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 년이 됐다. 북한은 올해를 어떻게 보낼까? 북한의 1년을 규정하는 각종 명절과 기념일을 중심으로 살펴보자. 일반적으로 남한에서는 설이나 추석 등 '전통명절'만을 '명절'로 쇠는데 비해 북한에서는 정권창건일과 노동당창건일 등 국가적 기념일도 모두 명절로 쇠고 있으며, 더 나아가 고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일을 설이나 추석보다 더 큰 명절로 여기고 있다. 그 이유는 북한이 우리 민족의 전통을 폄하한다기보다는 사회주의 체제의 특수성에서 기인한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북한의 명절
[표 1]에서 보듯, 북한에서는 남한과는 달리 국경일, 민속명절, 국내 기념일 및 국제적인 기념일 등을 모두 합쳐 '명절'이라고 부른다. 명절은 종류별로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고 필요에 따라 공휴일(노동량이 부과되지 않아 노동에서 자유로운 날), 휴무일(당일 노동은 하지 않아도 되지만 노동량은 부과돼 추후 공휴일 등을 기해 할당된 노동량을 보충해야 하는 노동의 의무가 부가돼 있는 날), 그리고 단순히 기념행사만 하는 기념일 등으로 나누어진다.
북 한은 명절을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하고 있다('2002북한연감' 참고). 첫째, 국경일은 '나라와 민족의 융성발전에서 매우 의의깊고 경사스러운 날'로 국가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경축하는 기념일이다. '민족 최대의 명절'인 고 김일성 주석의 생일(4.15)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일(2.16)을 비롯하여 국가적 기념일인 군 창건일인 건군절(4.25), 광복절인 조국해방의 날(8.15), 정권수립일인 국경절(9.9), 노동당 창건일(10.10), 헌법제정일인 헌법절(12.27) 등이 속하며 모두 공휴일로 되어 있다.
둘 째, 남한과 마찬가지로 신정(1.1), 구정(1.1, 음), 한식(4.6), 단오(5.5, 음), 추석(8.15, 음) 등 해마다 민속적으로 즐겨오는 날을 명절로 쇤다. 신정만 이틀 쉬고 4대 민속명절인 음력설, 한식, 단오, 추석 등은 하루만 쉬는 날로 되어 있다.
셋째, '사회의 일정한 부문이나 인민경제의 한 부문에서 경축하는 기념일'이 북한의 명절에 포함된다. 우리의 식목일에 해당하는 식수일(3.2), 북한의 어린이날인 국제아동절(6.1), 소년단 명절인 소년단 창립일(6.6), '사회주의교육테제' 발표일인 교육절(9.5) 등 수십 개의 부문별 기념일이 있다. 이런 기념일은 명절에 속하지만 공휴일은 아니며 해당부문 근로자들만 휴식을 취한다.
넷째, '국제노동계급과 세계인민들의 사회계급적 해방과 전투적 연대성을 강화하기 위해 경축하는 기념일'도 명절에 속한다. 국제노동자절인 5.1절과 세계여성의 날(국제부녀절)인 3.8절 등이 그것이다. 이날은 국가적 명절로서 공휴일로 지정돼 있다.
북한 명절의 주요 특징
먼저, 북한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고 김일성 주석의 생일을 가장 큰 명절로 쇠고 있다. 북한은 지난 1995년 2월 김 위원장의 생일을 '민족 최대의 명절'로 정하고 생일 당일인 16일과 17일을 휴일로 하며 모든 기관, 기업소, 단체 등에는 국기를 게양토록 했다.
지 난해 북한 중앙방송은 김 위원장의 60회 생일을 '민족최대의 경사'로 맞이할 것을 촉구한 바 있다. 또한 북한은 김일성 주석의 생일(62회)을 1974년 4월에 '민족최대의 명절'로 제정하고 '공휴일'로 지정했으며, 이같은 조치는 김 위원장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또한, 북한은 한때 전통 민속명절이 사회주의 생활양식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배격해 온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1988년 이후부터 추석을 공휴일로 정한데 이어 1989년부터 음력설과 한식, 단오까지 휴무일로 인정해 민족 고유의 명절을 부활시켰다. 이렇게 해서 북한은 이른바 4대 명절인 민속명절을 쇠게 되었으며 이때 민속놀이를 한다.
