨진 것이다.

중세에 이르러 국가의 형벌권은 그 내용과 형식에서 정교화되었으며, 점차 국가권력을 보호, 강화, 재생산하기 위한 목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한다. 따라서 정치적 살인으로서 사형이 만연하게 된다. 중세 유럽에서 체제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사람들을 화형에 처했던 마녀사냥식 종교재판이나, 한때 유행했던 TV 드라마 '포청천'에서처럼 반정부 행위에 대해서는 개작두, 용작두를 들이대어 참수형을 가하는 것과 같은 정치적 사형은 당시의 일반적인 형집행 형태였다.

사형, 생명권 박탈행위

amnesty_02.jpg산 업혁명, 종교개혁 그리고 뒤이은 봉건제도의 붕괴와 시민계급의 성장은 인간의 존엄, 자유를 강조하는 계몽사상을 등장시켰다. 그리고 인간이면 누구나 국가에 의해 제한되거나, 양도할 수 없는 보편적 인권을 가진다는 사상이 싹트기 시작했다(물론 인권에 관한 역사적 선언이 처음으로 터져 나온 프랑스혁명은 당시 시민계급에 의해 주도된 것이었고, 여성, 노동자, 빈민, 아동 등 사회 구성원의 절반이상이 제외된 것이라는 역사적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하여간 계몽사상가들은 왜 국가가 형벌을 부과해야 하고, 국민들은 그 형벌에 절대적으로 복종해야 하는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개인의 존엄과 가치에 근거한 형벌권의 행사를 요구했다. 한국사회에서도 감옥의 명칭이 형무소로, 그리고 다시 교도소로 바뀐 것처럼 형벌의 목적이 더 이상 인과응보가 아니라 교화와 갱생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형벌의 의미 변화와 더불어 중세에 광범위하게 행해지던 사형의 적용 범위가 축소되었고 점차 예외적인 형벌로 여겨졌다. 또한 사형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 인권으로서 생명권 박탈'이라는 속성에 관심을 가지면서 사형 집행의 방법을 고통과 신체적 훼손이 적은 방식으로 바꾸었다.

1746년 이탈리아의 계몽사상가 베카리아가 '범죄와 형벌'이라는 책을 출판하면서 사형폐지에 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는 국가가 하는 살인이 정당성이 없다며 사형제도 폐지를 주장했고, 오스트리아와 토스카나가 사형제도를 폐지하기에 이르렀다. 19세기에는 각국에서 사형의 집행이 제한되기 시작했으며, 20세기 들어 사형제도의 폐지가 급속하게 유럽과 남미국가들로 퍼졌다. 2001년 말 현재 사형제도가 완전히 폐지되거나 실질적으로 폐지된 국가의 수가 111개국에 이른다.

사형제도 존폐논쟁

1989년 UN(국제연합)은 사형제도 폐지를 결의하며 '사형제도 폐지를 위한 정치적·시민적 권리에 관한 국제협약 제2선택 의정서'를 채택하였다. 이 국제인권조약에서 UN은 '사형폐지를 위한 모든 조치가 생명권의 향유에 있어서 진전으로 간주되어야 함을 확신'하며 모든 회원국들의 사형폐지를 권고하였다. 이 조약에 가입한 모든 국가는 사형제도를 폐지할 국제법적 의무를 지닌다(한국은 미가입). EU(유럽연합)는 가입조건으로 사형폐지를 아예 못박고 있다. EU 가입을 희망하는 터키, 러시아와 많은 동유럽 국가들은 앞다투어 사형제도를 폐지하고 있다.

