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노동운동·노사관계 전망

노동사회

2003년 노동운동·노사관계 전망

admin 0 2,422 2013.05.10 11:08

격동의 2002년이 지나고 2003년 새해가 밝았다. 지난 해 노사관계는 공공 3사 파업으로 인한 노정간의 대격돌을 필두로 해서 노동시간 단축, 공무원 노동조합 인정 문제, 경제자유구역 등 다양한 법제도 개선의 과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새해로 이어왔다. 민주노총은 4·13 총파업 유보로 심대한 조직적 위기에 직면했으며, 한국노총은 11월 민주사회당을 출범시키고도 다수 산별 위원장이 수구 정당인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바람에 지도력의 위기에 직면하기도 하였다. 태풍의 핵으로 등장한 비정규직 문제는 어떠한 제도 개선도 없는 가운데 비정규직 노동자의 자주적 단결과 투쟁은 패배의 쓰라림 속에서 새로운 전망을 모색하고 있다.

한편 노무현 정권의 등장은 새로운 노동정책이 시행된다는 측면에서 노사관계의 새로운 변수로 등장하고 있다. 노동계로서는 노무현 정권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가 주요한 과제로 등장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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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사관계에서 주요한 변화는 노무현 정권이 새롭게 등장했다는 점이다.  ▷ 출처: 오마이뉴스 ]

노무현 정부의 노동정책

무엇보다도 노사관계에서 주요한 변화는 노무현 정권이 새롭게 등장했다는 점이다. 즉 노무현 정권의 정책 기조가 무엇이며, 앞으로 어떤 정책을 전개할 것인가가 올해 노사관계의 주요 변수로 등장한 것이다.

노 당선자는 공약에서 노사관계의 주요 이슈에 대한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주요 기조는 김대중 정권이 제시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틀은 가져가되, 과도한 신자유주의의 폐해는 시정·보완하겠다는 것이다. 즉 경제정책의 내용에서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 재벌개혁 등 공정한 경쟁질서 확립"의 기치 아래 경제관련 규제를 완화하고 기업의 자율성은 확대하며 재벌개혁 등 시장의 공정성과 기업의 투명성을 제고하는 등 시장주의적 경제정책의 큰 틀은 지속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러한 시장주의적 경제정책의 기조는 DJ식 경제정책과 그리 큰 차이를 보이지 않으며, 공정한 경쟁질서라는 측면에서 재벌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 재벌개혁이라는 측면에서 재벌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지만, 그 주요 정책의 내용은 출자총액제한제, 집단소송제 도입 등 과도한 독점의 폐해를 시정하는 정도이지 재벌을 해체하는 내용이 아니라는 측면에서 IMF 등 초국적 자본이 요구하는 DJ식 재벌개혁의 주요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고 보여진다.

단, 이러한 정책의 폐해나 모순에 대해서는 복지·세제·노동정책 등을 통해서 시정과 보완을 밝히고 있다. 노동정책과 관련된 주요 개선책은 다음과 같다. 고용이 불안정하고 노동조건이 열악한 비정규 노동의 확산에 대해서는 균등대우와 남용의 제한이라는 기본 방향 하에 이를 규제한다. 주5일제도 대통령 임기 안에 이를 실시하고 비정규직에게 연차휴가를 확대한다. 공무원 노동조합 역시 전교조처럼 노동2권을 보장한다. 또한 공기업 민영화도 효율성 개선을 위해 찬성하나 전력·철도·가스 등 네트워크 산업의 민영화는 재고한다. 아울러 여성·비정규직·장애인 등의 차별을 시정하기 위해서 「국가차별시정위원회」를 설치하겠다는 입장이다. 노사정위원회도 위상을 격상하고 독립성을 강화하는 등 개편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노무현 정부의 성격과 그를 둘러싼 환경

이 들 내용은 신자유주의 반대의 기치를 내걸고 있는 노동계의 요구에는 미흡하며 신자유주의 기조를 깔고 있으나 전반적으로 DJ 정권 때보다는 개혁적이라 할 수 있다. DJ 정권이 비정규직 문제에서 어떤 정책적 제도 개선이 없었고, 기간 네트워크산업의 민영화를 일방적으로 추진하고 공무원 노조가 아닌 공무원 '조합'만 허용하겠다는 입장에 비해서 진일보한 것이라 주장할 수 있다고 보여진다.