이 렇게 민속명절이 부활되면서 장기와 그네뛰기, 널뛰기, 밧줄당기기, 연 띄우기, 윷놀이 등 각종 민속놀이도 다시 주민 생활속에 자리잡아 가고 있다. 북한은 민속놀이를 상당히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 이유는 "민속놀이가 '인민성'이 풍부하며, 건전한 취미와 높은 문화성을 지니고 있고, 서민들의 집체적 지혜가 깃들어 있으며, 우리 민족의 낙천적인 기상과 풍부한 정서가 흘러 넘치고 있다"는 것 때문이다.
민속놀이에 대한 북한의 입장은 다른 모든 문화와 마찬가지로 "진보적이며 인민적인 것은 사회주의 현실에 맞게 건전하고 쓸모있게 개조해 계승하고 그렇지 못한 것은 대담하게 버려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남한과의 차이
북한의 기념일은 남한과 비교해서 ▲날짜는 같지만 그 명칭이나 성격 등에서 다소 차이가 나는 경우와 ▲성격은 비슷하지만 날짜와 명칭이 다른 경우가 있다.
먼 저, 전자의 경우 날짜가 같은 기념일은 크게 분단 이전의 기념일과 분단 후에 설정된 기념일로 나뉜다. 분단 이전의 기념일에는 대체로 일제 때부터 기념해오는 3.1만세운동, 6.10만세운동, 광주학생운동, 개천절, 광복절 등이 있고, 분단 이후 설정된 기념일은 6.25전쟁 발발일, 휴전협정 기념일, 7.4남북공동성명 발표 기념일, 6.15남북공동선언 발표 기념일 등이 있다.
그 가운데 3.1절과 개천절은 남한에서는 국경일이지만 북한에서는 기념일로만 지정돼 있다. 3.1절은 '3.1인민봉기 기념일'로 불리며, 개천절은 '단군제'라는 이름으로 행사는 열고 있지만 국가 차원이 아닌 '단군민족통일협의회'라는 사회단체에서 주관한다. 또한 6.25전쟁일은 조국해방전쟁발발일로 되어 있으며, 휴전협정기념일(7.27)은 남한과는 달리 '조국해방전쟁 승리 기념일'로 불리며 국경일로 지정돼 있다. 북한에서는 광복절도 '해방기념일'로 부른다.
다음으로 후자의 경우처럼 성격은 비슷하지만 날짜와 명칭이 다른 경우도 있다. 남한의 제헌절(7.7)은 북한에서 '헌법절'(12.27)로 불린다. 북한의 헌법절은 남한과는 달리 국가가 세워진 이후 처음 제정된 헌법을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지난 1972년 12월 최고인민회의 제5기 1차회의에서 개정된 '사회주의 헌법'을 기념한다. 북한의 최초 헌법은 지난 48년 9월 공포됐다.
남한의 '어린이날'(5.5)이 북한에서는 특별히 지정된 날이 없지만 다만 비슷한 형태로 1950년 4월 제정한 '국제아동절'(6.1)이 있어 어린이들의 명절로 되고 있다. 북한은 '국제아동절'에 대해 "제국주의를 반대하고 평화를 수호하며 어린이들의 생명과 권리를 지키고 그들의 행복과 건강을 도모하기 위한 어린이들의 국제적 명절로서 6.1절이라고도 한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한편, '국제아동절'이 탁아소, 유치원 어린이들의 명절이라면 '조선소년단' 창립일인 6월6일은 중학교 3학년1) 이하 학생들의 명절이라고 할 수 있다. 붉은 머플러로 상징되는 소년단은 만 7세부터 13세까지의 어린이로 구성되어 있다.