사형폐지는 이미 국제인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만큼 인권보호를 위한 당연한 조치로 여기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이다. 하지만 한국을 포함한 많은 국가에서 사형을 유지하고 있으며 사형제도 찬반 논쟁이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사 형제도를 찬성하는 이들은 크게 보아 네 가지 근거를 제시한다. 첫째, 사형제도는 극악무도한 범죄를 억제하는 효과를 지닌다고 주장한다. 법집행관이 주장하는 것으로 사형제도가 생명 박탈이라는 인간의 원초적인 공포심을 유발함으로써 범죄를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사형제도의 인과응보적 성격이다. 법원의 사형선고 판결문에는 흔히 '극악무도하고 반인륜적인 범죄를 저지른 피고는 인간이기를 포기했기 때문에 사회와 영원한 격리를 위해 사형을 선고한다'라는 문구가 등장한다. 이는 흉악한 범죄자들에게는 생명 박탈이란 극단적인 처벌을 내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셋째, 살인을 비롯한 심각한 범죄의 피해자 가족들이 갖는 감정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사형존치론자들은 '만약 당신의 가족이 당신이 보는 앞에서 강간·살인을 당한다면 그 범죄자를 용서할 수 있겠느냐?'라는 질문을 종종 던진다. 넷째, 국민의 법감정상 사형제도를 폐지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주장이다. 1996년 한국에서 사형제도의 위헌성 여부가 헌법재판소에 제기되었을 때 판결문에서는 '제도살인'으로서의 사형은 '국민의 법감정'이 바뀔 때까지는 '필요악'으로 존속되어야 한다고 선언했다. 국민들이 사형을 여전히 원하기 때문에 사형제도는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러한 주장들은 일견 타당해 보이지만, 조금만 따져보면 논리적으로 반박할 여지가 많다. 최근 TV방송에서 100인의 배심원을 두고 패널간에 사형 찬반의 논쟁이 진행된 적이 있었는데, 토론 전에는 사형을 반대하는 배심원이 찬성하는 사람보다 근소한 차이로 많았으나, 토론 후에는 사형 반대자가 더 늘어난 것으로 결론이 났다. 한 사회 안에서 당연시되어 온 많은 문제들이 조금만 더 관심을 갖고 생각해 보면 엄청난 인권침해였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되는 예가 허다하다. 불법 불심검문과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구속이 그렇고, 사형제도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amnesty_03_0.jpg쓸모없고 불평등한 사형제도

먼 저 사형제도는 범죄 억제효과가 없다. 유럽과 미국에서 실시된 통계에 따르면 사형제도가 폐지된 이후 극악무도한 범죄율이 급증하지도 않았고, 사형제도가 폐지되었다가 부활된 경우에도 범죄율이 감소하지도 않았다. 결국 사형제도와 범죄율에는 '상관관계가 없다'는 과학적인 결론에 도달하였다. 뿐만 아니라 사형존치론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사형이 두려워서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다면 이 세상 범죄는 이미 모두 없어졌거나, 최소한 감소하기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살인범의 경우 범행의 동기는 대부분 우발적이거나 혹은 치밀한 계획에 따른 것이다. 우발적 살인의 경우 범죄자가 이성적으로 자신이 사형에 처해질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범죄를 저지르지는 않는다. 계획적 살인의 경우에도 자신이 사형을 당할 것이라는 생각까지도 포함해서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당연히 잡히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범행을 저지른다. 결국 사형제도는 살인을 막지 못한다.

미국에서 사형수 개개인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대부분 흑인, 빈민, 저학력자들이다. 한국에서 최근 10여 년 간 한국의 사형수 중 대졸 이상의 학력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재판과정에서 사형을 구형 받았더라도, 고학력자들은 대부분 무기형 혹은 무죄로 판결 난 것이다. 이는 재판절차에서 사회적 약자 계층의 사람들이 불리한 위치에 있기 때문에 사형 선고를 피할 수 없거나, 그렇지 않으면 그들이 범죄를 더 많이 저지를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범죄 억제는 사회 정책으로 해결되어야 할 문제이지 사형이라는 극단적이고도 손쉬운 처벌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법정신에 위배되는 사형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현대사회에서 범죄에 대한 처벌의 목적은 더 이상 '인과응보'가 아니다. 교화와 갱생이다. 더 이상 도둑질한 자의 손목을 자르지 않듯이, 살인한 자라고 해서 목숨을 빼앗는 것은 현대 법률의 근본 목적에 위배되는 것이다. 사형수의 교화를 담당하고 있는 종교인들은 흔히 '애석하게도 사형집행 직전은 사형수는 이미 자신의 죄를 다 뉘우친 사람들이다. 그것으로 죄의 대가는 다 치른 것이다. 세상 누구보다도 선하게 된 사람을 사형이라는 극형에 처하는 것은 아이러니컬한 현실이다'라고 말한다. 인간의 목숨을 빼앗는 것이 범죄인이 죄에 대해 정당한 대가를 치르는 유일한 방법인지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범죄자가 사형을 당한다고 해서 피해자 가족이 보상을 받을 수 있을까? 개개인마다 차이가 있지만 항상 그렇지는 않다. 살인사건의 피해자 가족들이 겪어야 하는 고통은 범죄자가 사형을 당한다고 해서 그 고통이 덜해지거나 하는 성질의 것이 아닐 게다. 피해자들 대부분이 사건 직후에는 그 범죄자들에 대해 참을 수 없는 분노로 살아야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들을 용서하거나 심지어 사형집행을 중단할 것을 요청하기까지 한다고 한다. 인간의 삶과 죽음에 관한 문제와 그에 대한 감정은 법 혹은 국가가 재단할 수 있는 이상의 문제이다. 또한 살인이 아니라 강간, 절도 등 다른 범죄의 경우에도 피해 당사자와 그 가족들은 살의와 증오를 느끼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범죄에 대해서 사형을 선고할 수는 없지 않을까? 여기서 극악무도한 범죄자들을 용서해 주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피해자에 대한 보상으로서 사형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변화하는 국민의 법감정