따 라서 제시된 공약의 기조를 본다면, 노무현 정권의 성격은 자유주의적 개혁파라고 할 수 있으며, 김영삼·김대중 정권을 뒤이은 한국의 자유주의 정권의 단계적 완성으로 보여지기조차 한다. 이는 한나라당이 재벌개혁에는 소극적이고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적극 주창하면서 이로 인한 폐해는 시장에 맡겨두겠다는 시장지상주의를 지향하면서 노동자를 전적으로 배제하는 정책과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 그런 면에서 한나라당이 과거의 수구반동과 시장지상주의의 모순적 결합이라면, 노무현 정권은 시장주의와 개혁주의의 모순적 결합인 셈이다. 특히 재벌2세인 정몽준과의 단일화가 선거 전날의 극적인 합의 파기로 자유로워짐으로써 과거 3당 야합이나 DJP연합을 통해 집권한 양김에 비해 독자 정책을 추진할 여건이 훨씬 넓어진 상황이다.

문제는 과연 노 정권이 이들 제시된 공약마저 적극적으로 추진할 조건과 역량, 의지가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주관적 의지만으로 사회경제적 조건을 뛰어넘을 수 없다. 또한 정치라는 냉혹한 현실은 공약(公約)을 순식간에 공약(空約)으로 만들어버린다.
우선 초국적 자본을 중심으로 한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개방의 공세는 한국 경제를 규정하는 중요한 요소다. 농업·교육·법률·의료 등 서비스 부문의 개방을 둘러싸고 WTO 협정이 지속적으로 추진되고 있으며, 한국-칠레 자유무역협정에 이어 한-일·한-중간의 자유무역협정도 쟁점이 되고 있다. 민영화와 규제철폐의 기본 방향 역시 노무현 정부가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신자유주의 정책의 결과는 노동자 민중에게 많은 고통을 가져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둘째, 재벌·관료·보수언론 등 기득권 세력은 개혁에 저항할 것이며, 소수파 정권으로서 이들의 압력을 뿌리치고 개혁을 펴나가기에는 주체 역량이 매우 취약하다. 이미 재벌개혁은 재벌의 저항과 보수언론의 흔들기로 인해 자율적·점진적으로 추진하기로 인수위원회에서 발표한 바 있으며, 공약과 달리 인수위의 10대 국정주제에서는 "자유롭고 공정한 시장질서 확립"이라는 주제 하에 재벌개혁은 사라지고 말았다. 아울러 노 후보 공약에 대해서 노동부가 인수위 업무보고에서 "비정규직 동일노동 동일임금 수용불가", "노사정위원회 비상설화" 등 공약과 배치되는 입장을 표명하는 등 관료의 저항 역시 만만치 않다.

셋째, 여소야대 정국은 법제도 개선과 관련해서 한나라당의 협조 없이는 법개정이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으며, 친재벌·친재계의 한나라당이 개혁 법안의 통과를 불가능하게 만들 것으로 보인다.

물 론 노무현은 높은 국민적 지지와 개혁과 평화를 주장하는 개혁주의자들을 기반으로 후보선정이나 단일화와 당선까지 소수파의 어려움을 극복해왔다는 측면에서 많은 기대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노무현 당선자의 공약이나 지지세력이라는 측면에서도 자유주의의 틀이나 일반민주주의 측면을 뛰어넘는 개혁을 추진하기에는 한계가 있으며, 노동개혁을 둘러싼 구조적 조건 역시 그러하다는 점을 충분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노사정위원회의 재편

올해 노사관계 이슈 중 가장 먼저 직면한 과제는 노사정위원회의 재편 문제이다. 기존의 노사정위원회는 민주노총의 탈퇴와 주요 이슈에 대한 합의 도출 실패로 식물인간 상태에 놓여있다. 김대중 정부는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정책을 전개하면서 노사정위원회를 사회적 협상의 장이라기보다는 구조조정의 장식물이나 형식적 통과의례로 활용하였으며 아울러 양대 노총 가운데 한국노총만을 파트너로 삼는 치졸한 술책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민주노총이 노정·노사정 교섭 틀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노사정위원회의 위상을 강화하고 그 권한과 책임을 민주노총까지 참여할 수 있도록 재편할 수 있다면, 각종 제도개선과 사회정책을 논의하는 새로운 사회적 교섭의 장이 열리게 될 것으로 보인다. 노 당선자는 사회적 파트너십을 형성하는 기구로써 노동부로부터 독립하여 사회적 의제까지 다루는 상설 기구로 위상을 정립하겠다는 입장을 제시하였다.