남한에서는 '한글날'이 10월9일이지만 북한에서는 이와 다르다. 즉 남한에서는 훈민정음 '반포일'인 세종 28년(1446년) 음력 9월 '상한(上澣)'을 근거로 상순의 끝날인 9월10일을 양력으로 환산하여 10월 9일을 한글날로 기념하고 있지만, 북한은 훈민정음 '창제일'을 기념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은 남한의 훈민정음 반포일에 대해서는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않은 채 창제일을 기념하고 있다. 창제기념일과 관련해서도 1961년까지는 1월9일을 기념일로 설정했으나 1963년부터는 1월15일로 변경시켜 기념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한편, 기념일에 게양하는 국기와 관련, 북한에서도 해방직후 몇 년 간은 태극기를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다 1948년 북한정권 창건과 함께 '공화국 국기'2)를 만들어 공식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올해 신년 공동사설로 본 북한의 주요 행사
그 러면 이렇게 많은 명절과 기념일 중에서 북한은 올해 어느 명절을 가장 성대하게 치를까? 이를 쉽게 알기 위해서는 북한이 매년 한번도 빠짐없이 발표하는 신년 공동사설(신년사)을 보면 된다. 북한은 매년 1월1일 신년사를 발표한다. 신년사를 통해 지난 1년을 '총화'하고 앞으로의 1년을 '전망'한다. 북한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있어 신년사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텍스트다. 북한의 공식적 입장이 신년사를 통해 모처럼 공개화 되기 때문이다.
북한의 신년사란 쉽게 말해 '신년을 맞아 최고 통치자가 발표하는 국정연설'로 이해하면 된다. 북한의 신년사와 비슷한 것으로, 우리나라의 경우는 1월 중순경쯤 대통령 연두기자회견이 있으며, 미국의 경우도 1월말쯤에 연두교서를 발표한다. 작년에 부시 미 대통령이 북한을 이란, 이라크와 함께 '악의 축'으로 규정한 것도 일종의 신년사인 연두교서를 통해서였다.
올해 북한은 신년사에서 2003년을 '영광스러운 우리 조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창건 55돌이 되는 뜻깊은 해'이자, '위대한 조국해방전쟁에서 우리 군대와 인민이 이룩한' 전승기념일(정전협정일) 50돌로 규정하고 있다.
북 한은 보통 5년, 10년을 주기로 '꺾어지는 해'를 중히 여긴다. 한 예로 지난해는 이른바 60-90-70의 해였다. 즉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60회 생일을 비롯, 고 김일성 주석의 90회 생일과 인민군 창건 70주년(4.25) 행사가 연이어 있었던 것이다. 올해에도 정권 창건일과 전승기념일이 꺾어지는 해이기 때문에 그 어떤 명절보다도 의미있고 성대하게 치러질 것으로 보인다.
특 히 최근에는 북핵문제를 둘러싸고 북미관계가 군사적 긴장관계로 치닫고 있으며, 또 경의선과 동해선의 철도와 도로가 군사분계선을 관통했고 금강산 육로관광이 임박했는데 이에 대해 미군(유엔사)이 관할권문제를 들고나와 남북간의 통행을 방해하고 있다. 북한은 군사분계선을 낳은 정전협정을 최근 미국에 제의한 '북미 불가침조약 체결'로 대체하기 위해서도 정권 창건일과 전승기념일을 크게 치를 것으로 판단된다.
후주
1) 북한은 지난 1972년부터 인민학교(4년)-고등중학교(6년)-대학교(5∼7년)로 이어지는 학제를 운영해 왔으며 유치원 높은반 1년과 인민학교, 고등중학교를 합해 '11년 의무교육제'를 실시해 왔다. 그러다 북한은 최근 인민학교(남한의 경우 초등학교)는 '소학교'로, 고등중학교(남한의 경우 중고등학교)를 '중학교'로 각각 학교 단위명을 바꾼 것으로 확인됐다. 이로써 북한의 학제는 유치원-소학교-중학교-대학교로 바뀌었다. 이렇게 보면 여기서 북한의 '중학교'는 남한의 '중고등학교'에 해당되며, '중학교 3학년'을 연령으로 치면 만 13세에 해당된다.
2) '공화국기' 또는 '남홍색기'로도 불리며 남한에서는 보통 '인공기'로 불린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인공기'라고 부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