헌법재판소에서 주장하는 '국민의 법감정' 또한 사형존속의 근거로는 빈약하다. 10여 년 전 통계에 따르면 사형을 찬성하는 국민이 65% 정도였다고 한다. 1999년 11월에 실시된 갤럽 조사에 따르면 사형 찬성이 50%, 반대가 43%로 통계가 나왔다. 아직 공식적인 통계가 나오지 않았지만 이와 같은 추세라면 수년 내에 사형 반대론자들이 수적으로도 우세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된다. 학계에서는 이러한 사형반대 증가 추세가 사회의 민주화 정도와 긴밀한 관계가 있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을 경시하는 독재정권 하에서는 생명경시 풍조가 사회적으로도 만연하고 국민의 여론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사형제도에 반대할 근거는 많다. 먼저 오판 가능성의 문제이다. 이상적으로는 재판관은 냉철한 이성으로 합리적으로 재판을 해야 하겠으나, 재판관도 실수를 할 수도 있는 인간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집행되기 직전에 무죄임이 입증되어 석방되는 다행스러운 경우도 있으나,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세계적으로, 특히 사법제도가 불안정한 국가일수록, 그러한 일들은 비일비재하다.

오판은 재판관의 실수에 의해서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중세의 마녀사냥과 같은 정치적 살인은 한국 현대사에서도 종종 찾아 볼 수 있다. 진보당사건의 조봉암, 민족일보 사건의 조용수, 인혁당 사건 등 수많은 사람들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 갔으나, 명백히 정치적 이유로 살해를 당했다. 5·17 군사 쿠데타 직후 사형을 선고받았던 김대중은 17년 뒤 대통령이 되었다. 한 시대의 정치적 상황에 의해 사형을 선고받았던 사람이 그 국가의 대통령이 된 일은 정치적으로 악용되는 사형제도의 불합리함을 여실히 보여주는 예이다.

사형은 인권의 문제

2001년 10월, 155명의 여야 국회의원들이 '사형폐지에 관한 특별법안'을 국회에 제출하였다. 이는 국민의 정치적 의사를 대표하는 국회의원 과반수 이상이 사형제도에 반대한다는 의미로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다. 이 법안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기만 하면 한국에서 사형제도가 폐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해당 상임위원회인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되어 보수 성향의 법률가 출신 의원에 의해 저지되고 있는 상황이다. 국제앰네스티와 종교단체들은 이 법안이 국회의장 직권으로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어 올해 국회 회기 내에 통과되는 것을 목표로 운동을 펼치고 있다.

또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는 한국의 사형집행이 사형폐지에 관한 논의가 국회에서 끝나기 전까지 연기되거나, 노무현 차기대통령이 자신의 임기 동안 사형집행을 유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대중 대통령은 자신이 사형수였던 경험도 있고, 인권대통령임을 자처하면서 임기 내 사형집행을 실시하지 않고, 4명의 사형수를 무기형으로 감형하기도 하였다. 사형폐지운동의 작은 성과이겠지만 일회성으로 끝나서는 안될 문제이다.

사형은 인권의 문제이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인 인권은 인간이 인간으로서 존재할 때에만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인간의 기본적인 생명권을 박탈하는 사형은 당연히 인권을 원천적으로 부정하는 행위이다. 불행하게도 아직 많은 인권운동단체들이 사형제도를 인권의 문제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사형폐지운동은 종교단체들의 전문영역인 것으로 간주돼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형이 기본적 인권의 침해이며, 인권운동진영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할 문제로 공유되어야 하는 것은 국제앰네스티와 같이 사형폐지운동을 하는 인권단체의 과제일 것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7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