물론 노사정위원회 재편의 핵심은 실질적 논의와 교섭의 장이 이뤄지고, 사회적 파트너 사이에 신뢰가 이루어질 수 있느냐다. DJ정권에서 노사정위원회는 구조조정의 장식물이나 형식적 교섭의 장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 이러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노사정위원회의 재편 역시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로 끝날 것이다.

노 동계도 노사정위원회에 대한 과도한 우려나 기대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 "국가·자본·노동 사이에 호혜적 타협과 양보, 이익의 교환이 제도화된 정치적·사회적 체제"로 얘기되는 사회적 합의주의(social corporatism)가 제대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노동자 정당의 집권이나 진출, 노사 단체의 중앙 지도력과 집중성을 통한 대표성, 국가정책의 자율성이라는 세 가지 조건이 구비되어야 한다. 그렇지 못한 한국의 현실에서 제대로 된 사회적 합의구도는 이뤄지기 어려우며, 존재하지도 않는다.

외국에서도 지속적인 사회적 합의체제는 북유럽 정도다. 그리고 많은 경우는 일시적 사안에 한정되거나 선언이나 수사에 머물렀으며, 영미식 신자유주의의 횡행은 그나마 사회적 합의 장치조차 침식하고 있는 것이 요즘의 현실이다.

이 런 점에서 사회적 합의주의를 개량이나 포섭의 기제라고 주장하며 노사정위원회 해체를 주장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 사회적 합의구도가 제대로 작동하기 어려운 한국의 현실을 외면한 채 마치 노사정위원회가 엄청난 개량과 포섭의 내용을 가지고 있는 양 주장하는 것은 있지도 않은 '상상 속의 괴물'을 비판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노무현 정부 하에서 노사정위원회가 DJ때와는 획기적으로 달라진 무엇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 역시 현실을 무시한 낭만적 기대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여진다. 세련된 자유주의 정부로서 노무현 정부는 물리적 탄압이나 억압보다는 헤게모니적 접근과 시장 기제를 중심으로 노동정책을 전개할 것이다. 아울러 자신의 개혁적 공약 역시 시장주의 정책이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관료·재벌·한나라당의 저항에 직면하여 시행착오와 지지부진한 상황에 빠질 것으로 보인다. 개혁적 공약 역시 노동운동을 비롯한 민중·시민사회단체·개혁적 국민들의 압력과 대중행동 없이는 가능하지 않다.

따라서 노동운동은 대중투쟁을 근간으로 하면서 협상과 교섭의 장을 활용하는 접근법을 취해야 할 것이다. 노사정위원회를 지속적인 개입과 비판의 통로이자, 노동계의 의제를 사회적 의제로 끌어올리는 장으로 재편하고 전술적으로 활용한다는 입장이 필요하다. 즉 대중투쟁을 근간으로 두면서 협상을 전개하고 노동 대중과 국민 대중에게 자신의 요구와 정책의 정당성을 확인시키고 사회적 주도권을 확장하기 위해 노사정위원회를 활용해야 한다. 물론 이러한 접근법에는 필요에 따른 불참도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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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10일 서울 대학로에서 열린 2002 전국노동자대회  ▷ 출처:노동과 세계 ]

구조조정

IMF 경제위기 이후 구조조정 문제가 한국 노사관계에서 가장 큰 쟁점으로 떠올랐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금융 구조조정과 발전·철도·가스 민영화 문제가 쟁점으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은 행 구조조정은 조흥은행의 매각과 보험 등 2금융권 구조조정으로 이어질 것이다. 조흥은행 매각은 노무현 당선자 측에서 단계별 매각을 공약했다가, 인수위에서는 현 정권하의 일괄 매각을 추진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 노동조합의 강력한 반발이 예상된다. 2금융권은 증권산업의 대형화·전문화를 위해 합병 등으로 선도 투자은행을 유도한 뒤, 자연스럽게 중소형 증권사의 합병이나 퇴출을 통해 증권산업 구조개편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작년 2월 공공3사의 파업으로 사회 쟁점으로 부각된 공기업 민영화에 대해 노 당선자는 전력·철도·가스 등 기간 네트워크 산업의 민영화를 재고하기로 약속한 바 있다. 민영화의 모범 사례로 거론되던 미국과 영국에서도 캘리포니아 단전 사태, 엔론 사태, 브리티시 에너지의 공적자금 지원, 영국 철도의 대규모 탈선 사태에서 기간산업 민영화가 재앙으로 드러난 바 있다. 그러나 남동발전은 올 상반기내 매각일정을 계획대로 진행중이며, 이미 십 몇 군데의 국내외 독점 자본이 입찰에 응한 바 있다. 초국적 자본의 요구에 따라 이미 진행중인 정책을 노무현 정부가 공약대로 재검토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한편 철도와 가스 역시 정부의 구조개혁법안이 그대로 남아 있는 상태다.

