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플루엔자

노동사회

어플루엔자

admin 0 3,186 2013.05.11 12:19

 

 

book_10.jpg 정 치 의식은 굉장히 진보적인 데 삶의 방식은 보수적인 사람들이 많다. 반대로 정치 의식은 보수적인데 삶의 방식은 진보적인 사람들도 있다. 물론 정치 영역과는 달리 삶의 방식이라는 영역에서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기준이 상황과 맥락에 따라 많이 다르다. 하지만 입으로는 자본주의의 폐해를 비판은 하는데 몸으로는 자본주의적 삶에 찌든 사람이 늘어나는 게 요즘의 현실이다. 『어플루엔자』는 이런 세태를 돌아보게 만든다.

신자유주의 질병

『어플루엔자』는 미국 PBS TV에서 방영되었던 다큐멘터리를 책으로 엮은 것이다. 물신주의와 탐욕이라는 바이러스가 고독, 파산, 노동강도 악화, 환경 오염, 가족 해체라는 질병을 초래하는 현실을 분석한다. 어플루엔자(affluenza)는 풍요로움을 뜻하는 affluence와 균을 뜻하는 influenza의 합성어이며, "고통스럽고 전염성이 있으며 사회적으로 전파되는 병으로 끊임없이 더 많은 것을 추구하는 태도에서 비롯하는 과중한 업무, 빚, 근심, 낭비 등의 증상"을 수반한다.

한 사회 내부 혹은 나라간에 빈부격차가 커질수록 어플루엔자는 기승을 부린다. 사회 한 편에 그리고 세계 한 편에 먹고 입고 마실 것이 흘러 넘치지만, 다른 한 편에는 굶주리고 헐벗고 가난한 사람들이 더 많이 넘쳐난다. 계급, 소득, 연령, 교육, 종교에 상관없이 필요한 것보다 훨씬 많이 사들이고, 아이들이 매우 물질 중심적으로 변해가고, 오늘의 소비를 위해 우리의 내일을 희생하고 있다. 이른바 아메리카 드림, 요즘 유행하는 말로 '신자유주의' 생활 방식의 결과다.

장미 향기를 맡을 시간

"한 사람이 매일 한나절을 그저 좋아서 숲을 거닌다면, 그는 빈둥거리는 게으름뱅이라고 손가락질 당할 위험이 있지만, 만약 투기업자로서 하루 종일 그 숲의 나무들을 베어 내어 대지를 때 이른 대머리로 만든다면, 그는 부지런하고 진취적인 시민으로 존경받는다." 백년도 더 전에 미국의 철학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가 한 말이다. 소로우의 탄식은 이제 전지구적(global) 탄식이 되었다.

' 돈이 좋아요'가 어른들은 물론 아이들에게도 솔직한 고백이 된 지 오래다. 돈이 있으면 사고 싶은 것을 살 수 있다. 하고 싶을 것을 할 수 있다. 돈에 걸신들린 사회 풍조 속에서 크고 화려하고 세련되고 편리하고 강한 것들이 작고 소박하고 촌스럽고 불편하고 약한 것들을 밀어내고 있다. 오죽하면 '부자 아빠는 유능하고, 가난한 아빠는 무능하다'는 종류의 책이 나돌아다닐까. 화학 조미료에다 소 젓 가루를 섞은 별난 이유식을 많이 팔려고 '우리 아기는 다르다'고 쇄뇌시키는 광고는 우리 사회가 어디까지 막가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어플루엔자라는 몹쓸 사회적 질병은 인간만 피곤하게 만드는 게 아니다. 동식물과 지구도 피곤하게 만든다. 인간이라는 생명체의 탐욕을 만족시키고자 소비자들이 구입할 수 있는 제품의 범위는 날로 넓어지는데 비례해서 동식물의 종류는 줄고 있다. 인간의 소비, 사실 미국식 소비를 맞추기 위해 인간은 물론 자연 환경이 고통을 당하고 있다. 1912년 미국의 여성 노동자들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빵을 원하지만 장미도 원한다. 물론 그 향기를 맡을 시간도." 한국의 노동자들은 어떠한가. (존더 그라프 외 짓고 한숲 냄. 1만6천원)

 

  • 제작년도 :
  • 통권 : 제 7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