따라서 노무현 정부로서는 현재 진행중인 구조조정 일정(조흥은행 매각, 남동 발전 매각)은 원래의 공약과 달리 몇 가지 부대 조건을 붙여 그대로 추진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철도와 가스는 아직 법개정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법안을 재검토할 것이며, 2금융권의 구조조정은 추진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초국적 자본의 압력과 기존 정책을 추진하려는 관료에 맞서 재검토 및 공공성의 유지가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이렇게 볼 때 구조조정은 여전히 노무현 정권 하에서도 치열한 쟁점이자 태풍의 핵이 될 것이며, 이런 점에서 노정관계의 격돌을 예고하고 있다.

법·제도 개선

작년부터 사회 쟁점이 되었으나 해결되지 않은 채 올해로 넘어온 법제도 개선 관련 사항은 △ 주5일제, △ 공무원 노동조합, △ 비정규직 보호, △ 경제자유구역, △ 기업연금제 도입 문제다.

주 5일 근무제에 대해서 노무현 당선자의 공약은 기존의 정부안과 달리 단계적으로 실시하되 차기 대통령의 임기 중에 이를 마무리짓겠으며(정부안 10년), 비정규직에 대해서 15일(정부안 12일)로 늘려 정규직과 형평성을 맞출 것을 약속하고 있다. 이는 정부안에 비해서 노동계에 유리한 것이나 노동계에서 이를 전폭 수용하기에는 미흡한 반면, 사용자 역시 이를 반대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원래 정부가 공언한 2월 법개정은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으로 보이며, 개정안이 상정된다 하더라도 한나라당이 반대할 것으로 보여 현실적 법개정이 어려운 상황에서 노사정 사이에 새로운 논박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공무원조합'안을 내놨지만, 노 후보는 공무원 노동조합을 인정하고 단체교섭권은 보장하되 법령·조례·예산에 관한 사항은 단체협약의 효력을 제한하는 식으로 전교조 방식의 해법을 준비하고 있다. 아울러 교사와 공무원노조의 전임자 임금 지급을 기존의 노동조합과 마찬가지로 2006년까지는 인정하겠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으며, 이를 2003년 7월1일부터 시행할 수 있도록 법개정을 하겠다고 밝혔다. 공무원 노동조합 노동2권 보장은 사용자의 반대여부와 상관없이 노사정위 노정 합의를 통해 법개정 추진이 가능하다는 측면에서 노 정권의 노력과 더불어 노동계의 적극적 활동이 요구되고 있다.

비정규직 보호에 대해 노 당선자의 공약은 적극적인 내용을 갖고 있다. 균등 대우와 남용 제한이라는 기본 방향 속에서 △ 임시직 계약직에 대해서는 합리적 사유가 있는 경우에 제한하고 남용을 방지하고 균등대우를 제도화, △ 단시간 노동자는 통상 근로자와 균등 대우, △ 일용노동자는 고용경력증빙 체계를 만들 것, △ 파견노동자는 등록형 및 모집형을 상용형 파견으로 전환하고 불법파견을 감독함, △ 특수고용형태 종사자는 사회보험의 적용과 단결권을 보장하는 등의 정책을 제시하고 있으며, △ 마지막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를 비롯한 여성·저학력·장애인 및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을 시정하기 위하여 "사회적 차별금지 및 적극 시정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하고 국가차원에서의 관리·감독을 강화하기 위하여 「국가차별시정위원회」를 설치할 것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노동부에서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수용불가를 밝혔듯이 관료의 저항과 더불어 사용자측의 반발 역시 클 것으로 보인다.

경제자유구역법은 파견근로의 확대, 월차 및 생리휴가의 폐지, 장애인 의무고용의 면제 등 외국자본을 유치하기 위해 헌법상의 평등권마저 부정한 대표적 악법이다. 노 당선자는 경제자유구역은 필요하며 단지 노동권의 침해에 대해서는 검토의 여지가 있다고 밝혔으나 이미 국회를 통과한 법안을 되돌릴 가능성은 별로 없을 것으로 보인다.

아 울러 지난해 정부가 올 2월 국회 제출의 일정으로 밝힌 기업연금제 도입 역시 중요한 쟁점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있다. 정부시안은 △ 현행 퇴직금을 유지하면서 사업장별로 노사합의를 통해 기업연금 도입, △ 기업연금 형태는 확정급부형과 확정갹출형(확정기여형) 중 노사에게 선택권 부여, △ 회사 이전 시 연금 이전이 가능하도록 개인퇴직계정제도 도입, △ 기업연금 기여금에 대한 세제혜택으로 제도 확대 유도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핵심은 노동자의 퇴직금을 주식시장을 활성화할 수 있도록 확정갹출형 기업연금화하고 퇴직금의 임의연금화로 유도하겠다는 장기적 포석으로 보인다.

이에 노동계는 기업연금제를 도입하기보다는 퇴직보험 가입 의무화로 외부적립 강제화, 퇴직금제 전 사업장 확대가 시급하다고 부정적 입장을 보이고 있다. 아울러 경총은 확정갹출형 제도를 선택하고, 더 많은 기업들이 기업연금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기업의 과도한 복지부담을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재경부를 중심으로 기업연금제 도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으며, IMF나 세계은행 역시 이 안을 선호하기 때문에 신 정권과 정책 조율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이나 정부는 기업연금제 도입을 집요하게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으로 본다면, 올해 법개정은 여소야대 국면에서 노사정 합의 없이는 쉽지 않을 것이며, 현재 쟁점이 되고 있는 법제도 개선 사안 역시 공무원 노동조합 문제를 제외하고는 노사정의 의견 조율이나 합의가 쉽지 않으므로 개정안이 제출된다 하더라도 공방만 이루어지면서 실질적인 법 개정은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임금·단체협상

올해 임금·단체협약 교섭에서는 무엇이 주요한 쟁점이 될까? 아무래도 아웃소싱 등 비정규직화, 연봉제나 성과급 등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추진하려는 사측과 이에 대항해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구조조정에 대한 개입을 추진하려는 노동자의 요구가 여전히 갈등하는 구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작년에 금융노조 및 2금융권까지 확대된 주40시간제 노동시간 단축이 올해도 주요 요구로 등장할 것이다. 임금 인상은 경제성장률이 5∼6%로 작년보다는 약간 저하될 것이므로 작년의 협약인상률 6.0%에 비해 조금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작년에 이어 올해도 산별 교섭을 둘러싼 쟁점이 보다 부각될 것이다. 민주노총은 이미 조합원의 40%가 산별노조의 조합원일 정도로 산별노조 건설은 이미 대세로 정착되었다. 문제는 산별 교섭의 적용 가능성 문제로 발전한 상태다. 금융노조는 이미 통일 단협과 주5일제 협약 등을 쟁취함으로써 산별 교섭을 현실로 만들어냈다. 증권노조도 경총과 통일 임금·단협을 체결했다. 그에 비해 보건의료노조와 금속노조는 기업별로 산별노조와 초보적인 기본협약이나 "산별 교섭에 응하겠다"는 수준의 합의에 머무른 상태다. 게다가 금속은 두산중공업에서의 패배로 대공장에 산별 교섭을 강제하는 데 어려움에 봉착한 상태며, 보건의료노조도 카톨릭의료원에서 후퇴를 경험했다. 산별 교섭으로 이행하기 위한 노동계의 새로운 전술이 기대된다.

노동계 자기 혁신

올 해는 21세기 첫 새 대통령 하에서 노사관계의 지평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를 둘러싸고 노사정 사이에 치열한 각축과 갈등이 벌어질 것이다. 노동조합은 그동안 확대되는 비정규직을 조직화하는 데 실패했으며, 조직률도 1987년 이전의 12% 수준에 머물러 있으므로 전체 노동자의 대표자로서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기존의 기업별 노조를 극복하고 산별노조로의 재편과 더불어 미조직 조직화의 새로운 전술이 모색되어야 한다. 일반노조, 비정규 독자노조 등 다양한 실천들이 있었지만 아직 모범 사례는 정착하지 못했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이후 노동계는 사회 혁신의 목소리를 높였지만, 정작 스스로의 혁신은 이루어내지 못하고 조직 위상만 하락시켰다. 조직 내부의 분파 갈등은 정책 경쟁이나 다양성보다는 분파의 이기주의와 조직적 원심력만 키워왔다.

지난 대선에서 국민들은 변화와 개혁을 주장한 노무현 정부를 선택했다. DJ정부의 실정에도 불구하고 수구반동보다는 개혁을 선택한 것이다. 노동계가 치열한 자기 혁신과 실천 노력을 게을리 한다면 국민만이 아니라 노동대중으로부터 외면당할 수 있다. 따라서 새해 노사관계는 무엇보다 노동계 내부의 자기 혁신이 가능하냐에 여부에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 72호